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05. 30. 금요일
리버럴
이번 지방선거에 딴지스가 출마했다. 녹색당 경기도 비례의원 이동현 후보.
아마 오래된 딴지스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이름이다. 그녀의 글을 읽어보지 않은 딴지스는 드물 것이다. 여기 딴지 블로그 ‘300’에도 이름이 걸쳐 있다. 연애불패의 방장이기도 하다.
약자에 대한 연민, 소수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 인간 내면의 풍경 등을 깔끔한 문체와 감각적 필치로써, 많은 글을 딴지에 남겼다. 알 만한 사람은 알겠지만, 오래전 남로당의 직원이자 필진으로서 ‘삼천포 미술관’, ‘SM 예술싸롱’ 등 주옥 같은 글을 연재하기도 했다.
이런 그녀가 선거에 출마한 것이다. 이너뷰 안 할 수 없다. 여의도 모처에서 심야에 만났다.
리버럴(이하 리): 이 후보를 제가 안지는 벌써 한 십 년이 넘었네. 그렇죠?
이동현(이하 이): 아득하네요.
리: 지금도 뭐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그때는 우윳빛 피부를 가진 앳된 처녀였었는데...
이: 20대 초반이었으니까요.(웃음)
리: 일단 20대 초반부터 인터넷이나 여러 매체에 글쓰기 활동을 많이 하셨죠?
이: 네. 딴지에서도.
리: 그때 딴지일보 필진으로서 젊다면 젊고 어리다면 어린 그런 나이였는데, 그때 관심은 뭐였어요?
이: 남자와 연애요.(웃음)
리: 정당 활동은 여기 녹색당이 처음인가요?
이: 네. 처음이죠.
리: 아닐 텐데... 벌써부터 거짓말을?
이: 네? 무슨...?
리: 남로당 멤버였잖아요!
이: 아, 맞다. 남로당!(웃음)
* 남로당은 ‘남녀불꽃노동당’의 줄임말로 딴지일보 너부리 사무총장이 창당한 호색정당이다.
리: 그때 이동현씨가 썼던 칼럼이 아주 인상적이었는데요. 서구의 미술사, 미술작품에서 드러난 여러 가지 성적 코드를 뽑아내고 그 의미를 독특하게 설명했던 삼천포 미술관이라든가, SM 예술싸롱 같은 거요.
이: 네, 전공이 예술학이었으니까...
리: 그래도 학부 전공의 내공으로만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수준이 높았죠. 그 칼럼 덕분에 호색정당 당원들의 품격이 절로 높아진 거 같았습니다. 하하.
이: 과찬이세요.(웃음)
리: 사실 나중에 그 칼럼을 쓴 사람이 20대 중반의 처녀인 것을 알고 깜짝 놀랐어요. 수준도 수준이려니와, 거기서 다룬 주제가 새디즘과 페티시, 애분증, 근친 문제 등등 상당히 쎘거든요. 보통 여자들이 생각만으로도 불쾌할 수 있는 그렇게 ‘센’ 주제를 머리 속에 담지 않잖아요.
이: 네. 센 주제였죠. 센 주제니까, 극단적인 사례를 통해서 성적인 욕망을 들여다보고 싶었어요. 다양한 사랑의 방법을 알게 되면 내 연애 문제도 좀 해결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하지만 애분증에 대해서 알게 된다고 해서 침대에서 똥칠하고 놀진 않습니다. 아직은요. (웃음)
리: 그렇군요. 또 이후에 ‘신들의 사랑법’이라는 제목의 책도 발간하셨죠. 그것도 남로당에서 잠시 연재되던 칼럼이기는 했는데, 내용이 그리스 신화나 성서 주인공들 사이의 성적 탐방기였어요. 그 책을 읽고서 ‘이거 뭐 인류의 고전이라는 그리스신화나 성경이 애들에게 읽혀서는 안 될 19금 책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 가끔 제가 쓴 책을 읽었다는 사람들을 만나면 저도 좀 경계해요. 재미있게 읽었다는 정도 의례적인 반응이면 모르겠는데, 가끔 진지하게 읽고 격하게 공감하신다는 분 만나면 무섭죠. 제가 어느 행복한 커플을 쪼개놓은 건가 싶고. 그런데 얘기해 보면 남 보기에 부러울 것 없이 결혼생활 하는 사람들이 보통 이런 반응을 보이더라고요. 그런 반응을 보면, 어쩌면 잘 드러나지 않고 있는 어떤 부분을 건드린 건가 싶기도 해요.
리: 책에서 본인을 소개하길, 그 시절 잠시 남로당 직원으로 재직하면서, 남녀 간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을 상상했다고 하기도 하던데, 물론 대부분의 사람이 성적인 것에 대한 관심이 크긴 하지만, 에로티시즘에 대한 관심이 다소 각별한 것 같은데 어떤 계기라도 있나요?
이: 다른 사람에 대해서, 다른 사람의 욕망에 가장 진지하게 고민하는 경험이니까요. 다양한 연애의 형태를 상상하고 자료를 찾아보고 그런 경험을 했던 사람들을 만나보는 과정도 재미있었어요. 연애경험이 많고 적고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원나잇스탠드를 백 번 해 본 뒤에 알 수 있는 건 백 개의 잦이에 대한 의미 없는 통계뿐이잖아요. 남성이나 남성성에 대한 어떤 특질을 이해하는 데는 한 남자와 백 번 자 보는 편이 나아요. 양적연구보단 질적연구라고나 할까.(웃음) 리버럴 님이 저를 처음 봤을 때가 양적연구의 시기였고요, 지금은 질적연구로 돌아섰죠. 어쨌든 여전히 남자는 흥미로워요. 내가 공부 머리가 있었으면 남성학을 연구했을 텐데. 권력욕과 생식욕을 중심으로.
