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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동화] 날아라 독수리

2003.7.6.일요일
딴지 의학부


 


"꺄! 해천오빠!"


중세 귀족의 복장으로 차려입은 신해천이 등장하자, 여성팬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2003년 무붕 콘서트. 립싱크, 소위 입만 벙긋거리는 가수들이 대세를 장악한 현실에 대항하는 의미에서, 가창력이 있는 가수들을 위해 만들어진 무대였다. 무대에 오른 신해천은 <인형의 가시> 등 자신의 히트곡 세곡을 연속으로 불러댔다.


"와!" "사랑해요!" "최고다!" 콘서트장을 가득 메운 팬들은 야광봉을 휘두르며 열광했다.


"여러분!" 신해천은 손짓으로 청중들을 진정시킨 뒤 말을 이었다.


"오늘이 무슨 날이죠?"


"13일의 금요일이요" 누군가의 대답에 작은 웃음소리가 일었다.


"오늘은 미선이와 효순이가 저 세상으로 간 지 1년이 되는 날입니다. 지금 광화문에는 1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그들을 추모하기 위해 모여 있습니다. 여러분, 전 이 공연이 끝나고 광화문에 갈 예정입니다. 저와 함께 추모 행진에 동참합시다!" 해천의 말이 끝나자 동의를 뜻하는 함성 소리가 났다.


"내가 아주 작을 때 나보다 더 컸던 내 친구...." 신해천이 그의 히트곡 <날아라 독수리>를 부르자 모든 이가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오래 전에 나온 노래지만, 최근의 추모 분위기에 힘입어 다시금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노래였다.


"굿~바이, 미선, 이젠 아픔 없는 곳에서 하늘을 날고 있을까, 굿바이 효순, 너의 조그만 무덤가엔 올해도 꽃은 피는지" 원래 가사는 해천이 키우던 독수리의 이름인 얄리였지만, 언젠가부터 그 대목은 장갑차에 깔려죽은 여중생의 이름으로 바뀌어 불리고 있었다. 감정이 북받친 듯, 해천의 눈에서 눈물이 났다.







 
"이거, 큰일입니다. 유행할 게 없어서 반미가 유행을 하다니...."


다소 어두운 방에 몇 명의 남자가 모여 있었다. 곱슬머리가 입을 열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아니 촛불이 전기 나가면 쓰라고 있는거지, 데모하라고 만든 겁니까? 요즘 애들은 저렇게 철이 없다니까요. 교통사고 난 거 가지고 몇 년을 우려먹자는 건지...."


매부리코가 그 말을 받았다.


"맞습니다. 남의 땅에서 피를 흘려주는 사람한테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지금 워싱턴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요. 주한미군, 우리가 원하지 않으면 철수하겠다는 겁니다"


머리가 벗겨진 사내가 말했다.


"연예인들이 문젭니다. 걔네가 설치니, 아무것도 모르는 10대, 20대가 덩달아서 흥분하는 겁니다. 걔네들에게 본때를 보여줘야 합니다. 아니 딴따라들이 뭘 안다고? 대학도 안나온 것들이..."


매부리코가 그를 제지했다.


"아닙니다. 요즘은 서울대 나와서 가수하는 사람도 있다는군요"


"허, 그래요... 정말 말세로군요. 아니 가수면 노래나 잘 부를 것이지 왜 애들을 선동하고 난리인지, 한번 손을 봐줄 필요가 있긴 있어요"


대머리가 말했다.


"안 그래도 우리가 모인 이유가 바로 그럽니다. 보수가 죽지 않았다는 걸 보여 줍시다. 우선 가장 극렬한 좌경분자 한 놈만 조지면 다들 알아서 기겠지요"


"누구 생각해두신 놈이 있는지요?


"바로 이놈입니다"


화면에 비친 사람은 바로 신해천이었다....







 
"영예의 1등은...." <생방송 인기가요>의 진행자 이성진은 다소 상기된 목소리로 쪽지에 쓰인 글자를 읽어나갔다.


