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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mal Litigation (음울한 소송)



1999.5.31.월

딴지 엽기법률고문 미수타 까발리




 들어가는 말


가. 집필의 동기


최근들어 급발진사고에 대한 언론의 보도가 빈번하다. 어떤 피해자들은 자동차 제조회사를 상대로 법원에 소송을 내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급발진사고의 원인은 뚜렷이 밝혀지지 않았다.


또한 며칠 전 한 하급심에서는 급발진 사고를 당했다는 원고에게 보험금을 지급한 보험회사가 자동차회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를 차에 결함이 있었다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기각한 일도 있었다.


수많은 이 땅의 소비자들이 급발진 사고에 대해 완전 무장해제된 체 누구로부터도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 이런 엽기적 상황에서 고문으로서 한마디 해야 한다는 총수의 엽기적 협박에 못이겨 자판을 두들기게 되었다.

나. 이 글의 한계


이 글은 급발진 사고의 원인을 밝히는 글은 아니다. 그런 내용을 기대하시는 분이라면 기냥 나가시면 되겠다. 급발진 사고의 원인이야 자동차에 정통하신 분들이나 관련 기관에서 열심히 조사하여 결론을 낼 것이고 소들이 제기된 법원에서도 철저한 심리를 통해 밝혀질테니까 그런 곳을 주시하시면 되겠다.


대신에 여기서 본고문은 급발진 사고를 당한 사람이 법적으로 어떠한 처지인지 간단하게 그려 본 다음, 그러한 상황에서 변호사로서 해 줄 수 있는 -약간은 미덥지 않은(?) 몇 가지 조언들을 하려고 한다.


다. 가상 사례의 설정


우선 논의의 편의를 위해 다음과 같은 가정을 해보자.







내게 오늘 찾아 온 Client는 나에게 다음과 같은 사례를 상담해 왔다. 그녀의 남편은 사무실에서 늦게까지 일을 하다 집에 가기 위해 주차장에 세워 둔 자신의 승용차에 올라타서 시동을 걸었는데 갑자기 차가 급발진하는 바람에 옆에 주차되어 있던 다른 차와 주차장 사무실을 들이 받고 주차장 옆을 지나던 행인 둘을 치어 그 결과 한 명은 죽고, 한 명은 중상을 입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 남편도 다쳐 현재 병원에 입원 중이라 한다.


 What is to be done, first of all?


가. 피의자가 된 피해자


최근에 언론에 보도되는 화려한 급발진 사고 원고들과는 달리 유감스럽게도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Client의 남편이 구속되는 일을 막는 것이었다.


그는 현재 네 가지 범죄혐의를 받고 있는 피의자 신분일 가능성이 컸다. 현재 병원에 있는 탓에 아직 구속이 되지 않았지만 완쾌되는 대로 구속될 가능성도 매우 높았다. 무슨 소리냐고?


일단 급발진 사고 즉 자동차의 결함으로 인하여 사고가 발생하였는지 여부가 현재까지 전혀 밝혀진 바가 없다면 사람이 죽고 다치고 차와 주차장 사무실이 부서진 부분에 대해 누군가는 형사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즉 몸으로 때워야 한다는 말이다. 현재로서 그걸 몽땅 뒤집어 쓸 가능성이 제일 많은 사람은 바로 Client의 남편이다.


나. 적용가능성이 있는 형사법규


우선 그는 사람이 죽은 것 때문에 업무상과실치사죄 - 대개 교통사고의 경우에 적용되는 죄인데 - (형법 제268조)에 의하여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가능성이 있으며, 사람이 다친 것 때문에 역시 같은 법조문에 의한 같은 법정형의 업무상과실치상죄도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다(이 부분에 대해 Client의 남편이 과연 교통사고를 낸 것이냐에 대해서 Scholar적인 늪으로 빠져드는 논의가 있을 수 있으나 이 부분은 생략하기로 한다.).


하지만 수사기관이라면 단순히 Client의 변명만을 믿고서 그를 과실범 다시 말해 부주의로 사고를 낸 사람으로 볼 것 같지는 않다.


그들은 오히려 뭔가 사회에 불만이 있는 사람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여, 사람이 죽은 부분에 대해서는 살인죄(형법 제250조 제1항, 법정형은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 그리고 사람이 다친 부분에 대해서는 상해죄(형법제257조, 법정형은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 내지는 살인미수죄(형법 제250조, 제254조, 법정형은 살인죄를 기준으로 하되 감경할 수 있게 되어 있음)로 처벌하겠다고 벼르고 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물론 주차장 사무실 및 차가 부서진 부분도 그냥 넘어가기 힘들 것이다. 그 때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항, 제1항, 형법 제366조)의 적용이 검토될 것이다.


고의로 남의 물건을 부순 것에 대해 적용되는 죄는 손괴죄(형법 제366조 법정형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인데 어떤 행위라도 야간에 즉 -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지고 난 다음에 - 이루어진다면 2분의 1을 가중하도록 되어 있는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에 의하여 Client의 남편은 차 및 주차장 사무실을 부순 것 때문에 적어도 4년 반 이하의 징역 또는 105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가능성이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죽은 사람의 생명권, 다친 사람의 신체의 자유, 차 부서진 사람의 재산권, 주차장 주인의 재산권 같은 식으로 개개의 범죄들이 침해한 법익이 전부 다르기 때문에, 이건 전부 형법 제37조, 제38조에 의한 경합범이 된다.


이러한 경합범의 경우 살인죄의 사형과 무기징역을 받는 최악의 경우는 일단 배제하고 살펴보기로 하자(실제로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면 형법 제38조 제3호에 의하여 우선 가장 중한 죄에 정한 형의 장기 또는 다액에 그 2분의 1까지 가중하게 되는데 가장 중한 죄는 5년 이상의 징역을 정한 살인죄이고 징역형은 15년까지 선고할 수 있으므로(형법 제42조 본문), 일단 22년 6개월까지 가중을 할 수 있게 된다.