리: 양적 연구 기간에 제가 연구대상이 되지 못했다니!(웃음) 어쨌거나, 예술과 연애에 관심으로 꽉찬 한 시절을 보낸 셈인데, 언젠가부터 사회적 현안에 대한 적극적인 발언이 잦아졌어요. 물론 기본적인 스탠스는 진보 쪽이었겠지만,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이: 예술도 연애도 정치와 강력하게 연관되어 있으니까, 정치를 떠난 삶은 없잖아요. 남자에 대해서, 아까 잠깐 얘기했는데요. 권력욕과 생식욕, 그러니까 권력의 소유와 번식에 관한 안전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노력으로 사회가 형성된 것이고, 그 과정이 정치라고 생각해요. 딱히 어떤 계기가 있었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관심이 넘어갔어요. 한 사람에 대한 관심에서 사람의 무리에 대한 관심으로, 개인의 관계설정에서 집단과 집단의 투쟁 또는 합의 문제로.
리: 녹색당이 언제 만들어졌죠?
이: 2011년이죠.
리: 당에 가입한 건 언제?
이: 창당과 비슷한 시기예요.
리: 그럼 창당멤버인 셈인데, 녹색당을 만들던 분들과 원래 알던 사이였나요?
이: 아뇨. 전혀. 아는 사람 없었어요. 제가 녹색당에 들어간 계기가 좀 황당해요. ‘나는 평화를 사랑한다’라는 책이 있어요. 인터넷 서점에서 반전에 관한 책을 이것저것 주문하다가 제목만 보고 별 생각 없이 끼워 넣었어요. 나중에 책이 왔는데 ‘어 반전에 대한 책이 아니잖아’ 하면서 밀쳐놨죠. 그러다 우연히 그 해 겨울에 그냥 책을 집어 들었어요. 책 내용은 평화주의자인 한 여성의 일대기인데, 독일 녹색당을 만든 사람이에요. 책을 보고나서 독일녹색당이 궁금해서 검색을 해봤죠. 검색을 하다 보니 그 때가 마침 우리나라에 녹색당 창준위가 생겼을 때라 기사검색이 되더라구요. 궁금해서 가봤어요.
리: 당에 그냥 무조건 찾아갔군요.
이: 네. 그냥 찾아갔는데, 그 날 녹색당에서 탈원전 시위를 했어요. 탈원전, 탈핵, 탈토건 시위이라고 해서 탈을 뒤집어쓰고 했어요. 종이쇼핑백에 얼굴 그려서 만든 탈.
리: 아, 약간 좀 말장난, 언어유희적인 제스처였군요.
이: 탈핵, 탈토건, 이런 식으로 캐릭터를 만들고 탈을 뒤집어쓰고 홍대 앞에서 시위를 하는데, 함께 가서 한 바퀴 둘러보고 되게 재밌는 거예요.
리: 퍼포먼스를 같이 하면서 흥미를 느꼈군요.
이: 네. 그때 갈 때까지만 해도 제가 딴지 필진이었잖아요. 뭐... 물론 지금도 필진이긴 하죠. 그냥 글을 안 쓸 뿐.(웃음)
리: 해병대죠. 한번 필진은 영원한 필진.(웃음)
이: 그 때 저는 딴지 필진으로서 취재하러 갔던 건데, 녹색당 사람들이 대화하는 방식이 맘에 들었어요. 이를테면 위계 없고, 어 정말 개념 없이 위계가 없구나 싶은 거 있잖아요. 공동위원장인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반말하고, 무슨 직함을 가졌든 평당원이든 대등하게 토론하는 분위기.
리: 절대 권위적이지 않은 리버럴한 분위기.
이: 네. 그런 의사소통이 굉장히 흥미롭기도 하고, 호감이 갔어요. 조직이 구성되는 형태도 기존 정당과 달라요. 일단 녹색당에는 당대표가 없어요. 운영위원장이 있는데 여성 한 명 남성 한 명 공동으로 맡도록 규정되어 있고요. 그리고 중앙당도 없어요. 정당법 상 등록을 해야 하니까 외부에선 중앙당이라고 하지만 내부에서는 전국당이라고 불러요. 지역당의 연합인 셈이죠. 의사결정의 중심이 역설적이지만 지역에 있거든요.
다시 생각해보면 중앙당이라는 표현도 웃기지 않아요? 그리고 중앙당이 꼭 서울에 있어야만 한다는 정당법도 이상하죠. 이런 식의 문제제기, 대안을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이 참 좋았어요. 그런데 저는 취재하러 간 거니까 그 속에, 안에 들어가서 말을 섞을 수가 없잖아요. 이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그러니까 당원 가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녹색당원이 됐어요.
리: 처음에는 반은 호기심으로 들어갔고 그러다 보니 호기심이 생겨서 기사를 구성했는데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서 당원가입을 하셨군요.
이: 네. 녹색당에 관한 기사도, 허접하지만 그때 썼죠.
리: 봤어요.
이: 저는 특별히 환경문제에 관심이 있지는 않았거든요. 역으로 녹색당 안에서의 의사결정과정이 굉장히 흥미로워서 그 안에 참여해 보려고 들어갔다가 환경문제에 관심이 생겼어요.
리: 들어가서 의식화가 된 경우군요.
이: 그렇죠.
리: 저기 여담인데, [쾌락의 권리]라는 책이 있어요.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스와핑을 하는 부부들을 취재하는 그런 르뽀죠.
이: 우리나라 번역된 거예요?
리: 그러니까 내가 읽었지.
이: 아, 하하하.
리: 그래서 기자가 도대체 어떤 인간들 떼거리로 섹스를 하고 마누라를 나눌 수 있나? 그런 호기심이 생겨서 갔다가, 그 사람들 생각과 철학에 동조되고, 그래서 자기도 와이프와 함께 스윙어로 참여도 하게 되었다는 얘기죠. 그와 경로는 유사하네요.