"<날아라 독수리>를 부른.... 신-해-천! 축하드립니다"


꽃 종이가 나부끼는 가운데, 우주비행사처럼 차려입은 신해천이 무대로 뛰어올라왔다. 그와 1위 자리를 경합하던 베이비복스가 그에게 꽃다발을 걸어줬다. 이성진이 그에게 마이크를 갖다댔다.


"에... 제가 가요프로에서 1위를 한 건 십 년도 더 된 일인 것 같습니다. 이 영예를 하늘에 있는 미선이와 효순이에게 바치고 싶습니다"


말을 하는 신해천의 얼굴이 갑자기 창백하게 변했다. 그냥 들어가려는 해천의 어깨를 사회자가 붙잡았다.


"어, 오랜만에 1등 하셔서 정신이 없으시네요. 자, 신해천의 <날아라 독수리>를 들으면서 생방송 인기가요, 마치겠습니다. 저희는 다음주에 찾아뵙겠습니다!"


하지만 신해천은 이성진의 손을 거세게 뿌리치고 들어가려 했다. 순간 고성능 마이크를 통해 북- 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무대 밖으로 퇴장하던 신해천은 그 자리에 우뚝 선 채 굳어버렸다. 하얀 우주복의 엉덩이 부분이 밤색으로 변했다. 사람들은 보았다. 바지 사이로 밤색의 액체가 흘러내리는 것을. 우리가 익히 봐온 그 액체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시청자 중에는 아무도 없었다. 







 
<신해천 망신... 생방송 중 설사!>


스포츠신문 중 한곳은 설사투혼으로 칭송하긴 했지만, 신해천과 그의 기획사는 죽을 맛이었다. 해천이 화를 냈다.


"거봐요. 내가 안나간다고 했잖아요"


화가 나긴 매니저도 마찬가지였다.


"방귀뀐 놈이 성낸다고, 왜 나한테 그래?"


순간, 해천에게 엽서 한 장이 배달됐다. 매니저가 그 엽서를 받았다.


"BBB? 이게 뭐지?" 엽서에는 단 한 줄만 씌어 있었다.


"가뜩이나 화나는데 그게 뭔지 뭐가 중요해요?" 해천은 엽서를 빼앗아 찢어 버렸다. 순간 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으.... 또 나온다!"


하지만 3미터도 못 가서 북-소리가 났고, 신해천은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그 날 매니저는 냄새가 빠질 때까지 대걸레질을 해야 했다.







 
"으이구, 내 팔자야"


신해천은 거듭되는 설사로 입원해 있었다. 수시로 나오는 설사 때문에 버린 팬티가 아홉 장이나 되어 더 이상 입을 팬티가 없기도 했지만, 잘못하다간 탈수로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의사들은 콜레라를 의심했지만 그건 아니었다. 세균성 이질도 아니었고, 진단결과는 엉뚱하게도 기생충 감염이었다. 대변을 항산성 염색을 한 결과 와포자충에 특징적인 붉은 색 오오시스트가 무수히 검출되었다.


"안녕하십니까?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사람들 보기가 낯뜨거워 독방으로 해놓고 아무도 들이지 말라 했거늘, 이 사람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누구라구요?"


"아, 저는 기생충 탐정 마태우스라고 합니다. 담당 의사가 제게 전화를 해서요. 기생충이 많이 나왔다고 들었습니다"


"기생충? 아니 요즘도 기생충이 있소? 윽!"


이젠 귀에 익어버린 북-소리가 났다. 많이 경험해서인지 신해천도 그다지 당황하지 않았다.


"간호사! 기저귀 갈아줘!"


간호사가 무표정한 얼굴로 기저귀를 갈았다. 지독한 냄새에 마태우스는 코를 찡그렸다. 사태가 수습되고 난 뒤 마태우스가 입을 열었다.


"님께서 걸린 기생충은 와포자충이라는 겁니다. 면역기능이 약한 사람이면 설사를 하다 죽을 수도 있지만, 건강한 사람에서는 2주정도 설사를 유발하다 말지요. 문제는 신해천씨의 대변으로 추정하건대, 너무도 많은 와포자충에 걸려 있다는 겁니다. 그게 좀 이상해요"


마태우스는 뭉툭한 턱을 쓰다듬었다.


