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2012. 6. 4. 월요일

춘심애비


 



 


(이 글은 한불로님의 같은 제목의 글을 보고 쓰는 일종의 스핀오프다. 같은 주제로 다른 시각을 견지할 거다. 일종의 오마주, 혹은 진지한 패러디다. 그래서 일부 문장을 의도적으로 그대로 복사해오거나, 조금만 변형했다.)


 


 


0. 들어가며


 


좋다. 한불로님의 기사 도입부, 졸라 맞는 말이라 고개 끄덕이며 읽었다. 내 이름 나오기 전까지.


 


필자 존나 억울했다. 필자의 시리즈 전체에서, 필자가 기존의 프레임에 빠지는 걸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여권 및 여권 지지자들을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달리 이해하려고 어떤 시도를 했는지를 생각하니 존나 너무도 억울했다.


 


그런데 문제는, 한불로님의 기사는, 문제의식이 존나 적절해서 그냥 내가 느낀 그 억울함은 극심한 변비나 폭풍 설사 같은 개인적 사정이라고 치부한 채 접어두고, 그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다른 방향의 진행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왜 필요하냐고? 필자의 사고방식은 해당 기사의 접근방식과 다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전염병이 돌 때 한의사가 그 전염병을 잡기로 한 걸 보고 양의사도 뛰어든다던가, 뭐 글케 생각하면 되겠다. 같은 사안을 바라보는 여러가지 관점이 있고, 당연히 그 관점이 다양할 수록 좋다. 어느 한 관점이 절대적으로 옳을 리는, 역사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경험적으로 존나 없음이다.


 


필자는 필수교양 시리즈를 통해, 심리학과 게임이론을 주로 다루려 했다. 정치라는 소재는 권력을 놓고 사람들과 사람들이 벌이는 힘겨루기이기 때문에, 미시적 접근과 거시적 접근이 긴밀하게 동시 진행돼야 한다. 마치, 축구 경기 승패를 예상할 때 각 팀의 포메이션 및 전술과 같은 구조적 측면과 동시에 각 선수 및 감독의 성격, 심리적 영향을 끼칠 최근 사건, 생물학적 컨디션 등 디테일을 동시에 융합적으로 고려해야하는 것과 비슷하다. 게다가, 축구는 룰이 정해져있지만 정치는 룰을 정하는 과정마저 게임의 일환이므로 그 복잡성은 더하다.


 


여기서 심리학은, 한 사람 한 사람이 각각의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거나 사고하는지를 보는, 미시적 도구이다. 반대로 게임이론은, 그러한 한 사람 한 사람이 구조적으로 어떤 판단을 하게 되는지를 조망하는 거시적 도구이다. 이 둘이 조합됨으로써, 왜 쟤네는 저럴 수 밖에 없는지, 왜 우리는 이래야만 했는지를 생각할 수 있으며 또한 예측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틀 자체를 '프레임'이라 부르며 존나 강조하고 있고 말이다.


 


이제는 백발 노인이 되어버린 ‘어버이연합’류와 같은 세대들에 대해서는 변화된 인식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젊은 층에 속한 우리 같은 30~50대들은 대한민국의 주축이 되는 세대들이기에 사회의 진정한 개혁을 위해서는 이들의 인식의 변화가 매우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그들의 머리 속에 깊이 뿌리 박혀 있는 ‘통념적 상식’ 전반에 대한 전면적인 수술은 불가피하다. 그래야 새로운 정치세력의 출현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통념적 상식'의 재구성을 위해서는, 미시적이면서 동시에 거시적인 시점으로, 왜 그 때 그렇게 된건지, 왜 우린 이래야만 했는지를 생각해야한다. 그랬던 구조와, 그 구조 안에서 한 사람 한 사람들이 어떻게 선택했는지를 통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만 하는지를 생각할 수 있다.


 


자, 시작하자.


 


 


 


1. 저소득층의 새누리당 지지는 이유가 있다


 


- 근현대, 한반도 권력의 탄생


 



 


한반도가 일본에 투척된 원자폭탄으로 인해, 일본제국주의 통치로부터 벗어났다.