이: 그렇네요. 그만큼 섹시하진 않지만.
리: 어쨌든 입당 경위가 마치 나비효과를 연상케 하네요. 지구반대편 독일의 어떤 인물이 쓴 책, 그것도 반전(反戰)에 대한 내용으로 오해를 해서 산 책을 읽고 페트라 켈리를 검색하다가 녹색당에 가입하게 된 셈이군요.
이: 네.
리: 그럼 녹색당에서 주장하는 모든 내용에 대해 다 동의하는 건가요?
이: 전반적으로, 하지만 녹색당 안에도 아주 다앙햔 주장들이 있으니까요. 그런 분들도 있어요, 오리지널 생태주의자들... 굉장히 보수적인 분들.
리: 보수적인 생태주의자들?
이: 부르는 말이 뭔가 있을 것 같은데 정확히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어요. 어떤 분들이냐면, 전통적인 가치와 복고주의에 대해서 강한 확신을 가지고, 반문명적인 태도를 갖고요. 거의 원시시대로 돌아가자는 느낌이죠.
리: 저도 얼추 이런 분들의 의견을 오래전에 본 적은 있는데, 녹색평론에 어떤 글을 읽게 되면 뭔가 생태근본주의라는 느낌도 드는데...
이: 맞다. 생태근본주의.
리: 그러니까, 그런 근본주의적 입장에는 동의하지는 않는다는 건가요?
이: 네. 실제로 전기도 없이 살아가고 한옥에 나무 때고 조선시대 스타일로 살아가는 분들이 있죠. 그런 라이프스타일을 존중하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공감하기는 힘들어요.
리: 환경주의자들이라고 하면, 뭐랄까 수 년 전에 도롱뇽을 이유로, 천성산 터널 공사 반대를 했던 이상주의자들의 모습이 연상되기도 해요. 뭐, 그 터널을 반대했던 이유가 반드시 도롱뇽 때문만은 아니었겠지만...
이: 도롱뇽은 생태계의 중요한 축을 상징하는 생물이니까요. 그런데 저는 정말로 생태주의자는 아닌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밀양 송전탑 문제에서 제일 울컥 했던 부분은 거기 사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지, 생태주의의 관점에서 송전선로 문제 때문은 아니었거든요.
리: 거기 사는 분들의 입장에서 지지한 운동이었다?
이: 예. 그 과정에서 얼마나 부당한 국가의 탄압이 있었는지, 한전의 비인간적인 공사강행, 거기에 더 울컥했죠. 사실 녹색당 당원 중에 저만큼 환경문제에 관심 없는 당원도 드물 거예요.(웃음)
리: 당원들의 대표로 출마하신 분인데 아주 솔직하게 얘기하시네요.
이: 너무 솔직한가? 저는 녹색당의 의제 중에 제일 관심 있는 부분이 풀뿌리 민주주의와 지역분권, 그리고 생명권에 대한 주장이에요. 민주주의 시스템 자체가 다양성을 전제로 해야 하잖아요. 녹색당 안에서도 제가 공감할 수 없는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당원들이 공존하고 있지만 그게 자연스러운 거죠.
리: 보통 사람들이 환경주의자 통칭해서 녹색주의자 이런 분들에게 뭔가 불편할 것 같다는 느낌이 있어요. 아까 얘기한 생태근본주의자를 100으로 보고 우리 같은 환경문제에 전혀 신경 안쓰는 사람들을 0으로 놓고 본다면, 현재의 환경 그리고 좀 더 쾌적한 환경 지구를 파괴하지 않는 선, 그러면서 현재의 삶의 질을 유지하는 선을 어느 정도로 봐요?
이: 그건 정말 선택의 문제라고 봐요. 저는 녹색당 당원이 되기 전에도 종이컵이 싫어서 텀블러를 들고 다녔어요. 딱히 환경을 생각했다기보다, 종이컵이 싫었어요. 저는 그런 취향의 문제에서 접근하는 편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했어요. 일회용 생리대 안 쓰고 면생리대 쓰는 것도 그렇고.
리: 보통 여자들이 일회용 생리대를 쓰는데 면생리대를 쓰면 귀찮잖아요. 윤리적으로 좋다고 몸에도 좋고 그렇다 해도요.
이: 그런 불편함에 대해서는 전제 조건이 자발성이라고 봐요. 불편해도 좋으니 난 이걸 쓰겠다는 자발성이 없으면 안 되죠. 지금 마트나 슈퍼에서 비닐봉투를 공짜로 안 주잖아요. 50원 정도 더 내야 하고요. 아주 적은 돈으로 자발성을 유도한 거죠. 그리 큰 금액이 아닌데 장바구니를 들고 시장에 가는 사람들이 많아졌죠.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쓰는 소소한 물건들의 소비를 줄이는 것은 의미 있는 행동이라 생각하거든요.
정책을 펼치는 범주는 있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개인에 대해서 너희들이 불편해져라 할 수 있는 정도는 100기준으로 봤을 때, 10정도로 봐요. 100원만 더 내면 넌 비닐봉지와 종이컵을 쓸 수 있어, 하지만 한번 더 생각하게 만드는 정책정도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개인에 대해서는 그렇고 기업에 대해서는 환경에 대해서는 더 많은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의 이윤추구 논리 앞에서 자발성을 요구할 수는 없으니까요.
리: 보통 환경, 녹색, 그러면 먹고 살 만한 사람이나 유기농이나 그런 거 생각하지 않나요. 막상 배고프면 당장 농약을 쳤다고 해도 한 푼이라도 싼 거 먹게 되잖아요? 보통 대규모로 생산되는 메이드 인 차이나 이런 것보다 서너 배 이상 비싼 상품 아닌가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 같은 루저들은 이런 운동을 냉소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녹색당 활동을 하면서 그런 생각들이 있습니까?
