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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주

 

1909년 10월 26일, 항일의병장이자 사상가인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해, 하얼빈 의거를 성공시킵니다.  

 

사용된 권총은 벨기에 FN사가 제작한 "브라우닝 M1900"으로 이 총은 일본으로 넘겨져 법정에 증거로 제출되었으나, 이후 그 행방을 알 수 없어 실물이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본 시리즈는 안중근 의사 서거 110주년을 맞아, 그 총의 행방 및 복원을 위해 고군분투한 이야기를 담은 프로젝트로 매주 연재 예정입니다.       

 

 

 

 

 

하얼빈 안중근 기념관이 나름 배려를   아닐까?”

 

그냥 얻어걸린  아닐까? 뿌려진 양이 얼만데...”

 

그래도 어떻게 의미를 찾으면 찾을  있겠네. 브라우닝이 제일 먼저 만든 자동권총, 마지막으로 만든 자동권총이니까.”

 

잃어버린 총을 찾아서 시작은 하얼빈에 있는 안중근 기념관에 전시  있는 브라우닝 하이파워 권총 때문이다.  브라우닝이 최초로 설계 제작한 M1900, 그리고 그가 마지막으로 설계한 M1935.

 

( 브라우닝은 1926 사망했다. M1935 브라우닝이 사망한  FN  기술진들이 설계를 이어받아 완성했다. 사람들의 기준에 따라 ‘브라우닝이 만든 마지막 이라 불리기도 하고, ‘브라우닝이 만들지 않은 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이야기는 브라우닝이 있었기에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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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존 모지스 브라우닝(John Moses Browning)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몰몬교도

총기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유진 스토너,  개런드와 함께 미국의 3 총기 설계자로 분류되는 인물.”

 

개인적으로 마지막 평가는 잘못됐다고 본다. 유진 스토너는 M-16 설계한 인물이고,  개런드는 M1 개런드 소총을 만든 인물이다. 그렇다면  브라우닝은? 권총부터 기관총까지 총이라 불리는 모든 종류의 총을 만든 인물이다. 유진 스토너와  개런드를 브라우닝과 동일 선상에서 논하는  자체가 브라우닝에게는 실례다. 현재 쓰이고 있는 현대총기류의 기반은  브라우닝으로부터 시작됐고,  브라우닝이 있었기에 안전한 ‘자동사격   있게  거다. 아직까지 대체되지 않고 쓰이고 있는 총이 있을 정도니(MG 50) 그가 어떤 존재인지   있을 거다.

 

총을 좋아하는 이들은 그의 미들 네임인 ‘모지스 Moses’ ‘모세 부르기도 한다. 수많은 군인들을 구원하고, 인도한 선지자와 같다는 의미이다.  까놓고 말해 그가 없었다면, 이렇게 안정적인 자동화기 시스템이 등장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19세기에 이미 반자동 산탄총을 만들었고( 유명한 Auto-5), 자동권총의 기본을 보여준 M1900 만들었으며, 100년이 넘게 쓰인 MG50 만들었다.

 

그는 일생동안 128건의 총기관련특허를 냈고, 47 동안 총을 만들면서  5천만  이상의 총을 생산했다( 총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쳐간 총이다). 유진 스토너, 미하일 칼라시니코프 등등 현대 총기계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들도 따지고 보면, 자신들의 대표작은 1~2정이 고작이다. 그러나  브라우닝은 총이라 불리는 거의 모든 종류의 총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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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런 재능은 그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   있다. 그의 아버지 조나단(Johnadan) 역시 총기 기술자였다. 이미 19  자기가 개발한 플린트락 머스킷을 만들 정도였다.

 

몰몬교도였던 조나단은 22명의 자식을 뒀다. 물론, 부인도 많았다.  브라우닝은 조나단과  번째 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존은 어린 시절부터 총기 설계와 제작에 대한 재능을 보여줬다. 아버지의 피와 주변의 환경은 그가 총기 설계자로  나갈  있는 토양을 만들어 줬다. 아버지는 총포상을 운영했고, 실제로 총을 만들었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보고 배운  뭘까?

 

 브라우닝은 10살이 됐을  자기 인생 최초의 총을 만든다. 14살이 되면, 실물 크기의 대포의 목업(Mockup) 만든다. 비록 재질은 나무였지만,  구조는 거의 완벽하게 설계했다.

