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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촛불세대가 열어낸 시대

한 세대는 한 시대를 살아간다.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바꾸어내면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 새로운 시대를 열어낸 그들은 새로운 세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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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시작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이다. 그 시대는 일제의 식민지배와 그로부터의 해방 과정을 바탕에 둔다. 이 고난을 이겨낸 이들은 해방세대라 불린다. 이들은 이 나라가 현대적 의미의 국가로 세워지는 실질적인 과정을 함께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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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과 이념 충돌 이후 이어진 독재의 소용돌이 한 편에서 이 나라는 놀라운 경제적 성장을 이루어 낸다. 그리고 그 성장은 다름아닌 그 시대를 살아오며 땀을 흘려온 사람들의 힘이 일군 결과이다. 고속성장을 손수 일군 이들을 우리는 산업화 세대라 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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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산업화의 이면에 있던 어두움을 몰아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건 싸움을 해야만 했다. 그 싸움에서 끝내 이겨낸 민주화 세대가 있다. 이를 통해 얻어낸 자유는 사람들의 삶을 또다시 바꿔냈고, 우리는 단순히 무역 지표나 경제지수 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측면에서 까지 가시적인 발전을 목격해왔다. 

 

그렇다면, 그 이후 지금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남게 될까. 만약 이 글을 2016년 즈음에 하고 있었다면 별다른 결론에 다다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해방도 됐고, 경제 성장도 이뤄냈고, 민주화도 이뤄냈지만 아직 친일세력의 잔당들이 득세하고, 대다수 서민의 삶은 더욱 팍팍해졌으며,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정권이 10년 가까이 집권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 사이 우리는 뜨거웠던 광장의 함성과 꺼지지 않는 촛불의 힘을 직접 확인했다. 어떤 정권도 절대 권력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해 냈다. 시민의 힘으로 가장 바람직한 지도자에게 정권을 안기는 과정을 경험했다. 그 결과 이전 정권과는 격이 다른 능력을 보며 그 선택이 몹시도 올바르다는 사실을 목격하는 중이다. 

 

해방과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쳐, 현대 사회의 이념적 근간이 되는 민주주의의 가장 근본적인 가치를 직접 확인해낸 세대. 그래서 스스로 사회를 다시 한번 바꾸어낸 세대. 그 어떤 무기나 강제나 폭력도 없이 그 변화를 만들어낸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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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을 가장 함축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상징은 ‘촛불’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대를 열어낸 세대를 ‘촛불세대'라 부를 수 있겠다. 

 

 

-3. 촛불세대의 내적, 외적 특징

앞서 열거했던 세대들은 주로 수십년에 걸친 연령대의 폭을 지닌다. 그에 비해 범위가 좁은 세대 구분도 있다. 베이비부머 세대, 386세대 등. 그 이후 같은 시대 안에서도 세대의 구분은 늘어간다. 88만원 세대나 N포세대 등 불과 십년도 안되는 터울 안의 사람들이 하나의 세대로 불리기도 하며 그 범위는 점점 좁아진다. 

 

조부모부터 손주들까지의 일생이 크게 다르지 않았던 시대에는 이 모두를 한 세대라 지칭할 수 있었다. 반면 현대사회에서는 부모 자식은 물론 그 사이 연령대의 사람들이 켜켜이 각각 다른 모습의 일생을 살아간다. 장년이 돼서야 인터넷을 만난 사람과 태어날 때 부터 인터넷을 끼고 산 사람, 스마트폰의 터치가 아직도 어색한 사람과 그림책보다도 터치스크린을 먼저 만져본 사람은 서로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같은 공간과 시간 속에서 서로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 더욱 빨라진 사회의 변화가 세대의 구분을 더욱 잦아지게 하고, 비록 나이가 같더라도 서로 공유하기 어려운 삶의 모습들을 만들어낸다.

 

그렇다고 현대의 우리가 아주 미세한 세대들과 삶의 모습들로 분화 됐다고 볼 수만은 없다. 촛불세대가 열어낸 이 시대는 지금의 10대든, 50대든 함께 경험하는 중이다.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였던 그들의 연령대는 어느 한쪽에 편중되지 않았고, 그 결과로 세워진 현 정권은 모든 연령대가 똑같이 경험하고 있다. 그들의 하루하루가 전혀 다른 모습일지라도, 그들이 함께 만들어낸 시대는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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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일렁이는 물결과 같다. 수많은 돌이 던져지면 수많은 짧은 파장이 일게 되지만, 그 파장들 모두가 올라타 있는 커다란 파장 또한 존재한다. 현대인들이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긴 하지만, 같은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에 공유하게 될 커다란 흐름 역시 분명 존재하는 것이다. 모두가 함께 올라타 있는 거대한 시대의 흐름, 그 안에서 요동치는 작은 파장들, 이 둘 중 어느 하나가 더 중요하거나 중요치 않은 것은 아니다. 이 모두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인 것이다. 

