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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각총리대신(수상)

 

수상과 내각이 어떤 일을 하느냐는 물음에 대한 가장 심플한 답은 아마 “정치”가 아닐까 싶습니다. 다만 헌법은 좀 더 구체적으로 그 내용을 정해 주고 있어요. 먼저 수상, 즉 내각총리대신의 일에 대해 제72조가 가르쳐 주네요.

 

第 72条 内閣総理大臣は、内閣を代表して議案を国会に提出し、一般国務及び外交関係について国会に報告し、並びに行政各部を指揮監督する。

 

이 조문에 의하면 “내각총리대신은 내각을 대표하여 의안(議案)을 국회에 제출하고, 일반 국무 및 외교관계에 대해 국회에 보고하고 또한 행정 각부를 지휘감독한다”고 합니다. 정리하면 3가지로 나뉩니다. 첫 번째는 내각을 대표해서 의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일입니다. 두 번째는 일반 국무와 외교에 대해 국회에 보고하는 일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가 행정각부를 지휘감독하는 일이지요.

 

크게 문제 될 부분은 없지만 세 번째 “지휘감독”에 대해서는 약간의 논의가 있는 것 같아요. 내각에 대한 사항을 더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내각법이라는 법률이 있어요. 그중에 “내각총리대신은 각의(閣議 ; 내각을 구성하는 대신들의 회의)에서 결정한 방침에 기초하여 행정각부를 지휘감독한다”는 규정(제6조)이 있는데요, 이 규정을 단순히 읽으면, 각의를 거치지 않은 사항에 대해 수상이 지시를 했다면 그것은 수상으로서의 직무가 아니게 되지요. 수상으로서 지휘감독은 각의의 결정이 있다는 것이 전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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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이런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총리대신을 맡았던 타나카 카쿠에이(田中角栄) 수상이 미국 항공기 제조사인 록히드사에서 5억 엔(약 500억 원)을 받고 운수대신(運輸大臣)으로 하여금 전일본항공(ANA)의 항공기 선정・구매에 관여하도록 했어요. 수상이 운수대신에게 전일본항공이 록히드사의 항공기를 구매하도록 시킨 거지요. 이 사건으로 타나카 수상의 비서도 기소됐는데, 수상이 받은 5억 엔이 “뇌물”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문제됐어요.

 

쟁점이 된 것은 타나카 수상의 지시가 “수상으로서의 업무”에 해당하는지 여부였습니다. 5억 엔이 뇌물이 되기 위해서는 그 돈이 수상으로서의 업무와 관련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이에 최고재판소는 “(내각총리대신은) 적어도 내각의 명시적 의사에 반하지 않는 한, 행정각부에 대해 일정한 방향으로 처리하도록 지도, 조언 등 지시를 할 권한을 갖춘 것”으로 판단하고, 각의의 결정 없이 수상이 지시한 경우에도 그 지시가 수상의 업무일 수 있다고 했습니다(最大判平成7.2.22. 刑集49巻2号1項). 이 판결에 대해서는 수상의 업무를 너무 넓게 인정한다는 비판적 입장도 있었지만 수상의 권력 남용을 방지하는 관점에서는 타당한 판단이 아닐까 싶네요.

 

수상에 관한 규정은 제74조와 제75조의 2개가 남았는데, 하나는 법률・정령에 대한 서명, 또 하나는 국무대신의 소추(訴追 ; 형사사건으로 검찰관이 공소를 제기하는 것)에 대한 동의가 있습니다.

 

第74条 法律及び政令には、すべて主任の国務大臣が署名し、内閣総理大臣が連署することを必要とする。

 

제74조는 “모든 법률 및 정령에는 주임의 국무대신이 서명을 하며, 내각총리대신이 연서(連署 ; 이름을 이어 쓰는 것)할 것을 필요로 한다”고 규정합니다. 법률이나 정령은 분야마다 담당 관청이 있어요. 약품의 안전성에 관한 법이면은 후생노동성, 도로교통에 관한 거면 국토교통성 이런 식으로요. 각 법률, 정령마다 소관하는 관청이 있는 바, 새로 법률・정령이 만들어지면 소관 관청의 대신(大臣)이 서명하게 돼 있어요. 이들 법령을 집행하는 책임을 명확하게 하는 차원인데, 수상도 같이 서명합니다.