"혹시 최근 한달 사이에 소를 키우거나, 축사 근처에 가신 적이 있습니까?"


해천은 짜증을 냈다.


"이봐, 난 가수야! 내가 소를 왜 가까이 하겠나? 이상하고 뭐고, 설사나 좀 멎게 해주란 말야!"


"불행히도 그 기생충은 약이 없습니다. 수액공급을 잘해주고, 혈중 전해질을 맞춰주면서 설사가 멎기만을 기다려야죠"


해천은 화가 났다.


"뭐야? 그럼 당신은 왜 온 거야? 심난해 죽겠으니 당장 꺼지라고!"


마태우스는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혹시 제 도움이 필요하면 이쪽으로 연락 주세요. 그럼 이만"


마태우스가 사라진 뒤 신해천이 중얼거렸다.


"뭐? 기생충탐정 사무소? 별의별 놈이 다 설치는군. 으...윽. 간호사! 기저귀 가져와!"







 
"이번 일은 잘들 하셨습니다" 대머리가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 녀석, 똥싸고 당황하는 꼴이란..." 매부리코가 동조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춰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얼마나 무서운 집단인지를 충분히 알릴 수 있도록, 좀더 확실한 조치가 있어야 합니다"


곱슬머리의 말에 대머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저두 다 생각이 있으니, 지켜보기만 하십시오. 음하하하하!"







 
일주가 지나 설사가 어느 정도 멎자 신해천은 슬슬 퇴원 준비를 했다. 새 앨범 준비, 라디오 DJ 복귀 등 그간 밀린 일을 생각하면 한시라도 빨리 나가고 싶었다. 그런데 뭔가가 이상했다. 이틀 전부터 고환이 너무 아팠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해천은 바지를 내리고 고환을 들여다봤다.


"아니!"


왼쪽 고환에 뭔가가 튀어나와 있다.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돌기는 딱 한 개 있었는데, 쌀알보다 좀 컸다.


"이게 뭐지?" 좀더 얼굴을 가까이 댔다. "사마귄가?" 고개를 갸웃거리던 신해천은 문득 이상한 기분을 느껴 문가를 바라봤다.


"아니 너희들...."


신해천 팬클럽 회원들이 꽃다발과 플래카드 - "오빠, 회복을 축하드려요"라고 쓰여진-를 들고 서 있었다. "오빠... 많이 힘드신가봐요" 말을 건내는 여학생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조직검사를 해봐야 확실하겠지만, 이건 십중팔구 스파르가눔입니다. 기생충의 일종인데..."


의사는 안경을 고쳐 썼다. "혹시 뱀같은 거 드신 적 있습니까?"


해천은 고개를 저었다. 뱀을 먹다니. 맹세코 그런 적은 없다.


"그게...위험한 건가요?"


"수술로 고환을 잘라내야 합니다"


"네?" 해천은 황당했다. "저 선생님, 전 애도 낳아야 하는데요"


의사가 껄껄 웃었다. "걱정 마세요. 오른쪽이 남아 있으니 애 낳는 데는 지장이 없습니다"


"그러다 오른쪽마저 스.. 그 뭣이냐. 하여간 그 기생충에 걸리면 끝장이지 않습니까?"


의사는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 정력에 좋다고 뭣이든지 먹으면 안되지요. 정력이란 말이죠, 가진대로 쓰는 겁니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결국 신해천은 수술대에 누웠고, 왼쪽 고환을 수술해야 했다. 그 사실은 모든 스포츠신문의 톱기사로 실렸다.


<신해천, 고환수술! 왜??>







 
...마한대학 기생충학교실 진교수는 "이 기생충은 뱀을 날로 먹어서 걸린다"면서 "신씨가 얼마 전 결혼을 해서 정력이 필요했을 듯 싶다"고 추정했다....


"뭐야?" 신해천은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결혼을 해서 정력이 필요하다고? 아니, 내가 뱀을 안 먹었다는데 이따위 소설을 써? "


해천은 손에 든 신문을 박박 찢어버렸다. 그때 의사가 들어왔다.


