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축구의 현황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가 16강에 진출할 확률을 5% 정도로 잡으면 많이 쳐주는 셈이 될 것이다. 물론 어떤 일이 성공할 확률이 희박하더라도 그 일의 성공을 염원할 수 있고, 기적을 바라지 못하란 법도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 축구에 대해 이런 기적을 바라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월드컵이 한 달도 채 안 남은 시점에서 상당히 열성적인 축구팬의 한 사람으로서 분위기 깨는 문제제기를 하게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95% 이상의 확률인 16강 탈락의 상황에 대해 마음의 준비를 하자는 것. 다시 말해 지극히 당연한 결과에 대해 개거품 물고 차범근 개새끼 운운하지 말자는 거다. 둘째, 반대로 기적이 일어나서 16강 진출이 되었을 때 - 사실 이게 더 걱정스런 상황이다 - 이성을 잃고 정말 세계 16강의 축구 선진국이라는 우스운 착각에 빠지지 말자는 거다.
한국 축구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기형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당신은 김도근이 어느 팀 소속인 줄 아는가? 이상윤은? 당신이 응원하는 클럽팀은 어디인가? 국가대표 선수 외에 좋아하는 축구선수는 누구인가? 지금 프로축구가 몇 팀인 줄은 아는가?
한국 축구의 모습은 우리나라의 기형적 교육 현실과 꼭 닮았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고등학교의 모습들을 보자. 공부잘하는 몇 놈들 찍어 가지고 있는대로 편애를 쏟아붓고 때로는 협박까지 하면서 무조건 일류대에 진학시키고 보자는 심보다. 그래서 나머지놈들 양아치가 되고 비행 청소년이 되든 말든 선생님에게 암묵적으로 선발된 잘난 놈들 일류대에 몇 수십명 보내면 그 해 농사 끝이다. 그리고 보란듯이 일류 고등학교 대접 을 받는다. 이건 일종의 사기다.
우리나라 축구가 바로 이런 식의 사기행각을 벌이고 있다. 심하게 말해 온 국민이 이런 사기행각에 동참하고 있다. 이런 사기가 왜 유독 축구에 서 크게 이루어지는가? 그건 펠레의 말처럼 축구공은 둥글기 때문이다.
축구는 매력적인 스포츠임에 분명하지만 야구나 농구 등 다른 구기 종목들에 비해 우연이 개입할 여지가 많다. 다시 말해 그 날의 경기장 분위기나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의 정신 자세에 따라 의외의 결과가 나올 확률이높은 스포츠인 것이다. 그래서 헝그리 정신, 무대뽀 정신으로 전술에 따라 스파르타식으로 몰아치다보면 의외의 결과를 얻어낼 수도 있는 것이다.
지난 번 자메이카와의 1차전이 끝난 후 패장이었던 자메이카의 감독이 했던 충고의 말은 - 패장으로서는 매우 건방진 말이기도 했지만 -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그는 한국 축구에 대해, 치고 달리기 식의 축구로는 발전이 있을 수 없으며 지금과 같이 이기려고 악쓰는 축구가 아니라 축구 자체를 즐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어야 한다고 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축구를 정말 잘 하던 친구들 한두명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정말 놀랄만한 발재간을 가지고 있었고 축구가 좋아 쉬는 시간 10분도 못참아 공을 차대곤 했을 거다. 하지만 학교에 축구부가 없는 한 그들이 축구선수가 되는 길은 원천봉쇄되어 있었다. 지금 어딘가 에서 회사원이 되고 장사를 하고 있을 그들 속에 황선홍이 있을 지도 모르며 호나우두가 있을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