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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4. 29. 월요일

이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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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통해 널리 알려진 천수관음무

무용수가 모두 시각, 청각 장애인으로 구성되어 환상적인 군무를 펼친다.



 

 

 

 

- 양성의 관음

 

관음보살의 성별은 남자일까 아니면 여자일까? 정답부터 말하자면 남자다. 관음보살이 남자라는 일차적인 증거는 그가 누군가의 아들이었다는 기록들이다. <관세음보살수기경 觀世音菩薩授記經>에 따르면 위덕왕(威德王)이 얻은 형제 중 하나이고, <비화경 悲華緩>에 따르면 전륜왕(轉輪王)의 첫째 아들 불현(不現)이었다고 한다. 인간적으로 족보를 따지기 전에, 부처님과 보살님이 사는 땅(佛國土)에는 여자가 없고 ‘여자’라는 말조차도 없었다고 하니, 불국토 출신인 관음보살의 성별 역시 남자라는 추론이 당연하다.

 

관음보살의 원래 이름은 아발로키테스바라(Avalokite?vara)인데, 이렇게 어려운 이름을 그대로 읽다가는 불심으로 대동단결이 불가능할 터, 300권 이상의 경전을 한자로 번역한 구마라습은 이 이름을 ‘관세음(觀世音)’이라 번역했다. 그런데 중국에서 불교가 전성기를 맞은 당(唐)대에 들어서자 태종의 이름이 이세민(李世民)이라, 군주의 이름에 쓰인 글자를 다른 사람의 이름에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피휘(避諱)의 관례를 따라 중복되는 ‘세’를 빼고 ‘관음’으로 쓰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상식으로 생각하면 관음보살이 당태종보다 최소 삼만 배는 존귀하신 분인데 당시에는 황제한테 밀렸던 모양이다.

 

구마라습이 ‘관세음’이라는 번역어를 만들었던 까닭은 이 분이 ‘세상 모든 곳을 살피는’ 보살이기 때문이다. 중생들을 고통으로부터 지켜주고 아픈 곳을 어루만져주고 중생들의 기도를 들어주는 대자대비(大慈大悲)의 화신이 바로 관세음보살이시다. 천주교에도 이와 유사한 존재, 성모 마리아가 있다. 성모 기도문을 살펴보면 대개 마리아님을 불러 놓고 우리를 위해서 기도를 해달라고 부탁을 드리는 형식이다. 예수의 어머니는 인간이기 때문에 기도에 응답할 수 있는 능력은 없지만, 우리의 기도를 예수님께 전해주시라는 청탁은 들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도를 하려면 직접 예수님께 할 일이지 힘도 없는 마리아님은 왜 찾는단 말인가? 이런 의문을 가졌던 종교개혁자 칼뱅은 성모 기도를 철폐함으로써 자신이 마리아를 자유롭게 해주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예수님 같은 거물을 소환해서 맞장 기도를 뜨는 것보단 어머니 같은 중개자를 하나 끼고 소근소근 하소연을 하는 쪽이 훨씬 편안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래서 관세음보살은 여성적인 모습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았다. 센소지 소장 수월관음도를 보자.(도판 1) 물방울 모양의 광배가 아름다워 ‘물방울 관음’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고려시대 불화를 대표하는 명작이다. 수월관음도는 선재동자가 남해 보타락가산이란 곳에 계시는 관음보살님을 찾아가 불법(弗法)을 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그림이다. 왼쪽 아래 구석에 아주 조그맣게 옆모습이 그려진 인물이 바로 선재동자인데 누가 말해주기 전에는 눈길도 가지 않는다.(도판 1.3) 역시 그림의 주인공은 관음보살, 화려한 보관을 쓰고 하늘하늘 비치는 가사를 걸치고는 맨발을 드러내고 물가에 서 계신다.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다. 비슷한 시기에 그려진 지장보살도(도판 2)와 비교해 보면 관음보살님이 얼마나 우아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려졌는지 확실히 알 수 있다. 원래 지장보살님이 저승세계를 관장하는 상남자 캐릭터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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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수월관음도, 비단에 채색, 고려시대, 일본 센소지(?草寺) 소장.

