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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2년 고구려를 침공한 수 양제의 백만 대군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그것이 정확한 수이든 그렇지 않든 고구려가 동원 가능한 전 병력을 가볍게 뛰어넘는 어마어마한 대군을 동원한 것은 분명하다. 왜 그랬을까. 물론 황제로서의 위엄을 과시하려는 목적도 있었겠지만 수 양제도 진나라 정복군 사령관으로 통일을 달성했던 경험이 있었던 만큼 그렇게 바보는 아니었다.


천연 장벽인 요하를 경계로 한 고구려의 요동 방어선은 촘촘히 짜여 있었다. 이후의 역사를 통해서도 이름이 널리 알려진 쟁쟁한 성들이 구축돼 있었고 고구려군은 한 성이 공격당하면 다른 성의 구원군이 달려와 침략자의 배후를 치고 협공에 나설 수 있는 기동력을 보유했다. 그러나 ‘백만 대군’은 이 가능성을 차단하고 고구려의 요하 방어선 자체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유력한 방법이었다.


고구려 요동 방어선의 사령부라 할 요동성이 포위 공격을 당하지만 고구려의 응원군이 다다랐다는 기록은 없다. 하지만 요동성은 무려 3개월을 버티며 수나라 대군의 공격을 막아 낸다. 물론 고구려 군의 용맹은 인정해 주어야겠지만 요동성이 끝내 버텨 낼 수 있었던 요인은 고구려군의 지혜와 수나라의 아둔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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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양제는 이런 명령을 내려 놓고 있었다. “군대의 모든 움직임은 전부 반드시 나에게 아뢰고 대답을 기다려야 하며, 자기 혼자 결정하여 행동하지 마라.” 어느 나라 대통령은 결정 장애가 문제라더니 이 명령은 수나라의 백만 대군을 지휘하는 수천의 장수들을 일제히 결정 장애 증상에 빠뜨렸다. 거기에 “이 전쟁은 백성을 위로하고 죄인을 벌주고자 하는 전쟁”이라고 선포하여 폼을 있는 대로 잡았던 수 양제는 그 인자함을 과시하고자 이런 엉뚱한 명령을 추가해 두었다.


“고구려가 만약 항복하면, 즉시 마땅히 어루만져 받아들여라. 절대 군사를 풀지 말라.”


요동성은 산성도 아닌 평지성이었다. 무지막지한 공성 기계와 인력이 홍수처럼 요동성 밖을 휩쓸었고 백만 대군이 산재한 요동에서 다른 성의 구원군도 바라기 어려웠다. 마침내 요동성은 함락 위기를 맞고 항복을 교섭하게 된다. 아마 그 순간은 진짜였을지도 모른다. 도저히 버티기 어려웠고 백만 대군은 그저 바라만 보기에도 아득했으며 황제 폐하가 살려 준다고 보장하셨다고 연신 외쳐 댔으니 생존의 욕구도 만만찮았을 것이다. 그러나 요동성 사람들은 그 순간 수나라의 약점을 알아챈다.


항복 의사를 전한 즉시 항복 조건이 제시되고 당장 성문을 열고 무기는 어떻게 할 것이며 항복 의식은 어떻게 치른다는 구체적인 안이 제시되는 게 아니라 “황제 폐하께 사람을 보냈으니 기다리시오.”였던 것이다. 이것 봐라? 황제에게 사신이 달려가고 보고하고 항복을 받을지, 어떤 의식을 치를지 결정하는 시간만도 한참이었다.


며칠이 흐르자 죽을 것 같이 늘어져 있던 고구려 병사들도 기운을 차리고 슬금슬금 성벽도 수리가 되어 갔다. 얼라? 수나라 장수들은 심상찮은 분위기를 눈치챘지만 대놓고 공격할 수도 없었다. “황제가 맘대로 공격하지 말랬잖아요,” “아니 저게 항복으로 보여요?” "아 글쎄 기다려 보자니까.” “복장 터지겠네. 지금 고구려 애들 칼 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데.”


