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도화지에 검은 점 두 개를 찍어보자. 도화지로 향하는 시선은 두 점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두 점의 모양이 추하든, 아름답든 간에 시선의 독점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두 점이 도화지 여백마저 독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직 그릴 수 있는 공간은 많이 남아 있다. 오랫동안 두 점의 형상만을 바라보면, 이 간단한 사실을 잊는 경우가 있다. 이 우화를 한국의 정치 지형에 빗댄다면 과장일까?
민주냐 반민주냐, 친일이냐 종북이냐, 정의냐 불의냐의 이분법적 대립이 수십 년간 변주되는 한국 정치의 고루한 레퍼토리에 대중들이 냉담해진 지 오래다. 각 진영의 열성적 지지자를 제외한다면 다른 그림이 필요하다는 데에 동의는 쉽게 이루어진다.
그러나 각 진영에서 내세우는 논리를 구체적인 영역에서 옳고 그름을 논하다 보면, 흡사 모세의 홍해처럼 양 진영으로 갈라져 다시 대립을 반복한다.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해보자.
해방 후 건국을 인정하게 되면 우파가 되고, 친일이 되는가? 이승만과 박정희 공을 인정하게 되면 독재 찬양으로 미끄러지는가? 평등을 주장하고 국정교과서 반대하는 것이 종북좌빨이 되는가? 햇볕정책을 지지하면 진보고, 북한 인권을 주장하면 보수우파가 되는가? 정규직 양보와 비정규직 규제를 동시에 주장할 수는 없는가?
지금까지 양 진영이 대립하는 내용을 따지고 든다면 과연 어느 진영에 속해야 할지 선뜻 선택할 수 없는 대목이 적지 않다. 대중들의 정치 혐오가 우리 사회에 하나의 문화가 된 원인에는 보통 사람들의 상식과는 어긋난 정치구조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안철수 현상’이 일어나는 배경은 아마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소모적인 진영 대립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을 동의한다면 안철수에 대한 기대를 품게 된다. 그러나 몇 권의 저서를 집필한 안철수지만 그의 컨텐츠는 의외로 빈약하다. 새로운 그림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는 있지만, 어떤 노선으로 한국 정치를 이끌 것인지 뚜렷하지가 않다. 때문에 그에 대한 비판과 지지는 컨텐츠보다 주로 태도를 향한다.
제3의 노선으로 한국 정치가 리셋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주대환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세와 지지도에서는 안철수와 비견될 수 없지만, 철학과 컨텐츠가 뚜렷하다. 야권 진영에서 본다면 그의 주장은 아프고 불편한 부분이 한둘이 아니다. 때론 아군인지 적군인지의 구분조차 모호해진다. 야권 진영의 상식에서 벗어나 있지만, 어떤 면에선 국민의 상식에 밀착되어 있는 부분도 적지 않다.
주대환, 그의 삶의 이력만 살펴본다면 전형적인 모태 운동권 인사다. 70년대 반유신 투쟁으로 투옥되고 80년대 지하 노동운동 조직 인민노련을 결성하여 노회찬과 함께 사회주의 운동을 전개했다. 90년대와 2000년대에는 진보정당 창당에 올인했고 민주노동당 초대 정책위의장을 역임했다. 이쯤 보면, 야권 정치권 한 일각에서 큰 지분이 있을 법한데, 그는 여전히 소수파로서 피곤한 역정을 이어가고 있다. 사상적 변절을 하였기 때문일까? 맞다. 70~80년대의 맑스 레닌주의자는 분명 아니다. 그는 오래전부터 사회민주주의를 주창하고 지금까지 ‘사회민주주의 전도사’임을 자처하고 있다. 여전히 ‘진보 진영’에 속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진보 진영보다는 주로 보수 진영 쪽에서 그를 주목하고 있다. 흡사 보수 진영 내에서 쓴소리를 자꾸 하는 김종인, 이상돈 교수를 진보 쪽에서 환영하듯, 그도 진보진영 안에서 불편한 진실을 자꾸 얘기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여권이 이상돈, 김종인의 상식적 주장을 흔쾌히 받아들일 때, 한층 업그레이드 될 것은 자명하다. 같은 논리로 본다면 진보-야권의 진화를 위해선 주대환의 쓴 약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딴지일보는 오래전부터 그의 주장을 주목한 바 있다.
(*관련기사 2008년, [이너뷰] 주대환 민주노동당 전 정책위의장(링크)). 2010년, [딴지일보 인터뷰] '인류의 최대 발명품'을 파는 장사꾼 주대환(링크) - 서버 삭제 사태로 딴지 서버에 사라졌던 기사가 사민당 홈페이지에 다행히 살아있었다)
대중 정치인으로서 그는 무명에 가깝지만, 이른바 ‘선수’층에서는 알만한 좌파 지식인 주대환. 그는 우리 사회가 유럽식 사회민주주의를 기웃거리기 오래전부터 사민주의를 주창했다. 지식인 중에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왼쪽에 있으면서도 좌파보다 우파에게 더 사랑받는 좌파. 이제 그만 이승만과 박정희를 인정하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우리의 근대사는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지기는커녕 축복받은 역사라고 하면서도 끝까지 ‘빨갱이’인 자발적 왕따. 공자는 진보 정치인이었다는 논리를 빈틈없이 전개하는 최근작 <좌파 논어>까지, 주대환은 ‘예측 가능성’에서 습관적으로 벗어나 있다.
그러므로 야권 지지자들의 시각에서 볼 때 본 인터뷰는 도발적인 내용을 담기게 될 것이다.
주대환이 사회민주당을 창당한다. 얼마 전까지 사회민주주의연대 대표였던 그는 ‘연대’라는 흐릿한 명사를 지워버리고 ‘사회민주당’(창준위) 대표가 되었다.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어떤 정당이 아니다.
그냥 사회민주당이다. 사.회.민.주.당.
사회민주주의가 무엇인가. 그 방식이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아닌 민주정(民主政)의 절차를 따를 뿐, 결국 사회주의를 지향한다는 것이 아닌가. 아니 한국 사회의 공고한 레드컴플렉스 따위는 신경도 쓰이지 않는다는 겐가. 이 무슨 심산이며, 또 무슨 깡이란 말인가. 바쁜 그를 붙들어 매고 인터뷰하지 않을 수 없다.
벙커1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벙커1 카페와 딴지일보 사무실, 방송통신대학교 정원으로 자리를 옮겨가며 이야기했다.
세 편으로 나누어 게재할 이 인터뷰는 독자 여러분을 논쟁과 번뇌의 진흙탕으로 끌어들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하 주대환 대표는 ‘주’, 필독은 ‘필’로 표기함.)