1.2 수월관음도, 세부 - 나긋나긋 관음보살님

1.3 수월관음도, 세부 - 꼬꼬마 선재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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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지장보살도, 비단에 채색, 고려후기, 일본 요주지(養壽寺) 소장.

2.2. 지장보살도, 세부 - 상남자 지장보살님

 


인도의 불사에서는 관음이 여전히 남성의 모습으로 남아 있고, 티베트의 토속 신앙 뵌뽀교(?敎)와 불교가 결합된 티베트 불교에서도 관음은 남성이다. 티베트 불교의 교리에 따르면, 달라이 라마는 다시 태어난 관음보살이고 달라이 라마가 사는 포탈라는 관음의 성지인 보타산(普陀山)에 해당한다. 중국의 불교에서도 관음보살상은 수염이 그려진 형태로 분명 남자의 얼굴을 하고 있다. 하지만 당송(唐宋)대를 거치며 관음의 얼굴에서 수염이 사라지기 시작하며 표정은 부드러워지고 몸짓은 나긋나긋해지는 변화가 생긴다. 관음보살은 여신이 아니지만 관음보살을 표현한 불화나 불상에서 여성적인 특징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다.

 

요나라 때의 걸작 목각 남해관음보살상을 보면(도판 3) 편안하게 유희좌(遊戱坐 -한쪽 다리는 곧추 세우고 다른 한쪽 다리는 대좌 아래로 내려뜨린 자세) 자세를 취하고 있는 관음의 모습은 교태마저 품고 있다. 변방의 유목민족이었기에 가능했던 자유로운 불심의 표현일까? 그 속마음이야 알 수 없지만 거란족의 미적 취향이 굉장한 수준이었다는 사실은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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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남해관음보살상, 목각에 채색, 11-12세기, 넬슨-앳킨스 미술관 소장.

3.2 남해관음보살상, 세부

 

 

 

- 섹시한 그녀, 관음보살

 

한반도에도 관음보살에 대한 여러 가지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스님 원효의 기행담 중에서 섹시한 관음보살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찾아보자. 소요산 자재암 설화에서는 관음보살이 매력적인 여인의 모습으로 비오는 밤에 스님을 찾아와서 대놓고 유혹을 하는 내용이 나온다.

 

원효가 소요산에 초막을 짓고 수행을 하던 중 한 여인이 비오는 밤에 찾아와 하룻밤 지내게 해달라고 간청을 했단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밤에 차마 내칠 수 없어 초막으로 들어오라 허락했더니, 설상가상으로 추워서 견딜 수가 없으니 몸을 주물러 달라고 했다. 중생이 춥다니 어쩌겠는가, 원효는 본의 아니게 젊은 여인의 몸을 주물주물 했단다. 긴 밤을 보내고 아침이 왔다. 원효가 폭포수를 맞으며 달아오른 몸을 식히고 있는데 여인이 따라 나와 같이 목욕을 하자며 옷을 벗고 달려들었다. 그러자 원효도 더 이상은 참지 못하고 버럭 화를 냈다.

 

 

“어쩌자고 나를 유혹하느냐!”

 

그러자 여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어디 제가 스님을 유혹했답니까? 스님이 저를 색안으로 보시면서.”

 

 

여인은 금빛 후광과 함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원효는 그 여인이 관음보살이었다는 사실과 함께 모든 일이 자기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매사에 걸림이 없이 자유로운 무애자재(無碍自在)의 깨달음을 얻은 자리에 자재암(自在庵)을 세우고 수행을 계속했다고 한다. 대자대비의 화신 관음보살님은 미천한 중생들을 일깨우시려 여인의 몸으로 야밤에 비를 맞으며 산 속을 헤매셨던 것이다. 원효스님이 일체유심조를 깨달은 분이기에 다행이지, 아니었다면 관음보살님이 원효를 파계시킨 팜므파탈이 될 뻔했다.

