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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쥘 베른의 소설 <지구로부터 달까지(From the earth to the moon)>에 감명 받은 전 세계 수많은 소년들이 그 꿈을 간직하고, 20세기 초에 청년기를 맞이한다. 그중 몇 명이 인류의 우주로켓 개발사에 지대한 공헌을 끼치는데 모두 서로에 대해서 잘 몰랐으며, 각자 따로 연구했으나, 마치 필연처럼 그 성과가 결국 같은 방향으로 향하여 한곳에서 만났다.



1. 콘스탄틴 치올코프스키 (Konstantin Tsiolkovsky, 1857~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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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올코프스키와 그의 수많은 로켓 관련 노트 중 한 페이지


현대 우주 로켓공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치올코프스키는 폴란드계 러시아인으로 어린 시절부터 청각장애로 세상과 단절되어 혼자만의 연구에 몰두하게 되었다. 한 시골 마을의 수학 선생님으로 재직하면서 일찍이 비행기 이론에 관심을 가졌지만, 라이트 형제와 달리 이론에만 집중하였고, 곧이어 비행기를 넘어서서 우주로 관심을 넓힌다.


1903년 집필한 '반작용 모터를 이용한 우주 공간 탐험'은 인류 역사상 최초의 우주로켓에 대한 논문으로 알려졌으며, 다단로켓 원리, 액체연료방식 로켓의 필요성, 인공위성의 원리, 우주정거장, 우주 엘리베이터, 우주복 등 전반적인 현대 우주공학기술에 대한 첫 번째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더불어 우주로켓의 연료로 액체수소(LH2)-액체산소(LOX), 액체메탄-액체산소, 가솔린-액체산소, 알콜-액체산소를 제시하였고, 그중에서 가장 효율이 높은 것이 액체수소-액체산소라는 것을 이미 예견하였다(위 연료들은 훗날 인류의 로켓연료로 모두 사용된 것들이다).


치올코프스키는 사람을 우주공간에 보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화학연료방식의 로켓을 다단(Multi-Stage)방식으로 구성하여 지구 중력을 벗어나 지구저궤도(LEO)의 위성궤도에 보낼 수 있다는 중요한 발견을 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인류의 요람인 지구(Earth)를 벗어나 우주공간(Space)으로 활동무대를 넓히는 것이 인류의 숙명이라는 철학적인 토대까지 제공했다.


현재까지도 통용되는 치올코프스키의 업적 중 하나는 1897년 수식화에 성공한 '치올코프스키의 로켓 공식(Tsiolkovsky's rocket equation)'이다. 이 공식은 분사 가스의 속도가 빠르고, 로켓 엔진 점화와 연소를 종료할 때 질량비가 큰 만큼 빠른 속도를 얻을 수 있다는 수식으로 로켓의 추진원리를 설명했다. 이는 왜 다단로켓이 필요한지에 대한 설명이기도 하다.


치올코프스키는 라이트형제가 첫 번째 비행기를 날리기 이전에 이미 인간이 우주를 비행하는 이론적 토대를 제시하였지만, 그 연구는 이론적인 성격이 강해 현실에 적용되지 못했으며 일부 러시아, 유럽의 학자들에게만 영향을 줬다. 하지만 미국과 소련의 냉전시절 우주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소련은 자신들이 우주개발의 종주국임을 과시하기 위해 치올코프스키에 대한 대대적인 재조명을 했고, 이 일을 계기로 미국의 과학자들도 관심을 기울이면서 치올코프스키의 업적은 인류 최초의 구체적인 우주 로켓공학을 제시한 것으로 인정받기에 이른다.



2. 로버트 고다드 (Robert Hutchings Goddard, 1882~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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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다드 박사와 인류 첫 번째 액체연료 로켓 '네루'


비운의 천재과학자 고다드의 일생은 그리 크게 조명받지 못한 편이다. 초창기 로켓공학자들 대부분이 아마추어이거나 그 분야의 비전공자임에 반해, 고다드는 물리학과 관련 기술의 전문가였다. 고다드는 (아마도 치올코프스키의 논문에 영향을 받아서) 우주비행에 관한 관심을 기울였고 액체연료방식의 로켓을 최초로 실천에 옮겨 만든 인물이다. 속설에는 단순히 고층대기권의 관측을 위해 높이 올라가는 로켓을 연구하다가 액체연료 로켓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여러 정황을 볼 때 그는 황당한 SF소설식의 우주여행을 거론하지 않고, 물리학자로서 실제적인 우주로의 접근법을 차근차근 추진했다고 볼 수 있다.


