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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찻잔속의 태풍'이 틀린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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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뱅뱅이론이라는 말을 처음 만들었을 때 자주 비교되던 말이 있다. ‘찻잔속의 태풍’. 이 말은 원래 영어권에서 쓰이던 ‘a storm in a teacup’이란 관용어구를 직역한 것으로, 캠브릿지 사전 상에는 ‘a lot of unnecessary anger and worry about a matter that is not important. (중요하지 않은 문제에 관해, 불필요한 분노나 우려가 너무 많은 것)’이라 정의돼 있다. 최근 몇년간 국내에서는 주로 트위터 위주의 SNS 및 온라인 여론이 그 내부의 절대적 숫자와 실질적 영향력을 과대평가 했다는 의미로 변형되어 사용됐다. 트위터는 팔로잉이라는 새로운 구독형태를 기반으로 인기를 끌었다. 수 억 명의 사용자 중 내가 직접 팔로우한 사람들이 남긴 내용만을 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다수의 커뮤니티가 특정한 목적에 의해 형성된다는 점에서 이들이 전체 여론을 대표하여 보여준다고 보기는 어렵다. ‘찻잔 속의 태풍’이라는 말은 이러한 특징을 나타내기 위해 ‘찻잔’이라는 과장된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이 말로 온라인 여론 전체가 한계를 지닌다는 듯 은유하는 것은 지나친 왜곡이다. 온라인 커뮤니티나 SNS는 어떤 편향된 일부 여론이 관측되는 과정을 보다 직관적으로 드러낼 뿐, 온라인이 등장하기 이전 사회와 근본적으로 별다른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어느 시대이든 우리는 의견이나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 위주로 친목관계를 형성한다. 지면인쇄물 시대의 언론이 온라인 시대의 언론보다 더 중립적인 보도를 했다는 증거는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판매부수가 많은 주류 언론이 편파적 보도로 여론을 왜곡했으나 이 사실이 은폐되었던 사례는 매우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전통적인 ‘모임’들은 주로 같은 출신지역, 거주지역, 학교를 기반으로 형성됐으니 이들의 성향이나 이해관계는 여느 온라인 커뮤니티보다 편향적이었을지언정 다양성이 확보됐었다고 보긴 어렵다.

 

물론, 회사나 학교 같이 본인 스스로 구성원을 선택할 수 없는 집단이 있으므로, 이를 통해 조금이나마 보편적인 여론을 엿볼 기회가 있었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모든 온라인 커뮤니티가 동일한 정치성향을 지닌 이들끼리 모여 있는 것은 아니며, 모든 SNS 사용자들이 나와 정치성향이 같은 사람만을 골라서 팔로우하는 것도 아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를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이 회사나 학교를 안다니는 것도 아니다.

 

즉, 온라인이 없던 시절 한 개인이 파악하는 여론의 범위와 이 시대의 한 개인이 파악하는 여론를 비교할 때, 후자가 더 편협하다고 결론낼 수 없다. 오히려, 온라인에서 나와 반대되는 여론을 살펴보는 게 훨씬 용이하다. 경북 지역 한 읍내의 사람이 전남 지역 한 읍내의 여론을 알기는 어려우며 언론 매체는 이들 중 어느 한쪽에 치우친 보도를 한다. 반면 한 온라인 커뮤니티 열성 사용자가 다른 커뮤니티의 여론을 확인하는 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쉬운 일이다. 쉬운 만큼 실제로 그런 정보는 수시로 교환된다.

 

그러므로, 온라인 여론이 기존의 전통적 오프라인 여론에 비해 객관성이 떨어진다고 보는 시각은 시대착오에 불과하다. 온라인 여론이 찻잔이라면, 그 이전의 사회에서 개개인이 체감하는 여론은 에스프레소 잔이나 티스푼에 불과할지언정, 찻잔보다 컸다고 볼 수 없다.

 

그렇다고 이 시대의 온라인 여론이 이전 시대의 여론과 똑같은 특징을 지닌다는 것은 아니다. 더 편향적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일 뿐, 분명한 차이를 지닌다. 그리고 그 차이의 내용 또한 매우 빠른 속도로 변화한다. 온라인 여론의 자체가 빨리 변한다는 것이 아니라, 여론이 형성되고 다른 주제로 이어지는 방식과 구조가 빨리 변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양상을 파악하고 그 방향을 예상할 수 있다면, ‘온라인 여론은 결국 찻잔 속의 태풍이지’라는 시대착오적 냉소에 그치는 것보다 훨씬 생산적인 결론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이 작업(글)의 목적이기도 하다. 그 변화의 양상은 온라인 상에서의 특징적인 행동문화에서 암시적으로 드러나곤 한다.