이: 그런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화장품 이야기를 예로 들면요. 시판되는 대기업 제품 쓰다가, 그 중에 천연원료를 쓴다고 홍보하는 브랜드 쪽으로 넘어 갔다가, 생협에서 파는 유통기간 엄청 짧은 제품을 쓰다가, 그 다음에는 아예 바르지 않는 그런 단계를 거쳤거든요. 그렇게 이런저런 화장품을 써 보는 과정에서 선택지는 중산층이 아니면 누릴 수가 없는 거죠. 그렇네요. 저 개인의 차원에서는 중산계층에 속하고 그래서 먼저 녹색당을 선택할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 들어요.
리: 그러니까 녹색당은 중산층 정당이다?
이: 구성원을 보면 꼭 그렇진 않아요. 유기농으로 농사짓는 농부나 시민단체 활동가 같은 사람을 소득액을 놓고 보면 중산층이라고 볼 수는 없잖아요? (웃음) 하지만 녹색당을 지지하는 사람 중에는 중산층이 많다고 봐요. 실제로 유기농업으로 재배한 농산물은 관행농에 비해서 값이 비싸고, 유기농산물은 중산층이 안전하고 비싼 식품을 선택하는 다소 사치스러운 소비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죠.
그런데 역으로 소비자 입장에서가 아니라 생산자 입장에서 보면 완전히 다른 문제예요. 유기농업으로 전환하는 일은 농민의 건강권과 생존권을 위해서 필요한 일이거든요. 그런 사례 꽤 많이 들어보셨을 텐데, 농약 치다가 갑자기 역풍불어서 중독되고 쓰러지고. 귀농한 뒤에 체내 중금속 지수가 올라가고 건강이 악화되고 하는 경우요. 농부들의 건강할 권리와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은 더 많은 생산량을 요구하는 소비자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이제는 생산량 확대가 목표인 관행농업을 줄여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리: 그러면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을 하게 되면 소출량이 줄어들지 않을까요? 우리 경지면적은 제한적인데 소출량은 줄어든다면, 수입량은 늘어나고, 그러면 녹색당이 주장하는 식량 자급 정책과 모순되지 않을까요?
이: 왜요? 간단한 방법이 있잖아요. 농토를 늘리면 되잖아요.
리: 농토를? 지금 우리나라, 도시 아스팔트를 뽀개서?
이: 그럼 좋은데(웃음) 도시생활을 포기하기 전에는 어려운 얘기고요.
리: 그럼 산을 개간하거나 놀고 있는 땅을 농지로 만들자는 얘기인가요?
이: 산을 함부로 개간하면 안 되죠. 유휴지를 농토로 활용하는 거예요. 관행농으로 기계로 농사를 지으면 농기계가 들어갈 수 없는 땅은 농사를 짓지 않게 되잖아요. 그런 땅은 유기농으로 전환하면 살릴 수 있는 땅들이거든요. 그리고 유기농으로 전환을 했을 때, 당장 관행농에 비해 소출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인데 유기농을 이십 년 삼십 년 이상 하신 분들 이야기를 들어 보면 땅이 살아나서 힘이 생기고 나면 소출량에 큰 차이는 없다고 하시더군요. 그동안 꾸준히 관리를 해줘야 하지만.
리: 그럼 당장 유기농이든 자연재배를 하려면 소출에는 시간이 몇 년이고 걸릴 텐데, 그 동안의 소득은 어떻게 됩니까?
이: 우리가 어느날 한 날 한 시 농정 전체를 다 유기농이나, 자연재배로 바꾸자고 할 수는 없어요. 지금의 농업인구로는 유기농업으로 전체 인구를 부양할 수 없죠.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농사를 지으러 농촌으로 가야하고요. 저도 장기계획에 있어요. 그렇게 더 많은 농가들이 관행농에서 유기농으로 전환을 하는 방향이 바람직하죠.
점진적으로 바꿔나가야 하는데, 녹색당 정책이 농가 기본소득제가 들어있거든요. 예전에 물뚝님이 기본소득제를 설명한 기사를 써주시기도 했는데요. 세부담 문제 때문에 당장 전국민적을 대상으로는 힘들텐데, 우선 순위를 농가부터 시작하자는 거예요. 요즘 도시의 치열한 경쟁, 아이들 교육 문제 때문에 귀농하고자 하는 젊은 분들, 딴지의 젊은농부 님도 그렇고요.
그렇게 용기를 내는 분들도 계시지만 많은 분들이 망설이는 건, 농촌 일이 힘든 것보다는 우선 소득 불안정 문제가 제일 크거든요. 그래서 농가부터 기본소득제를 실시하면, 우선 초고령화되는 농촌에 활력이 생기죠. 또 농부에게도 소비자에게도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하는 경제적 여건을 마련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리: 얘기 듣고 보면 좋을 것도 같은데 기업농 대신 소농 중심의 농촌이라든가, 유기농이나 자연재배 등의 정책을 보면, 아무래도 지금보다 생산비가 훨씬 많이 들 것 같은데, 그러면 국민들 식생활비 상승 압박으로 국민부담이 늘어나지 않을까요?
이: 예전에 딴지에서 한미 FTA와 관련한 정태인 이너뷰 기사를 본 적 있어요. 거기서 정태인 선생님이 우리 소득에서 먹는 거에 쓰는 돈이 굉장히 적다고, 식비로 들어가는 게 굉장히 적다고 했거든요. 외식비를 제외하면. 두 배를 지불한다고 해도 안전하다는 것만 믿을 수 있다면 충분히 지불할 수 있어요. ‘기적의 사과’라는 책을 쓴 일본 농부 기무라 아키노리 같은 경우도 그렇고요.
리: 어떤 분이죠?