 

 

 

- 원효는 해골물만 마신 것이 아니라...

 

원효가 해골바가지에 고인 물을 먹고 일체유심조를 깨달았다는 민담의 원형은 중국의 기록인 <송고승전 宋高僧傳>의 <당신라국의상전 唐新羅國義湘傳>의 기록이다. 그러나 원전에는 원효가 해골바가지에 고인 물을 마셨다는 내용이 없다. 해골이 널린 줄도 모르고 무덤굴 땅막(土龕)에서 하룻밤을 자고 났더니, 다음 날 제대로 된 집에서 잠을 잘 때도 귀신이 사는 집 같아 무서웠다는 이야기가 있을 뿐이다. 모든 일은 마음먹기 달렸다는 가르침은 같지만, 원래의 이야기가 이 입 저 입 오가며 살이 붙다 보니, 한밤중에 목이 말라 해골바가지에 고인 물을 마셨다더라 하는 역겨운 설정으로 변하며 전해졌을 것이다.

 

극적인 효과를 위해서 과장된 설화 중에는 이런 버전도 있다. 원효가 관음보살을 경배하러 길을 떠났다가 다리 밑에 이르렀을 때 빨래를 하고 있는 여인을 만났다. 원효가 여인에게 마실 물을 청하자 여인은 개짐(천으로 만든 생리대)을 빨던 물을 떠주었다. 원효는 그 물을 버리고 다시 냇물을 떠서 마셨다. 그 여인이 바로 관음보살이었고 원효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일화이다. 관음보살이 여자로 등장해서 생리혈이 섞인 물을 마시도록 권했다는 이야기의 구성은 자못 기괴하다. 보통 여자도 아니고 공주님과 결혼했다 돌싱이 된 스님이라 그런지 원효가 등장하는 관음보살 설화에는 성적인 코드가 강하게 녹아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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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원효대사의 일화를 그린 송광사 벽화

해골에 고인 썩은 물을 아무렇지 않게 꿀꺽꿀꺽 마셨다면 비염을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물론 진료는 의사에게.

 

 

 

- 나쁜 여자, 관음보살

 

원효대사가 만난 관음보살 같이 대놓고 유혹을 해주면 그 과정에서 한방에 깨달음을 얻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스님들이 원효만큼 화통했던 것은 아니고, 모든 관음보살의 현신들이 원효의 관음보살만큼 화끈했던 것도 아니다. 관음보살이 여자로 나타나 승려를 유혹해놓고는 절대 끝까지 가지는 않는 아슬아슬한 설화도 있다. 강화 보문사에 얽힌 회정스님 이야기다.

 

금강산 송라암에서 수행하던 회정(懷征)은 관세음보살을 친히 만나보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있던 젊은 비구스님이었다. 관세음보살을 부르며 스르르 잠이 들었는데 강화의 유명한 관음성지 낙가산(落袈山)으로 워프를 하셨다. 때마침 비가 몰아쳐 한 움막에 황급히 들어가니 소복을 입은 여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회정이 소복여인에게 관음보살의 행방을 묻자 여인은 강원도 양구에 가서 몰골옹과 해명방이라는 사람을 찾으라고 했다. 꿈에서 깨고 나서 회정은 소복을 입은 여인이 바로 관음보살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꿈에 그리던 관음보살님을 드디어 만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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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딴지 6호에서 계속



 

편집부 주


무규칙2종매거진 [더딴지 6호]에서는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Sexy 관음

므파탈 역사가 공개된다.



교계가 들고 일어선다 한들

처를 만나면

부처를 베고

사를 만나면

조사를 베는 것이

불가의 가르침이요,

본지의 길일지니,


관음을 만난 김에 관음을

홀라당

벗겨 볼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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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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