필: 딴지일보하고 인터뷰 인연이 좀 있죠? 제 기억으론 한 2008년도에? 그때 민주노동당 분당하면서 하셨고, 그 다음에 또 2012년도인가요? 이번에 세 번째입니다. 노회찬 의원이 딴지일보 인터뷰를 가장 많이 한 정치인 중에 하나인데 그분하고 비슷한 횟수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잘 기억을 못 해요.
주: 내가 인기가 없습니다.(웃음)
왜 인기가 없는지 바로 알 수 있게 되는데,
필: 최근에 민세상을 수상하신 걸 축하드립니다.
주: 감사합니다.
필: 조선일보에서 준 상인데.
주: 아니, 그게 아니고.
필: 요즘 보수 쪽에서 이쁨을 많이 받는 거 같아요.(웃음)
주: 물론 그건 맞구요.(웃음) 그런데 그 상은 조선일보에서 준 상은 아니고, 평택시에서.
필: 아, 평택시요. ‘민세 안재홍 상’이라고 하는데 이분은 어떤 분입니까?
주: 그 분은 신간회 총무 간사를 했구요. 건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 미 군정청의 마지막 민정장관을 했어요. 그러니까 경력을 보면 그 분이 우익이면서도 좌우합작운동을 했죠. 신간회, 건국준비위원회, 그리고 또 미 군정청 민정장관. 당시 민정장관은 아무도 안 맡으려도 했습니다. 미군정이 그때 민심의 비판을 많이 받았거든요. 그런데 그런 걸 하신 걸 보면 현실노선을 걸으셨던 분이죠.
필: 현실주의자다?
주: 현실주의자죠. 큰 적과의 투쟁을 피하신 분이 아닙니다. 일제와의 투쟁에선 9번의 구속이 되신 분입니다. 그렇게 비타협적인 투사였지만 바로 그렇게 때문에 정치가로서는 굉장히 현실적인 노선을 걸었던 분이죠.
필: 일제 강점기 때 조선일보의 사장을 하셨고, 이분이.
주: 사장했죠. 그 인연으로 조선일보에서 그런 행사를 후원하는 것이고요.
필: 대표님하고... 관여하는 인물들이 보수적인 분들이 많아요.(웃음)
주: 민세 안재홍 선생도 우익이었고, 그런데 건국준비위원회에서 여운형 선생이 위원장 할 때 자기가 부위원장을 하신 것에서 드러나듯이 다른 우익들하고는 좀 다르시죠.
필: 우리나라 보수와 진보의 갈등이 참 오래되었는데, 이게 해가 가면 갈수록 더 격화되고 있죠. 이제는 아예 각자의 방언을 쓰고 있으니까. 여기서 주대표님께서 사회 통합, 갈등이 격화되고 있는 이런 상황에서 어떤 통합적인 역할을 하셨기에 이런 상을 받았다고 생각하십니까?
주: 하하. 제가 사회 통합, 국민 통합에 기여한 바는 없습니다. 굳이 상을 주신 분들이 저에게 격려를 주고 싶으신 게 있었다면, 대한민국 관, 대한민국 역사관, 대한민국의 역사를 보는 관점에서 현재 굉장히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보고 있는... 지금 교과서 문제로 역사 전쟁이 벌어졌잖아요? 과연 어떤 새로운 시각을 내세워서 평화적 근거를 마련하고자 하는가. 그런 노력을 아마 평가해주신 게 아닌가.
필: 대한민국 얘기, 국가관 얘기가 나왔으니 말씀을 드리는데, 일단 보수 쪽의 입맛에 맞는 얘기를 했기 때문에 상을 수상한 게 아닌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겠는데요?(웃음)
주: 하하.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치적 인물의 사상을 알기 위해서는 해방정국 이야기부터 해야 한다. 근대사를 어떻게 해석하는가는 그 사람의 사상이 구축되는 토대니까. 때맞은 흐름을 타고 바로 본론으로 진입하기로 한다.
1. 이승만이 공칠과삼(功七過三라)이라굽쇼?
필: 현대사 해석, 특히 국정화 교과서 관련해서 그런 문제가 많이 불거지긴 했는데 이야기가 나온 김에 현대사 문제를 가지고 본론으로 바로 이어졌으면 좋겠는데요. 주대환 대표께서는 어찌 보면 지금 보수-진보로 극명히 갈린 역사전쟁 시각에서 본다면 우리 사회에서 통칭되는 ‘진보 좌파’의 일반적 시각과는 다르잖아요. 스스로 신좌파, ‘뉴레프트’라고 주장하신단 말이죠. 주대환 대표께서는 좌파를 자임하고 계신데, 좌파 쪽에서 대한민국의 역사를 긍정한다고 목청을 높이면서 주장하시는 분은 제가 알기로는 유일한 분이세요.
정리하겠습니다. 우리나라 역사가 보수 세력에 의해서 진행이 되어온 역사인데 거기서 긍정적인 부분에 주목을 하신다고.
주: 네네.
필: 그런데 요즘 대한민국 언론을 보면 대한민국은 자유와 평등의 나라다, 대한민국이 자랑스럽다. 극장에 가서 ‘한국인인인 게 너무 행복하고 자랑스러워요’ 이런 공익 광고 보면 저도 손발이 막 오그라드는데(웃음), 근데 그 광고 끝나고 상영된 영화는 정작 <내부자들>이었는데요.(웃음) 뉴라이트가 하는 말이 이거 아닙니까? “행복한 줄 알아 이것들아.”
이런 목소리와 대표님께서 주장하시는 바가 거의 구분이 안 된다는 평가가 있는데 그래서 욕도 많이 듣지 않으셨어요?
주: 욕 많이 먹고 있습니다.(웃음) 그런데 누가 어떤 얘기를 하니까 그쪽하고 비슷한 얘기를 하면 안 되겠다는 강박 때문에 내가 어떤 생각을 하면서도 말을 안 한다? 그건 아니죠. 예를 들면 누가 오늘 날씨 덥다고 한다고 해서 나는 따뜻하다고 느끼는데 따뜻하다는 소리를 못하고 춥다고 해야 하냐 이거야. 난 뭐 내가 느끼는 대로 얘기할 따름이고요. 뉴라이트와 뭐가 다르냐? 기존의 좌파와 뭐가 다르냐? 굳이 얘기를 한다면 저는 감히 자부하건데 제 3의 시각이라고 하겠습니다.
필: 제3의 시각.