"저 해천씨, 너무 흥분하면 상처가 터질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진정하세요"


"지금 그게 문제야? 기자 놈들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하는데? 아-악!"


"왜 그러세요? 해천씨! 아니 이런!"


의사는 무전기에 입을 갖다댔다.


"응급이다! 5409호 환자, 수술부위가 터졌다!"







 
2차 수술이 끝나고 빈사상태로 누워있는 해천에게 엽서가 한 통 배달되었다. BBB란 글자만이 엽서 지면을 채우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전에 한번 본적이 있는 엽서다. 해천은 퍼뜩 몸을 일으켰다.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태는 누군가가 자신을 노리고 자행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무엇 때문에?"


해천은 환자복 상의에 처박아 둔 명함을 꺼내 거기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거봐요! 내가 다시 만난다고 했잖소!" 마태우스는 빨간 추리닝 차림으로 병실에 나타났다.


"뭐요, 그 촌스러운 옷차림은?"


"하, 이거요. 활동복이죠. 탐정이란 옷차림이 간편해야 합니다. 콜롬보처럼 바바리를 입고 수사하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해천은 BBB가 씌어진 엽서를 마태우스에게 내밀었다.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이런 엽서가 왔습니다"


마태우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BBB가 무슨 뜻일까요? 언뜻 생각나는 게 혈액-뇌 장벽(blood-brain barrier)이라고, 혈액의 나쁜 것들이 뇌로 진입하지 못하게 하는 장벽을 말합니다"


해천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닐 겁니다. 백인 우월주의 단체인 KKK처럼 뭔가의 약자 같은데..."


"1차 대전 때 영국의 3C 정책, 즉 캘거타, 카이로, 케이프타운에 맞서 독일이 추진한 정책이 바로 3B정책이죠. 베를린, 비잔티움, 바그다그를 합병하는..."


해천은 역시 고개를 저었다. "지금 그게 왜 나옵니까? 아는 게 많다고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마태우스는 은근히 화가 났다. "그렇게 잘 알면, 당신이 생각해 보시오"


해천은 잠시 미간을 찡그렸다. 귀공자 풍모의 해천인지라 인상을 써도 여전히 멋있었다.


"아! 생각났다! 보다 멀리, 보다 높이, 보다 빠르게?"


마태우스는 말없이 신해천을 째려봤다.


"그럼 이건 어때요. 브라자, 벗기고, 보자?"


마태우스는 혀를 끌끌 찼다. "겨우 생각한 게 그거요?"


쑥스러워진 해천은 서둘러 사태를 수습했다.


"이걸 가지고 우리가 고민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범인을 잡는 거지요. BBB가 뭔지는 범인에게 물어봐도 되는 것 아닙니까? 음하하하"


"당신 말이 맞소. 나도 머리가 아프던 참이니 그만하도록 합시다"







 
마태우스는 해천에게 지침을 내렸다. 자신의 허락이 없이는 아무것도 먹지 말 것, 개인 위생에 신경쓸 것, 수상한 사람을 보면 무조건 잡아서 족칠 것 등이었다. 마태우스는 오랜 시간 병원에서 상주하며 외부에서 반입되는 음식물을 체크했다. 그러던 어느날.


"아니 당신 지금 뭐하는 거야?"


잠에서 깬 해천은 마태우스를 보고 소리를 질렀다.


"내 도시락을 왜 당신이 먹는거야?"


마태우스는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렸다. "이 고기에는 광우병이 감염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광우병을 매개하는 프리온은 수천도에서 끓여도 죽지 않거든요"


"그럼 당신은 광우병에 걸려도 되나?"


마태우스는 껄껄 웃었다.


"나와 당신은 다릅니다. 당신은 가요계의 톱스타에다 행동하는 지식인 아닙니까. 당신이 여중생 추모집회에 나온 걸 보고 얼마나 감동했는지 모릅니다. 당신 같은 분을 위해서라면 난 광우병에 걸려도 상관없소"


그 말에 해천의 기분이 풀렸다.


