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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네 자리에 수렴하는 내 통장 사정을 들은 A씨는 말했다.

 

"시급이 2천원이 아니고서 이렇게 거지일 수 있나?"

 

신용카드만 있다면 세상에 못할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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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돈을 썼으면 갚아야한다는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이치였다. 신용카드 결제일이란 건 다가올수록 사람을 공산주의자로 만들었다. 카드값 내고 나면 깔끔하게 앵꼬가 나는 통장을 보고 있으면 사유재산을 없애는 게 맞지 않나 싶다. 세게 한 대 맞는 게 가장 나은 해결책이겠지만 아무튼 그렇다.

 

이번 달에도 어김없이 통장에 네 자리의 숫자만 남겨야 하는가? ATM에서도 뽑을 수 없는 잔고에, 돈을 벌고 싶다는(정확하게는 갖고 싶다는) 영혼한량이 꿈틀했다.

 

 

고소득이 아니면 뛰지 않는 심장

 

원래 목표는 숨만 쉬고 돈 벌기였다. 사지도 않고 로또에 당첨되겠다는 말처럼 허무맹랑한 얘기지만 사람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나에겐 양심을 비롯한 21세기 인류가 갖춰야할 이성과 지성 같은 건 없었다. 다만 카드값을 막지 못하면 장기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게 될 거라는 사실이 현실과 타협하게 했다. 그랬다. 노동을 안 하고 돈 버는 건 내가 180cm가 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서비스직 아르바이트로 돈을 버는 건 여러 의미로 사양이었다(노동 자체가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지만). 대학시절 내내 최저시급(당시 4천원 대)으로 아르바이트를 했던 기억에서였다. PC방 아르바이트를 하던 때, 가게에 정전이 났다는 이유로(가게 잘못이 아니라 한전 잘못이었음) 얼굴도 모르는 아저씨들에게 연이어 "X발년아" "X같네" 소리를 들어야 했던 거라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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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걸 하루 안에 당한 적도 있다

 

그때야 어렸으니 뒤에서 쌍욕을 하는 정도로 그쳤지만 지금이라면 절대 그걸 참을 수 없을 것이었다. 그 사람은 응급실에, 나는 경찰서에 가지 않고는 끝나지 않을 게 분명했다. 이 나이에 딸 깽값 물어줄 부모님이 눈에 선했고 직장에서 저놈이 회사 망칠 놈이라고 손가락질 받을 게 눈에 선했다. 직장과 가족을 한 번에 잃는 지름길을 직접 갈 순 없었다.

 

또 아무리 최저시급이 많이 올랐다고 해도 아직 부족하단 걸 안다. 절약하던 대학시절에도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만 사는 건 무리였다. 최저시급이 올랐다 해도 그만큼 물가도 올랐으니 지금이라고 사정은 별반 다를 것이다. 아니, 돈 쓰는 게 거의 이재용인 지금은 더했으면 더했다.

 

기왕 돈 없는 만큼 양심도 없는 어른으로 자랐겠다, 최대한 서비스업은 하지 않고, 버는 돈은 적지 않은, 아니, 사실 많은 아르바이트를 찾기로 했다. 그냥 알바도 아니고 '고소득' 알바. 이름부터 돈 냄새가 풀풀 풍기는 것이다(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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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 구할 땐 유튜브보다 더 자주 들어간다는 아르바이트 구인구직 사이트에 '고소득'을 검색했다. 일자리는 여러 곳이었지만 분류하면 6가지 정도였다.

 

영업 / 배달, 배송 / 건설인부 / 택배 상하차 / 방송 엑스트라 / 꿀알바(?)

 

배달배송은 면허가 없어서 안되고, 건설인부와 물류창고는 남성만 뽑는대서 안된다. 방송 엑스트라엔 관심이 없는 건 아니라고 할 수 없었지만 크나큰 결격 사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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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초등학생 때 이후로 키 좀 안 클 수도 있지

 

그렇다고 하면 영업과 꿀알바(?)가 남아있었는데...

 

 

1) 친구 없는 애들도 영업 할 수 있다(?)

 

보험, 분양, 인바운드 상담(고객이 건 전화를 받는 것) 등 영업의 종류는 다양했지만 시스템은 비슷했다.