주: 제3의 시각이다. 그리고 또 학생 때 운동들 하면서 다들 민중 사관이라는 말을 썼는데 나는 나야말로 진짜 민중사관이다 이거야.(일동 웃음)
<제3의 시각>. 이 수사에 어울릴 만큼 혁신적인 관점은 쉽게 구축되지 않는다.
주: 아까 기자님 말하기를 보수가 주도하는 역할을 했다? 난 그렇게 보지 않아요. 역사 자체를 보수가 주도한 적이 없습니다.
필: 아... 대한민국 역사를 보수가 주도한 적이 없다?
주: 보수가 주도했다고 말할 수가 없고요, 외려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민중이 주도한 역사입니다.
필: 일단은 진영론의 시점에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의 역사를 크게 봐서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우파. 보수 우파가 그렇게 판단한다. 이렇게 프레임화가 되어있고요. 대한민국의 역사 자체를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좌파 진보 진영의 기본적인 사고 틀이라고 할까요?
주: 원래 좌파라면 현실에 대해서 비판적이죠.
필: 좌파니까요.
주: 네. 보수라면 현실에 만족하는 입장일 것이고.
필: 이만하면 됐지 뭘.(웃음)
주: (웃음)그럴 거 아니에요. 기득권이거나, 권력이나 부를 차지한 입장에서는 세상 얼마나 좋으냐고 할 거고 불만이 있는 쪽은 잘못된 게 많다고 생각하고 변화를 요구하는 좌파가 되는 것이고. 그게 당연한 건데요. 이제 재미있는 것은 역사까지 꼭 그렇게 봐야 좌파가 되고 우파가 되느냐? 그게 아니죠. 역사는 다릅니다. 특히 우리 역사에서 쟁점이 되는 건국.
필: 건국 역사.
주: 예. 8.15 건국이에요. 건국에 대해서 꼭 비판적으로 봐야지만 좌파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그건 조합이 다른 거죠. 건국을 긍정적으로 보면서 현실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만약 가능하다면 이거야말로 새로운 제 3의 세력이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필: 그러면 어떻게 가능한지 구체적으로 여쭤보겠습니다. 역사 이야기가 나왔으니까요. 제 3의 세력, 뉴레프트의 역사관이라고 할까요? 일단 건국을 말씀하셨는데, 1945년도 해방이 되고 난 다음에 일단 첫 번째로 진보진영에서 비판하는 것이 이승만의 단독정부. 정읍 발언 있지 않았습니까? 분단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하는 것이죠.
통일국가를 사실상 포기하고 자신의 권력욕으로 분단국가를 만들었다. 대신에 김구는 끝까지 통일국가를 지향했다. 물론 김일성의 남침이 이런 비극을 낳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이승만이 잘한 게 되지는 않잖아요? 이러한 시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주: 그러니까 이승만 대통령이 문제 일 거 같은데요.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서 제가 공칠과삼으로 퉁치고 넘어가자. 이렇게 얘기를 하다 보니까 평가가 후하다고 느끼는 분들이 있죠. 근데 사실 이승만 대통령 같은 경우에는 캐릭터가 굉장히 문제가 있는 꽤 독선적이었고, 자기중심적이었고.
필: 권력지향주의자.
주: 네. 그런 캐릭터로 말미암아 말년에 굉장히 좋지 않은 모습들을 보여줬어요. 그리고 건국당시에도 그런 품성이 없지 않게 작용하는 점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승만 대통령을 공칠과삼으로 얘기하는 것은 등(덩샤오핑)이 마오(마오쩌둥)를 공칠과삼이라고 할 때, 대약진운동이나 문화혁명을 긍정적으로 본다는 의미는 아니거든요,
필: 그거야 공에 포함될 수가 없죠.
주: 공과라는 것은 마오의 항일 투쟁 같은 걸 다 합쳐서 얘기하는 거잖아요. 이승만은 이미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 시절에 스타였죠. 젊은 시절에 스타였다구요. 우리나라의 민주공화국을 만들자는 운동이 독립협회에서 시작될 때의 스타. 이미 한일합방 전에 스타였어요. 그런데 그 양반이 임시정부에서도 대통령,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었는데, 제 공칠과삼론을 일단은 그런 의미로 먼저 해명을 해 두고요.
이승만 대통령이 훗날 모든 (분단) 책임을 지는 것은 너무 과한 얘기고, 46년 6월에 정읍 발언이 나오는데요. 46년 2월에 북한에서는 북조선인민위원회를 만들었고요. 토지개혁을 했어요. 46년 2월에 토지개혁을 했다는 것은 쉬운 얘기가 절대 아닙니다. 이미 정권을 세웠다는 얘기에요.
"이제 우리는 무기휴회된 공위가 재개될 기색도 보이지 않으며, 통일정부를 고대하나 여의케 되지 않으니 우리는 남방만이라도 임시정부 혹은 위원회 같은 것을 조직하여 38 이북에서 소련이 철퇴하도록 세계 공론에 호소하여야 될 것이다. 여러분도 결심하여야 될 것이다. 그리고, 민족 통일기관 설치에 대하여 지금까지 노력하여 왔으나 이번에는 우리 민족의 대표적 통일기관을 귀경한 후 즉시 설치하게 되었으니 각 지방에서도 중앙의 지시에 순응하여 조직적으로 활동하여 주기 바란다."
이승만, 1946년 6월 3일 전북 정읍 연설 中
필: 그러니까 북한에서 토지개혁을 46년도에 시행하고 그 안에서 이미 북한은 정권을 세웠다는?
주: 북한은 권력기관을 세웠어요.
필: 북한은 이미 정권을 세웠다?
주: 예. 이미 세웠어요. 세운 거나 마찬가지에요. 생각해보십시오. 남한은 농지개혁을 49년 또는 50년에 했다고 되어있는데 그거는 대한민국 정부가 선포돼야 가능한 거거든요.
필: 그렇죠.
주: 예. 말하자면 그런 농지개혁을 추진할 정도의 권력기관이 이미 형성되어있다고 밖에는 볼 수 없죠. 그리고 지주들과 기독교 계통의 인민들이 대거 월남했습니다. 46년부터 이미 밀려 내려오기 시작했어요, 이북에서.
그렇기 때문에 분단의 책임을 이승만뿐만 아니라 그게 이승만이든 김구든 누구든 간에 우리의 선조들, 당시 남한의 정치가들에게 묻는다는 것은 정당하지 않습니다. 한국 전쟁의 책임을 남한에 묻는 것과 비슷하게 분단의 책임을 남쪽에 묻는 것은 맞지 않다. 그건 이미 역사 연구로 밝혀지고 있어요.
필: 이승만이 주도한 건국은 필요했다?