성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고 항복은 철회됐다. 수나라 군대는 다시금 울분을 터뜨리며 공격을 가했고 워낙 많은 대군인지라 요동성은 또 위기에 빠졌다. “까오리 놈들. 이젠 정말 안 봐준다.”


수나라 군대가 막 성벽을 넘으려던 날 성문이 열리고 또 백기를 든 고구려인들이 몰려 나왔다. “이번엔 진짜입니다. 황제의 무거운 뜻을 받아들여 이제는 항복합니다.” 굽신거리기는 하는데 분위기는 참 묘했으리라. 수나라 군 지휘관은 이미 고구려인들의 능글능글한 웃음의 뜻을 짐작하고 있었겠지만 사신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폐하. 이제는 항복한답니다.”


이런 식으로 고구려는 수나라 대군을 세 번씩이나 놀려 먹는다. 아마 나중에는 대놓고 이랬을지도 모르겠다. “저희는 모든 것을 내려놓겠습니다. 어떻게 항복할지 황제 폐하께 물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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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가 우리 조상이니 이 얘기가 재미있지, 중국인들에게는 그야말로 복장 터지는 역사다. 수백만 군대가 동원되고 그만큼의 인력이 군량 나르느라 허리가 휘었고 물 속에서 일하다가 하반신에 구더기가 슬었던 전쟁, 그 이후로 당나라 전성기보다도 더 많은 호수(戶數)를 자랑했던 수나라의 국력을 쓸어넣은 전쟁이었는데, 멍청한 황제의 ‘가오’ 살리기 앞에, 또 “만약 죄가 된다면 내가 받겠소!” 하면서 요동성으로 뛰어들지 못했던 수나라 장수들의 엉거주춤 속에 전쟁의 승리를 이끌 열쇠가 두 동강 나서 요하에 버려지고 말았던 것이다.


압도적인 전력을 가지고도, 승기를 잡고 상대의 목줄을 내리누르고도, 적을 진퇴양난 고립무원에 빠뜨리고도 마지막 뒷처리가 부실하거나 엉거주춤 뜨뜻미지근한 자세에다가 상대의 교란 작전에 빠져 자멸한 사례는 세계 역사에 무수하게 많다.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


대한민국의 촛불 대군은 이미 청와대를 포위했고 수백만의 함성으로 청와대와 그 일파의 기를 꺾었지만 “무겁게 받아들이던” 이는 항복인 듯 항복 아닌 배짱으로 “물러나 줄 테니 안을 가지고 와 보아.”로 뻗대고 있다. 끊임없이 국민들을 시험하고 교란하고 지치기만을 기다리며 농성을 전개하고 있다. 과연 우리는 저 어리석은 수양제와 그 부하들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이미 청와대 거주자는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에 대한 선서를 헌신짝처럼 버렸다. 민주공화제인 대한민국을 입헌공주제로 만들었고 모든 권력은 순실로부터 나왔으며 국가를 혼란에 빠뜨렸고 평화적 통일의 기틀을 허물었으며 블랙리스트와 최순실 사단 챙기기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강탈했고 대통령은 커녕 일개 직업인으로서도 함량미달의 불성실을 자행했다.


그녀는 이제 나라를 훔친 도둑 정도가 아니라 나라의 근간을 위협한 국적(國敵)이다. 그녀를 탄핵하고 몰아내는 것은 비단 불의에 대한 항거를 넘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생존 조건이 돼 버렸다. 촛불의 대군은 그래서 필요하고 그들을 대표하여 국적의 정치적 숨통을 끊을 수 있는 이들의 용단은 그래서 요긴하다.


주판알은 던져 버리고 엉거주춤의 자세를 바로하라. 헌법을 유린한 자, 헌법으로 탄핵하라. 그 시간을 늦추는 것은 바로 국적을 도와 주는 일이며 200만 촛불 대군의 애타는 호소와 피말리는 노력을 한강물에 흘려 보내는 낭패에 다름 아닐 것이다. 국적을 섬멸하라. 그 섬멸의 수단은 탄핵이다. 그리고 시간은 많지 않다. 국적을 머리에 이고 제대로 돌아가는 나라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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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


편집 :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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