"흠흠. 뭐 그렇게까지. 당신, 처음 봤을 때는 별 신뢰가 안 갔지만, 일하는 걸 보니 마음에 드는군요. 남은 고기는 천천히 다 드시고... 계속 날 지켜줄 수 있소?"


입 안 가득히 고기를 넣은 채 마태우스가 대답했다. "그럼요!"







 
"바로 이거요!"


돋보기로 상추를 검사하던 마태우스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무슨 일이오?"


"여길 보시오. 뭔가 동글동글한 게 보이죠? 이게 바로 간질이란 기생충의 피낭유충입니다"


과연 상추 위에 동그란 것들이 많이 보였다. "간질?"


"이건 소의 간디스토마죠. 담도에 사는데 사람 몸에 들어오면 간 뿐 아니라 눈, 심지어 뇌로도 갑니다"


그 말에 해천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잔인한 놈들 같으니... 당신이 있는 게 천만다행이오"


며칠 후 엽서가 한 장 배달되었는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BBB라는 글자가 씌어 있었다.







 
신해천의 입원기간이 길어지자 팬들의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팬들은 해천이 입원한 병원 앞에 모여 신해천을 석방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농성을 벌였고, 그중 일부는 해천의 입원실에 난입을 시도하기도 했다. 심지어 해천의 입원으로 가장 많은 반사이익을 본 <돛단배>라는 그룹의 소행으로 몰아붙여, 두 팬클럽 사이에 물리적 충돌을 빚기도 했다.







 
"좀 어떠세요?" 꾀꼬리같은 목소리와 함께 간호사가 한 명 들어왔는데, 엄청난 미녀였다. 선물로 들어온 카스테라를 먹던 둘은 미녀의 등장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오늘 새로 왔어요. 홍기옥이라고 해요"


"흐흥... 이름도 이쁘네요. 홍기옥이라"


기옥은 해천의 손을 잡았다. "맥이 힘차게 뛰는 걸 보니 곧 건강을 되찾을 거예요"


"이봐요" 뒤돌아서 나가려는 기옥을 마태우스가 불렀다.


"저도 맥이 좀 약한데, 짚어주시겠습니까?"


"다음에 하죠. 좀 바빠서..." 기옥은 생긋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 그녀가 나가고 난 뒤에도 둘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어쩜 저렇게 이쁠까...요?"


"그러게요... 산소만 먹고 사나봐요"


해천이 몸을 일으켰다. "이제야 이 병원에 있는 의미를 찾은 것 같소. 힘이 마구 생기는걸?"


해천은 빵을 집어 입에 넣었다.


"잠깐!" 마태우스가 몸을 날리며 빵을 쳐냈다.


해천은 분기탱천했다. "아니 당신, 이게 무슨 짓이오?"


멱살을 잡은 해천을 마태우스는 뿌리쳤다.


"당신, 병원 다니면서 저렇게 이쁜 간호사 본 적 있소?"


"...."


"내가 저렇게 이쁘다면, 아마 난 간호사를 안했을 거요


"그래서요?"


어리둥절해하는 해천을 두고 마태우스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이십분이 지나자 마태우스가 가쁜 숨을 쉬면서 들어왔다.


"분하다. 놓쳤소. 차번호는 적어 놨지만..."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요?" 해천은 여전히 영문을 몰라했다.


"아까 그녀가 당신 손 잡았죠?" 마태우스는 장갑을 끼고 해천의 손을 돋보기로 들여다봤다.


"역시... 이걸 보시오"


해천은 돋보기를 들여다보았다. "히익! 이, 이게 뭐요?" 투명한 감씨 같은 게 손에 가득 묻어 있었다.


"이건 바로 요충알이요. 이거에 걸리면 항문 주위가 굉장히 가렵죠. 그녀가 당신의 손을 어루만지는 게 영 미심쩍었소. 그건 손에다 뭔가를 묻히려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해천은 식은땀이 났다.


"이렇게 무차별적인 공격을 하는 걸 보면, 놈들이 보통이 아닌 것 같소. 각별히 조심합시다"


경찰에 조회한 결과, 마태우스가 적은 차번호는 도난차량으로 밝혀졌다.







