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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6. 23. 화요일

무숙자






첨 미국 와서 한 달이 채 못 됐을 때 이야기야. 아침 출근 시간에 뉴욕 퀸즈보로라는 동네를 갔어. 육교를 건넌다고 계단을 반쯤 올라왔는데, 앞에서 걸어오던 이쁜 미국처자가 말을 거는 거야.



“Do you have time?"


 

순간적으로 띵 하면서 팍 드는 생각이 '으잉 나한테 지금 작업 거는 거임?' 웃으며 대답을 기다리는 처자 앞에서 1~2초 사이에 머리가 막 굴러. '시간 있어요?' 분명 이렇게 물었겄다. 근데 쟈가 미치지 않고서야 뭔 생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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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 간에 퍼뜩 나는 생각! 아, 저건 ‘몇 시예요’ 물어보는 거였지. 공부가 힘이 되는 순간이었어. 하마 트믄 큰일 날 뻔 했지.


 

“아침 8시 30분이네요. 처자.”



근근이 위기를 벗어났어. (한숨) 그리고 참 신기하게도 그 이후로 근 30년 동안 아무도 내게 시간을 저렇게 묻는 이가 없었어.

 

또 다른 이야기. 비슷한 시기에 있었던 일이야. 학교에 다니면서 덩큰 도넛에서 캐셔 알바를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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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night"



요말이 또 사람을 당황케 하대. 커피 한 잔에 도넛 하나로 저녁을 해결하는 수많은 단골 중에 미국 할아버지가 한 명 있었는데, 인사도 하고 농담도 하고 금세 친해졌어. 근데 한 일주일쯤 지나서 갑자기 주문도 하기 전에 나한테 화를 내는 거야. 첨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지. 난 자기 보자마자 반갑다고 인사했는데 분위기 살벌하게 화부터 내니.


문제는 내가 하던 인사 Good night 이었어. Hi는 너무 쉬워 보여서 Good evening 하고 Good night을 품위 있게 쓰고 싶었지. 그래서 저녁 7시 반까지는 Good evening을 하고 그 이후론 Good night으로 손님을 받았어. 오후 지나서 저녁 시간이니까 Good evening~ 해 저물고 밤이니까 Good night~


그니까 들어오는 손님 보면 쩌렁쩌렁하게 ‘Good night, sir!’했지. 그땐 Good night이 헤어질 때만 하는 인사란 걸 정말 몰랐어. 저녁 늦게 들어오는 모든 손님에게 그들이 주문도 하기 전에 첫마디로 ‘안녕히 가세요’를 일주일 동안 하고 있었던 거지.


그 할아버지 덕택에 천하의 바보짓을 관두고 나서는 하이 메이 아이 헬프유?(주문 받기 전), 헤버 긋나잇(손님 보낼 때) 요렇게 문제없는 멘트로 인사를 하게 되었지. 근데 새벽 1시에는 뭐라고 해야 할까?


자정이 넘으면 또 하루가 시작된 거니까 만났을 땐 Good morning, 헤어질 땐 Have a nice day 정도가 보통이야. 내가 똑똑해서 바로 안 게 아니고 위에 할아버지한테 물어봤어. 새벽 두 시에 동네 델리에 가서 해봤지. Good morning 하니까 캐셔도 당연하게 받아서 Good morning을 하더라.


에, 또 ‘How are you?’도 나를 힘들게 했어. 그때 난 좀 더 적극적으로 영어를 구사하도록 노력하자고 맘먹던 시기였거든. 그니까 누가 나한테 How are you? 하면 그냥 Fine. Thank you. 이딴 말 하지 않고 So so. 또는 Bad. Not so good. 뭐 이런 말들을 해댔지. 그럼 인사한 사람이 마구 또 물어봐 어디가 아프냐, 뭔 일이 있냐, 우짜꼬. 왜 그런지는 나중에 알았어.


