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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 서대리의 올림픽 애국

2004.8.26. 목요일
올림픽 특별시청반




한민족의 저력을 보여주겠다며 야심차게 준비한 제 24회 서울 근대올림픽 대회가 열린 해는 팔땡년, 그니까 1988년의 늦여름이었다.


올림픽 하면 메달도 메달이려니와 개폐막식의 공연에도 은근슬쩍 기대가 가지 않나 싶다. 도시가 이룩한 문화업적을 전세계에 알리는 장이자, 이를 좀더 뽀다구나게 구현하기 위한 테끄날러지도 그 도시의 소유물로서 과시할 수 있는 경연장이 아닐라나? 물론 전 세기에 열렸던 서울올림픽 개폐막식은 온 대한민국이 달라붙어 맹글어 버린 과업이자 장관이긴 했지만서도... (9월 17일부터 10월 2일까지 열린 당 대회 때 정부는, 구미 각국 시청자들의 시청이 덜 불편하도록 썸머타임제까지 실시해설라무네, 전국민이 한 시간 빠른 기상과 취침에 시달려야 했다.) 어쨌거나...


이 대규모 문화·기술 경연에 열 여덟 꽃같은 나이로 참가했던 어느 여성을, 본지가 열라리 어렵게 연락해서 겨우 만나봤다. 열 여덟의 소녀는 이제 완숙한 커리어워먼이 되어서는 기자 앞에 당당히 나타났다. 이렇게....








 
현재 H사 IT관련 계열사에 근무하는 서선미씨는 자신의 신분 노출을 극구 꺼렸다. 뭐, 퍽이나 장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왠 오바냐는 얘기였다. 하여 그녀의 의견을 십분 존중해서 신분과 이름을 공개치 아니하고, 걍 서대리로 호칭하려는 점, 독자제위의 하해와 같은 이해를 구한다.


시내 모처에서 서대리를 만난 것은 지난 24일이었다. 서로 서먹서먹한 분위기 속에서 어색하니 첫 대화를 시도했다.


"야아, 연락 디지게 안되더라. 휴가 갔었냐? 그랬구나. 이번엔 얼루 갔냐? 누구랑 갔냐? 좋았냐?"


어느 정도 어색함을 지운 뒤 본격적으루다가 그녀의 경험담을 들으려 하는데, 가방서 뭔가를 부시럭거리며 꺼내 놓는다. 이게 모냐....



훈장이란다. 올림픽 개폐막식 출연자들에게 모두 수여됐다는데, 그럼 죄 지어도 이 훈장 반납하면 한번 쯤은 사면될 수 있을까나?


"글쎄다...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구 이 훈장의 의미라면... 이쁘지..요?"


출연 한번 하고 훈장까지 타면 그거 괜찮은 장사 아니더냐. 과연 어느 만큼 권능이 있는지는 의심스럽지만 아무튼 그녀가 훈장까지 받을 만한 일을 했는지 집중 추궁에 들어갔다.


때는 1987년, 그녀가 꿈많은 여고시절을 시작한 모교, 서울여상이 다음 해에 있을 올림픽 개막식 공연 한 자리를 따냈더란다.


"1학년 2학기 정도 됐을까요? 1학년들이 올림픽 마스게임에 나가기로 결정이 됐다는 거예요. 바로 전 해에 아시안게임을 봤던 터라 막연히 신나겠다 생각했죠. 늦가을로 접어드니까, 올림픽조직위에서 파견한 무용강사도 오셨어요. 뭐? 아, 저희가 출연하는 게, 현대무용편이었거든요, <태초의 빛>이라구 해서 무용가들하구 대학 무용과 학생들, 동대문 상고 학생들 이렇게 천명이 훨씬 넘는 사람들이 함께 하는 대형 프로젝트였죠."


부연설명을 하자면, 그녀와 그녀의 학교는 서울올림픽 개막식 식전행사였던 <태초의 빛>과 식후 행사인 <어서오세요> 꼭지를 맡았다. 첫 꼭지의 경우, 운동장 중앙에서 엘리트 무용가들이 그 어렵고 난해하다는 현대무용으로 올림픽을 경축하는 동안, 서울여상팀과 동대문상고팀은 막강한 수적 우위만을 가지고 넓디넓은 잠실운동장 바닥을 구르고 엎어지며 여백을 메꿔줬다고나 할까?


그들의 활약이 빛난 것은 2부격인 <어서오세요>다. 앞꼭지가 끝나고 예술가들이 퇴장한 뒤, 당 청소년들이 예의 그 막강한 수적 위용과 잘 훈련된 조직력으로 글자와 문양들을 만들어 나갔다. 기억하시능가? 안나시면 동영상을 관람하시라..