 


이 문장에 불편함을 느낀다면 참아 달라. 독립운동가들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당연히 추호도 없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자는 얘기다. '그 때 원폭이 없었더라도 광복군이 광복을 이끌어냈을 거다'라는 가정은 피했으면 한다. 역사에 가정이나 추측이 개입되는 순간, 그건 믿음의 싸움으로 바뀌니까. 최대한 노력해봤자 습득한 정보량 싸움이 될 거고, 그런 얘기는 나중에 따로 하자.


 


한반도를 통치하던 일본제국주의 조직기구가 해산되고, 육로로 진격했던 소련군과 공/해로 진출한 미국군에 의해 한반도는 서로 다른 두 체제 내 군 조직에 의해 나뉘어 분단 군정 체제에 돌입한다.


 


자 그러면 그 시점으로 돌아가서 생각해보자. 내가 사는 곳에, 갑작스레 일본 순사들이 사라지고, 공산권인 소련군이 들이닥쳤거나 자본주의 미국군이 들이닥쳤다.


 


이러한 갑작스런 환경의 변화는 많은 갈등과 혼란을 야기한다. 게다가 일제 치하 내부에서도, 그냥 일본이 됐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자는 입장과 나라를 되찾아야 한다는 입장이 서로 갈등하던 와중에 전혀 다른 프레임이 제시됐으니, 그래도 나는 일본인이라는 사람, 소련/미국군들을 몰아내고 오롯이 우리 조국을 되찾아야 한다는 사람, 별 생각 없이 시키는 대로 하면서 나와 가족의 안위를 도모하는 사람 등등이 얽히고 섥히며 태도를 수도 없이 바꾸기도 했을 거고 말이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자.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가치관을 떠나서, 만약 그 시절 한반도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하는게 가장 유리할까? 왜 가끔씩들, '씨바 전쟁 한 번 나서 다 뒤집어야돼'라고 말하곤 하지 않나. 그래서 그 때 그 시절로 돌아가면 어떻게들 하고 싶으신가.


 



 


아마도, 특별한 가치관을 배제한 채 나와 후손의 안정적인 삶만을 고려한다면 말이다... 저 위에 예를 들지 않은, <소련군/미국군과 최대한 친하게 지낸다>가 선택될 거다. 우린 이미 그 이후를 알고 있지 않은가. 북한에서는 소련에 착 달라붙은 놈들이, 남한에서는 미국에 착 달라붙은 놈들이 지금까지 떵떵거리며 산다. 하물며 소련군이나 미국군에 적개심을 품었다면, 가차없이 버림받는다. 이게 옳다는 게 아니다. 내가 역사를 바꾸고 싶다는 가정이 아니라, 역사는 그대로 재현된다고 가정하면, 저 선택이 가장 <이기적>이라는 얘기다.


 


그 얘기는, 그 당시에 정말 이기적이고 권력욕이 넘쳤던 놈들 중에서, 상황 파악이 빨랐던 놈들이 있다면, 그들은 북한에서는 소련에, 남한에서는 미국에 착 달라붙었을 거고, 각각 소련군과 미국군이 원하는 것을 미리 캐치해서 그것을 이뤄주려 노력했을거다. 그렇게 각각의 군정에 최대한 유리한 행동의 경합이 벌어졌을 거다. 권력을 잡기 위해 소련군, 미국군에게 최대한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경합.


 


그 경합의 결과로 남북에서 각각 1위가 결정됐을 거다. 당시 상황을 돌이켜볼 때 한반도 대중들의 삶이나 그들의 의견보다는 소련군과 미국군의 이해관계가 더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을 거라고 예상할수 있다.


 


그 경연에서, 남한의 이승만과 북한의 김일성이 1위를 한다.


 



 


물론, 어쩌면 그 둘은 나름대로 본인이 생각할 때 올바른 가치를 추구했을지도 모른다. 이게 조국을 살리는 길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다. 혹은 그냥 주변 정황상 그들이 선택된 다른 이유가 있었을 거다.


 


하지만, 필자는 그들의 진심 같은 거 별로 관심 없고, 다른 이유가 어찌됐든, 그들은, 그 상황에서 가장 이기적이고 권력지향적인 인간이 했을 법한 행동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는거 다. 예컨대 이승만의 반미 제스쳐들에 대해 그 것이 미국과의 정치적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계략이었는지, 이후 반공사상을 들이댄 것이 미국의 입맛을 맞추려 머리를 쓴 것인지 등에 대해 정치공학적으로 분석할 생각은 없다.