 

第 75条 国務大臣は、その在任中、内閣総理大臣の同意がなければ、訴追されない。但し、これがため、訴追の権利は、害されない。

 

제75조는 이런 규정입니다. “국무대신은 그 재임 중, 내각총리대신의 동의 없이는 소추되지 아니한다. 단 이 때문에 소추의 권리는 해쳐지지 아니한다”는 거지요. 내각의 구성원인 대신은, 대신으로 있는 한 범죄 혐의가 있더라도 수상이 동의하지 않으면 기소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사실상 체포도 되지 않을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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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짓을 했는데 왜 기소할 때 수상의 동의가 필요하냐는 의문은 당연합니다. 나름의 이유가 있어요. 갑작스레 대신이 구속되는 사태가 일어나면 내각의 직무 집행에 지장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지요. 물론 대신을 그만둔 후에는 기소될 수 있고, 수상의 동의가 없이 대신 자리에 있는 동안에는 공소시효가 진행이 안 된다고 해석돼 있어요. 때문에 검찰은 수상의 동의를 얻거나, 얻지 못하더라도 대신이 퇴임한 후에 기소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잠깐! 대신이 재임 중에는 소추당하지 않는다고 해서 체포・구속까지 할 수 없을까요? 제75조의 “소추”에 체포・구속까지 포함되느냐는 문제입니다. 포함이 된다면 대신의 재임 중에는 수상의 동의 없이는 체포할 수 없고, 포함되지 않는다면 기소는 할 수 없으나 체포・구속은 할 수 있다는 결론이 됩니다.

 

포함된다는 입장은 대신의 신체의 자유를 강조하고, 포함되지 않는다는 입장은 원래 법령용어로서의 “소추”가 재판이나 징계, 파면을 의미한다는 점을 중시합니다. 이 문제는 딱히 주목받지 않았었는데 2009년에 갑자기 각광(?) 받게 됐습니다. 당시 하토야마 유키오 수상이 어머니에게 1억 8,000만 엔(약 18억 원)의 자금을 원조 받았음에도 정치자금 보고서에 기재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거지요(5년간의 총액은 무려 9억 엔).

 

그래서 제75조에 말하는 "국무대신"에 수상도 포함되냐는 문제가 급부상했습니다. 어차피 수상 본인이 자기에 대한 소추를 동의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운데 당시는 좀 화제가 됐습니다. 그 외에도 하토야마 수상은 정치자금 보고서에 사망한 사람에게 헌금을 받았다는 기재가 있기도 했지만, 결국 검찰은 혐의가 충분하지 않다며 기소는커녕 수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끝났네요.

 

여기까지 수상의 역할을 살펴봤습니다. 수상은 내각을 대표하며, 행정각부에 대한 지휘・감독권이 있다는 것이 포인트이지요. 대통령제와 달라서 와닿기가 좀 힘들 수 있는데, 다시 말하면 일본헌법상 행정권은 어디까지나 내각에 있는 것이지, 수상 단독으로 행정권을 행사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수상이 내각을 잘 통솔해서 리더쉽을 발휘하는 것까진 막지 않지만 말이지요.

 

다음으로 행정권을 갖고 있는 내각의 역할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2. 내각

 

第 73条 内閣は、他の一般行政事務の外、左の事務を行う。

一 法律を誠実に執行し、国務を総理すること。

二 外交関係を処理すること。

三 条約を締結すること。但し、事前に、時宜によつては事後に、国会の承認を経ることを必要とする。

四 法律の定める基準に従ひ、官吏に関する事務を掌握すること。

五 予算を作成して国会に提出すること。

六 この憲法及び法律の規定を実施するために、政令を制定すること。但し、政令には、特にその法律の委任がある場合を除いては、罰則を設けることができない。

 

내각의 역할은 제73조가 규정하고 있습니다.

 

먼저 “내각은 다른 일반행정사무 외에 다음 사무를 행한다”고 해서, 일반적인 행정사무를 맡은 것이 밝혀져 있지요. 행정권을 언급했을 때 나왔듯이 행정권이라는 광범위한 권한을 내각이 갖고 있는데, 이 조문에서도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셈이네요.