<동영상 링크-태초의빛>


"<태초의 빛>은, 이대 무용과 교수였나? 육완순 교수라고 당시 유명했던 안무가샘이 연출을 했죠. <어서오세요>는 저희 학교 무용선생님이 감독하신 거예요. 이 분이 이런 마스게임에 원래 경력이 있으셨다 하더군요. 아무튼 팔자에도 없는 현대무용 배우느라 호호호 엄청나게 고생했는데 산너머 산이라구 그 담에는 운동장 뛰어다니며 글자, 그것도 한글이랑 알파벳이랑 두 번씩이나 만들고, 쫌 있다가 오륜기 만들고 게다가 올림픽 엠블렘까지... 연습하느라 정말 고생 많았어요.


팀들이 모두 모여 연합연습을 할 때는 장소 크기가 중요한 만큼, 효창운동장을 갔지요. 그땐 저희 학교가 서대문 무악재에 있었거든요? 올림픽 조직위에서 수송버스를 학교까지 보내주곤 했죠. 왜 옛날에 방위들 말이예요. (기자의 준엄한 지적에) 아, 그래 단기사병, 단기사병들 출퇴근 버스가 수송버스였잖아요? 그걸 학교에다 보내주면 걸 타고 효창운동장이나 잠실스타디움 등으로 이동했던 거라.."







옛일을 회상하며 드뎌 눈가가 젖어드는 서대리한테 본기자 예리한 질문 하나 던졌다.


"아..밥은 먹구 했냐구요? 네 밥도 줬어요. 밥이라기 보다는 태극당, 가나안제과 머 이런 데서 만든 소보루빵 머 이런 거하구 탐스같은 과즙음료수를 줬지요. 운 좋은 날엔 햄버거도 나오고.. 나왔나? 딴 학교에는 나왔는데 저희는 못먹은 거 같아요. 아마 날이 더워가지구 선생님들께서 못먹게 한 거 같기도 하구.. 그치만 그때는 그게 어찌나 부럽던지...


그거 아시죠? 효창운동장이 인조잔디였던 거. 한여름에 인조잔디 위에 그냥 있으면 화상까지 입을 정도죠. 그 위에 눕고 엎드리고 하다가 또 여기저기 뛰어댕기구 그러다가 끼니때 되면 한쪽 구석으로 몰려가 빵이랑 주스를 먹었죠. 정말, 눈물과 땀 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르는.. 으흐흑..."


지 혼자 울적해진 서대리를, 그래도 글자와 엠블렘만 만든게 어디냐, 호돌이까지 만들라고 했으면 어쩔 뻔했냐고 이성적이고도 논리적으루다가 위로하며 가까스로 달래놓은 뒤, 본 기자는 계속해서 날카로운 질문들을 이어나갔다.


"효창운동장을 같이 뒹군 동대문상고 학생들하고는 뭔 일 없었냐구요? 첨에는 조금 의식도 하구 머 그랬는데 나중 되니까 뭐랄까요... 남매애가 생겼다고 해야 하나?? 물론 커플된 경우도 몇 있던 거 같지만, 저야 워낙에 애국해야 한다는 생각에... 근데 머 그런 걸 물어봐욧??"


괜히 신경질이다. 얼마 전, 아테네올림픽 개막식이 있었다. 이를 바라보는 그녀의 전문가적 판단과 소회가 궁금해졌다.


"자느라 못봤는데요."


나중에 하이라이트도 안봤냐고 기자가 강하게 다그치며 허를 찌르자...













04 아테네올림픽 오륜, 자동으로 만들어지다



88 서울올림픽 오륜, 존나 뛰어 만들어지다


"딴 건 모르겠구... 그게 기억에 남더군요. 물 위에 오륜이 불붙어서 그려지던 거.. 거 내가 할 때는 정말이지 존나 읍 아니 열심히 뛰어댕기믄서 만들었는데 자동으로 스스륵 그려지는 것이 참, 격세지감이랄지 아니면 너무 성의가 없다 할지..."


"폐막식이요? 글쎄요... 너두 아니 기자님도 아시겠지만 제가 잠이 좀 많아서 볼 수 있을 지... 더구나 담날 출근인데! 근데요, 제 개인적인 생각인지는 몰라도 서울올림픽 폐막식의 감동을 깰 거는 아무 것도 없다고 보여요. 정말 멋졌어요. 리허설 때 참관하는데 팍 뭔가가 치밀어 오르는 게 아.. 대단했죠."