 


반대로, 당시의 불안정한 정치/사회적 환경과 미국, 소련이 강하게 개입돼있던 상황을 고려할 때, 그 당시 국민들의 합리적 의사가 완벽하게 적용된 상태로 권력자가 선출됐다 한들, 그 권력자가 미국/소련군의 입맛에 맞지 않았더라면 절대 그 권력을 유지했을 리 없었으리라 예상한다.


 


즉, 당시 한반도는, 남/북에서 가장 이기적이고 권력지향적인 인간이 했을 법한 행동을 한 2명의 인간이 각각 권력을 잡는다. 이런 식으로 보자.


 


- 권력의 경과. 남과 북의 차이. 혹은 두 권력자의 차이.


 


남북 각각, 이기심/권력지향 1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2명이 권력을 잡았다면, 그들은 그 권력을 강하게 유지하고 싶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위에서 말했듯 짧은 시간 내에 수많은 갈등이 폭발적으로 형성됐을 테고, 그 2명이 권력을 잡아챈 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는, 그 권력을 빼앗으려는 견제세력이나 경쟁자가 존나 많았을 거다.


 


정말로 그들이 각각의 지역에서 가장 이기적이고 가장 권력욕이 강한 인물들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우리가 배운 서양사, 국사, 중국사를 통틀어 볼 때, 자기 나와바리 내에서 갈등이 심각하고 권력에 대한 도전이 많을 때, 그 권력자는 어떤 선택을 했던가? 혹은, 결과적으로 어떠한 상황이 벌어지면 기존 권력이 공고해졌는가?


 


글타.


 



 


전쟁.


 


뭐 우연인지, 한쪽이 잘못한 건지, 둘 다 잘못한 건지, 존나 의도한 건지, 일단 신경 안 쓰겠다.


 


어쨌든 1950년 6월 25일날 전쟁은 났고, 코딱지만한 한반도에서는 2차대전 전체에서 사용된 폭탄보다 더 많은 양의 폭탄이 사용됐다. 그리고 나서? 남북 각각의 권력은 다져진다. 언제 다시 전쟁이 날 지 모르는 휴전상태니까. 바로 얼마전만 해도 우리는 형제끼리 총부리를 겨누고 있었으니까.


 


남한에 있는 친소련 세력이나 북한에 있는 친미국 세력은 각각의 <적>이었고, 죽여 마땅한 나쁜놈들이다. 바로 얼마 전에 우리 가족을 죽이려들던 그 나쁜놈들과 한패니까. 혹시라도 우리 아들이 마르크스 레닌 어쩌구 하면 이건 천하의 악마새끼임에 틀림없는 거다. 공산괴뢰군 빨갱이들이나 보던 걸 보다니 말이다.


 


이승만, 김일성이 혹은 미국과 소련이, 이런 상황을 노리고 전쟁을 냈는지 어쨌는지는 존나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은, 혹시 우연이더라도 말이다. 안정적인 권력을 획득하는 결과를 얻는다.


 


다만, 여기서 이승만과 김일성의 차이가 발생한다. 북한의 김일성은 '장군'에서 '원수'로 승격되며 견제세력 숙청에 성공한다. 이승만은 국민방위군 사건과 거창양민학살사건 등 권력의 정당성에 위협이 될 행위들을 한다.


 


일단 안정적 권력이 다져진 북한의 입장을 보자. 전쟁을 통해 권력은 강력해졌고 안정궤도에 들어섰다. 맘에 안 드는 놈들은 체제전복세력으로 몰면 된다. 아, 혹시 모르겠다. 마침 존나 운좋게, 맘에 안 드는 놈들이 마침 하나같이 실제로 체제전복세력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씨바.


 


그 권력을 잡고 있는 상태인데, 나라는 쑥대밭이 됐다. 그럼 어떡해야 돼. 쑥대밭 정리하고 강성대국을 만들어야지. 강대국 소련과 중국이 든든한 빽이 되어주고 있고 말이다. 그 빽에 전혀 대들고 싶지도 않고.


 


권력자가 병신이 아닌 다음에야, 나라는 제 모양을 갖추게 될 거다. 물론 속도의 차이는 있겠다. 아무튼 당분간, 북한이 남한보다 더 빠르게 발전한다. 일단 권력자가 병신은 아니라서 나라가 발전은 하니까, 불과 몇 년 전까지만해도 일본 순사들 눈치 보다가 피난길에 고생하던 사람들이, 나라에서 길도 트고 건물도 짓고, 음악이란 것도 듣고 영화란 것도 보고.


