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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 추천39 비추천0

 

 

난 오랫동안 광주에 살았고 이건 내가 유치원 다닐 때의 일이야. 당시 난 교회 부속 유치원에 다니던 꼬마였어.

 

그날은 좀 이상했던 걸로 기억해. 내가 다니던 유치원은 도청과 멀이 않은 곳에 있었는데, 생전 처음 보는 차들이 다니는 거야. 그땐 길거리에 노란택시가 지나가도 눈에 띄어서 "노란택시~"하며 옆사람 꼬집는 놀이를 하던 때였으니, 시커멓고 소리가 큰 차는 어땠겠어. 탱큰지 장갑찬지는 모를 꼬마였지만 기억만은 생생해.

 

암튼 여느 때와 같이 유치원에 갔는데 문이 굳게 잠긴 거야. 이상하다 싶었지. 나 말고도 3명 정도 친구들이 같이 있었어. 우리끼리 오늘 빨간날인가? 아니지? 하며 30분을 기다렸는데,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안에선 응답이 없는 거야.

 

게다가 주변 도로에선 시커먼 트럭이랑 아스팔트를 긁는 듯한 소리를 내는 차소리가 났어. 덜컥 겁이 났지. 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집으로 냅다 뛰어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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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도착하니 울엄마가 빛의 속도로 내 손을 잡아끄셨어. 엄니는 안방에 들어가자마자 이불(울엄마 혼수이불인데 두꺼운 겨울이불이었어. 아까워서 아무리 추워도 잘 안 꺼내던 이불이야)을 나한테 뒤집어 씌우는 거야. 난 어안이 벙벙했지. 겨울도 아니고 잘 시간도 아닌, 해가 창창한 날이었는데 말이야.

 

근데 엄니한테 물어도 엄니가 답을 안 해주는 거야.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이불 안 어둠속에서 엄니가 떨고 있었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해.

 

나도 덩달아 무서웠지. 얘들은 그러잖여. 누가 울면 따라 울고. 암튼, 우린 방안에 움크리고 있었고 창너머로 간간히 천둥치는 소리가 들렸어. 난 비가 오나? 그래서 엄니가 무서워하나? 싶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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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일이 지나(사실 이 중간의 기억이 없어. 머리속에선 그 이불 속 안부턴 암흑이야), 김장 때인 걸로 기억해.

 

동네 아줌마들이랑 울엄니가 마당에서 김장 담그는 장면으로 이어져. 그때 주변에서 놀다가 어른들이 무척 수군대며 이야기 나누는 걸 들었어.

 

 "앞집 신혼부부 있잖여. 신랑이 아직도 집에 안들어왔대."

 

 "어째야쓰까.. 짠해서.."

 

그러곤 다들 말없이 김장만 담그시는 거야.

 

그제서야 난 `아! 맞어. 앞집 아저씨` 했어. 생각이 번뜩 나더라구.

 

울앞집 하늘색 대문집엔 신혼부부가 살았어. 당시 난 바가지머리라 불리던 버섯돌이 같은 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이건 80년대 꼬마 사내들에겐 초 레어한 헤어스타일이었지. 그런 내 머리를 귀엽다고 쓰다듬으며 눈깔사탕을 자주 사주시던 아저씨였어. 아저씨라 해봐야 내 눈에 아저씨이지, 생각해보면 고작 20대 중반이나 후반 됐을 나이였지. 

 

근데 그 아저씨가 안 보이는 거야. 어디 가셨나?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도 잠시였어. 난 꼬마였으니까.

 

얼마 뒤 남은 새댁이라 불리던 하늘색 대문집 아줌마도 이사를 갔더랬지. 그때의 기억은 거기서 끊겨. 엄니도, 주변 사람 누구도 내가 대학 갈 때까지 그 당시 일을 꺼내지 않았어.

