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르완다 언론인들이 종신형을 받았다는데...

>2003.12.12.금요일
딴지 국제부

지난 3일, UN 르완다 전범재판소는 르완다 언론인 3명에게 중형을 선고했다. 그중 2명은 종신형, 1명은 35년형이란다. 명색이 언론인이라는 사람들이 평생을 가도 용서받지 못할 전범으로 낙인찍히게 된 사유인즉슨, 어처구니없게도 언론매체를 통해 대학살을 선동했다는 거다.

구체적인 내역은 더 가관이다. 이번에 종신형을 선고받은 페르디낭 나이마나(Ferdinand Nahimana)란 인물이 설립한 방송국 에르떼엠엘(RTML)은, 방송을 통해 "나가서 싸우라. 청소에 나서라. 무덤이 아직 가득차지 않았다"라는 내용을 내보냈다고 한다. 심지어 "코가 작으면 박살내라"라는, 투치족의 신체적 특성을 적시한 멘트도 있었단다. 격주간지 캉구라(Kangura) 편집장으로 이번에 나이마나와 함께 종신형을 받은 하산 은게제(Hassan Ngeze)는, "많은 피를 흘리더라도 마음속의 분노를 마음껏 분출시키자"라는 내용을 기사에 삽입했다는 거다. 모두 1994년에 있었던 르완다 내전 기간을 전후해 일어난 일이다.

1994년 르완다, 그곳에서는 인류역사상 최악의 인종청소가 자행되고 있었다. 인종청소... 잘 알겠지만 이게 인종을 깨끗이 한다는 뜻이 아니라, 한 인종을 씨조차 안 남길 작정으로 싸그리 말살시켜 버린다는 의미 되겠다. 그 해에만 약 100만명(대략적인 규모조차 잘 파악되지 않을 정도다)에 달하는 르완다 사람들이 무참히 학살당했다는 믿기 힘든 얘기가 전해져온다. 그리고 이들 언론인의 탈을 쓴 악귀들은, 그 와중에 옆에서 메가폰을 들고 "더 죽여라! 우리편 잘한다! 어, 저 새끼는 저쪽으로 도망가네..." 이렇게 응원을 하고 앉았던 거다. 자기들이 하는 짓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를 과연 짐작이나 했을지 의심스럽게도.

1994년... 그때, 그곳에선 도대체 왜 그런 비극이 벌어졌던 걸까? 또한, 저들은 왜 멀쩡한 직업을 저렇듯 치가 떨리는 범죄행위에 악용하기까지 한 걸까? 오늘은 르완다 내전에 대해 좀 떠들어보자.
 

르완다 내전은 엄밀히 따져보자면 1994년에 갑자기 터진 게 아니다. 모든 종류의 대규모 분쟁이 그렇듯, 이 사건도 굉장히 뿌리깊은 갈등구조를 배경에 깔고 있다.

르완다 국민은 대부분 투치(Tutsi)족 아니면 후투(Hutu)족이다. 인구비례로는 투치족이 약 14%, 후투족이 약 85%. 보다시피 후투족이 압도적 다수이지만, 전통적 지배계층은 투치족이었다. 이런 전통은 15세기경, 비교적 호전적 성향의 유목민인 투치족이 오늘날의 르완다 지역으로 남하해 토착민인 후투족을 지배하게 되면서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1919년 벨기에가 르완다를 식민지로 두게 되면서 이런 현상은 더욱 심화되었다. 당시 벨기에가 선택한 효과적인 식민통치 방법이 바로 투치족을 우대해 현지인 지배계급으로 고착화시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수백년간 몇명 되지도 않는 투치족에게 지배당할 정도로 온순한 후투족이라 해도, 수적으로 월등히 우세한 자신들이 외세에 의해 차별대우를 받는 상황을 납득하기 힘들었으리란 건 두말하면 잔소리.

1946년 르완다가 벨기에 신탁통치령으로 바뀌면서 심상찮은 조짐이 조금씩 불거지기 시작했다. 결국 1959년, 정권탈취를 둘러싸고 두 부족간의 유혈충돌이 일어났고, 이 과정에서 후투족 지도자들이 투치족에게 다수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동안 억눌려온 후투족은 이 사건으로 꼭지가 돌았고, 결국 대대적인 폭력사태를 일으키게 된다. 이에 약 8만명의 투치족이 국외로 쫓겨났고, 르완다 내의 지배체제는 역전되었다.