이: 일본에서 농약을 안 치는 건 물론이고 유기비료조차도 안 쓰고 100% 자연재배로 사과를 재배하는 분이에요. 그 분이 그런 농법을 결심하게 된 이유가 부인 때문이었대요. 부인이 농약을 한 번 치면 며칠을 앓아누우니까, 안쓰러워서 농약을 안 치고 사과를 재배하자는 결심을 한 거래요. 보세요, 유기농은 사랑입니다.(웃음)
10년 동안 농약 없이 사과를 재배하려고 하다가 정말 엄청난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살하러 산에 올라갔는데, 산에 나무열매를 보다가 토양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결국엔 100% 자연재배로 기른 사과를 수확하는 것에 성공하게 돼요. 10년 만에. 그 과정이 너무 드라마틱해서 다큐멘터리로도 나왔어요. 자연재배로 기른 사과가 당도도 높고 맛도 좋은데, 또 엄청 튼튼해서, 태풍이 몰아쳤을 때 다른 과수원들은 쑥대밭이 되었지만 자연재배로 기른 사과열매는 80% 이상 남아있다고 해요.
아이들 아토피 문제, 안전한 먹거리 문제는 지난번 광우병 촛불시위에서 볼 수 있듯이 전국민이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는 문제예요. 인내심 갖고 깨끗한 먹거리, 자연농법 등을 지원한다면 오히려 이것이 집권 세력이 말하는 이른바 ‘경쟁력’에서도 결코 뒤지지 않을 수도 있다고 봐요.
리: 친환경 급식도 그것의 일환인가요?
이: 그렇죠. 학교나 공공기관의 급식을 통해서 친환경 농산물이 유통될 수 있다면, 자연농법으로 전환하는 농민들이 더 늘어나겠죠. 정책의지만 생기면, 얼마든지 도시민과 농민이 상생하는 모델로 만들 수 있어요. 경기도에서도 2011년에 유기농과 관행농의 장단점에 대한 연구보고서를 만들면서 점진적으로 관행농을 유기농으로 전환하자는 의견을 담았어요. 건강에 대한 도시민의 관심이 늘어나고, 농가소득도 점진적으로 확대되리라고 기대하면서요.
리: 음, 또 녹색당 같은 환경주의자들이 가장 강하게 주장하는 것 중에 대표적인 게 탈원전이죠?
이: 그렇죠. 탈핵.
리: 지금 우리나라 산업구조가 고에너지를 필요로 하는데, 원전을 없애면 산업이 멈추지 않나요?
이: 저희가 옳다는 걸 주장하려고 나온 게 아니라, 옳은 걸 실현하려고 나온 거죠. 당장 모든 원전을 멈추자고 하지는 않아요. 30년 쓰겠다고 지어 놓았는데 37년 째 가동하고 있는 고리원전 1호기 같은 노후원전, 고장이 130번 나서 전력생산을 하다 말다 반복하고 생산성도 떨어지는 핵발전소는 일단 폐쇄해야 합니다. 핵발전소를 서서히 줄여나가고 앞으로 그만 만들자는 겁니다.
우리나라에서 원전이 담당하는 에너지양이 전체의 25%도 안 되거든요. 후쿠시마 참사가 터진 이후로 일본에서는 에너지 생산확대가 아니라 소비를 줄여나가는 방향으로 선회했는데 그것만으로 원전이 제공했던 에너지양을 상쇄하고도 남았잖아요. 우리나라도 에너지 소비를 절약하는 여러 가지 제도만 뒷받침만 하더라도, 원전 몇 기를 더 짓지 않아도 될 정도 아니겠어요?
리: 그렇죠. 특히 우리나라가 에너지 과소비 국가라고 하던데, 전기값이 엄청 싸서.
이: 맞아요. 사실 전기에너지는 투입열량의 60%가 버려지는 고급 에너지예요. 그런데 우리나라 전기요금이 OECD 평균에 비해 싸요. 80% 정도, 유럽과 비교해서는 60% 정도구요.
리: 그럼 전기요금을 올려야 하나요? 지금도 누진제라서 우리가 체감하는 것도 상당한데.
이: 정부에서 전력난 얘기하면 늘 집집마다 콘센트 뽑기 운동을 하자는 둥 설레발을 치는데, 사실 가정용 전기 소비량은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서 굉장히 적어요. 일본이나 유럽에 비하면 절반이고 미국이나 캐나다에 비하면 1/4 수준이고요. 전력난은 일반 시민 탓이 아니라 기업 탓이라는 거죠. 산업용 전기를 가정용의 절반 값으로 공급하는데 이런 산업용 전기 소비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죠. 예를 들어서 제철소같이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는 시설에 대해서 지금보다 훨씬 강도 높은 절감대책이 있어야죠.
리: 산업용 전기요금을 올리면 물가에 반영되지 않을까요? 거기다 원전을 정지시키면 훨씬 더 큰 폭으로 오를 텐데 결국 서민들에게 돌아올 수 있지 않습니까?
이: 독일이 원전을 완전히 폐기하고 있잖아요. 거기서도 원전을 완전히 정지했는데, 실질적으로 전기비용에는 별 변화가 없다고 합니다. 재생에너지를 통한 혁신에 성공한 기업들도 많구요. 각종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니까. 전기요금 상승이 당장 기업에 부담이 되겠지만 그건 기업이 부담해야 할 몫이죠. 신재생에너지로 자체전력을 생산하거나 전기에너지를 효율성 있게 사용하는 방법을 찾아내야죠. 핵발전으로 생산한 전기 펑펑 쓰면서 생산하겠다는 기업에 무슨 경쟁력이 있어요?
리: 그래도 핵에너지는 다른 에너지에 비해 경제성이 높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인데?