 


그 권력자가 병신이 아니었던 덕분에, 점점 살 만해진다고 느꼈을 수 밖에.


 


아, 물론, 뭐 실제로 좋은 지도자였을지, 겨우겨우 병신만 면한 인간이었을지 그런거 신경 안 쓰더라도, 권력자가 몹쓸 병신만 아니면, 대다수의 국민들은 살 만해졌다고 느꼈을 거라는 얘기다.


 


다시,


 


사실은 어찌됐든 간에, 전쟁을 통해 권력이 강해진 상황에서, 전쟁으로 인해 나라가 폐허 지경이라면


 


사실은 어찌됐든 간에, 권력자들이 병신이 아닌 바에야, 국민들을 만족시킬 수 있다.


 


내가 군대 쫄병인데, 어찌저찌 돼서 피철철 흘리고 온몸 멍들어있을 때 고참이 약 주고, 집에 전화도 시켜주고, 초코파이도 사주면 나는 그 고참에게 만족한다.


 


그 약이 염산이 아니고서야. 그리고 그 고참이 나를 일부러 다치게 한 게 확실하지 않다면야.


 


이러한 이유로 당시 대부분의 북한 서민들은 아마도 김일성 정권에 상당부분 진심으로 만족했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반대로 남한의 경우에는, 그 권력의 정당성이 다소 침해됐고 북한에 비해 비교적 안정적이지 못했다. 미국과의 관계도 그다지 안정적이지만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정치깡패의 활용이라던가 심지어 부정선거까지, 어거지로 권력을 유지하려는 집착이 발생된다.


 


이 집착과 함께, 북한에 비해 침체돼있는 경제 상황과 맞물려 권력에 대한 불만을 야기한다. 그렇게, 북한의 권력자는 권력 세습 기반을 다지는 동안 남한의 권력자는 시민들의 손에 끌어내려진다.


 


- 박정희의 등장


 



 


남한의 최대 라이벌인 북한은 권력을 세습하는데, 남한은 그러질 못하는 걸 보고 있노라면, 남한 국민 입장에서는 아마 3가지 반응이 가능할거다. 논리적으로 발생가능한 경우의 수를 보자.


 



1) 아 역시 남한이 좋아. 우린 세습 안 하고 우리 손으로 독재자를 끌어내렸어


2) 밖에 무슨 일 있나?


3) 아 씨바 남자가, 잡았던 권력을 놓쳐? 나라면 김일성보다 더해 씨바.



 


이 3가지 극단이 있을 수 있다. 만족. 무관심. 불만족.


 


여기서 존나 극도로 불만족한, 3)에 해당하는 인간의 최극단을 생각해보자. 그라면 어떻게 했을까? 저 생각을 아마도 실행에 옮기고 싶었을거다. 물론, 저 생각을 지녔다고 무조건 실행에 옮길 순 없다. 제주도 사는 고씨는 서울 갈 차편이 없었을 거고, 서울 사는 김씨도 뭐 어떡해야 권력이란 걸 잡을 수 있는지 시나리오가 없었을 거고 말이다. 그런데, 만일 하필이면, 저 생각을 가졌으면서 동시에 그걸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수단이 있는 놈이 있었다면? 당연히, 그 수단을 통해 실.행.에. 옮.겼.을.거.다.


 


아 뭐 모르겠다. 박정희가 실제로 저렇게 생각했는지, 나는 그 사람 머리 속에 들어가볼 기회도 없이 이미 저세상으로 간 사람이라 존나 모르겠다.


 


그런데 박정희는, 군장교라는 수단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잡는다.


 



 


여기서 일반인들의 기분은 어땠을까. 나라면 말이다, 일본 순사들 우루루 나가서 좋아했더니 갑자기 코쟁이들이 초코렛 들고 들어오고, 갑자기 전쟁이 나서 피난을 갔다온 지 10년만에 또 다시 탱크가 들어섰다면, 그냥 그런가 보다 할 거 같다. 학교나 군대에서 맞아본 사람들은 알 거다. 맨처음 맞을 때는 존나 서럽고 충격적인데 계속 맞다 보면 뭐 그런가 보다 한다. 사람은 적응을 하게 돼있고, 적응의 단계를 넘어서는 충격이 계속 되더라도 학습된 무기력(지난 기사 참조)에 빠져, 그렇게 그냥 산다.


