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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6일 오후 세 시,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있었던 불법 의혹과 노조 문제에 대한 사과와 반성이 주요 내용이었다. 이어서 ‘앞으로 법을 어기는 일을 하지 않겠다’, ‘자녀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 ‘노동3권을 확실히 보장하겠다’, ‘재판이 끝나더라도 삼성준법감시위원회의 독립적인 활동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재용 부회장 대국민 사과문 영상(전문)

 

사과와 약속의 내용, 진정성에 대한 평가를 떠나 자타가 공인하는 글로벌 대기업 삼성의 (사실상) 수장이 법을 잘 지키고 노동3권을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대국민 사과를 통해 한다는 자체가 웃픈 일이다. 무려 2020년에 말이다.

 

이 웃픔을 뒤로 하고 이번 대국민 사과의 배경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보자.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 있듯이 이번 이재용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는 ‘삼성준법감시위원회’의 권고에 따른 것이었다. 지난 2월 3일 공식 출범한 '삼성준법감시위원회'는 삼성이 만든 독립적 준법감시조직이며 감시대상은 삼성 계열사의 임직원이다.

 

불과 석달 전, 삼성이 준법감시위원회를 만들고, 준법위가 3월에 내놓은 권고에 따라 이재용 부회장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것은 현재 진행중인 이재용 부회장의 국정농단 뇌물공여 파기 환송심과 관련이 있다.

 

2017년부터 시작된 이 재판에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 받아 법정구속된 이재용 부회장은 이듬해인 2018년 2월, 2심에서는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고 석방된다. 그러나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해 8월, 2심 재판부가 삼성이 최순실에 건넨 말 세 마리를 뇌물로 인정하지 않고 묵시적 청탁도 없었다고 내린 판단을 뒤엎고 파기환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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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기환송심 재판부는 2심 재판부가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면서 인정한 뇌물 액수보다 50억이 늘어난 86억의 뇌물액을 놓고 형량을 정하게 되었다. 이에 더해 묵시적 청탁까지 최종 인정된다면 집행유예가 아닌 실형이 선고 될 가능성이 크다는 예상이 지배적인 상황. 파기환송심 이후 더 이상의 재판은 없으므로 실형이 확정되면 특별 사면이나 가석방이 없을 경우 그대로 형기를 마칠 때까지 복역해야 한다. 2심 집행 유예가 있기까지 구치소에 수감된 바 있는 이재용 부회장에게, 교도소에 수감될 지 모르는 최대 위기가 닥친 것이다.

 

따라서 작년 10월부터 시작된 이재용 부회장의 파기환송심은 처음부터 재판부가 선고하는 형량에 모든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한 마디로 ‘실형이냐 집행유예냐’였다.

 

그런데 정준영 재판장의 서울 고등법원 형사1부는 1차 공판부터 이례적인 주문을 했다. “지금도 삼성그룹 내부의 실효적 준법감시제도가 작동되고 있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이 사건 같은 범죄는 재발할 수 있다”, “실효적 준법감시제도는 하급직원 비리방지만이 아니라 고위직, 기업총수 비리행위를 감시할 수 있는 철저한 것이어야 한다. 연방양형기준 8장과 미국 대기업들이 실행중인 준법감시제도를 참고해 주시길 바란다”고, 매우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피고인 이재용 부회장에게 재판부가 권고사항을 전달한 것이다.

 

그래도 1차 공판에서 재판부는 이러한 주문이 재판결과와는 무관할 것임을 강조했으나 지난 1월 17일 4차 공판에서는“실질적이고 효과적으로 운영되어야만 양형조건으로 고려될 수 있다”고 말하면서 사실상 양형에 참고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요약하면 이재용 부회장이 대국민 사과를 했는데, 그것은 삼성준법감시위원회가 권고한 바에 따른 것이었으며, 권고를 한 준법위는 이재용 부회장 파기환송심 재판부의 주문에 따라 삼성이 만든 조직이라는 것이다. 집행유예가 선고된 2심 재판의 결과가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되면서 모든 것이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선고하는 형량에 달려 있는 이 때, 실효적인 준법감시제도를 만들어 운영하면 양형에 고려하겠다는 파기환송심 재판부의 발언은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에게 실형을 면할 여지를 만들어주는 절대적 메시지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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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가 언급한 미국 대기업의 준법감시제도와 연방양형기준 8장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보자. 미국 기업의 준법감시제도는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Compliance program, CP)을 일컫는데, 여기서 컴플라이언스는 법의 준수는 물론 기업의 사회적 책무까지 포괄하여 해석할 수 있다.