주: 그렇지 그렇지. 이승만은 그런 현실을 쿨하게 인정했죠. 북한이 저렇게 나오는데, 사실 그땐 북한도 아니고 소련 군정이죠. 소 군정이 저렇게 나오는데 여기서 일단 남한이라도 세워야 한다. 굉장한 현실론이잖아요. 현실론인데 다른 사람들은 차마 못 하는 이야기였던 겁니다.
“아니 우리가 어떻게 해서 얻은 독립인데 분단으로 끝내는가?” 아무도 입 밖에 낼 수 없는 얘기에요. 그런데 이승만이 그런 얘기를 했으니 욕을 먹은 거죠.(웃음) 정치인의 일이란 게 욕먹는 거 아니에요?
필: 지금 뉴라이트 때문에 이승만에 대한 평가가 첨예하게 나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우익들에 의한 백색테러, 6.25 동란시의 양민학살, 이런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잖아요. 마오에 대한 얘기를 하셨지만 진보적인 시각에서는 양민학살까지 자행한 권력자를 도저히 공칠과삼론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이런 도덕적인 반론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주: 그런 비극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면 뭐 이승만에게 물을 수밖에 없죠. 그런데 예를 들면 직접 악역을 했던 사람은 조병옥이에요. 미군정경무부장 조병옥.
필: 악역 대행이 있었다고 해서 이승만의 책임이 경감되는 건 아니잖아요.
주: 그렇다고 해서 조병옥의 책임이 증발하지도 않죠.(웃음) 조병옥 같은 사람들이 지금 야당의 뿌리에 해당하는 한민당 출신들이었어요. 악행, 악역을 했던 사람들이 이승만 말고도 있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책임을 100% 물을 수는 없다는 겁니다. 그런 부분을 깊이 생각해 봐야 해요. 사실과 관련해서.
필: 대한민국의 정체성 자체를 다시 여쭤볼게요. 나라를 세울 때 건국의 정체성이 정말 중요한 거잖아요? 헌데 이승만의 나라는 친일파들이 세운 나라 아니냐는 겁니다. 반민특위를 작살내고 말이죠. 남한의 정부가 친일파들이 득세하는 정부가 되었는데 그래서야 쓰겠는가? 잘못된 거 아닌가? 잘못된 건 잘못된 거 아닙니까?
주: 그렇죠. 이승만이 정말 친일청산에 소극적이었던 면이 있습니다. 그건 맞아요. 그리고 반민특위를 보면 반민특위가 손을 못 댄 게 경찰에 손을 못 댔어요. 진짜 악질적인 친일파들이 경찰에 많았다고요. 최남선이라든지 이광수, 이런 사람들을 법정에 불러가지고 하는데 사실 표적이 잘못된 거죠.
필: 잘못됐다기보다는 타겟이 하향평준된...
주: 네. 진짜 악질적인, 독립 운동가들 잡아들였던 경찰들이랄지 중추원 참의랄지 하는 사람들. 총독부의 자문기관으로 알려졌지만 지금의 국회의원 비슷한 거예요. 그런 일을 했던 그 많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반민특위에서 먼저 잡아들여야 되는데 못 했죠. 특히 경찰은 친일파들이 다 장악하고 있었어요. 그것을 이승만이 자기 권력기반을 위해서 용인한 거죠. 그게 굉장히 문제가 됩니다.
말하자면 아쉬운 대목입니다. 때문에 그 당시에도 많은 비판이 있었습니다. 그런 것이 다 과에 해당되겠죠. 과3에 해당과는 것들이죠, 말하자면.
필: 그 과가, 과율(過率)이 고작 3인가요? 그런 과에도 불구하고 주대표님은 긍정적으로 판단을 하신다는 거잖아요.
주: 아뇨, 구분합시다. 나는 대한민국을 긍정적으로 여겼지 이승만을 긍정적으로 여긴 건 아닙니다.
필: 대한민국의 역사가 그런 과를 덮을 정도로 건국의 역사적 정당성이 있었다?
주: 그렇죠. 대한민국은 이승만의 나라는 아니었어요.
필: 아, 이승만의 나라는 아니다.
주: 국민 전체의 나라이지 어떻게 이승만의 나라에요.
필: 이승만의 전횡이 통용되는 나라 아니었습니까?
주: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건 이승만이 하나의 캐릭터, 하나의 역할을 맡아서 했지만 잘 보시라구요. 그 당시의 정치가들은 하나는 현실주의자, 하나는 이상주의자들이 있었어요. 끝까지 분단을 막아보고자 노력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필: 김구라던지.
주: 그렇죠. 그 전에 여운형, 김규식이 했습니다, 그 역할을. 김구선생은 나중에 그리로 돌아섰구요. 여운형, 김규식, 김구 등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죠.
그리고 다른 한 쪽에서 현실주의 노선이 있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역할 분담이에요. 일단 두 분(이승만, 김구) 다 평가해야 되고요. 또 그리고 우리가 통일도 해야 하잖아요.
이상주의가 응당한 평가를 받아야 하듯이, 현실주의자였던 이승만도 평가하자는 것.
주: 통일 한국을 위해서도 우리가 이런 분들을, 마지막까지 분단을 막고자 노력했던, 전쟁을 막고자 노력했던 그 분들을 평가해야죠, 당연히.
제가 대한민국을 긍정한다는 것과 이승만을 긍정한다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이승만의 친일파 감싸기 같은 정의가 외면되는 상황 속에서도 이 나라가, 정말 좋은 나라로 태어났다.
필: 좋은 나라로 태어났다.
2. 대한민국의 사주팔자(1): 민주주의적 정치개혁의 특혜
주: 예. 아기가 태어났는데 아버지는 좀 술주정뱅이고, 엄마는 얼굴이 못생겼고, 그래도 아기는 훌륭한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날 수도 있거든요. 오바마 아버지가 훌륭했습니까, 어머니가 훌륭했습니까? 그런데도 훌륭한 아기가 태어났잖아요. 제 얘기는 그런 얘기죠.
필: 그럼 대한민국이 어떤 점에서 그렇게 자랑할 만큼 훌륭한 건가요?
주: 제가 항상 이런 표현을 쓰는데 사람의 가장 중요한 게 뭡니까. 우리가 한 사람에 대해서 맨 먼저 뭘 묻죠? 생년월일을 묻습니다. 그 다음에 어디에서 태어났냐고 묻습니다. 생년월일, 본적부터 묻잖아요. 생년월일은 뭐냐? 사주팔자거든. 사주팔자가 제일 중요한 거거든요. 언제 태어났느냐. 대한민국이 언제 태어났느냐. 대한민국이 사주팔자가 좋은 나라에요.