 


지금 우리 입장에서는, 씨바 무슨 민주주의 국가에서 군사정변이냐, 말이 되냐 이러지만, 그 당시를 살던 서민들의 다수는, 더 큰 충격도 15년 상관에 겪어온 지라, 아마도 놀라고 무서웠겠지만서도 '내 팔자 존나 억세다'고 생각했을 거 같다. 필자 생각엔 그렇다. 아님 말고.


 


- 남한 역사상 1위 독재자


 



 


8,15 해방 당시 남한에서 권력욕이 가장 강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인간이, 권력을 강하게 유지하지 못하고 각종 비리를 저지르다가 결국 권력을 놓친 것을 보고서, 존나게 답답해하며 나라면 저러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인간이 군사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잡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에는, 한 차원 높은 하이퍼 권력자가 권력을 세습하려 한다.


 


이 때 남한의 신흥 권력자는 어떻게 하고 싶은 게 자연스러울까? 쟤네는 쟤네고 우리는 우리니까 최대한 국민들의 권리와 자유를 존중해야지? 우리는 한민족이니까 통일을 일궈야지?


 


만약 진짜로, 기존의 권력자가 비실비실 하야하는 모습을 보고 발끈하며 <나라면 저렇게 안 해>라는 마음을 군사쿠데타로 옮길 정도의 권력욕을 지닌 자였다면,


 


내가 저 김일성 새끼 이겨야지.


 


이랬을 거다.


 


아마도, 거의 모든 면에서 북한의 권력자에게 경쟁심을 느꼈을 거다. 뭐 북쪽도 잘생긴 얼굴은 아니니 외모는 빼고.


 


그러면 <이긴다>는 건 뭘까. 전쟁난지 얼마 안 됐으니 군사력 이겨야 되고, 그 당시까지는 북한의 경제지표가 더 높았으니 경제도 이기고 싶고, 김일성은 세습했으니 자기도 세습하고 싶었을 거다. 눈에 가장 띄는 건 이 3가지다. 그 외에 취향에 따라 축구대표님의 실력, 대중음악의 퀄리티, 순수미술의 발달, 아름다운 휴양지 등등 다양한 옵션 중에 골라먹었을 거다.


 


그럼 한 번 보자.


 


이 때 서민들은?


 


군사력이 강해진다. 막, 핵무기까지 만들려고 하는 거 같기도 하다. 전쟁난 지 10년 밖에 안 됐으니 전쟁의 기억이 생생할 거다. 일본 지배를 받았었으니 <국력>에 대한 인식도 강했을 거다. 그리고 그 일본은 원자폭탄으로 망했는데, 핵폭탄은 그거보다도 세단다. 내가 아직 고등교육, 대학교육 같은 건 제대로 못받은 서민이라고 생각해보자.


 


이게 싫어?


 


자, 다음은 경제. 10년 전 불타 없어진 우리집, 어찌저찌 다시 세워 가족들이 옹기종기 살게 돼 행복했다. 그런데 새로운 권력자가 존나 큰 길도 뚫어, 급하게 짓느라 꼬리꼬리했던 초가집 싹 갈자고 그래. 불과 10년 전에 그냥 공터였는데 막 극장에서나 보던 네모반듯한 집들이 막 생겨나니까 왠지 타임워프해서 미래에 온 기분이었을 거다. 뭐 물론 예전 집이 더 편했을 수도 있고, 이거 좀 힘들다 싶었을 수도 있지만, 無에서 시작해서 일궈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대개 더 열심히 하면 더 좋은 성과를 낼 거라 믿는 경향이 있을 테니, 어느 정도는 참았을 거다. 지금까지 좋았듯, 더 좋은 미래를 위해. 그러니까 외국 가서 땅 파라면, 더 좋은 미래를 위해 땅 파야겠다고 생각했을거다. 실제로 땅 파서 잘 살아본 사람들이니까.


 


늙은 권력가가 나가고, 젋은 권력가가 들어서서는, 우리 동네를 막 번떡번떡하게 바꾸면,


 


이게 싫어? 여기까지는 안 싫지.