한국서 우리가 어디 다니다가 잘 알지는 못해도 안면은 있는 사람 만나서 안녕하세요~ 하쟎아. 그럼 그쪽도 ‘안녕하세요’ 답하고. 만약 그 ‘안녕하세요’하고 지나가는 사람 잡고 ‘안녕 못해요. 오늘 제가 밤잠을 설쳐서리’ 라든가 ‘기분이 꿀꿀해요. 제 여친이 절 버렸어요.’ 뭐 이런 신상이야기를 늘어놓는다면 어떻게 받아들일 거 같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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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사람들에게 난 요렇게 보였겠지


그니까 미국서 친하지 않은 이가 ‘How are you?’ 하면 ‘아주 좋습니다. 그쪽도 안녕하시죠?’ 하고 넘기는 게 예의가 되더라는 얘기. 꺼벙이과에 속하는지라 화내는 인간도 없었고 이건 깨닫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



“Do you go to school?”



학교 마치고 저녁에 맥도날드에 가서 앉았는데 전도사쯤 되어 뵈는 미국애가 이러고 물었어. 학교에 가는 길이냐고라? 이 껌껌한 저녁에 햄버거 먹는 넘을 보고 어디를 가냐고 왜 물을까?



“어이 미안하지만 방금 뭐라 그러셨어? 잘못 들어놔서리.”



하니까 다시 묻대.



“Are you a student?”



현재 시제로 하는 말은 동작을 뜻하지 않고 평소의 습관이나 사실을 말할 때 쓰이지. 이 수수께끼 같은 문법책 설명을 그때 깨달아 버렸어. 그니까 나이트 정문 지킴이들이 어린애들한테 ‘너 아직 학생이지? 몬 들어간다 마~’할 때, ‘너 학생이지?’가 Do you go to school? 이거고, ‘너 학교 가냐?(가는 길이냐?)’는 Are you going to school?


이런 일 있을 때마다 난 짜증이 치밀었어. 내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완전무식깡통으로 알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으니까. 영어공부에 처들인 시간이 억울해서리.



“How many fingers do you h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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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손구락이 몇 개냐? 물어보면 한국 애들은 ‘10’, 네이티브들은 ‘I got 8 fingers and 2 thumbs’ 요렇게 말하지. 나 손구락 8개하고 엄지 두 개 있는데 이건 푸른~ 하늘~ 은하수~가 뭐냐고 물으면 외국 애들은 ‘우주에 있는 아름다운 별들의 집합’이니 어쩌니 답하고 한국인이라면 거의 누구나 ‘동요가사예요’ 하고 답하는 차이. 기초 문화 경험의 결여로 인한 건널 수 없는 gap.


도넛가게 한 달 일하면서는 영어 존댓말과 반말도 배웠어. 어린아이들은 Can I have 1/2 dozen donuts? 도넛 반 다즌만 주실래요? 이쁘게 말해. 싸가지 없는 중고딩 애들은 말 딱 자르고 Let me have a small regular coffee. 커피 한 잔만 줘 이러기도 하고. 좀 교양 차리는 사람들은 Let me have a small regular coffee, please. 커피 한 잔만 주세요~ 요렇게 살짝 존대를 하지.


어느 날 옆에 있는 대학 ESL 다니는 한국학생은 주문 할 때 이러더라고.



“Could you give me a cup of coffee, please?”



번역하자면 ‘제발 커피 한 잔만 주시겠어요?’ 지돈 내고 먹는 건데 아예 구걸사정을 하더라는.


음 교양이라고 하다가 생각나는 게 또 있네. 거 왜 우리가 식당에서 화장실 찾을 때 일하는 아저씨 잡고 변소 어딨어요? 이러지 않잖아? 영어회화 기본서 어디에나 있는 Where can I wash my hands? 이런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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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서 한인타운에 있는 Pizza 가게를 가서 주문하다 보니까 화장실이 급한 거야 교양 있게 물어봤지. 위에 적힌 대로 피자 만들랴 손님 받으랴 무지 바쁜 스패니쉬가 바로 하는 말



“What? What did you say?”