필: 왜 그때가 좋은 거죠?
주: 2차 대전 직후거든요. 그때는 전 세계 인류가 파시즘, 전체주의와 이긴 직후에 진보적 민주주의의 바람이 전 세계를 휩쓸 때입니다. 그때 태어난 나라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여성에게 보통 선거권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몇 일전에 주어졌습니다.
필: 그렇죠.
주: 몇 일 전에 주어졌어요. 스위스에서 1971년에 주어졌어요.
필: 스위스가, 네.
주: 일본에서는 1947년에 주어졌어요.
필: 일본이요.
주: 프랑스에서 45년에 주어졌어요. 우리나라가 48년에 주어졌으니까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여성의 보통선거권을 쟁취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피 흘리고 투쟁했습니까? 인류문명의 위대한 진보, 위대한 전진에 우리는 특혜를 받았다. 고마워해야 됩니다. 예를 들자면 그렇다는 겁니다. 여성의 참여만 보더라도 그렇다는 거죠.
필: 그러니까 굉장히 진보적인 민주주의의 정치체제, 그런 제도, 그런 정신이 세계사적 사건이라는 폭풍을 통해 문틈으로 바람이...
주: 인류 문명의 인류가 1차 대전, 2차 대전, 특히 2차 대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습니까? 그런 희생을 통해서 전 세계에서 수십 개 많은 나라가 독립을 했습니다. 독립하고 현대 민주주의 제도가 확립되었어요. 우리나라도 그 중에 하나단 말입니다.
제가 항상 감사해 하는 것은요. 3권 분립, 언론의 자유와 민주주의. 이런 가치는 위대한 인류의 발명품이라고요, 예를 들면 삼권분립을 한번 보자구요. 남한은 50년대도 그랬고, 60년대도 그랬고, 지금까지도 도둑놈들 천지인 거 같아요. 전부 막 공무원들은 도둑놈이고, 정치가들도 도둑놈이고, 기업인들도 전부 사기꾼들이고 그런 거 같아요.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발전을 했을까요? 지금까지.
북한은 자국 내 신문 방송만 본다면 그야말로 군자가 다스리는 나라에요. ‘훌륭한 사람’밖에 없어요. 근데 왜 발전을 못했죠? 남한에서는 도둑놈들이 서로 견제 합니다. 많이 못 해먹어요. 삼권분립이잖아요. 그리고 언론의 자유. 언론이 막 기사를 막 다니면서 파헤쳐요, 폭로해요. 그래서 남한의 신문만 놓고 본다면, 어떤 지난 60년 동안 남한의 신문을 쌓아 놓고 보고 있다면 말이죠. 정말 개판인 나라죠 이거는.
그런데 이상하게 60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이 발전했어요. 북한은 신문만 놓고 보면 굉장히 훌륭한 나라입니다.
필: 네에.
주: 그런데 발전이 안 되었어요.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현대 민주주의의 발명이 된 과정에서 어떻게 발명되고 또 개량되었는지 그건 제가 다시 말할 필요가 없지만, 그런 것들이 2차 대전 직후라는 우리나라의 탄생한 시점이 좋았기 때문에, 그 혜택을 우리가 받았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필: 그런데 그런 정치제도를 도입을 했다. 이것만으로 대한민국이 굉장히 위대하다, 굉장히 긍정적이다?
주: 아닙니다. 정치제도는 우리나라 말고도 많은 나라에서 혁명적인 변화가 있었죠.
필: 남미도 그렇고 다 그랬잖아요.
주: 많은 나라, 인도도 그렇고 브라질도 그렇습니다. 물론 브라질은 그 전에 독립이 되어있었지만은 하여간에 다 했어요. 신생 독립국가도 다 했고, 그 전의 나라들도 그런 제도를 다 했습니다. 그런데 잘 안되었어요. 많은 나라에서 잘 안되었습니다.
필: 왜 그랬죠?
왜 우리나라는 되고 다른 나라는 안 됐는가? 주대환의 사상에서 급진적인 좌파이면서도 건국 긍정론자일 수 있는 이유의 핵심이 여기에 있다.
주: 그게 이제 재산을 어떤 사람들이 많이 가지고 있으니까요. 거대한 국토와 엄청난 자연자원을 가진 나라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런 나라에 소수의 사람들이 땅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강원룡 목사님이 자서전을 썼는데요. 거기에 보면 60년대에 자기가 아르헨티나에 가서 누구한테 초청을 받았데요. 누군가의 대문을 들어간 거야, 그리고 자동차를 타고 두 시간인가 갔대요.
필: 대문에서 집까지.(웃음)
주: 네.(웃음) 강원룡 목사님이 그 사람한테 융숭한 대접을 받고서 자기가 생각을 했다는 거예요. ‘이 나라는 발전할 수 없겠다.’ 발전할 수 없겠다고 하는 그 분의 관찰력도 대단하지만 왜 그러냐?
그 대농장 소유주 밑에 일하는 수백 명의 농업 노동자들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 농업 노동자들은 자기가 부지런해가지고 자기가 낫을 들고 농장에 일하러 마냥 들어갔다고 합시다, 그 농장에. 어쭈 너 임마 뭐 훔치러 왔냐? 그럴 거 아니에요? 쫓아낼 거예요.
필: 뼈와 살로 된 농기계가 갑자기 자율주행을 하니까.
주: 꺼야죠. 부지런하게 일하고 싶어도 부지런하게 일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작업지시에 따라서 “사탕수수 베.” 그럼 베고 이러잖아요. 그 자식들이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습니까? 학교 보낼 형편이 못돼.
필: 그렇죠.
주: 농장주는 그럼 열심히 일합니까? 열심히 일 할 필요가 없습니다. 농장주의 자식은 열심히 공부합니까? 공부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농장주나 거기서 일하는 농업 노동자나 열심히 일할 필요도 없고, 그 자식들도 열심히 공부할 필요가 없거나 형편이 안 되는 겁니다. 가만히 있어도 때가 되면 다 내꺼 되는데 열심히 공부할 필요 있습니까?
필리핀과 남미가 그렇다는 말입니다. 필리핀과 남미가 농지개혁을 못 했어요. 브라질 룰라 대통령이 처음 당선되었을 때요, 한국 언론들과 인터뷰를 했어요.