 


이 지점은, <병신이 아닌 바에야> 정도는 아니다. 뭐 능력이 있었는지, 그냥 독한 거였는지 뭔진 모르겠지만,


 


암튼 그래서 진짜로 국방력이 증강되고, 경제 발전 속도가 그 이전 권력보다 더 빨라졌다면.


 


왜 싫어. 안 싫다. 좋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권력 자체의 크기 경쟁. 북한은 김일성 빨갱이 돼지가 욕심에 가득 차서 아들한테 권력을 넘기고 북한주민들은 다 굶기고 있다고 알고있었던 게 대부분의 남한 국민이었을 거다. 그런데, 젊은 새 권력자가, 그 빨갱이 돼지보다 더 큰 권력을 갖고 싶어 할 때. 과연 어떨까.


 


여기서도 그냥 논리적으로 경우의 수를 생각해보자.


 



1) 저쪽은 빨갱이 돼지고, 우리쪽은 능력자횽이니까 괜찮음. 나랏님은 권력 존나 쎄야 함. 그게 남자임


2) 밖에 무슨 일 있어?


3) 어라 이 새끼 봐라...?



 


만족, 무관심, 불만족. 3가지 극단이 존재할 거다.


 


여기서 하나 옵션으로 얹어지는 게 있다. 그래 뭐 땅 파러 외 가고 다 좋은데, 아 씨바 이건 좀 너무해. 같이 일하던 김씨랑 최양이 일하다 죽었어. 죽는 건 좀 아니잖아. 이러한 <어라?>를 외친 사람들이 위의 3)번 불만족과 교집합이 발생할 경우. 그들은 그 권력자를 싫어할 거다.


 


하지만 반대로, 김씨랑 최양이 죽긴 했지만, 전쟁 땐 더 많이 죽었고, 지금 우린 막 테레비 이런 거 보면서 사는데 옛날 전쟁통에 이런 거 상상이나 했나며 그냥 계속 묵묵히 참는 사람들도 있었을거다.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그냥 일했을 거다. 일하면 더 잘사는 거, 해봤으니까.


 


자, 이게, 한불로님이 언급한, <민주 Vs 반민주> 대결이 하나의 <세력대결>이 되도록 한 출발점일 거다. 물론 역사적으로는 그 기원이 더 있겠다만, 그 촉발요인이 이 지점일 거란 얘기다. <어라?>를 외친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지금의 <민주>세력에 해당한다. 그리고 그냥 열심히 산 사람들이 지금의 <반민주>세력에 해당하는 세력을 <지지>한다. 후자에는 만족했던 이들과, 무관심했던 이들이 혼재하는 거다.


 


여기서 내가 권력자라면, 그러니까 한반도 최고의 권력욕 1위인 줄 알았던 인간보다 권력욕이 더 쎈 걸로 추정되는, 말하자면 프리더가 젤 쎈 줄 알았는데, 프리더 죽고 나타난 셀 같은 인간으로 추정되는 권력자라면, 어떡할까?


 


당연히 불만족 세력을 없애고 싶었을 거다. 안 그래도 권력 자체의 크기를 김일성보다 키워야 되는데, 불만족 세력이라니. 북한은 체제전복세력은 그냥 죽이는데 말이다. 어쩔 거 같다고 생각하시나? 셀은 어떡할까 이럴 때?


 


죽인다.


 


그리고 아직 국민들의 뇌리에 강하게 박힌 고정관념이 있다. 빨갱이는 악마새끼들. 내 가족의 원수.


 


빨갱이로 몰아서 죽인다. 셀 정도의 권력욕을 지닌 권력자라면 이렇게 할 거다.


 


아 또 모르겠다. 불만족 세력들은 진짜로 하나같이 종북빨갱이었어서, 그들로부터 나라를 지켜야했을지도 모르겠다.


 


씨바 퍽이나. 퉤.


 


- 독재자 이후의 독재자, 그리고 그 이후


 



 


어찌저찌 그 권력자도 죽는다. 그럼 상식적으로, 1대 권력자 프리더가 도망가듯 내려오는 걸 보고 권력을 낚아챈 2대 권력자 셀도 죽는 걸 봤다면. (여기서 1대, 2대는 당연히 존나게 단순화한 거니까 공화국 숫자 갖고 걸고 넘어지기 있기없기?)


