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우울증] 대선우울증은 오진이다.

2007.12.14.금요일
딴지편집국 신짱

Your political compass
Economic Left/Right: -9.25
Social Libertarian/Authoritarian: -6.82

(위 그래프는 넷상에서 꽤 유명한 정치성향 테스트의 결과화면이다. 대충 소개하면 그래프 상의 x축은 경제적 좌/우를 말하고 y축은 사회적 자유주의/권위주의를 말한다. 혹시 처음 보는 독자들이라면 요기로 가서 직접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위 그래프는 내가 가장 최근에 테스트했던 폴리티컬 컴패스의 결과이다. 개인적인 이념고백을 이 글의 초장부터 공개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순전히 실용적인 이유다. 나의 이념적 성향에 대한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많고 많은 대선관련 글에 하나를 더 보태는 이 글에서 후보들 각각에 대한 평가가 나오지 않는 이유가 저 결과 속에 함축되어 있다. 두번째 이유가 더 중요한 데, 이념의 4분면을 묘사하는 저 그래프가 지금 이 글에서 다룰 내용(이명박 프레임, 국민노망론)의 직관적 이해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애기인즉슨 이렇다.

대선우울증이란 말은 사실 내가 만든 조어이지만 솔직히 고백컨대 나는 한번도 대선 때문에 우울함을 느껴본 적이 없다. (이 점에 대해선 대선우울증 게시판의 헐렁이님 입장이 나랑 거의 동일한 것 같다)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대선 때문에 우울해 하길래 그 모습을 냉담하게 묘사한 기술적 용어일 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일부 사람들의 대선우울증이 오진 때문에 빚어진 실체가 없는 질병임을 주장할 셈이다. 

이명박의 도덕성에 관한 분노라면 이 나라의 소위 지도층, 상류층 인사들에 대한 내 나름의 판단이 선지 오래기에 그다지 놀랍지 않다. (지난 몇년간 내가 딴지에서 가장 많이 썼던 기사가 그 높으신 양반들의 고매한 도덕성을 찬양하는 기사였다) 삼성 비자금 사건이 터졌는데도 이건희는 여전히 존경하는 경제인 1위 아닌가. 삼성 비자금 사건에 비하면 이명박의 BBK는 기껏해야 스캔들 이다. 차제에 삼성가의 도덕성에 대한 분노가 이명박의 도덕성에 대한 분노 수준으로 격상되는 게 사회적 분노 양극화 해소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문제는 미처 제 한몸 지탱하기 힘들 정도로 흠이 많은 이명박과 이건희가 여전히 이 나라의 지도층으로 군림한다는 사실이고 이 글의 주제에만 한정한다면 천재지변 수준의 사회적 변동이 오지 않는 한 며칠 후 그 이명박을 이 나라의 대통령으로 인정해야 할 우리의 현실이다.

이명박의 압도적인 지지율에 대해서는 이미 충분한 분석이 이루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그 분석에 대체적으로 동의한다. 현정권 심판론, 반노정서, 경제적 어려움 등등. 쉽게 말해 먹고 살기 힘들고 그 원흉으로 지목되는 노무현이 싫다는 거다. 그리고 이어지는 결론으로 국민들의 착시현상을 지적한다. 노무현에 대한 분노는 이해할 수 있지만(물론 이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그 대안으로 이명박을 선택하는 판단에 논리적 점프가 있다는 얘기다. 맞는 말이다. 근데 그 다음이 문제다.

이른바 국민노망론.

여기서 나는 위대한 민중의 힘 어쩌구를 웅변할 생각이 전혀 없다. 사실 지금 국민노망론을 얘기하는 자들이야말로 월드컵 때 국민이 강팀임을 주장하고 노무현의 승리를 국민의 승리로 포장하고 탄핵 촛불집회와 총선 때 위대한 국민의 힘을 부르짖던 자들이다. 