 

이후 아버지의 일을 도우면서 자연스럽게 총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게 됐고, 그리고 23살이 되던 해에 ‘공식적인 작품이 나온다. 이게 대박이 난다. 훗날 윈체스터 M1885 이름으로 불리게  단발 소총이다. 브라우닝은 당시 형제들과 함께 작은 공장을 만들어 총을 찍어냈는데, 총의 인기가 너무 높아서 물량 맞추기가 힘들 정도가 된다.  소식을 전해들은 윈체스터(Winchester) 사장이 브라우닝을 찾아온다. 그리곤  총을 계약하게 된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M1885 탄생이다(아직까지 팔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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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우닝의 형제들도 총기관련 업계에서 일을 했는데, 가장 유명한  그의 이복동생인 ‘조나단 에드먼드 브라우닝Jonathan Edmund Browning’이다. 형이 넘을  없는 천재의 이미지라면, 그는 평범한 수재정도의 능력을 보여줬다. 형이 만든 BAR 기반으로 총기를 개발하려 했던  보면, 형의 그늘을 벗어날  없었다는  확인할  있다. 조나단을 무시하는  아니다.  브라우닝의 압도적인 천재성을 대적할 만한 총기설계자는 지금도 찾기 어려우니 말이다)

 

이후 브라우닝의 행보는 현대 총기의 기틀을 다져나가는 작업이었다.

 

다연발 펌프액션 산탄총인 M1887, M1897 설계했고,  유명한 레버액션식 소총 M1886 그의 손에서 나왔다. 놀라운 사실은 19세기에 이미 반자동식 산탄총을 완성했다는 거다. 최근까지 생산된 반자동 산탄총의 명작이자 이후 반자동 산탄총 기술의 원류가 되어  Auto-5 그것이다(우리나라에서도 엽사들이 들고 다니는 반자동 엽총을   있는데,  Auto-5 아니면,  기술을 원천으로 만들어진 총들이다).

 

이렇게 글을 써도 총에 관심 없는 이들은 그의 ‘위대함 얼른  닿지 않을 거다.

 

2 대전 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한국전에도 사용됐고 우리나라에서도 제식화기로 사용했던 BAR(Browning Automatic Rifle : 브라우닝 자동소총)이나 아직까지도 현역으로 뛰고 있는 MG 50같은 것들은 예비역들이라면 낯익은 무기일 거다(MG 50 쓰던 한국은 이걸 기반으로 K-6 중기관총을 만들었는데, 거의 MG 50 베꼈다고   있다).

 

100년이 넘게 쓰이는 총을 만든 거다.

 

당대 최고의 총기 회사라   있는 윈체스터, 레밍턴, 콜트, 그리고 벨기에의 FN 社와 함께 하며 시대를 뛰어넘는 역자들을 만들어낸 것이 존 브라우닝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브라우닝이 없었다면 현대 자동화기의 역사는 다른 식으로 쓰여졌을 거다.

 

이런  브라우닝이 자동권총 분야를 그냥 내버려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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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육혈포(六穴砲)라는 말을 들어봤는가? 탄알을 재는 구멍이 여섯  있는 권총을 의미한다. 흔히들 리볼버(Revolver) 부르는 총이다.

 

영어로 회전하다는 의미의 'Revolve'에서 유래했다고   있다.

 

인류가 총을 발명한 뒤로 끊임없이 고민했던  가지가 연속해서 총을 발사하는 거였다. 전장식 소총이 등장한 이후 화약을 넣고, 총알을 장전하고 점화약을 장전한  화승에 불을 붙여서 발사하는  번거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끝없는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이런 노력들  자동권총이 나오기  가장 성공한 방식이 리볼버 방식이다.

 

실린더에 총알을 넣어  약실을 여러개 가지고 있다가,  약실을 회전시켜 연속발사를 실현한 거다. 서부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콜트 싱글액션 아미가 대표적인 예이다.   장전하면, 6발을   있기에 등장 당시에는 혁명  자체였다. 그러나 리볼버에게도 명백한 약점이 있었다. 당장 재장전에 시간이 걸렸고,   있는 탄환의 숫자가 5~6발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자동권총이다.

 

초창기 자동권총은 리볼버에 비해 많은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리볼버가 쫓아갈  없는 확실한 장점  가지가 있었다.

 

첫째, 빠른 재장전

둘째, 속사(速射)

 

였다. 리볼버의 경우에는 실린더에 있는 탄피를 빼낸 뒤에 재장전을 해야 한다(스윙 아웃 방식이 나온 덕분에 재장전 속도가 빨라졌다 해도 탄피를 빼내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자동권총의 경우에는 상자형 탄창을 교체하기만 하면 된다.

 

재장전만큼이나 중요한  속사(速射)이다.