 

미국의 연방양형기준 8장에는 ‘기소된 법인이 범죄행위가 있던 시점에 실효적으로 작동하는 준법감시, 윤리 프로그램이 있었다면 벌금 수위를 정하는 과실점수 3점을 깎아준다고 규정하고 있다. (연방양형기준 8장의 내용 및 해석에 대한 기사는 <노컷뉴스> 기사를 참고. [딥뉴스]이재용 재판서 언급된 '美연방 양형기준', 실제 내용은?)

 

재판부가 실효적 준법감시제도를 도입하여 운용할 시, 양형에 참고할 수 있다면서 미국의 연방양형기준 8장을 참고사항으로 언급한 이상, 그것이 어떤 내용과 취지를 담고 있는지 살피는 과정이 필요하다. 앞서 참고한 <노컷뉴스> 기사를 중심으로 여러 보도와 인터뷰, 기고문을 종합해봤을 때 재판부가 이재용 부회장 측에 참고하라고 제시한 연방양형기준 8장은 현재 진행중인 파기환송심의 사례와 맞지 않거나 오히려 피고 측에 불리한 면이 있다.

 

연방양형기준 8장에 의하면 준법감시, 윤리 프로그램이 작동하고 있는 ‘시점’은 범죄행위가 있던 시점이어야 과실점수를 깎아줄 수 있다. 범죄행위를 저지르고 난 후에 만들어 운영하는 것은 해당되지 않는다.

 

두 번째, 연방양형기준 8장은 적용대상을 법인으로 뚜렷하게 한정하고 개인은 배제한다.

 

애초에 개인의 형량이 아니라 신체를 구속할 수 없는 법인이 져야 할 위법사항에 대한 책임을 정하기 위해 존재하는 조항이다. 막대한 벌금으로 법인 자체가 파산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한 취지도 있다. 파기환송심의 피고는 이재용 부회장 개인이지 삼성 법인이 아니며, 혐의가 되는 뇌물공여의 목적 또한 삼성 법인의 이익이 아닌 이재용 부회장 개인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되어 있다. 

 

세 번째, 연방양형기준 8장에는 ‘조직의 고위 임원이 범죄에 가담하거나 범죄행위를 묵인한 경우 앞의 감경 사유를 적용하지 않는다’, ‘종업원이 5000명 이상인 조직에서 고위 임원이 범죄에 가담하거나 범죄를 용인한 경우는 과실점수 5점을 가중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재용 부회장에게 미국 연방양형기준 8장 전체를 그대로 적용하면 감형이 아니라 가중처벌을 받게 될 가능성이 더 높다.

 

결정적으로 미국 연방양형기준 8장은 미국의 것이지 대한민국 법과는 무관하다. 이렇게 적용 시점과 대상이 다르고 전체 내용을 고려하면 오히려 가중 처벌 사유가 되어도 무방한 이 기준은 양형의 기준이 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이재용 부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기 위해 미국의 사례를 억지로 끌어들인 것일까. 

 

정준영 재판부는 파기환송심이 4차 공판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재발 방지’에 대한 관심을 보여왔다. 1차 공판부터 ‘실효적 준법감시제도가 있었다면 피고인은 물론 박근혜, 최서원 씨까지도 범죄행위를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며 준법감시제도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지난해 12월에 있었던 3차 공판에서는 ‘정치권력으로부터 또다시 뇌물요구를 받더라도 응하지 않을 그룹 차원의 답을 가져오라’는 주문을 한 바 있다.

 

4차 공판에서는 준법감시위원회 활동의 실효성을 독립적으로 평가, 점검하는 전문심리위원 3명을 재판에 참여시키겠다고 결정했다. 실효적 준법감시위원회가 범죄행위의 재발을 방지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양형판단에 참고하려는 것이다.

 

해당 재판부가 준법감시제도에 대단히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지난 1월 22일, 부영그룹 이중근 회장의 횡령, 배임 혐의 관련 2심 재판에서 재판부는 1심 선고 형량인 징역 5년 보다 절반이 감형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감형 사유로 부영그룹이 최고경영진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범행을 저지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준법감시실을 신설한 점을 들었다. 이중근 회장의 2심 재판을 담당한 것은 다름 아닌 정준영 재판부였다.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에 의하면, 정준영 부장판사는 평소 ‘회복적 사법’에 대한 소신이 뚜렷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회복적 사법이란 지역사회, 피해자와 가해자의 입장을 모두 고려하여 범죄 행동에 의한 피해를 바로잡는 것에 중점을 둔 사법적 이론인데 재발을 방지하는 것 또한 넓은 차원에서 회복적 사법의 목적이 될 수 있다. 

