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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선배, 민노당 가입할까요?


 


2008. 1. 14. 월요일



 


"나도 민주노동당 가입할까요?"


양치질하듯 내뱉은 네 말에 나는 뭐에 찔린 듯한 반문의 연속으로 답했다.


"가...갑자기 무슨 얘기야? 웬 민주노동당? 왜...왜 나보고 물어?"


"선배 연말정산에 붙어 있네요. 민주노동당 영수증이..... 그래서 물어 본 거유. 왜 그리 놀래요?"


네가 봤듯 내가 왜 그리 흠칫했을까. 왜 그리 말을 더듬고 나지도 않는 땀을 훔치려 손을 이마에 가져갔을까. 몇 달 전에만 들었더라도 반색을 하며 그래 그래 맞장구를 세마치로 쳤을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미 운동이라는 유령이 대학가로부터 퇴거신고를 한 지 오래일 즈음에 학창시절을 보낸 네가 민주노동당에 작으나마 관심을 표하는 것은 환영해 마땅한 일이나 후원회비 영수증을 6년째 붙여 오고 있는 처지에서도 현재의 민주노동당이 그 관심깜이나 되려나 하는 걱정이 앞서고 그 정당과의 연루가 전혀 자랑스럽지 못한 것이 당혹감의 이유가 될까.


아마 네가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민주노동당을 눈여겨보기 시작한다면 일단 머리를 저을 것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하겠지.



 


 


"선배, 3프로 주제에 정말 대가리 박 터지게 싸우네요."


그러나 나는 최소한 그 지적에는 의연할 수 있을 것 같다. 진보정당이 아니라 진보 할애비 정당이라도 계파는 있고 정파는 존재할 거다. 그리고 그들은 머리카락을 쥐어뜯든 점잖게 글로 칼질하든 싸움박질을 할 것이다.  그런 다툼 하나 없이 일사불란한  정당이라면 그거야말로 파쇼 정당이나 북조선 노동당에서나 가능한 일이겠지. 그러면서 나는 여유 있는 냉소를 머금으며 네게 충고하지 싶다.


"싸움의 원인을 한 번 들여다 봐 봐."


그쯤에서 네가 관심을 접고 생업에 종사해 준다면 나로서는 솔직히 기꺼운 일이겠다. 사실 바쁜 처지에 3프로짜리 정당의 집안 싸움을 그리 여유있게 들여다볼 정성이 있다면 네가 비정규직 노동자겠냐. 기냥 일이나 해라. 편집 다했냐? 으흠...... 정치에 관심 좀 가져라고 툭하면 설교해 대던 선배 주제에 네 기특한 관심을 이리도 처절히 배반하게 되는 것은 네가 민주노동당 내 싸움의 이유를 알게 되는 것이 싫어서다. 부끄러워서다.  그리고 네 입에서 이 말이 나오는 게 끔찍해서다.



 


 


"푸하, 21세기에 웬 NL, PD? 그것도 웃기긴 한데 종북주의는 또 뭐야, 전설 속의 주사파가 정말로 있단 말이에요? 김일성 만세 부르는 애들이?"


대답하기 참 드러운 순간이다.


네가 두살 때쯤 김영환(참고삼아 설명한다면 이 사람이 우리나라 자생적 주사파의 원조쯤 된다)이 단파 라디오를 통해 이북 방송을 들으며 감격에 떨었을 것이고 PD란 정파의 이름이 등장한 건 네가 초등학교에서 술래잡기를 하고 있었을 즈음이니 전설이라는 표현이 그렇게 합당하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드라큐라와 늑대인간과는 달리 전설 속의 주사파는 존재한다. 그것도 진보정당의 핵심들에 골고루 포진하고 있다.


 


 


"아니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해요? 지금 북한이 어떤지를 뻔히 알면서......그래도 북한 좋다고 하고 다닌단 말이에요? "


라고 네가 묻게 되겠지.


건전한 상식과 "인터넷만 두드리면 뜨는" 정보를 섭렵하는 대한민국 젊은이로서 당연한 질문이겠지만 그 질문을 한 순간 주사파들 앞에서 너는 "반북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불쌍한 영혼"이 되어 버린다.


수십만이 굶어 죽은 것은 절대로 북한 정권의 무능 탓이 아닌 미제의 봉쇄 탓이고 반핵을 지상과제로 삼아야 마땅한 진보정당내에서 "자위적 핵무기"는 비판의 대상이 아니게 되며 탈북자들은 죽지 못해 강을 건넌 사람들이 아닌 멀쩡한 조국의 얄팍한 배신자로 전락한다.


무슨 말인지 알겠니? 즉 그들은 북한이 어떤 곳이라는 공감대를 자기들끼리만 형성해 두고 남의 얘기에는 귀를 막고 상대의 입도 막으려 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 방식은 예전의 공안 검사들이랑 대단히 유사하다. "빨갱이랑 비슷한 말 하면 너 빨갱이야"다. 아마 당게시판에서 네가 네 상식을 토로하면 장담컨대 몇 명이 벌떼처럼 달려들 것이다. "왜 조선일보같이 말하세요오오오?"