 

그때 광주는 그래야만 살아남는 분위기였던 거 같아. 다들 입이 있어도 말을 못 하는 분위기. 아주 나중에야 알게 됐지. 그때 그 아저씨가 5.18 때 행방불명 된 거구, 아마도 그분은 돌아가셨을 거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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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월동 갈 때마다 사진이 남아있는 무덤 앞에서 그 아저씨 얼굴을 떠올려보곤 했어. 근데 당최 그 아저씨 얼굴이 제대로 떠오르지가 않는 거야. 아주 하얗게 지워져있어. 그때 울막내 이모랑 사귀던 아저씨 얼굴은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르는데, 그 아저씨 얼굴은 아무리 떠올려봐도 기억이 안 났어. 몸 형체는 떠오르는데 얼굴은 온통 하얗게 지워져있어. 

 

시간이 흘러 흘러 난 대학을 가고 짱똘을 들었어. 그제서야 5.18 당시 사망자가 가장 많이 나온 동네가 우리 동네란 걸 알게 됐지. 울동네 윗 동네가 <모래시계>나 <화려한 휴가>에 나오는 기독교병원이고 근처에 도청이 있다보니 그랬던 거겠지. 

 

처음 짱돌을 들고 나왔던 거리에서, 꿀꿀이차(페퍼 포그 최루탄을 다연발로 쏘는 차)에서 쏟아지는 최루탄 연기보다 나를 더 얼어붙게 만들었던 두려움은 바로 총소리였어.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겁이 난다거나 무섭다 정도가 아니라 근원적인 공포랄까. 내 마음 깊은 곳에 잠자고 있던 그때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그 페퍼 소리에 난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어.

 

집회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내내 그 소리가 주는 압박감에 힘들었어. 내가 특별히 심약했거나 그런 건 아냐. 되려 겁대가리를 상실해서 개피 본 적이 많았지.

 

그리고 군대 사격장에서 다시 그 소리를 듣게 됐어. 내가 왜 페퍼소리를 총소리로 듣게 되었는지 그때 알게됐어.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화약 터지는 소리는 비슷비슷하니까.

 

군대 제대 후 일이야. 어느 날, 비가 많이 오고 천둥벼락이 치는 날이었어. 울엄니가 말야 유난히 무서워서 어쩔 줄 몰라 하시는 거야. 문득 생각해보니 울엄닌 예전부터 유독 벼락만 치면 우리보고 빨리 들어오라 성화에다 집안 문단속에 느닷없이 두꺼운 겨울이불을 꺼내셨더랬지. 

 

추위를 잘 타시니 그런가 보다 했는데, 머리가 좀 크고 시간이 흘러보니 그게 예사롭게 보이진 않더라구. 울엄니, 여장부 스타일에 지금도 자식들한테나 누구한테 기 안 죽는 분이신데. 그런 행동은 유별나다 싶더라구. 그냥 무서워하는 정도가 아니라 벌벌 떠시니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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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상처와 희생은 부상자나 돌아가신 분에게만 한정되는 게 아닌 것 같아. 울엄니와 같이 지금도 맘 속에 응어리진 한이 남아 있는 분들이 많을 거라구. 듣고도 보고도 입 없는 사람처럼 가슴앓이 해야했던 그날, 5월 광주 시민들에게 전두환 신군부가 준 상처와 죄악은 말로 다 설명하기 어려워.

 

왜 광주에서 전두환 찢어 죽어야 한다고 하는지 알고 싶으면, 망월동에 가보길 권해. 당시 사진들과 돌아가신 분들의 묘역과 그 후 광주의 아들딸을 자처했던 민주열사들을 살면서 한번은 보고 가길 권해.

 

그 담엔, 굳이 다시 찾지 않아도 좋아. 그 슬픔과 정신을 담고 각자 생활공간에서 열심히 살아줘. 어디서 무엇을 해도 좋아.

 

해마다 5월 광주에 와 묵념하고 기리지 않더라도 그날 쓰러져 갔던 사람들의 정신을 기억해 줬으면 해. 80년의 그분들을 닮은 주변의 약자의 삶에 대해서도 작은 관심을 가져주면 더더욱 좋고.

 

그러면 돼. 거창한 거 아니여도 돼. 그 정도라도 해주면, 난 그게 오월정신 계승이라고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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