 

'영업을 통해 계약에 성공하면 기본급에 더해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다!'

 

인센티브를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내 소득이 높아진다는 말이었다. 한국말도 제대로 못하면서 무슨 영업이냐고 하겠지만, 그전에 영업할 친구가 있는지 없는지 먼저 물어보는 게 예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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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인 건 나같이 친구도 돈도 양심도 없는 애들을 위한 영업 일도 있었다는 거다. 출근할 필요도 없이 핸드폰 하나면 된단다.

 

(어쩌다 인스타그램까지 흘러갔는지는 모르겠으나) 요즘 인스타그램에서 흥하는지 '#고소득'을 검색했을 뿐인데 자랑글이 한가득이었다. 하루에만 500만 원을 벌었다는 사람도 있고 부모님 용돈으로 2천만 원을 드렸다는 사람도 있다. 대기업 다니는 지인이 결혼하려고 몇 년 동안 1억을 모았다는데 고작 4개월 만에 1억 5천을 번 사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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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중 한 명의 인스타그램을 들어갔다. 수익의 원천이 뭔지 인스타그램 포스팅 만으로는 알기 힘들지만(파악이 안 됨), '선배님'에게 연락하면 돈 버는 노하우를 알려준다고 한다.

 

우선 연락부터 해보기로 한다. 욕망은 누워서 BL만화책만 보는 챙타쿠도 움직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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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가 있고,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린 나의 '선배님'을 비롯, 수만의 '선배님'들은 그 본사로부터 일을 받았다. '일'에는 ①쇼핑몰 운영, ②리셀러 모집 두 가지가 있다.

 

원래 '리셀러'는 '상품을 웃돈을 받고 되팔아 수익을 올리는 사람'을 일컫지만 여기서는 후배님을 모집하는 선배님, 다시 말해 '이 일을 해보고 싶다는 사람을 모으는 이'에 가까웠다.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렸던 사람들도 나에게 노하우를 알려주는 '선배님'도 리셀러로, 위의 카톡은 '선배님'이 나를 상대로 '②리셀러 모집'을 하는 과정에 해당한다. 이렇게 '선배님'을 따라가다보면 나는 새로운 리셀러가 되고, 나 또한 누군가의 '선배님'이 되어 새 리셀러를 모집할 것이었다. 일종의 사람 영업(?)으로 이해했다.
 

그럼 쇼핑몰 운영은 무엇인가 싶어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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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쇼핑몰 운영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사입/배송/재고/교환/반품을 본사에서 100% 해줘서, 직접 할 일은 '운영' 밖에 없는 듯 했다. 일종의 중개업을 하고 중간마진을 받을 수 있다는 말 아닐까? 가장 힘들다는 재고관리를 하지 않아도 되니 장사의 'ㅈ'도 해본 적 없는 애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뭐 장사수완이 없어 게임에서조차 가게를 말아먹곤 하는 나라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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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사람이 큰일 앞두고 너무 고민하는 것도 좋지 않다. 시작부터 해보자는 마음으로 회원가입을 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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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가입만 했을 뿐인데도 부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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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고 했을 때였다. 갑자기 '선배님'이 초기비용이 든다고 놀랄 소리를 했다. 본사 사이트의 회원가입하는 것 자체는 '무료'지만, 일을 하려면 정회원이어야 하고, 정회원은 유료라고 했다. 비용은 레벨에 따라 9만 원에서 100만 원까지 다양했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빠르게 쪼그라들었다. 어린이은행 지폐를 받아주지 않는 이상 나에게 초기투자를 할 비용은 0에 수렴한다. 시작도 전에 나가리판이라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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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사정을 모르는 선배님은 고수익을 내는 건 쇼핑몰 운영이 아니라 리셀러 모집, 즉 '정회원 모집'이라며 미끼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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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모집한 사람이 리셀러(정회원)에 가입한다면, 가입 비용 중 일부를 나에게 수익으로 주는 모양이었다. 따라서 리셀러(정회원)를 많이 데려오면 데려올수록 고수익을 창출할 수 있었다.