 

비교적 최근에 발견할 수 있는 이런 행동문화의 한 가지 예를 살펴보겠다.

 

 

 

2. 비추 박은 놈들 누구냐

 

최근 몇년 사이 게시판에서 사용자들은 ‘비추의 수’에 민감하다. 당장 딴지 자유게시판만 해도, ‘여기에 비추 박은 거 누구냐’는 류의 지적이 자주 등장한다. 딴지 뿐만 아니라 많은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비추를 누른 이들을 비난하거나, 색출하려 한다. 역으로 ‘실수로 비추를 눌러 미안하다’며 사과하는 댓글들이 자주 발견되기도 한다.

 

이런 찬반, 긍정부정, 공감비공감 등의 의사를 남기는 기능의, 온라인 문화에 뿌리를 내린 계기를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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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 디시인사이드 메인화면. 힛갤 없이 쿨갤만 있던 고리적 버젼으로 보인다.)

 

한국 온라인 커뮤니티 문화에 빼놓을 수 없는 디시인사이드(dcinside.com) 같은 경우 사용자들의 충성도가 높기 때문에 조회수와 댓글만으로도 인기 게시물을 선별하기 용이했다. 특정한 주제가 정해진 디씨의 갤러리 운영 특성상, 게시판별 자정작용이 활발한 편이며 사용자들의 활동성이 높다. 이 경우 댓글 및 조회수가 그 게시물의 질을 반영할 가능성이 높다.

 

이 때 한편에선 오유(todayhumor.co.kr)나 웃대(humoruniv.com)와 같이 대중적인 주제를 지닌 게시판 사이트가 등장해서 인기를 끈다. 게시판형 커뮤니티들이 큰 인기를 얻고 꾸준한 사용자들을 불러모으자, 포털사들이 이를 벤치마킹하여 유사한 기능을 내재화한다. 네이트 판, 네이버 붐 같은 게시판들이 뒤이어 등장한 것이다. 이러한 사이트들은 가볍게 접속하는 사용자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 도배나 조작 같은 온라인 테러의 발생 가능성이 높다. 또 일반 사용자의 활동성이 적어 상대적으로 자정작용의 동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았다. 중복 컨텐츠가 계속해서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이와 같은 차이로 인해 디씨인사이드와는 달리 댓글 수나 조회수 만으로 좋은 컨텐츠를 골라내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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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붐의 추천기능인 ‘붐업'을 유도하는 짤. 2007~8년 네이버 붐 한창 때 gif로 제작되곤 했다.)

 

이와 같은 배경에서 공감이나 추천 같은 기능은 게시물에 긍정적 의견을 남기는 부담을 줄였다. 그래서 더 많은 일반 사용자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었다. 또 반대, 비공감, 비추천, 뒷북과 같은 기능은 중복자료나 문제소지가 있는 게시물을 구분하는 데에 활용될 수 있었다. 즉, 추천/비추천 기능이 지니는 본래 목적은 주로 ‘인기 게시물을 잘 고르기 위한 것’이었던 셈이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공들여 만든 게시물을 보다가 실수로 비추천 버튼을 눌렀을 때라면, 글쓴이에게 사과를 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 있다. 그 게시물을 만든 사람 입장에서 비추천을 누른 사람에게 야속함을 느끼고 이를 표현하는 것 또한 자연스럽다.

 

하지만 최근 온라인 게시판의 분위기는 이와 다르다. 공들여 작성했다고는 볼 수 없는 두어줄 짧은 의견을 올린 경우에도 비추천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심지어 게시물도 아닌 댓글에 대한 비추천 수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아무 의미도 없는 숫자에 불과하며 결국 전체적으로 추천수가 더 많은데도 그 얼마 안되는 비추천수에 신경쓰는 모습은 보는 사람에 따라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문화는 점차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며 비슷한 맥락의 현상들이 발견된다.

 

 

 

3. 메모와 점댓글

 

최근 게시판 문화에는 ‘메모’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이 기능은 특정 회원의 아이디가 표기될 때에, 내가 지정한 어떤 문구가 함께 보여지도록 하는 기능이다. 이 메모 기능의 사용 목적은 한마디로 ‘거르기 위함’이다. 어떤 사용자가 쓴 글이 보통 편향돼 있거나 신뢰도가 떨어진다고 여겨질 때, 같은 사용자의 다른 게시물을 쉽게 구분하려는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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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않는돌고래 편집장에 ‘편집장'이라는 메모를 달면 이렇게 보인다.)