빨갱이 비슷한 말 하면 다 빨갱이라는 검사와 조선일보같이 말하면 다 조선일보라는 치들의 공통점은 토론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그들이 정말로 그렇게 믿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단지 빨갱이와 조선일보는 자신들의 입지를 굳히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될 뿐이라는 것이지. 그렇게 몰아붙여서 자신의 반대자들의 입을 걸레로 틀어막기 위함이라는 것이지. 


당 간부 명단을 북한 정보기관에 통째로 넘긴 당 사무부총장이 "국가보안법의 희생자"로 활동비까지 꼬박꼬박 지급받고 있단다. 개인정보를 임의로 누출하는 것 자체가 범죄이며 그걸 타국의 정보기관에 송두리째 넘기는 행위는 끔찍한 해당행위임을 주장하면 역시 튀어나오는 소리가 "공안당국같은 주장" 이다. 자기와 다르면 공안당국을 닮았다고 주장하는 이 천재적인 아니 무대뽀의 유전자 조작자들에게 가능한 토론은 단언컨대 없다.  그들에게 반대하는 것은 공안당국을 돕는 것이고, 그들을 비판하는 것은 국가보안법을 이용하는 것이고, 그들에게 맞서는 것은 조국에 대한 반역이 된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자기들에게 주사파나 종북파나 하여간 비슷한 단어를 갖다 붙이는 걸 끔찍히도 싫어한다. 이십원어치만 더 관심을 기울인다면 아마 그 친구들이 "누가 종북주의자야? 이름 대 봐" 하면서 술 취한 양아치처럼 소리 지르는 걸 듣게 될 것이다. 바로 그것이 그들의 사기 수법이다.



김일성 생일날 케이크를 자르며 눈물에 젖었던 이들도, 정몽헌을 죽인 것은 반통일 세력이라는 희한한 인간도 자기가 체화하고 지지하는 것이 주체사상이라고, 북한의 이데올로기라고 절대로 밝히지 않는다. 보름달이 뜨기 전의 늑대인간처럼, 어둠이 깔리기 전의 드라큐라처럼.


그저 사람 좋고 술 즐기며 선배에게 깍듯하고 후배에게 화끈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성향은 반으로 접고 비단으로 감싼다. "조국은 통일되어야 하며" , "우리 민족끼리 뭔가 해 나가야" 한다는 슬로건을 들으면 너도 크게 거부감은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구호 소리에 가슴 뜨거워지고 홍대 앞에서 양키놈들이 설치면 욕보다 주먹이 앞서는 너 아니겠냐.  그들의 무기가 바로 그 그럴싸함이다. 두리뭉실의 철퇴고 어영부영의 도끼다. 그들의 독단적인 행동들이 바로 그 그럴싸함에 동의하는 사람들의 머릿수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당내에서 다수파가 자주파라고 하는데 그 다수가 다 주사파인 것은 절대로 아니다. 아마 그 속에는 주사파라면 코웃음을 치는 사람들도 적잖이 섞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처럼 그들의 열정과 지혜가 주사파들에게 계속 배신당하리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것은 그들이 주사파들의 꽃가마를 본의아니게 떠받들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지금 주사파들은 1인 6표제를 주장하고 있다. 내가 언젠가 자랑했다시피 앞서가는 선거 시스템을 자랑하는 민주노동당은 당 홈피에 접속 후 휴대폰으로도 당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데 1인 6표제 시스템 하에서 결국 가마꾼들은 가마에 탄 이가 어떤 이인지 정확히 알지도 못한 채 그들의 승리에 필요한 머릿수만 채워 줄 수 밖에 없다. 알지도 못하는 위인들을 평가하는 기준은 사실 "아는 사람"과 "열심히 하는 사람"의 추천이기 십상인 탓이다.  


심지어 대선 전에는 그런 일도 벌어졌다.  어느 지역에서 갑자기 당원 수가 급증해서 조사해 보니 열 두 살, 열 세 살 먹은 어린아이들까지 망라되어 있었다고 한다.  아이들이 무슨 정치 영재도 아니고, 부모의 절대적인 영향력 하에 있는 아이들이 당권을 행사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하고 누군가 중앙당에 문의했더니 당원관리부장이라는 분의 답은 다음과 같았단다.


" 당권은 13세 이상부터 가질 수 있음을 알려드린 바 있습니다. 당규 24호 선거관리규정 제3장 15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뭔가 대단한 정당 같지 않냐. 느낌이 팍팍 전류로 흐르지 않냐.
 
