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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죽지않는돌고래' 님으로부터 메일을 한 통 받았습니다. 

'시간 되시면 놀러와요'

네. 저는 <리버 로드>라는 작은 다양성 영화를 수입 배급하는 배급사 관계자입니다. 그 문구를 읽는 순간,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영화를 알릴 수 있겠다는 기대감, 희망, 희망고문? 걱정, 그래도 혹시나? 욕심 등등. 그때 전 이래저래 심란하던 차였거든요.

영화 개봉이 코 앞인데 개봉관 확보는 지지부진하고, 도움 주신 분들 덕에 어렵게 끌어올린 영화 인지도는 뚝뚝 떨어지는 게 눈에 보였습니다. 유명한 배우도, 감독도 없는 작은 다양성 영화 <리버 로드>를 믿고 도움을 주신 분들께 면목이 없었습니다. 


1. <리버 로드> 배급 스토리

저희 회사는 새내기 다양성 영화 수입배급사입니다. <리버 로드>가 첫 작품이고요. 회사만 영화사업 새내기가 아니라, 일하는 저도 새내기입니다.

저 한테는 없는 게 세 가지 있는데요. 첫 번째는 영화 업무 경험, 두 번째는 영화 인맥, 세 번째는 일 할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면 영화 업무에 대해 완전 초짜인 제가 혼자서 이 영화의 수입배급 업무를 모두 진행하고 있습니다. 영수증 정리와 우편물 발송부터 영화 선정, 수입, 번역, 스크리너 제작, 홍보물 기획, 마케팅, 보도자료 작성, 배급 실무까지 모두 다요. 영화 배급할 때 흔히들 두시는 영화 홍보대행사 조차 없고요. 하나하나 처음부터 배워가며 해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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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없는 걸 들자면 <리버 로드> 마케팅/배급 예산도 있겠네요. 하지만, 그건 회사에 돈이 없어서 라기보다는, 대중성에 한계가 있는 작은 다양성 영화에 많은 예산을 쓰기 어려워서입니다. 경험도, 인맥도 없는 저 혼자서 이 모든 걸 진행하고 있으니, 회사를 위해서라도 리스크를 가능한 줄여야 할 상황이지요(이 모든 악조건에도 저를 믿고 한 번 해보라며 지원해주시는 저희 사장님, 전 사장님과 함께라서 행복해요. 오그라들게 해서 죄송합니다. 으흠).

그렇지만, 가끔은(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제 미숙함이 들통나 민망할 때도 있습니다. 인터넷에 예고편을 처음 올린 날, 예고편을 올리자마자 올라온 댓글 2개는 "예고편 텍스트가 허접한 티가...", "대형 배급사가 아니라 그런가 예고편 퀄러티가... 윈도우 무비메이커로 만든 수준..." 이었습니다.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윈도우 무비메이커로 만든 수준이 아니라 윈도우 무비메이커로 만들었으니까요(그렇습니다, 사실이었습니다). 다행히 그런 댓글은 더 이상 올라오지 않았습니다만, 예산 아낀다고 모든 걸 혼자서 다 하려고 해서는 안되겠구나 싶었던 순간이었습니다.

번역과 자막 파일 작업도 제가 했는데요, 수많은 해와 별을 헤며 몇 번을 다시 갈아엎은 작업이었지만, 요즘도 볼 때마다 부족한 부분이 눈에 띄어 아쉽기만 합니다. 이 영화 말고 아직 배급을 풀지 못한 두 번째 수입 영화도 제가 번역했는데, 다음부터는 비용이 들더라도 전문 영화 번역가에게 맡기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족도를 떠나서 혼자서 해야 할 다른 일도 많은데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더라고요. 다만, 번역 작업을 통해서 영화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던 건 참 좋았던 터라, 막상 다음 영화를 만나게 되면 또 어떤 마음일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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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읽으시면 경험도, 인맥도 없으면서 왜 감당하기 힘든 일을 벌여 사서 고생이냐고 혀를 끌끌 차시는 분이 계실 지도 모르겠습니다(아, 이미 그러고 계실지도).

저도 처음부터 다 하려던 건 아니었습니다. 영화 일은 처음이니 첫 작품인 <리버 로드>는 수입만 하고, 배급은 외부에 대행을 의뢰하려고 했습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나름대로 고심한 마케팅 기획까지 해서 배급 대행 제안을 했지만, 다른 배급사 입장에서 <리버 로드>는 배급 대행을 하기에는 흥행 사이즈가 잘 안 나오는 영화였습니다. 여러 배급사 분들이 영화의 작품성을 칭찬해주시고, 영화의 메시지에도 공감해주셨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특히, '환경 영화'라서 관객들이 낯설어할 거라는 우려가 많더군요. 그렇게 14곳의 배급사 문을 두드리다가, 결국은 저희가 직접 배급하기로 결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막상 부딪쳐보니 각오한 것 이상으로 만만치 않은 현실이었습니다. 지금은 제가 연락 드렸던 다른 배급사 분들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습니다. 지금 저한테 누가 <리버 로드> 배급 대행을 의뢰한다면, 선뜻 그러자고 대답 못할 것 같거든요.

한편으론 비록 소박한 배급 규모이지만 생초짜 배급사가 대중성과 거리가 있는 다양성 영화를 가지고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이란 생각도 듭니다. 모두 <리버 로드>의 가치와 의미에 공감하고 도움 주신 분들 덕분입니다. 그만큼, 제가 느끼는 책임감도 크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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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리버 로드>, 그 담담한 듯 애절한 정서의 비밀

이래저래 신입의 영화 배급 스토리가 너무 길었는데요, <리버 로드>라는 영화에 대해 얘기하는 게 예의가 아닐까 합니다.