지금에 와서야 국민들 탓을 하는 그들의 기회주의는 차치하고라도 내가 7년 전에 개인적으로 써두었던 영화 시나리오에서부터 나를 포함한 대중은 이미 영락 없는 좀비였다. 자기 스스로 욕망하는 법을 잃어버리고 체제와 시스템에 의해서만 욕망하는 법을 배우는, 오직 피에 대한 본능적 갈구로서만 존재의미를 찾을 수 있는.(어려운 예를 들 것도 없다. 작년에 대학생들이 가장 존경하는 영화인은 봉준호 감독이었고, 같은 매체에서 조사한 올해의 결과는 심형래 감독이었다. 이 결과가 그 어떤 시스템의 농간이 아니라 순수한 취향의 결과라면, 그래서 작년과 올해 혹은 올해와 내년 봉준호 감독이나 심형래 감독이 연속으로 1등을 한다면 나는 기꺼이 타인의 취향을 존중해줄 각오가 되어있다.)

역사상 대중이 노망나지 않은 적은 거의 없다.(사회 속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지 못해 합리적인 정치적 행위를 하지 못하는 행위를 노망이라 표현한다면) 만일 그렇다면 지금 당장 이데올로기니 문화연구니 하는 단어들이 존재할 이유가 없어진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모든 것이 투명하게만 존재하는 유토피아의 세계일 것이다.(그런 세계가 유토피아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사회과학의 상식으로 대중들의 진짜 욕망은 언제나 비틀린 형태로 현상한다. 대중의 욕망이 투명하게 현상하지 않기에 그것을 조장한 지배세력의 조작과 대중의 실제욕망을 분석하는 이론이 필요한 것이고 그 작업을 해야 하는 것이 바로 지식인의 책무다.

지금 이명박을 향한 대중의 욕망을 노망난 대중 탓으로 돌리는 것은 무지 혹은 의도적인 기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이런 사고가 종국에 기대는 것은 오직 정치공학만 살아있는 진영논리 밖에 없다. 그리고 이것은 필히 현상에 대한 왜곡된 분석을 이끌어낸다.

국민들이 기대하는 이명박의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일까. 더 많은 성장, 더 높은 1인당 국민 소득? 아마 직접 물어보면 그렇게 대답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제대로 자신의 욕망을 표현할 언어가 없기에 이명박의 언어로 엉터리 번역이 되는 건 아닐까.

이명박이 표상하는 가치가 7,80년대 개발독재 시대의 향수를 자극한다는 건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국민노망론자들은 이 점을 들어 국민들이 독재시대의 인권탄압과 민주주의 침해를 벌써 망각했다고 개탄한다. 물론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어떤 경우이건 이번 대선에서 그 점은 중요 쟁점이 아니란 사실이다. 소위 민주/반민주, 부패/반부패 구도는 위 그래프로 따지자면 y축에 해당한다. 어떤 것이 더 중요한 것이냐는 가치 판단과는 별개로 경제적 측면을 따지는 x축에 비해 y축의 열세는 이미 우리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이제 x축을 따져보자. 실제 테스트의 내용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편의상 왼쪽을 분배위주/서민위주, 오른쪽을 성장위주/부자위주 이렇게 가정하자. 겉으로 드러난 모습으로만 봤을 때 이명박 쪽이나 국민노망론자 쪽이나 오른쪽 언저리 어딘가에 좌표가 위치할 것이다. 이명박이 좀더 오른쪽으로 갔겠지만 그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만일 국민들이 합리적으로 판단한다면 두 측을 모두 배제하고 더 왼쪽에 있는 세력을 선택하는 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일 것이고, 굳이 두 세력 중에서 선택한다면 국민노망론자 쪽을 택하는 게 더 이득이다. 국민노망론자 쪽은 게다가 y축의 이점까지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어떤 착시가 일어난 것일까.

이번 대선의 유권자들이 바라보는 것은 그들의 현재 혹은 그들이 제시하는 미래가 아니다. 유권자들은 그들의 과거 모습을 통해 미래를 본다. 이건 두 진영 다 마찬가지다. 국민노망론자들의 경우 소위 잃어버린 10년이 이에 해당한다. 비정규직 확대, 청년실업, 무한경쟁, 공교육 붕괴와 사교육 대란, 승자독식, 사회양극화 이런저런 무수한 묘사와 표현들이 있지만 쉽게말해 서민들의 똥구멍이 찢어졌던 시기다. 그 10년동안 정작 잃어버린 10년을 주창했던 이명박의 재산은 152억이 늘어서 입이 찢어졌지만...