이: 당장 생산비를 놓고 보면 화석에너지나 신재생에너지에 비해 값싸게 보이지만, 사고 처리비용이나 핵폐기물 처리 비용을 고려해 보면 결코 경제적이지가 않아요. 그런 숨긴 비용은 미래 세대에게 전가하고 있을 뿐이죠. 카드 돌려막기 하는 거랑 똑같아요. 어른들이 일단 싼 값으로 전기 땡겨 쓸게, 핵폐기물 처리랑 핵발전소 사고 나면 그건 그 때 가서 늬들이 알아서 해, 얼마나 무책임한 짓이에요.
리: 얘기 나누다 보니, 대통령 선거에 나오는 후보에게 정책 질문 던지는 거 같다는 느낌이 드네요.
이: 아, 그러네요.(웃음)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일단 탈핵 에너지전환 경기도 선언을, 지역에서 할 수 있는 것부터요.
리: 경기도 의원으로서 나섰는데, 경기도 공약을 보니까 다른 당과 확연히 차이가 나는 게 하나 있네요. 동물복지.
이: 네. 동물권, 생명권.
리: 복지국가가 화두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만, 동물 복지까지 신경 쓰는 녹색당이 신선하네요.
이: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대단한 공약이라고 볼 수도 없어요. 반려동물 키우는 분들이 엄청 많은데요. 동물에 대한 애정은 결국 인간에 대한 애정의 연장선이라고 봐요. 인간과 가까운 반려동물부터 야생동물이나 축산동물까지요. 인간이 고기를 먹기 위해서 동물을 길들이고 사육해온 역사를 부정하려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공장식 축산 환경을 직접 본다면 아마 생각이 많이 달라질 거예요.
리: 그렇죠. 좀 너무 비좁은 우리...
이: 네. 성장속도 빠르게 하려고 호르몬을 주입하는 것도 문제고, 살을 찌우게 하려고 너무 비좁은 사육 환경에 있는데. 예를 들면 닭들에게 오직 모이만을 쪼게 할 뿐 하루 종일 움직일 수 없게 하다 보니 그 스트레스 때문에 주변 닭들을 막 부리로 쪼잖아요. 그걸 방지하려고 부리를 자르고. 깃털을 부리로 고르는 게 닭의 본능인데 그러지도 못하는 환경...
상상해 보세요. 철장에 갇혀서 평생 빛도 못 보고 살아요. 몸을 뒤척 할 수 있는 공간도 없고 사방에 층층이 다른 인간들이 가득해요. 온몸이 가려워 죽겠는데 몸을 긁으면 고기에 상처가 날 수도 있으니까 태어나자마자 손톱이 뽑혀 나갔어요. 그런데도 사료를 먹고 항생제를 계속 먹으면서 살다가 결국 도축장으로 끌려가요. 지옥이죠.
리: 냉정하게 반문해 보는데, 덕분에 우리가 치느님을 싼 값에 영접하잖아요?
이: 치느님을 그렇게 자주 영접할 필요는 없잖아요?(웃음) 지금 우리나라 육류 소비량이 서구에 비해서는 적은 편이라고 하지만, 성인병과 각종질병 증가량을 보면 고기를 덜 먹고 사는 편이 낫죠.
리: 모두가 그렇게 키우는데, 나만 좋은 환경에서 사육할 수도 없지 않습니까?
이: 그런 끔찍한 공장식 사육 환경에 문제의식을 갖는 축산업자 분들도 계십니다. 그래서 훨씬 좋은 환경에서 사육해요. 동물복지 농장에서는 닭을 평지에서 살게 해주고 부리를 훼손하거나 하지 않아요. 조명을 인위적으로 조절하지도 않고 항생제나 호르몬제 투약도 하지 않죠. 면역력이 높아져서 전염병 같은 게 돌지 않으니까 가능하죠.
리: 생산비 증가 때문에 유지가 될까요?
이: 가격차이가 두 배 이상 날 정도는 아니에요. 달걀은 일반 무항생제 달걀에 비하면 30% 정도고 육류도 그 정도 차이에요. 소비자가격 기준으로 그 정도 차이지만 생산비를 계산해 보면 공장식으로 기르는 편이 이윤이 크겠죠. 그렇지만 그런 지옥 같은 환경을 실제로 본다면, 그 정도 비용 상승은 많은 분들이 기꺼이 감수할 수 있을 거라고 봐요.
리: 그렇군요. 도의원 후보라는 컨셉으로 이너뷰를 하게 되니까, 저도 모르게 딱딱한 정책이나 강령 중심으로 얘기를 하게 되는데, 뭐 그런 얘기 하려면 한도 끝도 없으니까 그 얘기는 이만 하고요.
이: 저 밑천 다 드러났어요. 녹색당 홈페이지에서 더 찾아봐 주세요.(웃음)
* 녹색당 홈페이지 http://kgreens.org
리: 녹색당 당원 중에 시의원이나 기초의원이나 이런 분이 있습니까?
이: 네. 현재 과천 시의원 서형원 의원과 구미시 김수민 의원, 두 명의 시의원이 있죠. 그분들이 이번에도 출마했어요. 구미 김수민 시의원은 야권 대표후보로 재출마하고, 서형원 의원이 과천시장 후보로 나섰고요.
리: 그 사람들은 비례가 아니라 지역구로 출마하신 거고요?
이: 네. 전국에서 지역구 후보 11명이 출마했고, 광역비례 12명이 출마했습니다.
리: 예전에 환경운동연합 리즈 시절(전성기)에는 그냥 무소속으로 나와도 이십 몇 개를 그냥 차지했잖아요?
이: 네. 수도권에서 강했죠.
리: 그 분들 지금 녹색당 안 하고 뭐 하십니까?
이: 녹색당으로 들어오신 분들도 계시고 지역에서 계속 활동하는 분들도 계시죠. 말씀하신 대로 지금은 환경운동연합 자체가 리즈 시절만큼은 아니고요.
리: 그 사람들은 정당활동 자체에 별 관심이 없는 건가요?