“왜 당신들은 어마어마한 국토와 풍부한 자연자원을 가지고 있는데 아직도 국민의 1/3이 밥을 세끼를 못 먹고 있느냐? 당신은 왜 선거 공약이 전 국민이 밥 세끼를 먹도록 하겠다는 것이냐?”하고 했더니 룰라 대통령 말이 “우리는 농지개혁을 못했다. 당신네들은 49년도에 농지개혁을 하지 않았냐. 농지개혁을 하고 출발하지 않았냐. 우리는 그걸 하지 못했다”고 답변을 했어요. 이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선거권을 쥐어주고, 정치적인 권리가 국민에게 퍼져 있지만 실질적인 경제적 부가 너무 한쪽으로 어떤 소수의 국민들에게 집중되어 있으면 말하자면 기회의 평등이 없는 거죠. 그러니까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공부하지 않아요. 왜? 무의미하니까.
농지개혁. 주대환이 말하는 대한민국 사주팔자론의 두 번째 키워드다.
3. 대한민국의 사주팔자(2); 사회주의적 토지개혁의 특혜
필: 그러니까 우리가 이승만 정부 때 건국 초기에 실시되었던 토지개혁의 사회 경제적 효과가 엄청났다는...?
주: 그렇습니다. 그거는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인정하는 거구요. 그럴 때 이야기를 잘못 들으면 아아 이승만 그것을 단행하신 분, 농지개혁을 했으니까 위대한 사람이다, 이렇게 듣기가 쉬워요.
당시에 국민들 사이에서 이승만 대통령을 어떻게 보았느냐. 그 당시에 국민의 70%가 농민이고 농민의 85%가 소작농이었으니까요, 국민 전체로 보면 국민의 반 이상이 소작농이었어요. 그 분들이 이승만 대통령이 땅을 줬다. 이런 생각을 했던 시대가 있었어요. 그러나 그런 어마어마한 일이 한 사람의 정치인에 의해서 되는 건 아닙니다.
필: 그렇죠.
주: 사실 우리는 혜택을 봤습니다. 이 대목도 제가 운이 좋다고 얘기하는 부분인데요. 그때 세계사적으로 어마어마한 일이 있었습니다. 어떤 일이 있었냐. 전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가장 큰 나라에서 공산혁명이 성공했습니다.
필: 중국이요.
주: 네. 2차 대전 종식될 때만 하더라도 소련 쪽에서도 마오가 장개석을 대만으로 밀어내고 공산주의 혁명을 성공할 줄을 몰랐습니다. 스탈린은 장개석이 잡을 거라고 생각하고 장개석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데 애를 썼었다고요. 그런데 뜻밖에 모택동부대가 불리함을 극복하고 드라마틱한 역전승에 성공하고 대만으로 장개석은 쫓겨 갔습니다.
이 대사건에 소련도 물론 놀랐지만 미국 입장에서 보면 잘못하면 동아시아 전체가 다 공산당으로 적화될 수 있는 거였거든요. 베트남, 한국, 일본까지도 장담할 수 없고. 그럼 공산주의가 태평양까지 번지게 되어있다 이거죠.
미국에서 보니까 이게 어떻게 된 거냐? 모택동 부대가 농민들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장개석이 일단 농민의 지지를 못 얻어서 밀려버린 거야. 아, 큰일 났다. 그래서 바로 한국, 대만 등에 농지개혁을 실시했죠. 그땐 미군이 점령을 하고 있었잖아요. 일본, 한국, 대만을요. 그래서 농지개혁 실시를 빨리해야 되겠다. 안 하면 큰일 나겠다, 이러다가 다 공산화된다. 그런 절박한 필요성을 이승만이 아니라 미국이 느꼈다고요.
그래서 저는 될 수 있으면 이렇게 생각합니다. 운이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수가 없는데, 북한에서는 46년 2월에 농지개혁을 했잖아요. 그러니까 서둘러서 남한에서도 해야 되겠다는 미군정의 판단. 이 판단은 지시나 마찬가지입니다. 거의 뭐 미국 군대가 점령하고 있으니까요. 일본에서는 헌법도 미군정에서 만들었습니다, 거의. 일본 사람들 몇을 불러가 지고 “야 받아 써.” 그래서 일본 헌법이 미군정에서 만든 헌법이라고요.
필: 지금의 헌법이.
주: 지금의 헌법이. 거긴 패전국이니까. 그나마 한국은 우리 조상들이 만들었습니다.
필: 일본과의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거군요.
주: 미군정에 자문하는 사람들이 간섭은 했겠지만 그래도 우리 유진오 선생 등이 거의 초안을 잡고 했는데요. 어쨌든 미군정이 사실상 거의 지시하다시피 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는 거죠. 제 말은. 농지개혁을 하라고 하니까 이승만도 오케이를 했고요. 생각해 보니까 그 당시에 한민당 세력이 지주들이 많잖아요. 전면적 반대는 못 해도 반대 비슷하게 하거든. 반대는 아니더라도 계속 개긴단 말이에요.
전통의 야당인 민주 계열이 한국민주당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은 외면할 수 없는 야권의 흑역사이자, 흥미로운 아이러니다. 한민당은 친일 지주와 자본가의 연합체였으며 구성원의 무려 3/4이 검증된 친일파였다.
주: 이승만이 결국 농지개혁 관철을 시켰고요. 농림부 장관은 조봉암. 조봉암은 ‘어 뜬금없이 나보고 하라네? 난 좀 급진적인 농지개혁을 주장하는 사람인데?’ 이승만 대통령이 뭐 자기보고 장관 맡으라고 하는데 조금 떨떠름했겠죠. 자긴 생각이 저 사람이랑 다르니까. (조봉암은 일제시대 때 공산주의자였다.)
그런데 이승만은 “야, 너 맘대로 해봐. 하고 싶은 대로 해.” 그래가지고 조봉암이 픽업한 사람이 강진국이란 분이고 강정택이란 분이에요. 그 분들이 뭐냐, 일제 강점기에 동경제대 경제학과 나온 사람들인데 말하자면 경성제대 사람들 중에 가장 급진적인 경제학자들이었다고요. 민전출신들이죠. 당시의 좌익. 민주주의 민족전선. 실제로 그 분들은 나중에 월북을 했던가 그랬을 겁니다.
필: 농지개혁 해 놓고서 어우 남한 땅은 이제 다 되었구나.(웃음) 이런?
주: 아니 그게 뭐 월북을 했는지 전쟁 통에 그냥자의 반 타의 반으로 했는지 모르겠는데 실종으로 처리가 됐죠, 결국은. 어쨌거나 의심은 되는데 이분들이(웃음) 굉장한 맑스주의자들이었어요. 이 사람들의 안이 나중에 국회에서 거의 그대로 통과되었어요. 정말로 되기 힘든 것들이 말이에요.