서대리가 말한 서울올림픽 폐막식, 기자도 기억한다. 지대 끝내줬었다. 요거 잠깐 관람하실라믄 클릭하시라!


<동영상-떠나가는배>
전체참가선수단이 그라운드에 고냥 있는 가운데 벌어진 폐막식 공연은 참으로 열린 구조를 가진 피날레였다고....


끝으로 선미 아니 서대리한테 물었다. 서울올림픽이 너 아니 서대리 당신에게 가지는 의미는 무엇이냐고...


"훗훗.. 그러게 말야.. 아니 그러게 말이예요. 거의 1년을 연습했고 그러다 보니, 오전수업만 하는 것도 부지기수였죠. 수업손실 메꾼다고 여름방학 때까지 정규수업을 했어요. 역시 오후 되면 그 뙤약볕에 나가 춤추고 돌아다녔습니다. 올림픽이 가까워지면서는 밤 늦게까지 남아있어야 했구요.


아시안게임 때, 인문계 중심으로 학생들 동원했는데 학부모 항의 등 거부반응들이 많으니까 올림픽 때는 실업계 학교들이 대거 참여했어요. 제 모교나 동대문상고 뿐 아니라 영등포여상, 염광여상 또 덕수상고 등 서울시내 대다수의 실업계 고등학생들이 1년 여를 고생해 만든 게 올림픽 개폐막식 공연이었습니다. 물론 특전사 소속 군인 아저씨들도 정말 많이 수고했구요.







지금 생각하면 억울하기도 해요. 대학을 가니 안가니, 공부를 잘하니 못하니 따지기 전에, 수업을 받거나 거부할 권리는 학생한테 있어야 하는 거니까. 우리가 그거 하겠다고 동의한 적 없었거든요. 그런데 저를 비롯한 참가자들은 일종의 뭐랄까, "애국"한다는 심정이었던 거 같아요. 요즘이랑은 안맞는, 어찌 보면 촌스런 얘기지만, 효창운동장의 뜨거운 인조잔디를 견딜 수 있었던 힘은 그래요, 그거 같아요. 내가 우리나라한테 바람직한 부분에 일조하고 있다는 인식!


물론 틈만 나면 모교 선생님들이나 공연 연출가들이 저희한테, 니들이 가는 그 길이 얼마나 훌륭한 길인지 강요에 가깝게 설파하셨지만, 온전히 그렇게만 만들어진 허위의식일 뿐이라는 생각은 안합니다. 진심.. 진심으로 그렇게 느꼈던 거 같거든요?


개막식 전에 세 번 정도의 전체 개폐회식 시사회가 있었어요. 마지막 시사회 때던가? 참가자 부모님들이 낼모레 올림픽이 열릴 메인스타디움으로 초청되셨습니다. 저희들을 많이 자랑스러워 하신 기억이군요.


실제 올림픽 때는... 가볍게 떨렸던 거 같아요. 잘하자고 서로 북돋아주면서 입장했던 거 같고... 잠실운동장 하늘에 흩날리던 금종잇가루들, 수많은 관중들의 환호와 박수 그런 것들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그래요. 서울올림픽이 제게 가지는 의미는... 아마도.... 근데 이 술은 니가 사는 거냐?"








벌써 17년 전 일이 되어 버린 서울올림픽. 그렇게 평범하지만은 않은 경험을 가진 서대리를 만나고 오면서 드는 느낌 하나는, 언제부터 쟤가 저렇게 말을 잘했던고 하는... 씁.


그녀로부터 건네받은 <벽을 넘어서>라는 서울올림픽 다큐 테이프를 곰곰히 감상하려니 혼자 보기 아까운 생각이 스쳤음이다. 경애하는 딴지방송국 이태희 피디를 조르고 졸라 동영상을 좀더 올리는 바이다. 즐감하시길...


<동영상-굴렁쇠>


개막식 행사 중 <굴렁쇠> 광활하게 텅빈 운동장에 어린 소년 하나가 굴렁쇠를 굴리며 달려온다. 여백의 미랄지, 정적 속의 메시지랄지 맘이 싱숭생숭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 저 꼬마 힘들지는 않았으려나??


<동영상-코리아나>
개막식 행사 말미를 장식한 코리아나의 <핸드 인 핸드>


 


자료제공 : 서대리
동영상파일 제작 및 편집 : 딴지방송국 이태희 피디(ljohvje@ddanzi.com)


 


올림픽 특별시청반
   시포(shepoor@ddanz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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