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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해의 세계 경제를 관통하는 이슈를 짚어보자면, 단연 선거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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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유럽연합탈퇴 여부를 결정하는 브렉시트 주민투표가 가결되었고, 미국 대선후보에서는 논란의 후보 트럼프가 당선되었으며, 해외 지도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던 이탈리아 렌치 총리가 정치생명을 걸고 치른 개헌 국민투표는 부결됨으로써 이탈리아는 정치는 혼란해졌다.


몇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이슈들이 한꺼번에 쏟아져나온 것도 이례적이지만, 주류언론과 전문가들이 예상한 후보들이 하나같이 패배를 당한 것도 역시 이례적이다 (큰 틀에서, 한국 선거에서 야당이 예상을 깨고 승리한 것도 이러한 범주안에 들어가겠다). 왜였을까?

 

저마다 사정이 조금씩 다르고, 찬반 표차가 박빙이었던 탓에 분석 또한 갈릴 수 있겠지만, 그 기저에는 한가지 공통된 심리가 있었다. 현 체제에 대한 불만이다. 지금의 시스템 속에서 고통받고,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을 한 국민들이 투표라는 수단을 통해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 것이다.

 

기실, 이러한 감정은 특정사안이나 정치인에 대한 지지와는 크게 상관이 없는 경우가 많다. 영국국민이 브렉시트를 선택한 데에는, 브렉시트 후에 어떠한 비전과 희망이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 것이다. 런던이 유럽의 경제수도로 성장해나가는 사이, 이민자유입으로 상대적으로 소외된 노동자들의 분노의 표출일 따름이라고 본다.

 

미국에서 트럼프가 당선된 것 역시, 국민들이 그에게서 인간적인 매력이나 강한 리더쉽을 느껴서가 아닐 것이다. 기성정치인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는 힐러리가 당선되는 게 싫었고, 그녀가 당선되어서 오랫동안 그녀와 함께해온 국제대기업들이 잘되는 건 더더욱 싫었기 때문에 예측 불가능하지만 변화를 약속한 트럼프를 뽑았다고 본다(트럼프의 경제정책은 다음 글에서 다루도록하겠다).

 

마지막으로, 이탈리아 국민들 역시, 편가르기를 밥 먹듯이 하는 상원을 지키기 위해 주민투표에서 반대를 한 게 아닐 것이다. 지금 당장 실업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렌치 총리에게 염증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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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들이 공유하고 있는 이 불만들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이는, 지금 세계가 처한 경제 상황과 연관지을 수 있겠다.


2008년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를 기점으로, 전 세계에 성장과 인플레이션이 사라졌다. 수조 달러에 달하는 공적자금을 투입하고도 중국경제는 7%대(공식추정치이고, 실제통계는 더 낮을 거라는 게 중론이다) 경제성장을 기록 중이고, 이마저도 높아 보일 만큼 한국, 일본을 비롯한 여러국가의 경제성장율은 곤두박질쳐왔다.

 

인도를 비롯한 몇몇 국가를 제외하고 성장이 둔화된 지금, 전세계 기업들은 아무리 중앙은행이 기준 이자율을 낮춰도 더 이상 돈을 빌려서 투자나 고용을 늘리지 않고 있다. 그동안 벌려놓은 사업과 이미 쌓인 빚이 버거워졌고, 규모를 낮춰 살아남는 데에 주력하고 있다.

 

이렇게 저성장이 새로운 정상으로 받아들여지자, 가장 먼저 피해를 입기 시작한 건 '덜 보호된' 이들이다. 몸집 줄이기에 나선 각 기업에선 가장 수익성이 낮은 공장과 사업부를 서서히 정리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이곳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잉여로 낙인찍혀 괜찮았던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미래 사업성이 불투명해짐에 따라 비용과 리스크를 줄이려는 기업들은 정규직을 뽑았던 자리를 쪼개서 비정규직과 일용직으로 만들게 되고, 어쩔 수 없이 이런 불확실한 일자리를 받아들인 노동자의 임금은 수준은 정체된다. 이러한 거대한 흐름 안에, 일개 노동자가 직장내에서 할 수 있는 건 옆에 있는 노동자와의 경쟁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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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쟁 속에서 밀려나거나, 곧 밀려날 처지에 놓인 이들은, 투표에서 시스템 자체에 대한 의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왜 우리는 생존을 위해 이렇게 끊임없이 경쟁해야만 하는가?