 
마태우스는 Buddy라는 바에 앉아 맥주를 마셨다. 치밀하게 공격해 오는 적에 비해 자신은 너무도 무력하기만 했다. 적의 공격을 막아내는 데만 급급할 뿐, 이렇다할 단서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게 괴로웠다.


값을 치루고 사무실로 터벅터벅 걸어가는데, 삐끼 하나가 그에게 전단지를 내밀었다. 반라의 여인들 사진과 함께 다음과 같은 글귀가 눈에 띄었다.


<브랜드뉴 나이트클럽 오픈....부킹 보장, 꽃뱀들 100명 대기>


순간, 머릿속에서 어떤 영감이 스쳐지나갔다.


"그래, 바로 그거야!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꼬-끼오!" 새벽 두시를 알리는 닭 울음 소리가 났다. 모두가 잠든 그 시각, 옥저대에 후레쉬 불빛이 한줄기 비추어졌다. 연구실 문이 열리고 한 사내가 들어왔다.


"저기가 좋겠군!" 사내는 능숙한 솜씨로 거울 뒷면에 도청장치를 설치했다. 일이 끝나자마자 사내는 재빨리 밖으로 나와 담을 넘었다. 복면을 벗은 사내의 얼굴이 달빛에 반사되었다. 그는 바로 마태우스였다.


신해천을 공격한 것은 와포자충과 스파르가눔, 간질과 요충이었다. 다른 기생충들은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데 반해, 스파르가눔은 그렇지 않았다. 스파르가눔이 뱀을 통해 전파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굳이 뱀을 먹지 않더라도, 스파르가눔에 걸린 물벼룩을 물과 함께 삼키면 감염이 된다. 뱀을 안 먹은 여성 환자들이 이따금씩 출현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신해천은 분명 뱀을 먹지 않았다. 그렇다면 감염된 물벼룩을 구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스파르가눔의 생활사를 실험실에서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그걸 할 수 있는 학자는 단 한명, 옥저대의 우제혁 교수였다.







 
보름이 지난 후, 마태우스가 기다리던 전화가 걸려왔다. 우교수의 휴대폰 벨소리가 났고, 그가 자신의 연구실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 네.... 감사합니다.... 핫핫, 마지막 공격인데 화끈하게 해야죠.... 네, 그렇습니다.... 제가 유구낭미충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내일 점심 때 거기서 뵙겠습니다"


우교수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마태우스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너희들은 이제 죽었다!"







 
마태우스는 설운도 가면을 쓴 채 우제혁을 감시하고 있었다.


"어머나, 저 사람 가수 설운도 아냐?"


"맞다, 맞다! 똑같아!" 몇몇 아주머니들이 그에게 다가와 싸인을 요구했다. 미모가 되는 아주머니 한명에게 연락처를 받아두는 성과도 올렸다.


"스타가 되는 것도 참 재미있겠어"


11시 반이 되자 우제혁의 차가 정문을 빠져나갔다. 마태우스는 인근에 대기해둔 택시를 타고 뒤를 밟았다. 차는 어느 중국집 앞에서 멈췄다. 마태우스는 요금을 지불하고-대기료 3만원을 포함해서-중국집으로 들어갔다.


"설운도 씨, 영광입니다"


종업원이 아는 체를 했다. 마태우스는 가볍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자리에 앉았다.


"간짜장 하나요!"


종업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니 천하의 설운도 씨가 겨우 간짜장이에요??"


별걸 다 시비다. 설운도는 간짜장 먹으면 안되나? 한바탕 하고 싶었지만 임무를 위해 참기로 했다.


"알았어! 간짜장 곱빼기!" 종업원이 투덜대면서 주방 쪽으로 갔다. 마태우스는 잽싸게 도청장치를 켜고 우제혁이 들어간 방 쪽으로 안테나를 들이댔다. 비싸게 사들인 고성능 도청기에서는 방 안의 대화가 상세히 들렸다.


남자1 : 미행은 없었겠지요?