이: 아니오. 정당에 정책제안 계속 하죠. 환경운동연합이나 녹색연합 같은 환경단체가 다 모여서 초록연대를 발족했고, 환경을 위한 공약을 실천하는 후보들을 지지하겠다는 성명과 기자회견을 발표하고 이런 작업은 있었죠. 얼마 전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환경운동연합 출신 녹색당 후보도 있어요. 과천의 서형원 시장후보 같은 경우도 환경운동연합에서 정책실장 맡았던 분이고요. 그리고 의왕에서 시의원 출마한 안명균 후보는 경기환경연합 사무국장으로 활동했던 분이고요.
리: 그러니까 환경운동연합과 녹색당은 우호적인 관계네요. 라이벌이 아니라.
이: 그렇죠. 방사능안전급식 같은 경우도 같이 일을 추진하고 있으니까요.
* 5월 13일 초록연대 발족 및 생명 안전 정책 협약식 http://kgreens.org/92932
리: 다시 신상 얘기로 좀 돌아가 볼게요. 창당 즈음에 입당했다고 해도, 환경운동가로서나 혹은 어떤 단체에서나 활동을 해본 적이 있었나요?
이: 활동가라기보다는 노동자로서 단체에서 일했던 적은 있어요. 유니세프에서 일했는데 NGO이긴 하지만 거기에서는 활동가라는 표현 자체를 안 쓰거든요. 사무직 직원이라는 느낌. 그전에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참여연대 자원활동 잠시 했던 정도고요.
리: 환경운동 단체에서는?
이: 성남환경운동연합에서 집행위원으로 적을 두고 참여하고 있지만 특별히 깊숙하게 활동했다고 하기는 어렵고요. 환경운동의 역사를 보면 저는 그냥 이력이 없죠.
리: 그런데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 비례후보로, 보니까 경선도 아니고 단독으로 입후보했던데?
이: 단독후보에 무려 96%의 찬성으로...(웃음)
리: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 후보로 추대됐습니까?
이: 제가 평범한 사람이라서 그랬던 건가... 정치적 야망 같은 거 없었는데.
리: 그런데?
이: 나름 정당 활동을 열심히 하긴 했어요. 더 열심히 하시는 분들 많이 계시지만, 저 나름대로는 열심히.
리: 내부 사정을 잘 모르지만 본인이 얘기하기 좀 민망한 내용인가요?
이: 그런 건 아니고요. 녹색당 당원 중에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어요. 시민사회 단체에서 활동하다가 창당할 때부터 적극적으로 함께하신 분들도 있고, 저 같이 평범하게 살다가 녹색당의 이념이나 의사결정체계나 구조나 어떤... 분위기가 좋아서 합류한 사람도 있고요. 그리고 이런 정당이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지지하고 일종의 후원단체로 생각하는 분도 있어요. 다양한 입장이 있고 얼마나 적극적으로 활동하는지는 상황에 따라서 차이가 있죠. 사실, 경기녹색당에서 광역비례후보를 내자고 결의를 하고 1차로 비례후보 입후보 공고를 냈는데 아무도 입후보하지 않았어요.
리: 아아 (웃음)
이: 네. 그래서 2차 공고를 내고 나서 운영위원들이나 사무처 활동가들이 고민을 많이 하고 있었죠. 그때 제가 잠시 전업작가 생활을 접어두고 경기녹색당 사무처에서 반상근으로 일을 돕고 있었어요. 그런데 비례후보 1번은 어느 정당이나 여자여야 하잖아요. 우리는 1번만 생각하고 있었고 2명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못했고요.
리: 그러면 당직자가 몇 명이에요?
이: 경기녹색당에 지금 세 명이에요.
리: 그럼 셋 중에 남자는?
이: 셋 다 여자예요.
리: 셋 다 여성, 세 명 여성 중에서 왜 하필이면?
이: 다른 분이 한 분 더 추천되셨는데, 그분은 사무처장님이라 역할을 보면 실무를 놓고 후보로 출마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죠.
리: 인물을 기준으로 한 겁니까?
이: (웃음) 아... 우리 사무처장님 굉장히 미인이세요.
리: 그래요? 인물을 놓고 비교해 보면?
이: 처장님이 훨씬 예쁘죠.(웃음) 정말요. 진짜 미인이세요.
갑자기 본 이너뷰이 녹색당에, 더 정확하게 녹색당 경기도당에 급 호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리: 이후보가 셋 중에서 제일 젊죠?
이: 네.
리: 그러니까 미래를 위한 투자네요?
이: (웃음)아하하. 그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리: 아, 그래서 선출되었다?
이: 제가 겁을 많이 먹었어요. 별로, 저는 환경주의자가 아니에요. 그닥 생태주의자가 아니고요. 희귀종 새 이름 몇 개 아는 것도 없고요. 멸종위기 두꺼비를 봐도 몰라요. 사실 두꺼비는 좀 싫고요.(웃음) 그렇습니다. 녹색가치를 실천하고 사는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부족하다고 느끼는데, 이 안에서 어떤 대표적인 역할을 맡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어요. 그 상황에서 처음 공고 냈을 때, 처음 출마하겠냐는 권유가 왔을 때는 발뺌을 했었고, 두 번째 재공고 나왔을 때도 미루고 미루다가 안 되겠다 싶어서 나간 거예요. 저도 제가 정치를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웃음)
리: 앞으로 인생 진로를 정치로 정했습니까?
이: 일단 도의원 당선돼서 경기도를 조금이라도 바꿔보겠다는 목표가 생겼죠. 경기도의회가 많이 게으르거든요. 도의원이 131명 있는데 조례발의 건수가 0.56건이에요. 한 명이 한 건도 채 안 했다는 건데 그나마도 부지런한 의원 몇 분이 열심히 해서 나온 결과고요. 이런 사람들한테 맡기느니 제가 일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물론 백 명이 넘는 도의원이 있는데 녹색당에서 하나 들어간다고 갑자기 대격변이 일어나진 않겠죠. 하지만 분명히 전환의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빨간당 의원들이 자기네 지역구에서 놀 때 도의회에 딱 붙어 앉아서 부지런히 입법노동 하다보면 한 명 있어도 부지런한 쪽이 이길 거라고.(웃음)
리: 그러니까 이제 앞으로 계속 정치할 겁니까?