 

정준영 부장 판사는 치유법원 프로그램을 국내 최초로 적용한 판사이기도 하다. 음주 뺑소니로 1심 선고에서 징역 1년을 받은 피고인에게 2심 재판부는 3개월 간 금주, 매일 밤 10시 전 귀가, 활동보고서와 동영상을 재판부가 개설한 비공개 카페에 올릴 것을 제안했는데, 판결에서 이를 지킨 피고인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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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치유법원 프로그램이 피고인에게 바람직한 습관을 형성하도록 도와 변화의 기회를 제공하는 제도인만큼 이 또한 회복적 사법을 지향하는 정준영 부장판사의 소신과 무관하지 않다. (관련 기사 링크)

 

파기환송심 재판의 최대 화두로 떠오른 준법감시제도, 이를 꺼내 든 재판부의 의도는 두 가지 방향으로 추론이 가능하다. ‘이재용 봐주기’를 위하여 준법감시제도를 끌어들였을 가능성과 준법감시제도 도입의 동기부여를 위해 감형 카드를 꺼냈을 가능성이다.

 

만약 전자의 의도라면 부영 이중근 회장과 삼성 이재용 부회장을 시작으로 준법감시제도가 앞으로 '재벌 봐주기'를 위한 새로운 전가의 보도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후자라면, 정준영 부장판사가 회복적 사법이라는 평소 소신에 입각하여 재발 방지를 위한 방편으로 준법감시제도 도입을 유도하는 것이라면, 산업화 이후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정경유착과 재벌 비리를 근절하기 위한 사법적 시도로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재판부의 의도에 있지 않다.

 

재판부가 ‘이재용 봐주기’를 위한 밑밥을 깔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할 수 있는 정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재판부가 내세우는 명분의 실현 가능성을 가늠해보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을 더 효과적으로 평가하는 방편이 될 수 있다. 단 하나의 질문이면 충분하다. 

 

‘삼성준법감시위원회는 삼성 최고경영진의 불법 행위를 막을 수 있는가’

 

삼성준법감시위원회(이하 ‘준법위’)는 홈페이지에서 스스로의 권한과 역할을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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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준법감시위원회 홈페이지 발췌

 

진보성향이라는 평을 듣고 있는 대법관 출신 김지형 위원장과 6인의 위원을 핵심으로 하는 준법위의 진용은 부족함이 없어보인다. 다만 삼성 계열사 최고경영진의 준법의무 위반을 감시/통제하고, 이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 개선사항을 권고하는 역할을 맡은 준법위가 최소한의 실효성을 가지려면 두 가지가 전제되어야 한다.

 

먼저 준법위에 삼성 계열사의 민감한 핵심 정보와 의사 선택 과정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이 보장되어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준법위의 권고사항을 해당 계열사들이 충실하게 이행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을 보장해줄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사실상 이재용 부회장 뿐이다. 우리나라 다른 재벌 대기업들이 그렇듯 삼성 또한 총수의 의지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되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기업이 스스로 그 어떤 감시와 견제 시스템을 만들어도 총수는 그 위에 있다.

 

삼성준법감시위원회의 권고에 의해 이재용 부회장이 발표한 대국민 사과문 내용 또한 마찬가지다. 대표적으로 자녀 승계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의 이행 여부도 전적으로 이재용 부회장의 의지에 달려 있다. 여러 전문가와 사회 단체들이 우려를 표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지금은 그럴 생각이라 하더라도 막상 때 되서 마음을 바꾸면 그만이다. 

 

‘삼성준법감시위원회는 최고 경영진의 불법 행위를 막을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은 결국 이재용 부회장에게 달려있다. 재판부는 전문 심리위원까지 재판에 참여시키면서 삼성준법감시위원회의 실효성을 점검하겠다고 하지만 우리나라 재벌 기업 구조에서 과연 그게 가능할 지 의문이다. 

 

준법감시제도 도입과 양형 판단을 연결지으려 하는 정준영 재판부의 의도가 아무리 사회적으로 선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결과의 성패가 이재용 부회장이라는 해당 재판의 피고인 한 사람의 의지에 달려있다고 한다면, 그래서 판결이 난 후에 얼마든지 약속을 뒤집어도 그것을 제제하거나 처벌할 수 없다면, 그건 정말로 다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만약 재판부가 성실한 검토를 통하여 삼성준법감시위원회의 실효성 여부를 검증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지나치게 순진하거나 오만한 발상이다. 