남자2 : 물론입니다.


남자1 : 어떻게 먹이면 되나요?


남자2 : 이걸 보시면.... 쌀알처럼 생겼잖습니까? 밥에다 섞어주면 잘 먹을 겁니다.


남자1 : 흠... 이쯤되면 신해천도 정신을 차리겠죠?


남자2 : 물론입니다.







 
식사가 끝나자 방에서 한 사내가 나왔다. 대머리였다. 마태우스는 조용히 그의 뒤를 밟았다. 딱 한번 대머리가 뒤를 돌아봤지만, 설운도인 것을 알자마자 가볍게 목례를 했다. 2분도 채 못 가서 외딴 건물이 나왔다. 대머리는 다시 한번 뒤를 돌아보고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마태우스가 그에게 다가갔다.


"TV랑 똑같구먼... 설운도 씨 맞죠? 제게 무슨 볼일이라도?"


마태우스는 잽싸게 사내의 손을 붙잡아 옆으로 비틀었다. "아-아! 이거 왜이래요? 설운도가 사람잡네!"


마태우스는 사내의 옆구리를 발로 차서 건물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는 사내를 의자에 앉힌 뒤 준비해간 밧줄로 꽁꽁 묶었다. 사내의 눈빛이 공포에 질렸다.


"설운도씨, 왜... 왜 이러는 거요?"


"난 설운도가 아니야" 마태우스는 가면을 뜯었다. "난 마태우스라고 하지. 너같이 기생충을 가지고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놈들을 혼내주는 사람이다"


"기생충이라니... 난 모르는 일이야"


마태우스는 사내의 주머니를 뒤져 캡슐을 찾아냈다.


"흠... 이걸 보게나. 이 쌀알 같은 게 바로 유구낭미충이지. 먹으면 몸 속에서 몇 미터까지 자라고. 이건 어디다 쓸건가?"


사내의 얼굴이 흙빛으로 일그러졌다. "그, 그건..."


"말 안 해도 된다. 니가 그걸 신해천에게 감염시키려 한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아니까"


"그걸 어떻게..."


"내가 궁금한 건 이거다. 왜 넌 신해천을 괴롭히지?"


사내가 침묵을 지키자 마태우스는 사내의 팔을 조금 꺾었다.


"아야! 알았어, 말하면 될 거 아냐!"


사내가 입을 열었다.


"신해천 그놈이 아무것도 모르는 젊은이들을 반미주의자로 이끌고 있어. 그래서 난 본때를 보여주려고 한거야"


마태우스는 작은 눈을 가늘게 떴다. "여중생이 미군 장갑차에 깔려 죽었는데, 미국에게 항의 한마디 못하는 현실이 넌 옳다고 생각해?"


사내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우발적인 교통사고야! 미국이 아니었다면 이 나라는 공산치하에서 신음하고 있을테고, 너나 신해천은 아마 정치범 수용소에 있겠지.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어려울 때 그렇게 도와준 미국을 욕해?"


흥분한 탓인지 사내의 얼굴이 붉어졌다.


"지금 나라꼴이 이게 뭐야? 노조는 일 안하고 파업만 하고, 가수는 노래 안 부르고 반미시위나 하고. 대통령이란 자는 코드가 맞는 사람과 어울려 보수를 반통일, 반개혁 세력으로 몰고 있어. 이 나라, 그렇게 만만한 나라 아니야. 니들이 지금 수구라고 몰아붙이는 보수들이 잿더미 속에서 이 나라를 건설했고, 지켜오고 있어. 사회주의자 대통령의 집권은 한번으로 족했어야 돼. 이젠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우리 보수세력이 총단결해서 청와대에 침투한 좌파들을 몰아낼 거야"


"이 나라를 건설한 게 보수세력이라고?" 마태우스는 쓴웃음을 지었다. "너 혹시 군대 다녀왔니?"


사내는 작게 말했다. "가고 싶었는데 과체중으로 면제받았다" 겉보기에도 사내는 100킬로가 넘어 보였다.