물론 그렇게까지 엄청난 형은 반란죄 등으로 기소되었던 두 전직 대통령들한테나 내려졌던 형이지만 어쨌든 이 Client에게도 이론상은 가능한 셈이다.


다. 변호사로서의 조언(?)


우선 본고문은 그렇다면 사고를 접수한 경찰서로 달려가 기록을 살펴 볼 것이다. 현재 어떻게 수사되고 있는 지를 살펴 보고 과연 경찰이 검찰에 영장을 신청할 지 여부도 - 잘 가르쳐 주지는 않겠지만 - 알아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경찰에서 검찰에 수사지휘 기록이 올라가는 날에 맞추어 Client에게 유리한 자료들을 - 과연 모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 모아 불구속으로 수사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할 것이다.


어쨌든 일단 구속되고 나면 이후의 재판과정에서도 사실상 많이 불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뚜렷한 다른 사고 원인도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과연 언제까지 Client의 남편이 구속을 면할 수 있을까. 차라리 잔인한 말이기는 하지만 그로써는 많이 다쳐서 오랫동안 병원에 누워 있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는 상황인 셈이다.


 금전적인 문제


아까 하급심 판결의 사례에서도 보듯이 급발진사고로 인정을 하고 보험금을 지급한 보험회사가 자동차 회사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그 돈을 자동차회사로부터 돌려받지 못한다는 판결이 이미 났기 때문에 아마도 보험회사 측에서도 Client의 남편이 낸 사고에 대해서 보험처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Client는 생돈을 물어 내야할 가능성이 높다고 할 것이다. 차가 부서진 것에 대해서는 그 차의 차종과 연식에 따라 현재가치를 물어 주어야 할 것이고, 주차장 건물 부서진 것도 다 물어 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다친 사람에 대한 치료비 및 그 사람이 후유증이 있을 경우에는 그 부분에 대한 향후 치료비, 그 사람의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 그리고 다친 사람이 일을 하지 못한 기간에 대한 휴업손해 등을 물어 주어야 할 것이다.


또한 줄잡아 죽은 사람에 대해서는 장례비, 죽기 전까지 들었던 치료비, 유족들에 대한 위자료, 그리고 본인에 대한 위자료를 유족들이 상속한 부분, 그리고 본인의 직업 및 연령에 따라 그 사람이 일할 수 있을 기간 동안에 벌어 들이리라고 예상되는 수익 등을 뒤집어 쓰게 될 가능성이 높다.


보나마나 본고문 같은 변호사를 찾아 온 걸 보면 Client는 기껏해야 월급을 받아 가고 어떻게 집 한채를 겨우 구했거나 전세금 정도나 있는 사람일텐데 아까까지 말한 걸 다 물어 내다보면 월급 내지는 퇴직금을 고스란히 쏟아 붓고, 전세금이나 집값을 다 포기하더라도 빚을 상당히 지지 않는 한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액수일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돈을 물어 내지 않는다면 아마도 위에 말한 형사절차에서도 좋은 인상을 심어 주지 못해서(?) 선처 받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른바 급발진소송을?


결국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고 본고문도 다른 변호사님들처럼 내 Client를 위해서 자동차회사를 상대로 이른바 급발진소송 즉 이번 사고는 Client의 남편 잘못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자동차 결함에 의해 발생한 것이니 자동차 회사에서 손해배상해야 한다는 소송을 제기해야 할 것인가?


이는 결국 민법 제750조에 의한 불법행위 책임이나 제580조에 의한 하자담보책임을 자동차회사를 상대로 묻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불법행위책임이 인정되려면 민법 제750조에 의하여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라야 하고 하자담보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목적물에 하자가 있는 경우라야 한다.


결국 두 가지 다 위에서 말한 하급심판결에서 지적하였듯이 입증의 문제인 것이다. 특히 그 입증부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겠지만 자동차에 결함이 있었다는 사실과 그러한 결함과 급발진과의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었는지도 밝혀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법원에서 인정 가능한 증거들로 입증하지 않는 한 급발진 소송이라는 것은 말하자면 빛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그렇다면 본고문은 무엇으로 인과관계를 입증해 낼 수 있을까?


우선적으로 사고를 목격한 사람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최근의 언론보도처럼 무인감시카메라 필름 같은 것도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다 정직해 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과연 그것으로 충분한 입증이 된다고 할 수 있을까? 정작 필요한 입증은 자동차에 결정적인 하자가 있었고 그러한 하자가 어떠한 메커니즘을 통해 사고를 일으켰다는 부분인데 두 가지 다 그러한 입증을 위해선 턱없이 부족한 증거들일 뿐이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우리 법원은 그러한 인과관계의 인정에 있어서 그다지 너그럽지 못한 편이다. 그리고 우리의 법률 보다 용이하게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는 이른바 미국법상의 제조물책임법(Product Liability Law)를 아직 도입하지 않은 상태이다.


과연 그렇게 보무도 당당하게 언론에 나면서 제기된 급발진소송들 중에서 과연 몇 건이나 자동차회사의 책임을 인정받을 수 있을지 솔직히 의문이다.


 마지막 반격


결국 Client 남편의 차가 국산이라면 본고문은 Client가 자동차회사에 대해 분개하는 것에 대해 적당히 맞장구나 쳐주고 슬쩍 다른 일이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사건을 수임하지 않는 방향을 택할 것 같다. 그렇지만 만약 외국차라면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한번 더 생각 해 볼 것 같다.



외국차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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