 


1대에서 2대로 넘어올 때는 상상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미 2대가 권력 가로채기를 성공했다면, 비슷한 수준의 권력욕을 가진 인간이, 2대와 비슷한 수단을 지니고 있을 때, <나도 한 번?>이라는 생각을 하는 게 존나 자연스럽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말이다. 그렇게 권력욕과 수단을 동시에 지닌 사람.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한다.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3대는 어떤 마인드를 갖고 있을까? 흐름상, 2대의 권력욕은 1대보다 더 강했을 가능성이 높다. 생전 없었던 군사정변이란 수단을 창의적으로 생각해서, 그 창의성의 대가인 리스크를 감수했을 정도라면 권력욕이 진짜 존나게 강한 거니까. 하지만 3대는 2대보다도 더 강했을지 확실치 않다. 이미 쿠데타는 성공사례가 있으니 예상 리스크가 2대 때보다 더 적었을테니까. 뭐 어쨌든, 비슷한 수준이긴 했을거다. 그러니까, 마인부우인지는 모르겠지만, 셀이랑은 비슷했겠지. 데브라 정도?


 





 


그러면 뭐 흐름은 뻔하다. 3대의 경쟁자는 2명이다. 2대 권력자의 그림자. 그리고 북한의 권력자.


 


박정희와 김일성, 둘 다 라이벌이다.


 


경쟁 부문도, 논리적으로 기본 3구성은 같을 거다. 늘 보아오던 경쟁게임에 참여한 거니까. 군사력, 경제력, 권력 자체의 크기. 마찬가지로 취향에 따른 옵션. 프로스포츠의 규모, 영화산업의 규모, 야한 잡지의 선정성 수준 등등등 추가.


 


그러면 서민들은?


 


만족에 해당했던 이들은 경제성장 속도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면 대체로 태도가 유지될 거다. 이미 박정희의 권력욕이라는 필터를 통과한 사람들이니까, 전두환의 권력욕이 박정희의 그것에 비해 어떠한가에 따라 차이가 좀 있겠다. 전두환 권력욕이 너무 더 심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불만족>으로 돌아섰을 거고 나머지는 그대로겠다. 무관심은 아마도 대체로 무관심할 거다.


 


그리고 불만족 세력은, 당연히 불만족할 거다. 뭐 씨바 똑같은 놈이 또 들어왔으니까.


 


자 그러면 이 불만족 세력에 대해 우리의 3대 권력자의 선택은? 2대가 어떡했지?


 


죽인다.


 


빨갱이 악마로 몰아서 죽인다.


 


단, 이미 박정희의 죽음을 경험한 전두환이라면, 더 죽인다. 더 악랄하고 집요하게. 비슷한 수준의 권력욕을 지녔더라도 그 이전 권력자의 말로를 봤으니,


 


반대세력에 더 민감할 수 밖에. 아마 한 군데 몰아놓고 싹 죽이고 싶었을 거다.


 


그래서 또 그걸 한다. 참나... 이 뻔한 새끼 참...


 


반대세력 억압의 강도가 높아지면, 반대세력 자체의 반발력도 강해질 거다. 군대 고참이 나를 자꾸 때려서 소원수리를 썼다. 그랬더니 더 맞는다. 그러면 중대장 찾아가는 게 정상이다. 물론, 뭐 진짜 죽을 정도로 맞으면 그냥 포기할 수도 있겠다만, 어디까지나 일.반.적.으.로 말이다.


 


그리하야, 더 강해진 반발심을 토대로 6월항쟁을 일궈내고, 데브라도 빠빠룽 한다.


 


그리고는 보통사람이라고 계속 주장하는 이상한 사람이 권력을 이양받는다.


 


이 때, 내가 데브라라면 말이다, 당연히 다음 권력은 <최대한 내 편인 사람>한테 넘기고 싶었을 거 같다. 인지상정이지 않나. 혹시 나 존나 싫어하는 애가 권력 잡으면, 나한테 막 뭐라 그러고 그럼 피곤하잖아?


 


그런데 가족한테 넘기는 건 북쪽 돼지가 하는 일이니까 그거 했다간 셀처럼 진짜 죽을 거고,.. 그러면 어떡해. 친구 줘야지.


 


그래서 진짜 준다... 아... 진짜 이 뻔한새끼 진짜...