1962년 완전독립을 이루게 된 르완다는 후투족 정당을 주축으로 한 자치정부를 수립하게 된다(대통령은 투치족 출신이었다). 하지만 한번 피를 본 부족간 대립이 쉽게 가라앉을 턱이 없었다. 1963년, 부룬디에 피신중이던 투치족들이 르완다 본토를 기습공격하며 다시금 유혈사태를 일으키게 된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후투족 정권은 또다시 2만명의 투치족을 학살하며 갈등을 증폭시켰다. 게다가 1973년 쿠데타로 집권한 후투족 출신의 하비아리마나(Juvenal Habyarimana) 국방장관이 1당 독재체제를 확립하고 장기집권하게 되면서 후투족과 투치족간의 화해는 더욱 요원해져만 갔다.

여기까지만 해도 거국적 비극이 되기에 충분하지만, 젠장. 이건 테이블세팅에 불과하다.
 

1990년 10월, 이번에는 우간다에 있던 투치족들이 르완다애국전선을 조직해 르완다를 공격했다. 이후로 본격적인 두 부족간 무차별 살육전이 전개되니... 3년에 걸쳐 많은 희생자를 낸 이 사태는 1993년 UN이 중재에 나서며 겨우 진정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이후 르완다 정부와 애국전선측이 마침내 아루샤(Arusha) 평화협정을 맺고 두 부족간 연립정부 구성에 합의하자, 분쟁은 대충 마무리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듬해 하비아리마나 대통령이 합의를 깨고 같은 후투족 출신을 총리에 지명하자, 투치족은 거국내각 참여를 보이코트하고 다시 긴장상황을 조성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1994년 4월 6일, 하비아리마나가 비행기 사고로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건이 투치족의 소행이라고 믿은 후투족은 바로 다음날부터 투치족을 무차별/무조건적으로 살해하기 시작했다. 물론 투치족 반군도 가만 있지 않았다. 반군은 수도 키갈리 점령을 목표로 맹렬한 반격을 전개해 나갔고, 이에 연쇄적인 보복성 학살로 점철된 유혈사태는 점점 확산되어 갔다.

4월 12일, 반군이 키갈리에 진입하자 후투족 정부군이 남하하는 과정에서만 약 20만명에 달하는 투치족 및 중도파 후투족 인사들이 학살당했다는 얘기도 있다. 4월에서 7월까지, 3개월에 불과한 기간동안 약 80만명의 르완다 국민이 목숨을 잃었다는 게 정설이니, 군인들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까지도 학살에 직접 개입해 있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약 50만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산되는 투치족의 피해가 막대했다(학살극 이후 투치족 인구는 15만명으로 줄어 있었다고 한다). 시민들이 학살에 동원한 무기는 총, 몽둥이, 죽창 등이었으며, 심지어 종교인도 학살에 가담했다고 한다.

그해 7월 투치족이 정권을 탈취하고, 후투족 인사들을 요직에 기용하는 등의 융화정책을 내놓으며 학살극은 겨우 가라앉았다. 이 짧은 기간에 수십만명의 희생자는 물론이요, 약 240만명으로 추산되는 국제난민이 발생했고, 이 난민들 중 상당수는 극심한 식량/의료지원 부족으로 인해 역시 속절없는 죽음으로 내몰려야 했다(주로 후투족의 학살공세를 피한 투치족 난민이 많았지만, 수도 키갈리가 반군에 접수되자 후투족들도 속속 피난대열에 합류해 난민규모를 더욱 키웠다).