스미스소니언 연구소의 지원을 받아 1차 대전 직전부터 액체연료방식의 로켓 연구에 착수했고, 1926년에는 인류 최초의 액체연료방식 소형로켓을 만들어서 약 2.5초간 12m를 상승시키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미국 언론은 고다드에게 매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으며, 온갖 조롱과 오보를 통해 고다드를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지게 했다.


매우 내성적이었던 고다드는 그의 로켓공학지식을 다른 학자들과 나누는 것에 대해 꺼려했고, 독자적으로 연구를

진행하였다. 1935년경에 그의 로켓은 고도 2.3km에 도달했으며 거의 음속에 가까운 속도를 내고 있었다. 고다드의 로켓은 자이로스코프를 이용한 자세 제어, 연소실 뒤쪽에 추력방향 조절날개를 부착하고 있었으며 훗날 독일의 V-2로켓도 똑같은 구조로 되어 있다. 고다드는 로켓연료에 대해서는 액체수소-액체산소를 쓰는 것이 효율적이지만, 가솔린-액체산소 조합이 실용성이 높다고 판단하여 가솔린을 사용한 로켓엔진을 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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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에서 조수들과 자신의 액체연료 로켓을 점검하는 고다드, 비교적 개발 후기의 사진이다


이후 연구는 진척되지 못하고 거의 사장되었다. 2차 대전 무렵에는 군사적 용도로 이용하기 위해 미 해군에 의탁하여 연구를 잠시 진행했으나 역시 미 해군의 무관심으로 주목받지 못하였다. 종전 무렵에는 독일에서 입수한 V-2로켓을 미국으로 가져와 연구하는 작업에 견학 갔다가 "이것은 내 로켓을 훔친 것이다!"라고 말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독일의 V-2로켓은 그만큼 고다드의 로켓과 원리와 기술이 매우 흡사했으며, 기술적으로는 훨씬 앞섰던 것이다.


얼마 후 사망한 고다드는 이후 로켓공학이 급진전하면서 다시금 초기 업적이 재조명받게 되었고, 소련이 치올코프스키를 내세운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도 로켓의 아버지로 고다드를 내세우면서 자신들이 로켓의 종주국이라 주장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훗날 고다드가 생전에 등록했던 로켓에 관한 수많은 특허들을 무단 사용한 것에 대한 변상금으로 유가족에게 백만 달러를 지급한 바 있다.


고다드는 근대적인 로켓엔진을 처음 개발하였고, 가압 방식과 재생냉각 방식이라는 현대 로켓엔진의 기초적인 기술을 최초로 고안하기도 했다. 일설에는 독일정부가 고다드의 로켓 연구를 주시하고 있었으며 그의 기술들을 여러 경로로 입수해서 자국의 로켓 개발에 응용하도록 하였다고도 한다. 훗날 폰 브라운 박사도 고다드로부터 많은 것을 도움받았다고 언급했다고 한다.



3. 헤르만 오베르트 (Hermann Oberth, 1894~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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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헤르만 오베르트, 오른쪽 오베르트와 그의 수제자 폰 브라운


원래 의사를 지망했던 오베르트는 1차 대전에 군의관으로 근무하던 중 자신의 적성이 물리학과 우주공학에 있음을 깨닫고 전쟁이 끝난 후 물리학으로 전향했다. 이후 1923년 <행성 공간으로의 로켓(The rocketinto Interplanetary)>이라는 책을 집필했고, 이 책은 당시 로켓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독일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각지에 로켓연구 클럽이 만들어지는 계기를 제공했다. 그의 이론은 현대 로켓공학과 우주항해기술에 근간이 되는 기초적인 것들이 많았고 이후 일반인들이 더욱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서 1929년에 <우주여행에의 길>을 발간한다.


오베르트 역시 우주에 인간이 도달하려면 다단로켓이 필요하며, 인공위성의 원리와 위성궤도에 도달하는 이론, 우주복과 우주정거장, 위성궤도에서 궤도역학을 통해서 달이나 다른 행성으로 가는 방법을 제시한다. '행성 공간으로의 로켓'은 92페이지 분량의 매우 짧은 논문형식이지만 복잡한 수식 등을 통해 현대 우주로켓공학에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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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치올코프스키의 로켓디자인, 고다드의 로켓디자인, 오베르트의 로켓디자인


오베르트도 치올코프스키, 고다드와 마찬가지로 우주로 가려면 반드시 액체연료방식 로켓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고, 고다드가 액체연료 로켓을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신문기사로 알게 되곤, 고다드에게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또한 그의 저서에 '모델B'라는 액체연로방식 로켓의 설계도가 실렸고, 그 도면을 본 많은 독일인이 로켓협회를 만들어서 직접 제작에 나서게 되었다.


