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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유별난 취미가 있다. 주말에는 반드시 목욕탕을 가는데 반드시 책 하나를 가지고 간다. 탕 안에 반신욕 자세로 걸터앉아 읽는다. 물이나 땀에 책이 좀 젖고 그래서 책에게는 미안하지만 집중은 최고다. 그렇게 읽는 부분은 머리에 쏙쏙 들어오고 진도도 잘 나간다. 물론 무슨 철학책이나 소리 내 읽어도 뭔 말인지 모를 책들은 안된다. 그런 책들은 반드시 졸다가 풍덩 물에 빠뜨리게 되고 책을 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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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목욕 때 읽고 주말 가기 전 다 읽은 책이 <날씨가 만든 그날의 세계사(제3의 공간)>이다. 로날트 D. 게르슈테(딱 읽으니 독일계인데)가 쓰고 김희진 씨가 옮겼다. 서문에서 작가는 이렇게 밝힌다.

 

“이 책에서는 기후가 인간 사회의 번영이나 몰락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때 기후라는 거시적 명제와 더불어 날씨라는 미시적 명제에 대해서도 고찰할 것이다.”

 

여기서 거시와 미시의 차이는 곧 시간의 구분이다. 즉, 오랜 세월 지속되거나 한 지역을 지배한 ‘날씨’는 ‘기후’가 된다.

 

사람은 자연을 정복한 체하지만 사실상 자연에 빌붙어 살아간다. 정복한 게 아니라 빌붙기 쉬운 곳을 성공적으로 찾았을 뿐이랄까.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게 1만 2천 년 전이고 그 빙하기가 시작된 게 10만 년 전이라고 하니 인류의 이른바 문명 시대란 거의 ‘막간’이 아닌가 싶을 정도지만 그 막간을 살면서도 우리는 자연의 거대함을 곧잘 잊는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인간의 역량이란 결국 파도 위에서 즐기는 서핑 정도가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세상 없는 문명의 성장과 몰락도, 역사를 뒤흔든 혁명도 전쟁도, 세계사를 바꾼 질병과 격변도 아이들 일기장에 등장하는 맑음, 흐림, 비, 갬 등의 단어에 심각하게 좌우되는 것이다.

 

프랑스의 공포 정치 시절 로베스피에르를 지치게 만들어 연설할 기운마저 빼앗은 더위가 아니었다면, 그의 지지자들을 뿔뿔이 흩어지게 만든 폭풍우가 아니었다면 국민 공회 의원들은 로베스피에르를 타도할 용기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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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우 가운데 딱 하루 날씨가 좋을 것 같다는 불안한 예보에 운명을 걸었던 아이젠하워가 아니었다면 노르망디 상륙 작전은 없었을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화산 폭발로 화산재가 태양을 가려 버리면서 찾아온 여름 없는 해(1816)의 음울하고 뼈 속 깊이 파고드는 추위의 무게는 그만큼 음울하고 무뚝뚝한 괴물 프랑켄슈타인을 탄생시켰다.

 

이런 사연들은 사연마다 단순히 역사적 배경 정도로만 생각했던 날씨와 기후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한 인간의 삶을, 나아가 역사를 바꾸었는지를 여실히 전해 준다.

 

그렇다고 사람들을 심하게 데웠다 얼렸다 한 건 아니다. 자연은 아주 작은 움직임으로도 인간들을 통제할 수 있다.

 

“평균 기온 0.5도에서 1도만 상승해도 이미 엄청난 변화이며 이런 기후 변화는 개개인의 삶과 사회, 경제 시스템, 국가 체제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킨다.”

 

하긴 반신욕하면서 느낀다. 39 도와 40도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각설하고, 로마는 온난기에 전성기를 누렸고 그 쇠퇴기는 한랭건조한 날씨가 제국을 장악해 가던 시기와 일치한다. 19세기가 혁명의 시기였던 것은 위에 언급한 여름이 없는 해 이후 유럽 각지를 휩쓴 기상 이변 때문이었다. 1도만 왔다 갔다 해도 엄청난 변화라는 판에 1810년대 유럽의 평균 기온은 3도나 떨어졌다.

 

“빵이 아니면 피(Bread or Blood)”의 구호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이 즈음 조선에도 민란이 빈발하고 있었다. 착하디착했던 조선 백성들이 사또 두들겨 패고 몰아내기 일쑤였고, 1830년대에는 한양에서 대규모 쌀 폭동이 일어나 초반에는 관군도 진압 엄두를 못 낼 만큼 극렬한 모습을 보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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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보니 문득 2016년에서 2017년으로 넘어가던 촛불의 겨울이 떠올랐다. 그 해 겨울은 참으로 따뜻했다. 추워도 주말만 되면 거의 거짓말처럼 수은주가 올라갔다. 촛불 집회가 여러 번 있었고 꽤 많은 시간 참석했으나 오들오들 떨었던 기억은 많지 않다. 되레 나름 결연한 마음으로 자기 돈 들여 핫팩을 대량 사서 나눠 주려 했으나 따뜻한 날씨 때문에 빛도 못 보고 고맙다는 말도 못 들어 억울해 한 이들이 더 기억에 빈번하다.

 

503호는 그 날씨가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2017년에서 2018년에 걸친 겨울이 1년 전에 왔더라면, ‘삼한사랭’의 날씨가 2016년 겨울에 왔더라면 우리 역사는 과연 달라졌을까. 아마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답은 게르슈테가 준다.

 

“하지만 우리는 늘 현실 감각을 유지해야 한다. 날씨, 나아가 기후는 역사를 좌지우지한 수많은 요인들 중 하나일 뿐이다.”

 

결국 사람의 일을 다한 뒤에 하늘(자연)의 뜻을 기다리는 거다. 날씨가 인간을 지배한다면, 인간이 그 앞에 무력하기만 하다면, 인류는 벌써 씨가 말랐어야 옳고 인류의 역사 또한 초저녁에 끊어졌을 테니까.

 

날씨는 인간의 역사를 좌우할지는 모르되 결정하지는 못한다. 그날그날의 역사에 영향을 미칠지는 몰라도 결국 역사를 만드는 건 빙하기를 이기고 지구를 뒤흔든 화산 폭발도 견디며 살아온 인간들의 일상일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제목은 별로다. <날씨가 만든 그날의 세계사> 날씨가 ‘바꾼’이라면 몰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