 

1. 법률을 성실히 집행하고 국무를 총리할 것

2. 외교관계를 처리할 것

3. 조약을 체결할 것. 단, 사전에, 사정에 따라서는 사후에 국회의 승인을 거칠 것을 필요로 한다

4. 법률이 정한 기준에 따라 관리(官吏 ; 공무원)에 관한 사무를 장악할 것

5. 예산을 작성하여 국회에 제출할 것

6. 이 헌법 및 법률의 규정을 실시하기 위하여 정령(政令 ; 정부의 명령)을 제정할 것. 단 정령에는 특히 그 법률의 위임이 있는 경우 말고는 벌칙을 마련치 못한다

7. 대사(大赦 ; 정령에 의해 특정 “범죄”를 대상으로 처벌을 면제하는 것), 특사(特赦 ; 특정 “사람”을 대상으로 처벌을 면제하는 것), 감형, 형의 집행의 면제 및 복권(復權 ; 유죄판결을 받아 정지된 자격이나 권리를 회복시키는 것)을 결정할 것

 

위에 열거된 사항 외에 내각이 하는 일로 이미 언급한 것이 텐노의 국사행위에 관한 조언과 승인(제3조, 제7조), 최고재판소 장관의 지명(제6조 제2항), 나중에 나올 기타 재판관의 임명(제79조제1항, 제80조제1항), 국회의 임시회의 소집(제53조), 예비비(예상치 못한 예산 부족에 대비해서 미리 확보해 놓을 예산)의 지출(제87조), 결산 심사 및 재정 상황의 보고(제90조제1항, 제91조) 등이 있네요. 엄청나게 다양합니다.

 

내각이 이 일을 할 때에는 꼭 각의를 거쳐야 됩니다(내각법 제4조제1항). 수상과 각 대신 전체의 회의를 거쳐야 된다는 말인데, 중요한 것은 모든 대신의 의견이 일치해야 내각의 의사를 결정할 수 있다는 점(전원 일치 원칙), 각의의 내용에 대해서는 고도의 비밀이 요구되는 점(비밀회 원칙)입니다. 이 두 가지 원칙은 법적 근거는 없고 관습상 지켜지고 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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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깐! 일본의 삼권분립 소개에서 언급했듯이 일본은 의원내각제를 취하고 있어요. 깊이 들어가면 굉장히 다양한 논의가 있긴 한데 간단히 말하면 내각이 성립・존속되려면 국회의 신임이 필요하고, 내각은 국회에 대해 “연대책임”을 진다는 겁니다. 내각의 성립이나 유지에 대해서는 삼권분립 이야기를 했을 때 이미 짚었지만 “연대책임”이 도대체 어떤 뭘까요?

 

“연대”는, '내각을 구성하는 대신들의 의견이 일치돼야 한다'는 뜻으로 보는 게 일반적입니다. 가령 각의에서 의결하려는 항목에 대해 반대하고 싶은 대신이 있다면, 스스로 퇴임하거나 수상이 대신을 교체하게 되지요. 물론 특정 대신이 그 소관사항에 대해 개별적 책임을 지는 것까지 헌법이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국회에서 특정 대신에 대한 책임을 추구하는 의결을 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봐요. 단 어디까지나 정치적 책임을 추구하는데 그치기 때문에 강제적으로 사직시킬 효력은 없는 거지요.

 

“책임”은, '내각이 국회에 대해 지는 책임은 어디까지나 정치적 책임'이라는 게 통설입니다. 내각이 무슨 잘못을 했다고 반드시 국회에 대해서, 아니면 국회를 위해서 뭔가(특히 총사직)를 해야 되는 것은 아니란 뜻이지요. 다만 중의원이 더 이상 내각에 정치를 맡길 수 없다고 의결한 경우, 내각은 중의원 해산과 총사직의 양자택일을 하게 되지요. 만약 총사직을 택할 경우 사실상 법적 책임을 진 것이나 다름이 없지만 말이지요.

 

이상으로 일본 헌법상 행정권에 관한 부분을 알아보았습니다. 수상이 아니라 내각이 광범위한 행정권을 갖고 있고, 일본의 행정부는 국회(특히 중의원)의 신임이 있어야 존립할 수 있는 의원내각제에 입각한다는 것이 포인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