여기까지만 보면 얼핏 국민이 노망난 것 처럼 보인다. 논리적 오류가 너무나 명백하기에. 그런데 반전이 있다. 유권자들이 바라보는 아니 보고 싶어하는 이명박의 경제. 이건 실체가 아니라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경험적인 진리와 관련이 있다. 앞서 언급한 7,80년대 개발독재 시대에서 그들은 인권탄압과 민주주의의 침해 혹은 성장의 그늘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것을 본다. 소위 경제적으로 좋았던 옛시절을 보는 것이다. 문제는 이것을 단순히 경제성장이란 언명으로 이해하는 것에 국민노망론자들의 결정적인 착시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명박에 대한 국민들의 착시 외에 그것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또하나의 착시가 존재한다는 얘기다.

물론 당시에 기록적인 경제성장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은 외환위기가 있던 97년을 제외하고 경제성장이 멈춘 적이 없는 나라다. 지금도 OECD 국가중 높은 경제성장률을 유지하고 있다. 신문보도에 따르면 이건희와 노무현이 그리도 꿈에 그리던 국민소득 2만달러가 올해안에 달성될 가능성이 거의 확실시 된다고 하는 데, 우리 국민들의 욕심이 너무 커서 문제인 것일까.

국민들이 경제성장이란 단어를 입에 올린다고 진짜 그들의 욕망이 문자적 의미에서의 그것일 거라고 믿는 것만큼 순진한 생각은 없다.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분배와 성장이란 단어 속에 숨겨진 이데올로기적 농간이다. 둘다 표면적으로는 가치중립적인 용어이다. 그러나 그 단어들은 당사자에게 절대 가치중립적으로 다가가지 않는다. 분배는 각자가 자기 몫을 가져가는 것인데, 우리는 분배라는 단어에서 내 것을 빼앗기는 장면을 연상한다. 그리고 그 가져가는 것을 묘사하는 단어로 선택된 게, 바로 성장의 개념이다.

여기서 나는 조금은 도발적인 가설 하나를 제시하고자 한다. 국민들이 좋았던 옛시절로 추억하는 개발독재 시절이 단순한 착시가 아니라 정말로 어떤 의미에서는 좋았던 시절이었을지도 모른다 고, 다만 그것을 묘사하는 단어로 쓰인 성장의 개념이 진정한 착시의 원인이고 현재 이명박 지지율의 비밀을 푸는 열쇠라고.

7,80년대가 좋았던 옛시절이라는 의미는 지니계수니 노동소득 분배율이니 하는 경제적 수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오히려 적극적인 문화적 해석을 요구하는 문제라는 게 내 생각이다. 행복은 상대적인 것이고 양극화에 따른 박탈감은 내 주변의 모습들과 비교해 볼 때 더욱 절실해지는 법이다. 그 옛날 쌀밥만 먹어도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 거리를 누비는 그 수많은 백수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쌀밥 못먹어서 불행하단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게 권위주의 정권 시절이라고 오직 나쁜 일만 있었다는 생각이다. 역대 정권중 가장 화끈한 개혁정책을 편 것은 김영삼 정권이었다. 하나회 폭파, 금융실명제 단행, 전직 대통령 두명 구속. 열혈민주투사라는 김대중과 노무현의 개혁도 김영삼에 비하면 조족지혈 수준이다. 복지의 개념이 전무한 대한민국에서 그나마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의료보험 제도를 시행한 것도 노태우 정권 때 일이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그 시절을 좋았던 시절로 회고하는 가장 큰 이유를 나는 계급간이동의 탄력성 문제라고 생각한다.

개발독재 시절, 그 시절에도 분명 양극화는 존재했다. 전태일이 시다에게 밥을 사주고 자기는 풀빵으로 배를 채우던 시간, 요정에서 흥청망청 거리던 자들이 분명 존재했다. 문제는 그시절을 계급간이동의 탄력성이 비가역적으로 구조화된 현재와 비교했을 때의 엄청난 차이다. 그 차이는 학생운동으로 감옥까지 가고도 졸업하자마자 현대건설에 입사할 수 있었던 이명박, 역시 학생운동으로 4년내내 0점대 학점을 유지하고도 대기업으로, 국회로 쉽사리 계급이동을 감행할 수 있었던 386(이들 세력의 상당수가 국민노망론자들이다)들과 현재의 청년백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문제이다.