이러면 반드시 튀어나오는 소리가 있다. "민중은 지혜롭다. 너만 똑똑한 줄 아느냐. 왜 민중의 선택을 무시하느냐." 너도 잘 알다시피 나는 똑똑한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나보다 똑똑한 사람도 사기당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사회상을 솔직히 드러내지 못하며 궁극적으로 정당이 지향해야 할 체제를 함께 고민하지 않는 것은 정치적 사기 행각이다.


그들의 지혜로운 은신술을 찬미해야 할까? 아니면 그 사기를 그만두라고 호소해야 할까.



 


 


"아니 다른 사람들은 도대체 뭘 하고 있었어요. 도대체 북한같은 나라를 떠받드는 인간들이 판을 치도록..... 그게 진보정당이에요?"


아마 너는 성을 낼 것이다. 그리고 기가 막혀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두 팔을 벌릴 것이다. 두 팔을 벌릴 거야~~~ 행진이 아니다. 얼마 전 전 국회의원 조승수씨가 북한을 "군사왕조"로 지칭했다가 난리가 났다. 민주노동당의 날카로움은 판문점에서 멈추고 민주노총 문 앞에서 사그라든다"고 했듯 민주노총은 해당행위를 하는 조승수를 징계하라는 황당한 요구를 내걸었다. 그 이유는 위에서 내가 주구리장창 설명하였으니 따로 적지 않는다.



참으로 부끄럽게도 그게 현실이었다. 경선 전의 메이데이날 민주노동당씩이나 되는 당의 국회의원들은 메이데이 행사가 아니라 북한 노동자들이 오셔서 공 찬다는 곳으로 집결해 계셨었다. 그날의 주빈은 명백히 북한 노동자들이 아니어야 하는데 말이다. 민주노총 때문일까? 조선은 하나다에 목맨 이들 때문일까?


어찌 되었든 그 머리 수 때문에, 그 가공할 번식력 때문에 , 그리고 한때나마 한솥밥을 먹으며 함께 어깨 걸고 대머리 괴물 귀 큰 괴물과 맞섰다는 관성 때문에 진보 정당 내에서는 군사왕조의 신민들과 공화국의 시민들과 노동자 계급이 공존해 왔다고 하면 네 기가 더 막힐까 아니면 좀 뚫릴까.


그리하다 보니 결국은 진보정당을 가장 퇴행적인 이들이 장악하게 됐고,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난데없이 코리아 연방을 내세우자는 삼단 포크레인질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하면 너는 나를 비웃을까 아니면 불쌍하게 여길까. 그리고 선거 패배의 이유를 "국가 비전인 코리아 연방을 보다 더 힘있게 주장하지 못했던" 까닭이라고 우기는, 얼굴도 머리도 단단한 사람들이 있다는 걸 네가 믿을까 안믿을까.



 


 


"아이고 큰일날 뻔 했네 나 민주노동당 안해요. 아니 그럼 내가 당비내면 그 돈 가지고 누구 선거운동하게 되는 거야?"


바로 그거다. 내가 요즘 고민하는 부분이다.


지금 이대로 간다면 내가 속한 정당의 자주파 국회의원을 응원해야 하는 황당한 처지에 처하게 된다. 끔찍히 싫어하고, 그 지향점을 거부하며, 아마도 그들의 치하가 되면 우선 옛 기억을 더듬어 화염병 제조법부터 익힐 것 같은 내가 말이다.


그 망할 놈의 비례대표라도 한 자리 하겠다고 지금 줄을 서 있는 무슨 연합 무슨 연합의 주사파 내지 그 경향적 지지자들이 1개 분대는 넘을 거 같다. 지금 시스템은 그걸 눈 뜨고 지켜보라는 시스템이다.  지난 토요일에 비상대책위가 발족했고 심상정 의원이 그 봉합의 책임을 맡았다.  지난 4년 간 당 지지율을 반의 반토막을 낸 책임자들 중 일부는 끝끝내 비례대표 결정을 당원의 뜻 (쪽수의 힘)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딴지를 걸었다. 과연 비상 대책이 왜 필요한지 그들은 알는지 모르겠지만. 


자 사랑하는 후배야 너라면 뭐라고 할까, 아니 어떻게 할래? 입당할래?  아니 나는 어쩌는 게 좋을까?



 


 


"선배 병신이우? 그걸 눈뜨고 보게? 꼴보기 싫음 때려치우든가. 아님 대놓고 싸우든가. 이도저도 아니면 생각하지를 말든가."


그래 네 말이 맞다. 병신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게 제일 현명하고 내 머리가 아프지 않을까를 고민하는 중이다. 네 말대로 그냥 때려치워 버리면 참 좋을 거 같긴 한데, 그래도 나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더 훨씬 노력하고 피땀 흘려 일군 진보정당이 군사왕조의 신민들의 놀이터가 되는 건 머리보다 가슴이 아픈 일이다.


새해 복 많이 받아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때려치울까 싸울까 아예 생각하지를 말까..


 


14년차 방송노동자
산하(nasanha@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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