 

극단적인 사용례를 들자면, 대기업이나 특정 정치집단의 알바이거나 특정 커뮤니티의 회원이 위장 활동 중인 것으로 예상되는 아이디들을 정리하는 용도가 있을 수 있다. 기능적으로는 이렇게 사용되지만 이 ‘표현’이 사용되는 예시는 이렇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메모’, ‘이런 의견은 항상 메모가 돼 있는 분들이 쓰네요’ 같은 식.

 

또 다른 특징 행동은 점(.) 댓글이다. 말 그대로 댓글에 점 하나만을 찍는 것이다. 일부 게시판에는 아예 내용을 쓰지 않고도 댓글을 등록할 수 있어 ‘빈댓글’로 대체되기도 한다. 이 행동은 크게 두가지 목적으로 나뉜다. 하나는 해당 게시물을 나중에 다시 찾아보고 싶을 때, 내가 댓글을 단 게시물을 모아보는 기능을 통해 쉽게 찾기 위함이다. 게시판 성향에 따라 야한 게시물을 저장하려는 의도로 쓰이기도 한다. 여기서 살펴보려는 것은 두 번째 목적인, 글쓴이에 대한 일종의 시위 의사 표현의 목적인 경우이다. 게시물의 내용, 또는 글쓴이 자체에 대한 반대의견을 남기려는 것이면서 동시에 그 반대 의사를 글로 남기지는 않으려는 것이다.

 

반대 의사를 글로 남기지 않고 점을 하나 찍어두는 이유는, 한마디로 ‘말을 섞을 가치도 없다’는 의사를 상징적으로 남기기 위함이다. 의도적으로 분란을 일으키려는 목적을 지닌 게시물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그런 목적의 게시물을 반복해서 올리는 사용자에 대한 반대 시위의 일환으로도 사용될 수 있다. 이 경우 글쓴이가 많은 댓글을 받는 것에서 희열을 느끼는 소위 ‘관심병 환자’라는 전제 하에, 댓글의 개수는 증가시키지만 막상 들어와 보면 점만 찍혀 있어 허탈감을 느낄 것이라는 간접적 효과를 의도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실제로 상대가 관심병 환자가 아닐지라도, 나는 당신을 관심병 환자로 치부한다는 의사를 표현하는 수단으로써의 복합적 의미도 지닐 수 있다.

 

점댓글은 비추천, 메모의 사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게 발견되기는 하지만, 분명히 몇 년 전만 해도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행동 양식임은 분명하다.

 

 

 

4. 실제 사례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 : 딴지 자게 이재명 논란

 

가장 가까운 예인, 딴지 자유게시판의 비교적 최근 한 달간을 예로 들어 좀 더 살펴보자. 소위 ‘이읍읍’이라고 표현되곤 하는 이재명 경기지사 후보의 자질논란이 게시판의 큰 이슈였다. 게시판은 크게 두 부류 사이의 대립각을 명확히 보였었다. 이재명은 민주당 경기지사 후보로 선거를 치뤄서는 절대로 안된다는 부류와, 이들의 반대의사 표현이 도를 넘었다는 부류의 대립. 이 글의 목적은 그 내용의 정당성이나 합리성을 다루는 것이 아니므로 구체적 내용은 언급하지 않겠다.

 

이 두 부류 모두에게서 위의 현상들은 동시에 발견된다. 상대적으로 점댓글의 출현 빈도는 낮았지만, 자신의 게시물에 일정한 수의 비추천이 달린다며 상대 부류의 조직적 행동을 의심하고, 메모를 언급하면서 상대 부류를 여론몰이 조직이나 알바로 치부하려는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 양쪽 모두에게서 발견된다. 여기에서 생각해 볼만한 점은, 최근의 이 대립구도에서 적어도 어느 한 쪽에는 실제로 여론몰이 조직이 참여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게 어느쪽으로 보이는지는 글의 목적성을 지키기 위해 따로 언급하지 않겠다.)

