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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정복 전쟁은 가히 세계사적이라 할 만하다. 적어도 몽골 이전에는 ‘세계 제국’이라 일컬을 나라가 없었다. 로마는 지중해 언저리를 지배했을 뿐이고 알렉산더는 페르시아가 이뤄 놓은 것을 점령했을 뿐 인도를 넘어서지 못했고 중국 문명과는 조우도 하지 못했다. 페르시아 역시 그리스를 뛰어넘지 못하고 고꾸라졌다.

 

그러나 몽골은 자그마치 러시아를 넘어 폴란드와 헝가리, 동부 독일까지 짓밟았고 동쪽으로는 사할린섬에까지 상륙했다. (사할린이 일본 본토와 멀지 않다는 걸 알았다면 남해를 가로지를 것 없이 북쪽에서 밀고 내려갔을 수도...) 그 정복의 행보 중에 고려도 들어 있었고 고려는 30년 항전을 치르게 된다.

 

항전이라고 했지만, 그 항전은 ‘거국일치’는 아니었다. 최 씨 정권은 강화도에 틀어박혀 최정예 부대의 호위를 받으며 호화로운 생활을 즐겼고 본토의 백성들은 농사는 농사대로 짓고 세금은 세금대로 내고 몽골군과 싸우며 등골이 빠지는 상황이었다. 최 씨 정권은 자신의 정권 유지를 위해 ‘자주적’일 뿐, 고려 백성은 안중에도 없었다.

 

왕을 손아귀에 쥐고 있던 최 씨 정권은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약화시키는 어떤 상황도 허락하지 않았다. 몽골 칸 몽케가 사신을 파견하면서 “백성은 안 나와도 좋다 왕만 나와서 너희를 맞으면 된다.”고 하는 상황에서도 최항은 왕의 출륙을 막았고 분노한 몽골군은 전국을 휩쓸었다.

 

이 무렵 등장하는 것이 이현이라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고려의 고관으로서 몽골에 사신으로 갔다가 억류돼 몽골인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거의 몽골인이 다 돼 버린다. 고려의 외교관이면서도 몽골의 이익에 더 밝고, 몽골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는 고려의 국익 따위는 헌신짝처럼 버리는 소인배였던 것이다. 그가 몽골인들에게 고해바친 고려의 비밀은 이것이었다.

 

"지금 강화도에 조정이 들어가 있지만, 그를 유지할 경제적 지반은 모두 육지에 있습니다. 추수하기 직전에 대군이 고려에 들어간다면 강화도 사람들은 세금을 거둘 수 없어 궁지에 몰릴 것입니다.”

 

즉 고려의 초토화 전략을 진언한 셈이다. 추수가 끝난 뒤 겨울에 공격하지 말고, 추수 전 가을에 공격하고 그 땅을 작살내 버리면 강화도는 쫄쫄 굶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그 후 몽골군이 전라도 해안가까지 진군하고 수군까지 조직해 서남해의 섬들을 공격했으니 이현은 남부 곡창지대의 세곡이 배를 통해 강화도로 연결된다는 사실까지 다 누설한 셈이었다.

 

이미 그는 고려 외교관이 아니라 몽골과 그들에 부역하는 이들의 앞잡이가 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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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기야 그는 몽골 5차 침입의 앞잡이가 돼 고려에 들어왔다. 각지의 성을 어르고 협박하여 항복시키는가 하면 항복한 고려 군대와 백성을 이끌고 고려를 공격하기까지 했다. 몽골의 2차 침입 때 몽골군 대장 살리타이를 사살한 김윤후가 이끄는 노비와 천민 부대가 사수했던 충주성 전투에서 이현은 성 바깥에서 몽골군과 함께 충주성을 공격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고려 조정에 보냈던 서신 일부를 보면 그는 자신의 의무를 잊고 몽골에 동화된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의 일 처리를 보니, 전에 들었던 것과 달리 사람 죽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만물의 생명을 사랑하고 아낍니다.” 얼씨구 몽골군이? 몽골인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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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은 몽골군의 앞잡이가 돼 충주성을 공격했을 뿐 아니라 자신이 몽골인이 다 됐다고 생각한 것인지 화의가 성립한 뒤에도 몽골인들의 점령지 감시자라 할 다루가치를 자처하면서 고려에 남았다. 그러면서 욕심을 부려 백성들의 재물을 긁어모으고 고려 조정을 우습게 보았다. 이 비루한 인간 이현은 은세공품을 매우 탐내 은비녀를 비롯, 은으로 만든 것들을 보는 대로 빼앗았고 은비녀만 커다란 상자 그득이었다고 한다.

 

이런 인간을 집권자 최항이 두고 볼 리 없었다. 이현은 아들들과 함께 최항의 손에 목숨을 잃는다. 자신은 몽골의 압도적 무력 앞에 고려 백성들을 구하고 고려 백성들이 몽골의 큰 힘을 알 권리를 주장할 의도였다고 주장하며 자신은 세상을 밝히기 위해 그런 것이라고 악을 썼다고 전하지만 백성들도 이현을 용서하지 않았다. 백성들은 목이 달아난 이현의 시체를 발로 차면서 욕설을 퍼부었다. “빌어먹을 외교관 놈아. 네가 몽골에 붙어 처먹은 은이 얼마냐.”

 

나자빠진 이현의 비대한 몸뚱이를 보며 한 문관이 남긴 시가 고려사 부록에 전한다. 작자는 항상 그렇듯 미상이다. 그리고 여전히 사진은 잘못 들어갔다. 버그인가 이상한 사진이 자꾸 붙는다.

 

干堞跌何狗說朗 간첩질하구설랑

방패와 성첩 무너졌다고 웬 개새끼가 밝음을 논하는가

 

國民意軋權李黨 국민의알권리당

권세 넘치는 이현의 당을 수레바퀴에 깔아뭉개 죽이고 싶은 게 나라 백성의 뜻

 

愛夷沮常廩塞饑 애이저상늠색기

오랑캐 아끼고 도리 저버리니 창고와 요새가 굶주리네

 

入哀談魔進羅浪 입애담마진나랑

슬픈 이야기 들어서니 악마가 나아와 세상 뒤덮고 넘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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