 


근데, 자꾸 이래서 미안하다만, 내가 만약 그 친구라면 말이다,


 


친구라서 데브라를 막 봐주고 그러면 좆될 거 같지 않겠나? 그래서 별로 안 봐주는 거처럼 하겠지. 나 쟤랑 친구인 줄 알겠지만 그렇게 친하기만 했던 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을 거 같지 않나?


 


이 패턴은 아주 일반적인 패턴이다. 권력자가 권력을 넘겨야 되면, 최대한 친한 놈한테 준다. 대신 아들은 안 된다. 그건 돼지가 하는 거니까. 그리고 권력을 받은 친구는, 친구 아닌 척 한다. 친구 티 내는 건 너무 좀 그렇잖아.


 


이게 반복된 게, 김영삼이겠다. 뭐 아닐 수도 있다. 안 친할 수도 있지.


 


그런데 진짜 안 친하면... 3당합당 안 하지 않았을까 싶긴 하다. 뭐 최소한 김대중보단 친했겠지.


 


셀과 데브라 급의 권력욕을 지닌 권력자들로 추정되는 2명의 권력자의 틈바구니에서 국민들은 <고속 경제성장>을 경험한다. 이 지점이 만족/무관심 세력이 존재하게 한 이유다. 이 경제성장은 식민지배와 전쟁을 함께 경험한 세대들이 폐허에서 첨단도시를 만들어내는 놀라움을 실현하게 했다. 이에 대한 <만족>은 지금 시점에서 예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클 것이다.


 


그렇다면, 그 당시를 기준으로 할 때, 당시 <불만족> 부류들은 권리라던가 사회 정의에 대한 의식이 저 <만족감의 크기>를 상회했다는 얘기다. 그렇다는 얘기는, 불만족/만족을 구분짓는 건 애초에 권리와 사회정의라는 가치와 경제성장을 통해 느낀 만족감을 어떠한 관계로 규정하느냐의 사고방식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얘기가 된다. 이 두 부류는 기본적으로 사고방식이 다르다.


 


그러므로, 경제가 더 이상 성장을 멈추는 순간이 오기 전까지, 만족/무관심 세력은 그대로 유지될 거다. 북한도 마찬가지일 거다. 경제성장이 멈추고 퇴보하기 전까지는, 진심으로 김일성을 영웅으로 생각하는 북한 주민들이 다수였을 거다.


 


한편 80년대 후반,


 


이제 셀과 데브라급의 권력자들이 없어진 가운데, <불만족 세력>은 어떨까.


 


마지막으로 경우의 수.


 



1) 없어졌네. 안녕 모두들


2) 아니야. 아직 이건 우리가 원한 게 아니야 씨바.



 


1)에 해당하는 빠빠룽 부류가 대선출마 선언한 거 같더라.


 


그들이 빠빠룽 했으니, <불만족 세력>은 줄어들었을 거다.


 


그러고보면, 초등학교 때보다 중학교 때, 최루탄 냄새 덜 맡았던 거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게 IMF 사태는 벌어진다. 경제가 더 이상 성장을 멈추는 정도가 아니라, 갑자기 극단적으로 후퇴한다.


 


오늘날 무한경쟁 속의 양극화가 본격화 되는 계기가 되었던 IMF 사태를 야기한 원인과 그 본질 그리고 이에 대한 ‘민주정부’의 책임, 무엇보다도 그 당시 일반 국민들이 느꼈을 것과 행동했을 것 등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본격적으로 논의해보기로 하자.


 


 


P.S


위 본문에서 아마도 남한에서의 2대 권력자는, 그 환경상 권력 세습에 대해서도 김일성에게 라이벌 의식을 느꼈을 거라고 추측했다. 김일성보다 더 강한 권력의 완전한 독점이 로망이었을거다. 그 로망. 그 혼자만의 것이었을까?


그건 잘 모르겠지만, 암튼 그 딸이 권력을 잡으려 하고 있긴 하다.


 


P.S 2


사실 이 논의에서 친일파 얘기를 뺄 수 없긴 한데, 너무 클리셰적이기도 하고 이미 분량이 너무 많으니 다음 기회에 친일파 및 대기업, 조중동은 따로 디벼보자. 같은 방식으로.


 


춘심애비


트위터 : @miiru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