1927년에 폰 브라운을 포함한 열정적인 독일인들이 설립한 브로츠와프 우주여행 협회(VfR, Verein fur Raumschiffahrt)는 그중에서 큰 규모였으며 이들은 정신적 지주인 오베르트를 초빙해서 스승으로 모시며 로켓을 개발하기 시작한다. 1929년에 개봉된 <달 세계의 여인>이라는 영화는 진짜 로켓을 만들어서 촬영하려 했으나 이론가였던 오베르트에게 실물 제작은 무리였는지, 제작 도중 사고로 한쪽 눈을 실명하게 된다(하지만 영화는 대성공).


이후 2차 대전 때 V-2로켓의 개발과정에서 역시 폰 브라운을 이론적으로 도왔고, 종전 후 폰 브라운의 초빙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로켓과 미사일 연구를 하다가 은퇴했다. 초창기 로켓의 선구자 중에서 가장 장수했던 오베르트는 폰 브라운의 초청으로 미국으로 돌아와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을 목격하기도 했으며 평온한 말년을 보냈다. 가장 행복한 로켓 선구자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설명한 치올코프스키, 고다드, 오베르트는 모두 쥘 베른의 소설에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서로가 위치한 곳이 크게 떨어져서 서로의 연구 성과를 제대로 몰랐거나, 간접적인 영향만 받았지만 결국 그들이 지향하는 바는 같은 곳을 향하게 된다. 오베르트는 독일의 V-2로켓이 개발되는 동기를 제공했고, 치올코프스키는 최초의 인공위성을 쏘아 올린 소련의 로켓개발사의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으며, 고다드는 역시 우주강국 미국의 로켓 개발사에 상징적 인물이 된다.


3명의 인물이 남긴 다단로켓-액체연료식 로켓-우주 항행법과 궤도 역학 이론은 이후 인류 로켓 공학의 기초가 된다.




Tip : 호만 전이궤도 (Hohmann transfer orbit)


독일 건축가·과학자인 발터 호만(Walter Hohmann)이 1925년 ‘천체의 접근 가능성’이라는 논문을 통해 처음 발표한 이론이다. 오베르트로부터 촉발된 우주로켓의 열풍 속에 구체적인 우주항행 기초 원리를 제공하는 이론으로 현대에도 우주선과 탐사선들이 궤도변경을 하거나, 달 궤도, 화성으로 가는 궤도역학의 핵심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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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만 전이궤도는 일단 지구저궤도(LEO)에 위성궤도를 1차적으로 형성한 뒤에 더 높은 고도의 궤도로 전이(transfer)하기 위해서 가장 경제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일단 우주선이 진행방향으로 가속하여 정반대 쪽의 고도를 높여 타원궤도를 형성하고, 타원궤도의 고점(AP)에 도달하면 다시 진행방향으로 가속하여 정반대 쪽의 저점(PE) 고도를 높이는 방식이다. (궤도를 낮출 때는 역방향)


서로 다른 고도를 돌고 있는 우주선들은 고도차(위성속도가 다름)를 이용해서 접근한 뒤 고도를 변경하는 호만 전이를 통해 랑데뷰하고, 다시 궤도의 모양이 다른 데서 기인하는 속도 차이를 호만 전이를 통해 속도를 일치시켜 최종적으로 위성궤도를 동일하게 만든다.


달까지 가려면 역시 지구 저궤도에 1차적으로 주차 궤도(Parking Orbit)를 형성한 후에 궤도 고점이 달과 만나는 시점에 호만 전이를 하여 달 천이궤도(Lunar Transper Orbit : LTO)를 만들게 된다. 화성까지 가는 방법도 마찬가지이다. 호만 전이궤도의 단점은 목표로 하는 행성(또는 달)이 우주선이 만들 수 있는 호만 전이궤도의 궤도 고점에 겹치는 시점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인데 이로 인해 화성에 가려면 2년에 고작 한두 차례 정도만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 References ]


1. 위키백과 한국어판 - 치올코프스키, 고다드, 오베르트, 호만전이궤도

2. 네이버 SNW님의 블로그 : http://blog.naver.com/snw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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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딴지일보 coc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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