어떤 나라에서 혁명이 일어난다고 하면요. 멕시코에서도 몇 번씩 일어났고 불란서에서도 몇 번씩 일어났잖아요. 혁명이 일어나면 당연히 농지개혁 문제, 토지 개혁 문제가 혁명의 주요한 문제로 대두됩니다. 필리핀 같은 데서도 여러 차례 그런 시도가 있었고요. 하지만 도통 잘 안 돼요. 여러 가지 이유로. 그만큼 어려운 겁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런 점에서 보면 중국 혁명의 세계사적인 변화, 그리고 또 한반도 내에서 보면 북한에서 먼저 농지개혁을 해버렸고 그래서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죠.
필: 이승만 정권의 의지가 아니었다는 거죠? 이 혁명적 변화가.
주: 어쩔 수 없이 하면서 외부에 압력 등에 의해서 이루어진 면이 많구요. 거기다가 농민들의 요구였고,
필: 고로 이승만의 농지개혁은 이승만이 이룬 것이 아니라 이승만이 대통령으로 있던 때에...
주: ‘이루어졌다.’
필: ‘이루어졌다.’ 알겠습니다.
자 그럼 그때 해방전후사의 인식이라고 할까요? 그 운동권 서적에서 보면 토지개혁 문제도 북한에 의해서 불성실하게 했다는, 그런 평가가 있잖아요. 북한이 해서 어쩔 수 없이 따라했다는 식의.
주: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남한의 농지개혁이 북한보다 혁명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북한은 무상몰수 무상분배를 했는데요. 현물세를 40%를 걷었습니다.
필: 현물세라고 하심은?
주: 그러니까 소출의 40%를 국가가 걷어갔다고요.
필: 아.
주: 그러면 그 당시에 보통 소작료가 50% 정도까지 떼었습니다. 5할. 그런데 4할이잖아요. 4할이면 조금 나아졌죠? 어쨌거나 농민들 입장에서 보면 지주가 국가로 바뀐 거예요.
필: 남한이 북한보다 더 급진적이었다는 거군요.
주: 네. 그리고 몇 년 후에는 다시 또 집단농장을 했잖아요. 그러니까 농민들 입장에서는 다시 토지를 뺏긴 거예요, 어떻게 보면. 그리고 무상 분배된 토지에 대해서 농민들이 자유롭게 그것을 사고 팔 수도 없었습니다. 우리 남한에서 생각하는 그런 소유권이 주어진 적이 없구요. 그래서 소작농은 그 지주가 개인에서 국가로 바뀐 정도였고, 소작료가 5할에서 4할로 내려갔고.
심지어 아마 북한은 남쪽에 비해서 토지가 비옥하지 못해서 그 전에 소작료가 5할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지역에 따라서. 그러나 좋게 봐 줘서 10%가 내려갔다고 해 주고요.
감히 비교할 대상이 아닙니다. 남한에서의 유상 분배라는 건 이런 거예요. 당시에 무상몰수 무상분배 의견들이 있었습니다. 남로당에서도 그런 의견이 있었고요. 결국 최종안이 유상몰수 유상분배임에도 불구하고 명분에 있어서 조봉암 선생의 안이 정말 절묘한 안이었어요. 명분은 이런 겁니다. 지주세력인 한민당 쪽에서 원하는 대로 유상몰수 유상분배로 하면 되잖아? 그런데 실제 내용을 들여다보면 굉장히 농민들한테 유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매년 소출의 3할을 5년 내면 자기 땅이 되는 거예요. 그전에 5할씩 소작료를 냈는데 3할이면 적잖아요. 그런데 5년이면 내 땅이 돼.
필: 사실 그 전에 5할도 원칙적인 거고 실제로는 심하면 80%, 극악한 경우엔 90%까지...
주: 그런데 3할씩 5년. 누가 포기하겠습니까, 이 땅을? 포기 안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상환이 너무 벅차서 포기한 농민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국가에서 올해 좀 흉년이 들었다면? “내년에 내겠습니다.” 그래도 땅 안 뺏었어요. 60년대까지도 그걸 다 상환 못 하는 농민들도 있었어요.
필: 십몇 년 동안.
주: 그냥 밍기적거리는 거죠.(웃음) 1할, 2할씩만 내고 이렇게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구요. 그리고 지주들은 150%, 그러니까 소출의 150%. 지금의 우리가 환산을 하면은 한 해 논에서 나는 소출의 150%를 받고 줬다니까. 땅값을 그렇게 비싸게 받지를 못했습니다, 지주들은. 그나마도 한국전쟁 때 인플레가 확 뛰면서 그 땅값의 채권이라는 게 거의 휴지조각이 되어버렸어요.
필: 그래서 지주가 망했군요.
주: 인플레가 되어버리니까 지주들이 다 망했어요. 우리 고향도 이른바 천석꾼, 만석꾼 하는 지주가 있었는데요. 내가 어릴 때만 해도 그 집이 망해서 우리 집보다 못살았어요.
필: 농사일이 훈련이 안 되어있으니까.
주: 그 전엔 지주니까 부지런하지 않았어요. 열심히 일을 하는 습관이 없었어요. 자식들도 그렇게 부지런하지 않았어요. 내가 60년대 초반? 50년대 말 되니까 이미 그 집은 상당히 몰락해 가지고 우리 집보다 못 살고, 우리 집은 우리 할아버지가 부지런한 농민이었으니까 상당히 잘 살았죠.
농지개혁을 통해 ‘누구든 부지런하기만 하면 자식들을 건사하고 재산을 증식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는 이야기. 해방정국부터 시작된 우리의 현대사는 축복받았다는 그의 이론, 잘 알겠다. 그러면 이승만을 평가하자는 건 뭔가. 그의 공칠과삼론을 한 번 더 붙잡고 늘어져 보기로 한다.
4. 사주팔자론 vs 인물론
필: 좋습니다. 우리나라가 좋은 사주를 가지고 태어났고요. 그런 차원에서 건국의 긍정성이 있고. 그러면 위대한 진보의 물결로 받은 혜택을 이승만, 박정희가 독재를 하면서 말아먹었다고 볼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이승만 시대를 긍정할 수 있다고 하면요, 이승만 개인을 긍정하는 거랑은 다르잖아요. 이승만 시대를 긍정하면, 그럴 거면 이승만이라는 독재자의 공과를 가려줘야 하냐는 거죠. 그렇다면 서울대 들어갈 정도로 잘 태어난 애가 학대를 당해가지고 평범한 대학에 갔다. 이렇게 보면 안 되나요?
주: 그거는 하하. 이승만의 존재를 과대하게 보는 겁니다. 이승만 시대라고 이름을 붙일 것도 없어요.
필: 그러니까 이승만이 있었던 시대요.