 

지금은 자동권총이 너무 흔하기에  총이 발사되는 메커니즘이 신기하게 느껴지지 않을 거다. 방아쇠를 당기면, 총알이 나가고, 탄피가 배출되고, 재장전 돼서 다시 총알이 나갈  있는 상태가 된다. 그러나 총을 연속으로 발사한다는  격발-탄피배출-재장전이라는 복잡한 과정을 연속적으로 수행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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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잡하고 어려운지에 대해 쉽게 설명하자면,

 

탄환을 연속적으로 발사하려면, 탄두가 빠져나간 ‘탄피 배출돼야 한다.

탄피가 배출되려면 슬라이드가 후퇴해야 하는데, 슬라이드가 너무 일찍 후퇴하면 화약 폭발 에너지가 새어 나간다.

이렇게 되면 탄두의 위력은 약해지고, 총을 쏘는 사수에게 화염에 덮쳐서 사수가 위험해 진다.

 

, 총알이 발사될  화약 폭발 에너지를 탄두에 전달하기 위해서는 총열과 슬라이드의 폐쇄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거다. 그리고 폐쇄를 재빨리 풀어서 슬라이드가 뒤로 후퇴하고, 탄피를 배출, 다시 슬라이드가 앞으로 오면서 재장전을 해야 한다. 핵심은 폐쇄 상태를 ‘적당히유지하고 있다가, 재빨리 폐쇄를 풀어 탄피를 배출하고 재장전을 해야 한다는 거다.

 

상당히 난감한 문제이다. 그러나  난감한 문제를 간단한 아이디어로 해결한   브라우닝이다. M1900 개발할  내놓은 ‘브라우닝 쇼트 리코일방식이  해답이다.  방식은 생각 외로 간단한데, 총열과 슬라이드의 홈이 서로 맞물리게  거다. 탄두가 총열을 빠져나가는 극히 짧은 시간 동안은 총열이 슬라이드와  몸이 돼서(폐쇄된 상태로) 뒤로 살짝 후퇴하는 거다. 그러다가 캠의 작용으로 슬라이와 총열의 결합이 풀리고, 슬라이드만 관성의 힘으로 끝까지 후퇴하면서 탄피를 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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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 M1900

 

M1900 자동권총 중에서 최초로 슬라이드를 장착한 권총이다. 현대적인 권총들은 거의 모두(현대 권총의 대명사인 글록을 포함해서) 쇼트 리코일 시스템과 슬라이드를 장착했다. 아니, 쇼트 리코일 시스템을 장착하지 않더라도 슬라이드를 장착해 움직인다는  자체가 M1900 위대함이라고   있을 거다. 현대적인 자동권총은 거의  슬라이드가 달려 있다.

 

적당한 크기와 명중률, 속사가 가능한 슬라이드 구조 덕분에 M1900 최초의 포켓 피스톨이(Pocket Pistol) 영예를 얻게 된다.

 

안중근 의사의 손에  총이 들어간 거다.

 

 

 


 

 

 

필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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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부터 시작된 이 프로젝트를 다큐멘터리로 제작중입니다. 2020년 3월 공개 예정입니다. 펀딩 목표 금액 1천만원으로 다큐멘터리 ‘잃어버린 총을 찾아서’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하얼빈 의거 장면을 촬영하려 합니다. 

 

프로젝트 잃어버린 총을 찾아서 펀딩(링크) 

 

안중근 의사의 사격장면 재현을 위한 물적 토대는 크게 3가지로, M1900 권총과 32ACP 탄, 그리고 발리스틱 젤라틴입니다. 총은 미국 총기 옥션에서 낙찰받아 현재 배송 프로세스를 밟는 중입니다. 펀딩은 32ACP 탄과 당시 안중근 의사가 사용한 ‘십자가 흠집’이 있는 탄의 위력 실험을 위한 발리스틱 젤라틴 구매 비용, 그리고 촬영에 들어갈 기자재 대여와 인건비로 사용 예정입니다.

 

총기 사격 실험에 고속촬영 장비와 인력 지원이 필수적입니다. 아울러 고속촬영을 위한 조명 세팅에도 비용이 들어갑니다.

 

110년 전 하얼빈 의거 당시 안중근 의사가 어떤 악조건 속에서 의거에 성공했는지, 어떤 방식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척살했는지를 실물 총을 가지고 실험할 예정입니다.

 

현재 군부대의 협조를 얻어 국내 재현 사격을 추진중이며, 만약 국내사격이 여건상 어렵다면 미국 현지에 섭외한 사격장에서 촬영을 진행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