이 난민들은 인접국의 정쟁에 휘말리며 그곳에서조차 학살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일례로 1996년 부룬디에서는 유혈쿠데타가 발생하며 상당수의 르완다 난민들이 사살당했고, 1997년 자이르(현 콩고민주공화국)에서는 후투족들이 반군과 제휴해 내전에 개입하자 자이르 정부가 이에 대한 보복조치로 르완다 난민 전원을 송환하는 과정에서 무려 20만명의 난민들이 행방불명되는 사태가 발생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비슷한 내전사태가 전개되고 있던 소말리아에는 2만명을 파병하며 호들갑을 떨었던 미국은, 무슨 이유에선지 르완다에 대해서는 이 지경이 되도록 그런 인도주의를 발휘해주지 않고 있었다(참고로, 당시 소말리아에서는 미국계 석유회사들이 시추중이었다고 한다).

르완다 전 인구의 약 10% 가량이 희생되고, 국내총생산을 약 50% 수준으로 격감시킨 이 비극은 90년대 후반께나 돼서야 거의 종식되었고, 현재까지 불안한 평화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8월에는 민주적 절차에 의한 대통령선거가 실시돼, 투치족 출신인 폴 카가메(Paul Kagame) 대통령이 압도적 지지를 얻어 재집권하기도 했다.
 

캉구라에 "후투족의 십계명"이란 제목 하에 인종청소를 선동하는 기사가 실리고, 에르떼엠엘이 선동적인 구호와 투치족 지도층 인사들의 살생부 명단을 떠들어댄 게 다 문제의 1994년 4월에 일어난 일들이다. 언론의 자유라는 대명제 뒤에 숨기에는 그 해악이 너무나도 막대한 그들의 이런 행위는, (맹목적인 애족정신에 기대어 물타기를 한 측면도 분명 있지만) 무엇보다도 확고한 믿음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었을 거다. 끝간 데 없는 무한살육전의 틈새에서, 투치족을 죽여야만 후투족의 생존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절박한 위기의식도 분명 있었을 테고. 그런 면에서 적어도 그들은 확신범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물론 그렇다 해서, 그네들이 저지른 행동의 결과에 대한 책임이 덜어지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뭐, 대강 이쯤 오니깐 우리에게도 생각나는 사건이 하나 있다. 80년 광주, 그리고 좃선. 물론 르완다와 우리의 경우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는 없으며, 좃선은 선동이 아닌 부역의 역사를 갖고 있긴 하지만, 언론이 언론답지 못할 때 찾아오는 비극이 어떤 것인가는 흡사하게 깨닫게 해준다.

탱크를 앞세운 계엄군이 광주 도청을 장악한 다음 날인 1980년 5월 28일, 좃선일보 사설이다.

그리고 같은 해 8월, 광주를 그렇게 피로 물들인 전두환에 대해 좃선은 이렇게 말한다.

계엄군에 의한 가공할 폭력을 광주시민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고 거짓말하며 오히려 군의 노고를 치하하는가 하면, 그 원흉에 대해 5공 시절 내내 만만세로 일관하며 부역해 온 신문. 그리고 그 결과 최고 매출액을 올리게 된 신문. 그러면서 할 말을 한다고 떠벌이는 신문.

물론 좃선일보가 르완다의 경우마냥 그 비극적인 사태에 대해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좀전에도 언급했듯 두 사안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고, 좃선의 그런 행위 또한 부역일 뿐이지 선동에 해당하는 건 아니므로.

하지만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하지 않는다고 양심의 책임까지 져 버릴 수는 없다. 알량하게 누리는 그 언론의 자유를 남의 생명과 자유를 말살하는 것에 공조해준 그 책임까지 묻어 버릴 수는 없다.

전두환은 단돈 29만원으로 여전히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민정당 떨거지들은 아직 국회에 남아있고, 80년 좃선일보 편집국장이자 전두환 시절 민정당 전국구 의원이자, 노태우 시절 장관 자리 해먹던 최병렬은 여전히 최고 의원수를 자랑하는 정당의 대표 노릇을 하고 있다. 지나간 역사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이들에게 딱 부러지게 그 책임을 묻는 건 어쩌면 이제 우리의 몫일지도 모르겠다. 권력에 아부하면서 구라치면 판매부수가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일, 설렁탕을 좇아 권력에 붙어먹는 걸로는 의원자리를 보장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우쳐주는 일. 그게 우리에게 남은 몫일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르완다에 평화를...

여전히 그쪽 경우가 우리보다 훨씬 악랄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고픈
안전빵(comblind@ddanz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