주: 역사적 인물들이라는 게 대체로 그렇지만, 이승만은 그때 그 (시대의) 역할을 맡았던 사람에 불과합니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미군정이나 실제 권력의 힘은 다른 쪽에 있었다고 봐야 하고요. 한국전쟁 때도 그 사람은 오직 미국에 매달려 가지고 살려달라고 읍소를 했던 거구요.
근데 이제 이 사람은 56년 대선에서는 개표부정을 저질렀는데요. 예를 들면 신익희 선생이 갑자기 돌아가셨으니까 조봉암하고 둘이 남았단 말이에요. 개표 부정을 하지 않고 조봉암이 당선 되서 조봉암으로 넘어갔으면 나라가 정상적으로 되었겠지요. 그리고 이승만 그 사람은 본인에 대한 평가도 당시에 그렇게 나쁘지 않았어요, 56년까지는.
이승만 세력은 56년 대선 후 농지개혁의 산파인 조봉암에게 간첩 혐의를 뒤집어 씌웠다. 조봉암은 5년 징역형을 받았다가 반공법이 추가되어 결국 처형당한다. 5년형 유죄를 선고한 유병진 판사는 이후 조봉암의 기일마다 그의 묘를 참배하며 사죄했다.
주: 56년까지 이 사람의 역할은 여러 가지 문제, 특히 반민특위 문제도 있고요. 많은 문제를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 대한민국에 주어진 상황에 맞는 역할을 한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56년 이후부터는 이 양반이 별로 긍정적인 역할을 한 게 없어요. 유신 이후의 박정희처럼요. 그냥 원래대로 임기를 마치고 그 다음 대선에서 김대중, 김종필이 붙어서 김대중이 당선되어서 나라가 갔다면? 그랬다면 문제가 없었을 거라고 보고, 이승만도 비슷한 경우라고 보시면 될 거 같아요.
필: 알겠습니다. 박정희 얘기는 이따 하고요. 아무튼 이승만은 당시의 세계사적 시대상과 민중-주로 농민이요-의 요구에 따른 자기 포지션의 플레이를 어느 정도 수행했다, 이렇게 보면 되겠습니까? 교체 지시에 안 따르고 받은 레드카드가 4.19. 이렇게 이해하면 됩니까?
주: 그 정도로 정리하지요.(웃음)
필: 우리나라 사람들이 역사적인, 논쟁적인 인물을 다룰 때 좌나 우나 인물론이라는 한계를 갖고 있잖아요. 예를 들어서 우익 같은 경우를 보면 이승만이 아니었으면 어휴 큰일 났다. 이승만이란 인물 덕분에 우리가 건국을 해서 이렇게 살게 되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고요.
주: 그건 너무 과도한.(웃음)
필: 예예. 좌에서는 또 이승만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 친일 청산이 안 되고, 그때부터 우리나라 역사가 잘못되었다고 판단을 하죠.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 동의 부동의 여부를 떠나서 인물론이잖아요. 제 3의 시각으로 사주팔자를 얘기하셨는데 이것이 대표님 이론의 핵심적인 특이점입니다.
자 독자들을 위해 중언부언하겠습니다.
대한민국을 설명할 때 한 편에서는 이승만은 개벽(開闢)이고 박정희는 발전입니다. 우리는 어째서 지금 여기에 와 있는가, 이걸 특정 인물을 신격화해서 해결합니다. 신의 은혜를 입었으니까 지금 한국은 먹고살 만한 괜찮은 나라여야 하고. 자동적으로 불만이 있는 사람들은 반사회적인 빨갱이들이거나 선동을 당한 천치들이어야 하죠. 얘기가 자동적으로 그렇게 갑니다.
반대편에서는 이 양반들을 악마화해서 해결합니다.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가 그 사람들로부터 배태된 것이고요. 이쪽에서 보면 아직은 개벽이 오지 않은 게 되고, 자기들은 암흑 속의 외로운 횃불이 됩니다. 그 자의식을 우습다고 놀리는 게 아니라 자동적으로 그런 결론이 도출되게 돼 있습니다, 이 구조에서는.
심한 경우엔 과거의 독재자들을 얼마나 찰지게 욕하느냐, 누가 더 미워하느냐, 이런 걸로 사상검증 게임이랄까, 순수성 논쟁이라고 하죠? 이런 내적 경쟁까지 벌어지는데요. 이게 시시비비의 문제를 떠나서 과연 생산적이냐고 하면 그럴 리가 없잖아요.
대표님은 이 구도에 제 3의 시각이라는 짱돌을 던지시는 건데요. 그러면 독재자에 대한, 공칠과삼이라고 하는 선생님의 재평가도 역시 똑같은 인물론이 아니냐는 거죠.
주: 아 그거는 이제 좀 퉁 쳐버려야.
필: 퉁 치자는 걸,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주: 인물론에서 벗어나야 역사를 더 민중적 시각에서 볼 수 있다는 겁니다. 등소평이 마오에 대한 공칠과삼론을 제기했을 때는 말 그대로 퉁을 치자는 얘기지. 그걸 계산을 다 해서 공에 68.54 소수점 두 자리까지 계산하고 과는 뭐 31 점 몇, 이렇게 해서 공칠과삼론을 제기한 건 아니라고요.
필: 독자들이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죄송하지만 한 번 더. 독재라는 게 퉁 치고 넘어갈 사안이 됩니까?
주: 그건 아닙니다. 퉁 치자는 얘기는, 퉁 쳐야 그것으로부터 벗어난다는 겁니다. 그래야 과거의 인물에 대한 빙의에서 벗어난다는 겁니다. 아니 시비를 따지면 그 늙은 독재자의 일신을 위해 그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고 이게 말이 됩니까? 독재가 악이라는 사실이 어떻게 변하나요. ‘퉁치자’는 건, 이승만이 그 정도 했으면 됐다가 아닙니다. 우리가 인물론에 사로잡히는 게 이만하면 됐다는 겁니다.
필: 네, 이제 명확히 알겠습니다.
이제 겨우 건국과 이승만을 털었다. 첫 회부터 분량조절에 실패했다. 소결한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 기회로나, 대한민국은 절대다수가 평등한 나라로 출발했다는 것이 주대환의 이론이다.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그 논리의 견고함은 일반의 예상을 훨씬 상회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지금은 과연 어떤가? 왜 사회민주주의가 필요한가? 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우리는 또 하나의 독재자, 박정희라는 더 지독한 산을 넘어야 한다.
보다 도발적인 이야기가 다음 편, [도발인터뷰]주대환을 만나다(中)에서 이어진다.
필독
편집 : 딴지일보 coc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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