전 영화를 좋아하고, 막연히 영화 관련 일을 꿈꾸기도 하던 얼치기 시네마 키드이긴 했지만, 영화를 전문적으로 공부한 적은 없습니다. 영화에 대해 수준 높은 분석을 할 깜냥은 못됩니다.

처음에는 '실체론적 세계관의 한계와 관계론에 대한 희망'이란 관점에서 <리버 로드> 리뷰를 딴지일보 독자투고란에 올리려고 했었는데요, 쟁쟁한 글쟁이 분들 틈바구니 속에서 본 기사로 납치당하려면 그 정도 폼 나는 글 쯤은 써줘야 되지 않을까 싶어서였죠. 하지만, 낑낑대며 쓰고 또 쓰다가 깨달았습니다. 아, 이러다 내 가랑이가 찢어지겠구나.

그래서, 여기에선 욕심내지 않고 영화에 대해 딱 한 가지만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리버 로드>가 자아내는 담담한 듯 애절한 정서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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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 로드>는 3월 30일 개봉에 앞서 '한국 환경교사 모임' 교사들이 지도하는 청소년들이, 주관하는 '청소년/시민 초청 시사회' 캠페인을 진행 중입니다. 시사회 관객들의 반응 중에는 '담담한 듯 애절한 정서'를 영화의 가장 좋았던 점으로 꼽는 관객이 많았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고요.

<리버 로드>는 '담백한 맛'의 영화입니다. 느리고 깊은 호흡으로 가만히 지켜보듯 흘러가는 장면, 장면들은 블록 버스터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다소 낯설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그 담담한 시선을 무심히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은은하면서도 깊은, 마치 마음 깊숙한 곳을 바늘로 찔린 느낌'(신*성/시사회 관객)을 받게 되는 대담한 스타일의 영화입니다.

낙타 2마리와 함께 물길 따라 푸른 초원 위, 집으로 돌아가는 6박 7일, 500km에 달하는 실크로드 사막 여정을 떠난 어린 형제는 길 위에서 마주치는 것들을 무심한 듯 담담하게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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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같은 초원은 황폐해지고, 어머니와 같은 강물은 메말라 버렸습니다. 유구한 유목 문화를 이어오던 유목민들은 농사를 짓거나, 도시로 일을 찾아 떠나버렸지요. 푸른 초원 위 삶의 터전이었던 마을은 폐허가 되었고, 오랜 세월 사람들에게 마음의 안식을 주던 동굴 사원도 이제는 찾는 이가 없습니다. 찬란했던 실크로드 유적들마저 무기력하게 허물어져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족 간의 유대감마저도요.

우리 곁에서 사라져 가는 것들, 영화 속에서 그 표면적인 이유는 푸른 초원에 찾아온 사막화라는 거대한 환경 변화의 현실입니다. 하지만, 그처럼 우리 곁에서 사라져 가는 것들이 결국은 우리에게, 그리고 누군가에게 특별했던 '관계의 상실'이란 점에서, 이 영화는 우리에게 단순한 환경 메시지 그 이상을 곱씹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영화를 보다 보면 어느 순간 담담함이 애절함으로 바뀌는 신비로운 경험을 하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일 겁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관계의 상실에 대한 아픔.

팟캐스트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의 패널 김도인 님이 <리버 로드>를 인생에 대한 깨달음, 신비, 역사, 환경을 아우르고 있는 단순한 환경 영화 그 이상의 영화라며, 영화의 경이로움과 신비로움에 압도당하였다고 칭찬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 같습니다.


과연, 이 아이들은?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또,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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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 로드>는 어린 형제의 담담한 시선을 통해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구도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을 떠나게 될 아이들의 마지막 뒷모습은 보는 이의 애절함을 자아냅니다. 가슴을 콕 찌르듯, 혹은 머리를 띵하고 울리듯. 이것이 제가 여러분께 소개하고 싶은 <리버 로드>가 자아내는 '담담한 듯 애절한 정서'의 비밀입니다.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그 담백한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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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밑천은 여기까지입니다. 욕심 같아서는 저보다 뛰어난 영화 고수 분들이 <리버 로드>를 보시고 더 많은 영화 이야기를 풀어내주시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이처럼 단순한 환경 영화 그 이상, 삶의 가치에 관한 영화 <리버 로드>는 3월 30일 개봉 예정입니다. 광활하고 기묘한 사막/협곡 풍경, 때묻지 않은 어린 소년들의 연기, 뜻밖의 신 스틸러 낙타 2마리, 영화 속의 실크로드 인문학 코드 등도 또 다른 볼거리입니다.

아마도 주변에서 개봉관을 찾기가 매우 어려우시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부족하여 불편함을 끼쳐드리게 되었음에도, 염치 불구하고 이 말은 하고 싶습니다. 혹시라도 가실 만한 개봉관을 발견하신다면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 드린다고. 이 영화의 가치를 믿고 도움 주신 분들께 큰 힘이 될 겁니다. 그리고, 여러분께서도 무엇을 상상하시든, 그 이상의 담백한 맛을 음미할 수 있는 색다른 경험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얼치기 시네마 키드 배급사 관계자가 대놓고 하는 영화 홍보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주신 딴지일보 독자 여러분께 머리 숙여 감사 드립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저에게 선뜻 기회를 마련해주신 '죽지않는돌고래' 님께도요. 여러분 모두에게 건강과 행운이 늘 함께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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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사자

편집 :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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