 

게다가 상식적으로 정준영 재판부가 모든 사건의 재판을 맡을 수는 없다는 현실을 비추어 볼 때, 이재용 부회장의 파기 환송심이 하나의 판례가 되어 사후 기업 부패와 비리 사건 재판에 악용될 소지마저 있다는 점은 더 큰 문제다. 본인 의도와는 별개로 준법감시제도 도입은 정말로 재벌 봐주기용 전가의 보도가 ‘다른 재판부에 의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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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준법위 권고에 따른 사과문 발표이긴 했지만 이재용 부회장은 사과문에서 ‘대한민국의 국격에 어울리는 새로운 삼성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어쩌다 세계적 기업인 삼성은 1920년도 1980년도 아닌 2020년인 현재 시점에 법을 어기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노동3권을 준수하겠다는 약속을 국민 앞에서 하게 되었을까.

 

준법위 같은 실효적인 감시기구가 없었기 때문인가. 삼성이 불과 석달 전 만든 준법위에는 없는 사법적 권한이 대한민국 검찰과 법원에는 예전부터 지금까지 쭉 있어왔다. 준법위가 맡은 감시의 역할은 대한민국 언론이 가져야 할 사회적 책무로 예전부터 지금까지 늘 존재해왔다.

 

왜 삼성은 바뀌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을까. 이 모든 것이 삼성 오너 일가의 의지가 부족해서 벌어진 일일까. 시스템이 없어서일까. 아니다. 시스템은 늘 있었다. 부족한 의지를 먼저 탓해야 할 대상은 삼성 앞에만 서면 작아졌던 사법부와 언론이다. 

 

재판부의 주문대로 준법위를 만들어 운영한 점을 사유로 이재용 부회장이 형량을 감경 받고 집행유예로 풀려났다고 가정해보자. 재판부가 기대했던 바와는 달리 준법위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거나 심지어 해체된다 해도 판결을 무르거나 처벌을 할 수는 없다.

 

그나마 이를 바로 잡을 수 있도록 압력을 가할 수 있는 것은 언론의 감시와 비판이지만, 당장 이재용 부회장의 사과문이 발표되자 ‘이재용, 참모들 반대에도 준법감시위 4대 요구 다 받아들였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온다.

 

그 외에도 준법위가 벌써부터 대단히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느낌, 이재용 부회장이 대단히 강한 의지로 준법위 활동을 보장하고 있다는 뉘앙스의 기사들이 줄을 잇고 있다. 재판부의 판단과 준법위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과 비판적 의견을 소개하는 기사도 일부 나오고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언론이 이재용 부회장의 감형을 위해 바람을 잡아주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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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면 이렇다. 설령 정준영 재판부가 이번 파기환송심을 본보기로 삼아 대한민국 대기업에 준법감시제도를 도입시켜 국정농단 뇌물 공여 사건과 같은 범죄 행위의 재발을 방지하려는 선의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결과는 또 하나의 삼성 봐주기, 재벌 봐주기로 나타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다시 말하지만 삼성준법감시위원회의 실효성은 현실적으로 이재용 부회장의 의지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고 봐야한다. 그것을 양형 판단에 참고하여 형량을 감경한다면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는 피고인의 약속을 믿고 형을 감하여 준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미국 연방양형기준 8장에 범죄 발생 시점에 준법감시제도가 운영되고 있어야 과실 점수를 깎아주는 건 그런 면에서 지극히 상식적이다). 그런 것을 우리는 보통 ‘봐준다’고 표현한다. 봐주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어야만 봐주기가 아니다. 

 

파기환송심은 지난 1월 17일 4차 공판 이후에 더이상 진행되지 않고 있다. 박영수 특검은 ‘정준영 재판부가 편향적으로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며 서울 고등법원에 재판부 기피 신청을 했지만, 기각되자 대법원에 재항고했다. 현재 대법원 심리가 진행중이다. 기피 신청이 받아들여진다면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교체될 것이고 기각된다면 정준영 부장 판사의 서울고법 형사1부 재판부가 그대로 파기환송심을 진행하고 최종 선고를 내릴 것이다. 

 

무엇이 재발 방지를 위한 최선인가. 누군가가 같은 잘못을 되풀이 한다면 그것은 실익이 없는 처벌만을 반복했기 때문일 수 있지만 애초에 처벌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의 오너 일가에는 그동안 처벌이 없었던 걸까, 처벌의 실익이 없었던 걸까. 재판부는 판결을 내리기에 앞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