이: 당선되면 도의회에 들어가서 정치노동 해야죠.
리: 안 되면?
이: 만약에 이번에 안 되면 후보로는 안 나서려고요.
리: 정치 안 하려고?
이: 지금 보니까 저 사무장 역할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리: 사무장?
이: 실무도 배웠고, 저만큼 후보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무장이 있을까요?(웃음)
리: 이제 비례로 나갔으니까 지역구로 나가야지?
이: 이번에도 얘기가 나오긴 나왔어요. 제가 성남에서 사는데 지역에서 출마해보지 않겠느냐는 이야기. 그런데 지역구 후보로 덥썩 나가기는 너무 무섭잖아요. 선거운동을 해본 적도 없는데. 그런데 해보니까 비례대표도 만만하진 않더라고요. 비례는 별로 할 일 없다고 그러더만, 아니 할 일이 없기는요. 결국 뭐 선거사무소도 설치하고...
리: 선거사무소를? 어디에요?
이: 집에다요.
리: 집에다가?
이: 다른 건물 빌리기가 마땅하지가 않아서.
리: 그냥 돈이 없다고 그러세요.
이: 돈이 없죠. 네.(웃음) 녹색당은 자발적 가난을 실천하는 정당이기 때문입니다.(웃음) 우리 선거운동 전략이 ‘돈 안 드는 선거’예요. 진짜로 돈이 없기도 없지만 허세부리는 건 아니고요. 선거운동에 돈이 많이 든다는 건 돈 없는 사람은 정치를 못 한다는 건데 이건 옳지 않은 구조라고 보거든요.
리: 그러니까 어떻게 돈 없이 선거를 치릅니까?
이: 당원들이 손을 모으고 발로 뛰고 그러죠. 단체복 같은 걸 맞출 때도 자기 입던 옷 가져와서 바느질해서 만들었어요. 제가 쓰는 어깨띠도 경기녹색당 정책위원들이 장인의 손길로 한 땀 한 땀 바느질해서 만들어 주신 거예요. 인력이 부족한 지역구에서는 상황에 따라서 프린트된 것 쓰기도 하지만 기본적인 원칙은 돈 쓰지 말고 만들어 쓰자예요.
선거 때 보면 유세차량 쿵짝쿵짝 음악 틀고 다니잖아요. 그게 한 대 운영하는 데 천만 원에서 삼천만 원 정도 든대요. 녹색당에서는 자전거 타고 다니면서 선거유세를 해요. 우리가 돈이 없어서만은 아니고, 차타고 지나가면서 손이나 흔들고 높은 데서 시민들 내려다보면서 시끄럽게 자기 할 말만 하는 정치인, 기분 나쁘잖아요. 자전거를 타면 좀 느리긴 하지만 시민과 정치노동자가 서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잖아요.
지난 주말에 이천에 갔어요. 이천시의원 후보로 출마한 임을재 후보 선거운동 도우러. 거기는 농촌이라 자전거로 다 돌기가 힘들어서 선거유세 트럭을 쓰긴 해요. 근데 후보가 농부라서 자기가 쓰던 트럭에 현수막 달아가지고 다니는 거고요. 제가 갔던 날이 마침 장날이라서 시장을 돌아다녔어요. 우쿨렐레라고 작은 기타 같은 악기 연주하는 당원이 있어서 그분이 딩가딩가 연주하면서 시장구경도 하고 그러면서 다녔는데 반응이 굉장히 좋아요.
연초에 이번 지방선거에 나름대로 계획이 있었어요. 지방선거이니까 총선이나 대선보다 작은 단위에서 이루어지고 무언가 좀 더 직접적으로 경험할 기회가 있을 거라고 기대를 했어요. 그래서 선거캠프 들어가서 자원봉사 활동도 하고, 특별당비 내기 위해서 돈도 좀 벌어놓고... 그렇게 지역 시의원 후보 캠프에서 소소한 일을 돕겠다는 정도의 목표를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은 훨씬 더 찐하게 선거를 경험하고 있어요.
리: 경험해 보니 어때요?
이: 재미있어요. 신나고 재미있고 스트레스도 받고 몸은 엄청 힘들고 졸립고.(웃음) 잠 너무 부족해요. 지금도 졸려요.
리: 글쿤요. 급 마무리 지어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묻죠. 정당 투표 몇 퍼센트 득표해야 비례의원으로 당선되는 겁니까?
이: 5% 이상, 투표율 따라 다르지만 경기에서 30만표 정도 받으면 됩니다. 30만표 되겠죠.
리: 좋은 결과 기대해 보겠슴다. 저도 경기도민이니까요.
이: 고마워요!
당선 가능성 0.0006% 선거포스터의 좋은 예
옛날보다는 좀 나아졌겠지만, 그러나 아직도 지방 의회는 지역 토호들의 잔치판인 경우가 많다. 대체로 보수 양당에 그런 후보들 많다. 때문에 지역 공동체를 윤기 있게 가꾸어야 될 지방자치의 본령이 우리나라에 정착되려면 아직 멀었다는 느낌이 있다.
1인 소선거구제로 치루는 총선과는 달리, 지방선거는 비례대표와 한 선거구에서 여러 후보를 동시에 뽑을 수 있다. 누군가를 떨어뜨려야 된다는 강박에 쌓여 별로 뽑고 싶지 않은 후보 찍을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소신껏 투표하자.
딴지라는 인연 때문에 홍보하는 게 아니다. 당도 푸르고 후보도 푸르다. 푸르게, 푸르게.
리버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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