 

그 질문에 대한 한 가지 답은, 세계화이다. 냉전 이후로 전세계는 수많은 조약들과 기술의 발달로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교역량은 급속히 늘어나게 된다. 이는 곧, 기업들이 경쟁을 해야 될 대상을 동네 단위에서 전 세계로 넒히게 되었고, 그 대상 또한 무한대로 늘어나게 했다. 내부로는 스스로 도태되지 않기 위한 경쟁을 강요했고, 바깥으로는생산성 증대를 위한 새로운 기술을 도입해 일자리를 더욱 줄여나갔다.


이러한 시스템 자체가 나쁘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이렇게 경쟁을 함으로써, 우리 모두는 소비자일 때 이득을 보니까. 한국인들이 아이폰을 살 수 없었다면, 삼성이 갤럭시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현대기아차만 국내시장에 차를판다면 우린 얼마를 내고 어떤 차를 사야 했을까?

 

문제는, 자유무역 자체가 아니라, 자유무역 아래서 이뤄지는 부의 분배와 순환이다. 트럼프를 뽑은 미국을 예로 들어보자. 이코노미스트지에서 인용한 논문들에 따르면, 중국 교역품이 1,000달러 수입될 때마다, 해당 물건을 만드는 지역이 집중된 미국지역의 소득이 약 $500불 가량 감소했다. 1990년부터 2007년까지 미국에서 사라진 제조업 일자리의 약 40%가 중국과의 교역 때문이라고 한다. 2000년도에만, 중국과의 교역 때문에 240만에 일자리가 사라졌다는 연구결과 또한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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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원문 - The Economist

 

당장은 싼 값에 물건을 사니 소비자가 이득을 보는 것 같아도, 이렇게 일자리가 빨리, 그리고 많이 줄어들면 결국 이들의 구매능력 자체가 줄어든다. 경제학에서는 무역으로 아낀 비용을 상대적으로 경쟁력 있는 분야로 재분배해서 균형을 찾는다고 가르치지만, 이는 몇세대가 걸리는 작업이고, 당장 수많은 노동자의 생계를 해결해주진 않는다.

 

물론, 많은 노동자에게 괜찮은 일자리를 제공하던 제조업이 미국에서 몰락함에 따라 이득을 본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중국으로 재빨리 공장을 옮겨 단가를 낮춘 기업들과, 새롭게 떠오른 중국시장의 덕을 봤던 IT기업들과 금융기업들, 그리고 이러한 세계화 흐름을 잘 이해하고 이들 기업들에 투자를 잘 해왔던 투자자들까지.

 

문제는 세계화 시스템 속에서 고통받는 노동자들의 수는 많고, 또한 이들이 지불하는 비용 (일자리, 소득) 역시 매우 값비싼 데에 비해, 이 시스템 속에서 득을 보는 건 몇몇 기업들과 이들을 소유하는 투자자들로 매우 소수이나, 이들의 수익이 전자에 잘 분배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덜 보호받은 자들은 현 상황에 대한 변화를 요구했고, 이것이 투표에서 이변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투표의 결과가 늘 옳을 수는 없다 하더라도 경쟁과 첨예한 의견 대립, 그리고 여기에 이어지는 이변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저성장이 이어지는 한 많은 이들이 경제적으로 고통받을 것이다. 이들의 목소리를 잘 경청하는 정치인이 당선이 되어야 한다. (잘 경청하는 척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그게 계속해서 잘 안 되다보면 일어나는 게 혁명이다.

 

물론 나는 가급적 극단주의는 배제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과거 이러한 과도기(20세기 초반, 무역증가와 산업자동화 등으로 일자리가 감소하던 시절)에 각국에서는 수많은 혁명과 보호주의가 일어났고, 올바른 대의를 갖고 시작한 많은 일들이 전체주의와 전쟁이라는 비극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경제적 문제들은 정치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제도적으로, 경쟁만을 강조한 세계화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소외받은 이들이 공존할 수 있도록 재교육과 지원을 해주어야 한다. 이러한 문제를 좀 더 약자에 입장을 보듬을 수 있는 지도자와 정치인이 선출되서, 이들의 입장을 정책에 반영되어야한다. 정치를 잘 해야만 경제가 바뀔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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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딴지일보 퍼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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