 

이넘이 영어를 모르나? 생각하면서 다시 천천히 또박또박 말을 했지. 다시 걔가 영어로 하는 말. ‘야, 여기 일하는 우리만 손을 씻는 거야 넌 어떻게 여기서 손 씻을 생각을 다 하냐. 이 안에는 손님 못 들어오거든.’ 완전 희한한 놈 취급을 하는데 나 또한 급당황. 이건 미국서 안 쓰는 영어표현인 거야? 뭐야?


두 달인가 있다가 맨하탄 고급 미국 식당을 갔어. 거기서 갑자기 '손 씻는 데가 어디냐' 이게 생각이 나 웨이터 아저씨한테 물어보는데 Where can 까지 하니까 웃으면서 안내를 해 주더라 그니까 같은 표현도 때와 장소, 그리고 수준에 맞춰서 말을 해야 소통이 된다 야그야.


오늘 끝으로 한 가지만 더. Can you speak English? 요거 남들 못하는 거 할 수 있는 걸물을 때 can을 쓰니까, 문법책에도 '능력'을 묻는 거라고 하니까 그냥 막 써. 그니까 이를테면 Can you play the piano? Can you swim? Can you figure it out?


아마 한국서 한국인에게 영어(씩이나) 할 줄 아세요? 라고 묻는다면 Can you speak English? 는 말이 될 걸로 보여 근데 미국서 어떤 넘이 이렇게 물어오면 기분이 나빠야 돼. 왜냐? 담말들과 비슷한 질문들이니까 Can you walk? 너 걸을 수 있니? Can you speak? 말은 할 수 있어? 벙어리야? Can you breath? 숨은 쉬어져?


그니까 I can speak English 하고(난 영어씩이나 말할 수 있다!) I speak English(나 영어 하는데)는 다른 말이란 얘기야. I don't speak English(나 영어 안 해), I speak Korean(난 한국어를 하걸랑). 미국 애들끼리 이런 말은 해. Can you speak French? 불어를 할 줄 아세요? 가방끈 길고 교양이 팍팍 있을 것 같은 뉘앙스.


미국인들은 외국어를 하는 사람을 지성인으로 쳐. 그니까 지가 못하는 걸 할 줄 아냐고 물어볼 때 Can you 하고 물어보는 거고, 누군가 너한테 미국 현지에서 Can you speak English? 라고 묻는다면 일단은 왕싸가지로 보기 바라. 해석은 너 말은 하니? (벙어리 아냐?) 이 정도로. 젊잖게 묻는 사람들은 그런 거 안 물어봐.


그리고 내가 짧은 영어로 이야기했는데 what? 하는 소리가 돌아오면 대부분 당황하는데 이렇게 생각해봐. 외국인의 불완전한 영어를 잘 이해하는 미국인은 사고력, 상상력 등이 풍부한 사람이야. 학력이 높고 외국인과의 경험이 많거나 이해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아주 잘 알아들어. 반대는? 완전 왕무식이거나 주의력, 사고력 따위 모두 안드로메다로 떠나보낸 불쌍한 인생들이야. 못된 애들은 일부러 모르는 척도 하고. 그니까 못 알아듣는다고 전혀 꿀리지 마. You speak English, I speak Korean 이쟎아. 그리고 어떤 경우든지 이런 애들한테 쥐약은writing, 적는 거야. 셀폰으로 찍든지 손으로 쓰든지 해 버리라구. 입으로는 암만해도 걔네들은 못 알아먹어 쓰는 게 기선제압이야. 특히 잘 쓴 손글씨에 야코들이 죽어 필기체 이쁘게 쓰면 감히 무시를 못하더라들.


어쩌다 보니 횡설수설 많이도 썼네. 끝까지 읽어준 거 고마워, 푸근하고 넉넉한 저녁들 되기 바래~ 쏘로웅~~

 

 

 

 

 

 

  무숙자



편집: 딴지일보 coc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