 

촛불로써 새로운 시대를 열어냈다는 것이 촛불세대의 외적 정의라면, 같은 세대이면서도 완전히 다른 삶의 모습들이 구분된다는 점, 이것이 바로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촛불세대가 지니는 내재적 특징이다. 과거에는 크게 일렁이는 파장만이 존재했지만, 현대 사회에는 파장 위에 다양한 짧은 파장들이 수없이 일렁이고 있는 셈이다. 

 

분명 손을 마주잡고 같은 시대를 열어냈지만 어떤 문제에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삶. 위협적인 적으로 보였던 사람의 이면에서 나와 똑같은 삶의 모습을 발견하는 충격. 이런 특징은, 그 세대에 속한 당사자인 우리에게 낯선 피로감을 안긴다.

 

 

-2.  다시, 뱅뱅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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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뱅이론이란 말은 뱅뱅이라는 청바지 브랜드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했다. 아무도 안 입는 것 같아 보였던 브랜드 ‘뱅뱅’이 청바지 시장의 압도적 1위 매출을 올리고 있었다는 사실이 주는 충격감에서 유래했다. 그리고 비슷한 충격감을 주는 상황을 설명하는 데에 쓰였다. 

 

이 말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게된 것은 제19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던 2012년 4월이었다. 당시 정권 심판 여론에 힘입어 야당이 압승을 거둘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선거 결과는 여당의 판정승으로 드러났다. 이는 야권 지지층 뿐 아니라 전체 여론에 놀라움을 안겼다. 뱅뱅이론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게 된 건 그 충격감이 앞서 말한 유래와 유사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최초의 게시물에서 나는 뱅뱅이론을 이렇게 요약했다. 

 

"남들보다 더 넓은 세계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부류가, 실질적으로 훨씬 더 넓은 세계를 보고 있는 다른 부류의 존재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사태. 이 사태를 기반으로 하는 일종의 사회관계론."

 

이 요약을 통해 뱅뱅이론이 필요로 하는 몇가지 전제를 정리할 수 있다. 우선 사태를 경험하는 주체가 어떤 ‘부류’ 여야 한다. 그저 어떤 개인이 자신의 무지를 깨닫는 것과는 다르다. 유사한 형태의 무지를 깨닫고 서로 그 충격을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충분히 많은 숫자여서, 이들이 그저 특이한 소수로 간주되지 않을 정도여야 한다. 

 

또 한가지는, 그 부류가 스스로에게 지니는 자의식이다. 그 자의식은 지나치게 편협하거나 독단적이지 않아야 한다. 비논리적인 명제를 아무 근거 없이 신봉해오던 사람들이 언젠가 그 명제가 틀렸음을 깨닫는 상황은 뱅뱅이론에 해당하지 않는다. '더 넓은 세계를 보고 있다’는 자의식에는 어느정도의 자기 객관화가 포함돼있어야 하며, 그 부류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이 보더라도 어느정도 수긍할 수 있는 논리가 갖춰져있어야 하는 것이다. 최소한 이 부류 내부적으로는 그렇게 스스로를 평가하고 있어야 한다. 

 

끝으로, 그들에게 충격감을 안겨다줄 다른 부류가 존재해야 한다. 단순히 그들 사이에 공유되고 있는 상식의 반례가 한 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숫자로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그 숫자는 이들에게 충분한 충격을 줄 수 있을 만큼 많아야 한다. 그 충분한 충격은, 보통 상대 부류의 숫자가 나와 같은 부류의 숫자보다 많다고 여겨질 때에 발생한다. 

 

 

-1.  새로운 시대, 갈등, 그 속에서의 뱅뱅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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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뱅이론에서 다루는 상황을 요약하면 ‘스스로 합리적이라는 자의식을 공유하는 집단과, 그 집단내 공유되는 상식에 모순되는 다른 집단 사이’ 의 상황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구도 아래에서 발생하는 충격감은 단지 정치나 의류 브랜드 시장점유율에 멎지 않는다. 세상엔 아무리 생각해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부류가 생각보다 너무 많고, 이들이 내 삶에 영향을 끼치면서 그저 방관할 수만은 없는 상황은 여러 방면에 걸쳐 드러난다. 