"그럼 그렇지" 마태우스는 눈을 크게 떴다. "너희들이 군대도 안가며 사리사욕을 채우는 동안, 살인적인 저임금에 시달리면서 노동착취를 당한 노동자들이 그간의 경제성장을 이룬 거야. 그 과실을 너희 보수세력이 독점하려 하는 건 도무지 말이 안되지. 이 나라는 보수만의 나라가 아니야. 이곳은 진보와 보수가 새의 두 날개처럼 공존해야 하는 나라라구!"


"그만해!" 사내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 너와 말싸움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 이제 날 어떻게 할건가?"


"널 경찰에 넘길 거야. 넌 기생충을 이용한 생물학전을 이 땅에서 최초로 감행한 놈이니, 상당 기간 햇볕을 보지 못하겠지"


"맘대로 해라. 니가 나를 잡아가도 별 소용이 없을 거다. 우리는 한둘이 아냐. 내가 없더라도 또 다른 내가 나타날 거야. 전경련, 중소기협협동중앙회, 대한의사협회, 대한변협, 수많은 단체가 우릴 후원하고 있어"


"호오, 그래? 너 같은 또라이가 또 나타나면 그놈도 내가 잡아넣을 거야. 나도 나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으니까, 얼마든지 해봐. 그나저나 BBB가 뭐의 약자니?"


사내는 씩 웃어 보였다. "보수, 보수, (그리고) 보수의 약자다"


마태우스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보수, 보수, 보수라고? 단순무식하긴. 다른 BBB 회원이 누군지 불어라"


"절대 말할 수 없다" 사내는 이를 악물었다.


"그래? 너 같은 놈을 위해 준비한 게 있지" 마태우스는 가방에서 병 하나를 꺼냈고, 거기서 회충 몇 마리를 꺼내 손에다 감았다.


"이게 회충인데... 얼마나 견디나 볼까? 에잇!" 마태우스는 손에 든 회충을 사내의 입에다 넣었다. 사내는 예상만큼 오래 견디지 못했다.


"으~으! 살려줘! 제발! 다 말하겠다!"







 
회충을 꺼낸 뒤에도 사내는 한참 동안 헛구역질을 해댔다. "BBB는... 허정우 대종무역 사장, 유태길 주류도매상 협회회장, 임상백 전국 상담협회 이사...."







 
15명으로 구성된 BBB 회원은 전원 구속되었다. 계속되는 촛불시위는 결국 미국대통령의 사과를 불러왔고, 말썽많던 SOFA도 독소조항이 빠지는 등 상당부분 개선되었다.







 
"저기... 저 아가씨 좀 부탁합니다"


마태우스는 등이 파인 원피스를 입은 아가씨를 가리키며 웨이터에게 팁을 건넸다. 사건을 해결한 뒤 가는 나이트는 언제나 보람 있다.


"저는 기생충 탐정 마태우스라고 합니다만.... 아, 굉장한 미인이시기에 제가 좀 뵙자고 했습니다. 한국 미인들의 생활양식에 대해 조사할 게 있거든요..."


그때, 마태우스의 휴대폰이 무미건조한 벨소리를 냈다. "따르릉..."


"누구야? 이런 결정적인 순간에! 여보세요?"


전화를 건 사람은 신해천이었다.


"이봐, 마태우스! 엊그제부터 자꾸 항문이 가려운데, 이유가 뭘까?"


"글세. 샤워는 했냐?"


"당연하지. 하루 두 번씩 한다고"


"그럼 뭐지?.......아, 생각났다. 너 그때... 미녀 간호사 들어온 날.... 빵 먹었지! 요충에 걸린거야"


"아, 맞아! 어쨌든 가려워 죽겠어! 빨리 와서 도와줘!"


"그건 곤란해. 나 지금 여자랑 부킹하고 있는데?"


"아 지금 부킹이 문제야? 엉덩이 헐게 생겼는데... 좋아, 내 팬클럽 회원들 소개시켜 줄게. 이쁜 애들이 아주 많다구?"


"정말? 좋아. 내 당장 달려가지. 지금 어디야?"



 
딴지 의학부 전문우원
마태우스 (bbbenji@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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