 

안타까운 건 내가 모집한 리셀러가 정회원에 가입했다고 해도 나와 후배님(내가 모집한 리셀러(정회원))의 등급에 따라 받을 수 있는 돈이 다르다는 점이다. 만약 A가 수익률 80%의 100만 원 짜리에 가입한 다음, B를 포섭, 그 B가 또 100만 원짜리에 가입한다. 그럼 A는 B가 지불한 정회원 비용인 100만 원의 80%인 80만 원을 수익으로 받을 수 있었다.

 

내가 100만 원짜리 정회원이 된 다음 100만 원짜리 정회원을 두 명만 모집해도 벌써 본전인데다 그 이상 모집하면 오렌지색 스포츠카(장래희망: 야타족)를 하나 뽑은 뒤 엑소의 첸 닮은 잘생기고 예쁜 남자애(연하여야 함)를 옆에 태우고 분노의 질주(시속 50km라서 주변 사람이 분노함)를 한 뒤 천장 높은 호텔에 데려가 함께 플스를 하는 미래가 그려지는 것 같,기는커녕 인생이 말처럼 쉽게 굴러가는 거였으면 내가 정해인하고 결혼을 했지 모니터 남친하고 살겠나 싶었다.

 

이렇게 돈 버는 게 쉬우면 베니스의 상인은 나오지 않았을 거다. 피 한 방울 안 흘리고 살만 1파운드 가져갈 수 있는 재주가 있지 않는 한 손대면 안 될 것 같았다. 쓸쓸함에 안녕히계시라고 선배님에게 이별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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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하면 정신을 차린 것 같겠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그랬다. 역시 인스타그램에서 흥하는 다른 고수익 영업 업체에 연락을 해보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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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이라곤 콧구멍 만큼도 없어서 이번엔 오렌지색 스포츠카에서 다마스로 차의 가격은 낮아졌을지 몰라도 귀엽고 잘생기고 몸 좋은 남자애(역시 연하여야 함)랑 파도소리 들리는 바다뷰 펜션에서 할리갈리 하는 꿈을 꾸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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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똑같았다. 다른 모양새를 하고 있으나 역시 리셀러를 모집하는 곳이었다.

 

그래도 이쪽은 돈 벌 방법은 더 많았다. 인스타그램 마케팅, 글쓰기(홍보글 작성), 쇼핑몰 운영(번거로운 작업은 본사해서 다 해주니 마케팅만 신경쓰라함), 뷰티ERP 마케팅(ERP: 생산, 물류, 재무, 회계, 영업과 구매, 재고 등 경영 활동 프로세스들을 통합적으로 연계해 관리하는 것), 리셀러 모집까지 총 5개나 됐다. 

 

다만 이전 업체도, 이번 업체도 모두가 리셀러 모집을 통해 돈을 벌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다른 돈벌이 수단은 허울에 불과하고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어야만 돈을 벌 수 있는 시스템임에는 다름이 없었다. 퉤

 

차라리 엑스트라 알바처럼 키 제한을 두었다면 시간낭비할 일은 없었을 텐데... 약간 눈물이 나는 것도 같았다.

 

 

2) 꿀알바(?)

 

꿀알바(?)는 건설/상하차와 다르게 여성의 지원만을 받았다. 그것도 2-30대의 젊은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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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시급이 얼마라고요?

 

초보환영에 날짜는 내가 고를 수 있고, 교통비까지 준단다. 출퇴근까지 자유. 세상에 이런 알바가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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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없어

 

세상만사 쉽게만 굴러가는 거였다면 내가 서울대를 갔을 거다. 꿀알바(?)의 정체는 유흥업소 아르바이트였고, 나는 구남친 인스타그램을 염탐하다 실수로 하트를 눌렀다가 황급히 취소한 애처럼 참담한 얼굴로 Alt+F4를 눌러야 했다.

 

 

 

결국 소득은 0이었다. 혹시 이거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는 게 아닐까? 아무래도 고소득에 집착하는 게 문제인 것 같았다.

 

신용카드 결제일이 다가오는 가운데, 당장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된 난 결국 고소득 알바에서 고소득마저 빼버린, 그냥 알바, 그것도 본업을 하면서 할 수 있는, 부업을 찾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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