 

즉, 자연스러운 일반 사용자들이 아닌, 이해관계에 따라 결성된 조직의 경우에도 비추천 수에 대한 민감한 반응이나 메모 기능을 언급하는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조직적인 게시물의 경우, 효율성을 중시하므로 분명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전략을 사용하게 된다. 이들이 이런 행동을 한다는 것은, 그런 행동이 현재의 게시판 문화에 먹혀들어간다는 증거가 된다. 이로부터, 이 현상이 최근 온라인 게시판 문화에 얼마나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비추천에 대한 민감한 반응. 메모 기능의 활용방식. 그리고 반대 시위로써의 점댓글. 이 셋은 큰 틀에서 공통적인 대상을 지닌다. 그것은 ‘나와 다른 의견’이다. 각각,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이 얼마나 존재하는가에 대해 민감한 것이며, 나와 다른 의견을 반복적으로 보이는 타인을 따로 기록하는 것이고, 나와 다른 의견에 대해 시위하려는 목적을 지닌 행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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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보드 배틀’, ‘키보드 워리어'라는 말이 나온 지도 벌써 십 수 년이 지났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특성상, 다소간의 의견 대립이 일어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많은 사용자들은 이러한 논쟁에 어느정도 익숙해져있다. 그러므로 이들은 모든 반대 의사에 대해 위와 같이 반응하지는 않는다. 그런 일상적 논쟁과 구분되는 이러한 현상들은 대부분 특정한 주제에 대한 의견 대립으로 한정된다. 그 주제가 어떠한 것인지는 게시판마다 다르고, 시기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특정 주제에 대해서 나와 다른 의견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그런 의견을 지닌 사람들을 견제하는 행위들, 이런 행위들이 보편적인 행동양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재현된다는 것, 그리고 나아가 의도적으로 여론에 영향을 끼치려는 이들이 그런 행동양식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기까지 한다는 것. 이러한 일련의 현상은 ‘적어도 이 주제에 대해서는 나와 다른 의견을 인정할 수 없다’는 태도가 현재의 온라인 게시판에서 보편적으로 공감되고 있으며 그 정도가 강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기존의 전통적인 사회과학적 시각에서는 이러한 특성이 ‘문제’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다양성을 배격하는 문화가 보편화되는 것은 파시즘의 일상화나 전체주의적 특성의 재현으로 보이기 쉽기 때문이다. 실제로, 몇몇 커뮤니티에서는 어떤 주제에 지속적으로 반대의사를 밝히는 개인이나 소수집단을 거칠게 배격하기도 한다. SNS에서는 소위 ‘조리돌림’이라 불리는 행위를 통해 그러한 배격이 드러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사례가, 온라인 문화 자체에 근본적 문제가 있다는 근거로 쓰일 수 있을까. 이런 사례의 발견이 비추, 메모, 점댓글이라는 현상을 ‘파시즘의 내재화’로 여기게 하는 근거가 될 수 있을까.

 

 

 

5. 현상을 유도하는 주제의 공통점

 

앞서, 이러한 현상은 모든 논쟁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주제에서 주로 발견된다고 했다. 그 주제의 예를 살펴보자.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태도와 관련된 주제들이다. 현 정권을 지지하는 분위기가 우세한 게시판의 경우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는 내용에 비추가 달릴 때, 또는 문재인 정부를 비난하는 취지의 게시물을 누군가가 반복적으로 올릴 때 이와 같은 현상이 벌어진다. 물론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지 않는 게시판의 경우에는 그 반대의 상황에서 이런 현상이 벌어진다. 앞서 이재명 자질 논란도 이와 같은 맥락의 연장선 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특정 기업에 대한 주제 중에서도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예컨데 클리앙(clien.net)의 경우 IT와 관련된 소식이나 제품 정보를 중심으로 성장한 커뮤니티여서 특정 IT 기업이나 전자제품 브랜드에 대한 논쟁이 자주 벌어지는데, 이 게시판에서 지속적으로 삼성전자의 족벌체제를 옹호하는 게시물을 올린다면 높은 확률로 메모나 점댓글, 빈댓글을 받는다.

 

그 외에 성평등 및 페미니즘에 대한 문제, 청년실업 및 임금불평등에 대한 문제 등의 주제에 대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유사한 현상이 발견된다. 이 모든 주제들의 공통점은 바로 ‘정치성’을 지닌다는 점이다. 현 정권 또는 특정 정치인에 대한 의견 대립과 같이 직접적인 현실정치 뿐만 아니라, 사회적 영향력을 지니는 가치관이나 집단과 같이 넓은 의미에서의 정치성을 지니는 주제들인 것이다.