사교육 문제를 살펴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요즘 세상에 개천에서 용 나는 게 가능한 일인가. 누구 말마따나 없는 집에서 자식 교육 시키기에는 3불에 과외금지에 보충수업 금지까지 있던 전두환 정권 때만큼 행복한 시절은 없었다.    

좀더 논지를 분명히 하자면 그래프상 개발독재 시대의 좌표가 지난 잃어버린 10년의 그것보다 훨씬 왼쪽에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표면적으로 국민들은 그래프상 가장 오른쪽의 이명박을 지지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 그들이 지지하는 가치는 꽤 왼쪽의 좌표라는 게 내 주장이다. 다만 그들의 뇌리에는 그 지지하는 가치가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각인되었다는 게 비극이라면 비극이랄까.      

아직 관치금융과 재벌특혜와 제한적 개방으로 세계자본주의 시장에서 생존할 수 있었던 시절. 독재정권은 터보 근대화와 정권의 정통성 확보를 위해 y축 좌표는 끝도 없이 위로 올렸을지언정 x축에 있어서는 본의 아니게 좌측으로 게걸음을 쳤다. 물론 사회적 통제가 아니라 독재자 개인의 통제라는 차이가 있지만, 당장 먹고 살아야 하는 서민들 입장에서 누가 통제하느냐는 관심사가 아니다. 당시 경제규모상 절대적 성장률의 증가가 어느정도의 실제적인 수혜로 돌아오는 상황에서, 이 점이 나는 박정희 향수, 이명박 신드롬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뭐가 남았을까. 국민노망론자들의 허망한 변명이다. 김대중과 노무현의 개방 터보화가 신자유주의시대의 세계자본주의 질서에서 살아남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란 점. 그 자체로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이 점은 우리의 x축 좌표가 오직 오른쪽 언저리에서만 놀아야한다는 전제가 있을 때 유지 가능한 주장이다. 그리고 여전히 그들은 그 전제를 포기할 생각이 없어보인다.

그들이 이번 선거에서 패배한다면 그것은 그들의 자업자득이다. 그것은 더 극단적인 양극화를 좋았던 옛시절로 기만하는 데 성공한 이명박 측 상징조작에 대한 상대적 패배이자 10년간의 실제 삶에서 나온 학습효과를 통해 그들의 기만에 속아넘어가지 않은 국민들에 대한 절대적 패배이다.

국민들은 착시현상으로 결과적으로 잘못된 선택을 했을지언정 적어도 가치에 있어서는 자신의 이해에 따라 자신의 욕망에 따른 선택을 했다. 너무도 뻔한 상징조작에 넘어간 그들의 무지를 안타까워할 지언정 그들을 모욕하는 것은 오만한 짓이자, 그들을 그렇게 이끈 장본인인 국민노망론자들의 몫도 아니다.

누가 더 국민들을 잘 기만하느냐의 싸움에서 국민노망론자들은 이명박에게 확실히 패배했다. 이명박이 절대우위를 가지고 있는 x축에서의 싸움을 포기한 대신, 국민노망론자들이 든 무기는 y축에서의 상대우위다.

그런데 국민들이 순진하게 묻는다. 그 잘난 역사적 정통성과 민주주의가 밥 먹여 주냐고...

대선우울증은 이 질문에 답변하지 못하는 자들의 당혹스러움을 감추기 위해 고안된 꾀병일 뿐이다.

p.s

개발독재를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의 압도적인 이명박 지지에 대한 의문이 있을 수 있다. 이 문제는 의외로 간단하다. 독재정권에 의해 민주주의의 반대말을 공산주의로 착각했던 우리의 학창시절을 떠올려보라. 20대에게 지난 잃어버린 10년은 그들의 삶, 전체와 같다. 그들에게 잃어버린 10년의 반대말이 이명박 외에 또 무엇이 있을까. 태어나면서부터 박정희가 대통령이었던 사람에게는 전두환의 등장이 정권교체로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대선우울증을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시리즈 

①적혈구와 백혈구, 분노와 웃음

② 이명박을 지지한다

③ 나의 투병

④ 이영민씨들에게 보내는 마음의 편지

신짱(redpi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