 

인터넷 게시판이나 SNS에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어떤 비상식적인 사람들에 대한 글을 올리면, 어디선가 그런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나타나 비추를 누르거나 반박 댓글을 단다. 충분히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근거로써 다시 반박하면, 그들은 주관적이고 비논리적인 방식으로 내 입을 틀어막으려 한다. 그저 ‘이상한 사람들’으로 치부하려 해도, 상대의 수가 더 많거나 숫자가 비등비등한 나머지 오히려 내가 이상한 사람으로 치부되며 악성 댓글이나 따돌림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런 형태의 갈등들 중 어떤 갈등은 여러차례 반복되고 다양한 공간에서 재현되면서 고착화된다. 사람들은 이렇게 고착화된 갈등을 일종의 금기로 삼기도 하지만, 의도적인 분란을 일으키기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 한편 어떤 갈등은 느닷없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나타난다. 내가 신뢰하고 있었던 집단 사이에서 갑작스레 비상식적인 부류가 모습을 느러내거나, 오래 알고 지내던 지인 사이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아무리 피해가려 노력해도 다른 누군가에 의해 갈등상황이 발생하거나, 또는 의도치 않게 스스로 갈등에 빠져들기도 한다.

 

이러한 특성은, 오랜 시간 존재해왔던 갈등이 지니던 특성과 차이를 보인다. 보다 전통적인 형태의 갈등 구도 중 민족, 종교, 사상 등의 갈등은 대체로 한 공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과 다른 공간의 사람들 사이의 갈등이었다. 그러므로 갈등상황은 주로 두 집단의 공간적 경계에서 벌어지거나, 또는 어떤 공간을 서로 차지하려 할 때 벌어졌다. 또 다른 전통적인 갈등 형태인 세대간 갈등의 경우, 한 세대가 다른 세대를 비교적 쉽게 구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갈등상황을 예상하거나 피하기가 비교적 용이했다. 

 

하지만 이 시대의 갈등은 각각의 주체가 훨씬 더 교묘하게 혼재돼있다. 어떤 사람을 보고서 나의 상식과 전혀 다른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인지를 알아내거나, 또 이해안가는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 이들이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예상하는 것이 어려워진 것이다. 갈등을 예상하기가 더 어려워졌고, 그래서 피하기도 어렵다. 이는 마치 지뢰밭 가운데 서있는 것 처럼, 어디에서 발발할지 모르는 갈등의 가능성에 둘러 쌓인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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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의 발견, 그리고 그들의 숫자가 나와 같은 부류만큼, 혹은 더 많음을 발견할 때의 충격, 생활 속에서 그들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주는 당혹감, 이것들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극심한 피로감을 준다. 이러한 피로감은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닐 뿐더러,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만 느끼는 것도 아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이런 피로감을 느낀다. 이 피로감은 단지 어떤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일방적으로 가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주고 받는 중이다. 

 

이 시대의 이러한 특징은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볼 수 있을까. 만약 문제라면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그것의 원인은 무엇이고, 그것이 끼칠 영향은 무엇인가. 

 

이 질문들이 바로 6년이 지나 새로운 시대를 맞은 지금, 뱅뱅이론이라는 주제를 다시 끄집어낸 이유이다. 

 

 

0. 시작

촛불세대는 2010년대 후반 대한민국을 새로운 시대로 끌어올린 주역으로서 우리 모두를 공통적으로 일컬으려 만든 말이다. 반면, 뱅뱅이론은 이 시대에 빈번히 발견되는 몰이해, 비상식, 무지에서 비롯된 갈등과 충격과 피로감을 다루려고 만든 말이다. 우리 모두를 하나로 관통하는 말이 촛불세대라면, 왜 우리는 서로 이렇게나 다른지를 구분하는 말이 뱅뱅이론이다. 

 

이 둘은 서로 모순적으로 보인다. 그래서 촛불세대의 배경을 파고드는 것과 뱅뱅이론의 배경을 파고드는 것은 서로 다른 방향의 작업으로 예상될지 모른다. 하지만, 그 둘은 서로 다르지 않다. 동일한 방향으로의 작업에서, 촛불세대와 뱅뱅이론 모두를 이해할 수 있다. 

 

이 작업은,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갈등과 대립의 면면을 정리하고 그 원인과 배경을 탐색하는 것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이 시대가 그 어느때보다 온라인 여론의 영향을 크게 받는 만큼 주로 온라인 상에서 발견되는 갈등과 대립을 다루는 비중이 클 것이다. 물론 그 파장이 오프라인으로 이어지는 사례들도 다수 포함되겠지만, 온라인이 일상화 되기 이전의 전통적인 시각으로 온라인 여론을 분석하려 하는 낡은 시도는 피하려 노력할 것이다. 

 

한 시대를 사는 우리는 왜 이토록 다른가. 이렇게나 다른 우리는 함께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다음장 부터 본격적으로 알아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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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