 

이 ‘정치성’이라는 구분선은 대체로 정확하게 작동한다. 예컨데 사진 커뮤니티에서 캐논이냐 니콘이냐의 논쟁, 패션에서 나이키냐 아디다스냐의 논쟁은 해당 커뮤니티 안에서 분명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위와 같은 현상은 벌어지지 않는다. 사용자들이 익숙하게 수용하는 논쟁에 해당되는 것이다. 반면 똑같이 기업간의 찬반주제더라도, 오뚜기와 남양유업처럼 서로 다른 정치적 상징성을 지닌 기업의 경우에는 위와 같은 현상이 발생한다.

 

즉, 현재 온라인 문화는 같은 커뮤니티 내에서 나와 다른 정치성을 발견하는 것에 민감한 것이다. 특히, 그것이 적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반복적으로 드러날 때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 반응 행동이 위와 같은 현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6. 정치성 대립의 일상화, 과연 문제인가

 

정치적 주제에 대한 이런 행동특성은 온라인 도래 이전 시대와 확연히 다르다. 이전 시대에 한국 문화는 ‘무난한 대외용 정치 스탠스’가 암묵적으로 통용됐다. 뚜렷한 권력층이 아닌 대부분의 시민들은 본인의 개인적 성향과 무관하게 이 무난한 대외용 정치 스탠스를 유지해 왔다. 이런 태도가 공중파 방송, 공식 행사 같이 공공의 목적을 지니는 맥락에서 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일상생활에까지 파고들 수 있었던 데에는, 한국전쟁 이후의 극단적 사상 대립과 폭압적 군사독재의 영향이 크다 하겠다. ‘말 한 마디’가 목숨을 좌우할 수 있었던 시대였으므로, 나와 다르더라도 좋게좋게 넘어가는 무난한 태도가 자연스레 체화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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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난 돌이 되지 않도록 숨죽이던 시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2001년 민주당 대선 후보 출마연설에 인용된 바 있다.)

 

이 문화는 온라인의 초창기에도 그대로 전승된다. PC통신 시절 대화방이나 인터넷 초기 채팅방에서 사람들은 예의바른 말투를 지킬 뿐 아니라 불특정한 상대 앞에서 정치성을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 소모임이나 동호회, 까페 등 커뮤니티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도 그 목적이 정치 카테고리가 아닌 경우, 정치적 스탠스를 드러내는 행위를 서로 피하는 경향이 강했다. 혹시 그런 갈등이 발생하더라도 대부분 좋게좋게 화해하고 넘어가는 ‘무난한’ 해결책을 지향했다.

 

같은 집단 내에서 나와 다른 정치성을 마주했을 때 무난하게 좋게좋게 넘어가는 것에서 그게 누군지를 찾아내고 기억해두고 항의의 의사를 밝히는 것으로의 변화. 과연 이렇게 변화한 현재의 행동양식이 ‘문제’라고 볼 수 있을까. 수많은 사람들이 공공 장소 뿐만 아니라 사적인 의견을 주고받는 모임 안에서도 무난하고 모호한 정치성만을 드러내는 것이 더 바람직한 사회의 모습일까. 오히려 그러한 무난함이, 사회 전체적으로 더 폭력적인 파시즘이 만연해 있다는 증거일지 모른다. 실제로 군사독재가 종식된 이후 15년간 점차 일상에서의 정치적 대립이 커지다가,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기에 다시 무난한 태도가 확대되다가, 다시 최근에 들어 그 대립이 폭발적으로 격화되는 중이다. 국가권력의 정치성에 대한 억압 수준과 일상적인 정치성 대립이 격렬해진 수준이 일관된 반비례관계를 보인다는 것은 이런 가설에 신빙성을 더한다.

 

이런 온라인 문화의 변화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정치성 대립의 일상화’라 할 수 있겠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세대에 있어 정치성이란 더이상 나의 구체적 삶과 동떨어진 뜬구름이 아닌 것이다. 수업 중 쉬는 시간에, 회사 출퇴근길에, 집에서 쉬고 있을 때에 일상적으로 드나드는 온라인 공간 내에서도 우리는 나와 같은 무리 안에 나와 다른 정치성에 주목하는 것이며, 이것이 보편적인 구체적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성 대립의 일상화는 앞서 다뤄온 행동 사례의 수준이 아니라, 훨씬 더 일상적인 수준까지 파고들어있다. 또 이런 새로운 현상들에 대해 풀리지 않은 의문들도 남아있다.

 

다음편에서 계속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