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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부 끝자락, 새 대사님이 주 영국 대한민국 대사관에 부임 했었습니다. 일상적인 대화가 어려울 정도로 영어 구사가 안 되던 분을 어떻게 영국 대사관에, 그것도 대사로 파견할 수 있는지 참 의아 했었죠.

 

이듬해인 2013년, 그 대사님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자 마자 교체됐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외교부의 대사 임기는 2년 반에서 3년정도입니다. 유럽지역을 대표하는 영국 대사를, 6개월 만에 (절차상 11개월)  교체 한 것을 보면 분명 석연찮은 이유가 있어 보였습니다. 

 

“대사가 교체되는게 별일이야?”라고 물으실 수 있겠지만, 무척 별일입니다. 외교 사절을 임명하기 전에 상대국에게 의사 조회를 요청하고, 승인을 구하는 외교적 절차가 있습니다. 이를 ’아그레망(agrément)'이라고 하는데요. 한 해에 두 번씩 아그레망을 요청하는 것은 상대국에 대한 예의도 아닐 뿐 더러, 본국의 엉망인 행정을 드러내는 불명예스러운 일입니다. 

 

때문에 일반적으로 아그레망은 짧게는 2년, 길게는 5년 마다 한 번씩 요청합니다. 물론, 재난/재해나 사고, 전쟁 등의 불가피한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지만, 1년에 2번이나 아그레망을 받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게다가 영국의 경우, 아그레망을 받게 되면 버킹엄 궁에서 여왕을 직접 만나야 하는 전통적이지만 매우 거추장스러운(?) 의식을 거쳐야 합니다. 당연히 시간도 많이 소요되고, 절차도 복잡합니다.

 

그런데, 이런 낯 뜨거운 일을 이명박근혜 정부 교체 시기에 대한민국 정부의 이름으로 저질렀던 것입니다. 최순실 게이트 같은, 일일이 언급하기에 창피한 일들이 당시에 어디 한 두개 겠습니까만은, 세계 각지 여기저기에서 크고 작은 이런 일들이 얼마나 많이 벌어졌을까요. 생각할수록 귀가 달아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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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시간이 너무 짧아!

 

그건 그렇고, 그 대사님이 짧은 임기 동안 영국에서 한 유일한 일은 근무시간을 30분 연장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대사관 근무시간은 영국 표준인 9시 출근, 5시퇴근이었습니다. 어느 날부터, 새 대사님은 퇴근하는 직원들에게 칼퇴근을 한다며 면박을 주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전면적인 노동시간 연장을 위한 작업에 돌입했습니다. 본국에 비해 일하는 시간이 너무 짧다는 것이 그 분의 불만이었죠. 

 

“근무시간 30분 연장하는게 별일인가?”라고도 물을 실 수 있겠습니다. 물론 근무 시간, 연장 할 수 있죠. 그런데, 직원들과 사전 조율과 같은 일체의 협상과정 없이, 혹은 근무시간 연장에 따른 급여인상 조치 없이, 고용계약서에 정해진 근무 시간을 오롯이 자신의 '불만'으로만 바꾸려 한 것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주변에서 아무리 뜯어 말리려 해도 소용이 없었는데요. 사실, 대사관에서 대사는 대통령이나 다름없는 절대권력을 갖고 있습니다. 작정하고 찍어 누르면 아무도 막을 수가 없는 것이죠. 결과는 보나마나. 주영국대사관 직원들은 강제로 30분간 더 일하게 됐습니다. 할 일이 다 끝나도 퇴근을 할 수가 없었죠. 

 

그런데, 이런 종류의 일들은 우리나라에서 대단히 특이한 일이 아닌 것으로 받아들여져 왔습니다. 자료들을 살펴보죠. 대표적으로 세계경제포럼(WEF, World Economic Forum)의 발표를 보면, 대한민국의 노동 분야는 최하위권 입니다. 특히, 노-사 관계와 관련 전체 137개국 중132위에 해당합니다. 노동자가 전혀 신뢰할 수 없는 기업 환경을 가졌다는 뜻이겠지요. 

 

사실, 한국에서 ‘노동조합’ 또는 ‘노조’는 굉장히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노동조합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투쟁 혹은 대규모 집회를 열어 시위를 하거나 격한 싸움을 하는 집단으로 보여지도록 뉴스와 신문이 보도해왔기 때문이죠. 그들에게 내포된 불안정성이 시장경제를 저해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게요.

 

하지만, WEF의 분석은 다릅니다. 한국의 경제활동을 저해하는 주요 원인을 '정책의 무원칙'(Policy instability)으로 꼽습니다. 여기서 ‘무원칙’으로 번역된 'instability'은 ‘불안정’ 이라는 뜻입니다. 결국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든 기업이든 어떤 조직이던지, 어떤 상황에서 그에 맞는 정책이 결정이 되어도, 결정권자에 따라 언제든 뒤바뀔 수 있다는 '불안정성'이 주된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대사가 바뀌면 근무시간이든 뭐든 다른 기타 조건들이 얼마든지 바뀔 수 있었던 주 영국 대사관의 사례가 바로 그 것 입니다. 이와 같이 현재 우리나라의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노동환경은 노동자들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불안정한 노동환경은 노동자들의 능률을 떨어뜨리고 경쟁력도 잃게 만들고, 결국 개개인의 삶까지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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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관의 근무 연장에 무슨 WEF자료까지 첨부하며 설명하느냐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 이 문제는 우리 사회에 뿌리가 깊숙이 박혀있는 일그러진 노동 문화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윤과 권리, 권한은 자본가에게 몰리고 노동은 노동자에게만 집중되는 현상. 그래서 결국 노동자는 투쟁을 할 수 밖에 없으나, 자본을 먹고 사는 언론은 노동자의 투쟁을 불합리한 것으로 보도하는 쳇바퀴가 돌고 돌아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되는 결과를 낳는 것이죠.

 

아무튼, 짧은 임기 동안 이 대사님은 직원들에게 근무시간 30분 연장이라는 선물(?)을 남겨놓고 유유히 영국을 떠났습니다. 얼마나 치밀했던지, 대사관의 내규도 변경하고 직원들과의 근무 계약서도 재작성하도록 강요하여 끝끝내 본인이 원하는 바를 관철시켰습니다. 결국, 직원들은 이유없이 30분을 더 일해야 했고, 그동안 해 왔던 삶의 방식도 모두 바꿔야 했습니다. 퇴근 후, 학교와 어린이 집 등에 자녀를 데리러 가야 하는 직원들은 별도의 비용을 지불해가며 사람을 고용까지 해야했습니다. 도대체 이런 불편함은 왜 꼭 노동자들의 몫이여야 할까요.

 

노동분야, 그래도 아직까지는 영국이

 

코로나19로 전세계가 고통을 받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는 ‘확진자 0명’이라는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물론, 시간이 더 지나봐야 하겠지만, 그간 국민들과 의료진의 수고와 땀이 결실을 맺은 것은 분명합니다. 뿐만 아니라 정부의 일관되고 투명한 정책 운영은 그간 있어왔던 한국사회의 불안감을 불식시켰고, 서로가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연대하는 모습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영국의 경우, 하루에도 수 천명의 감염자와 수 백명의 사망자를 내고 있습니다. 보리스 존슨 총리의 발언과 같이 통계가 정점을 찍고 이제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어서 앞으로 더 주의하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은 되지만, 여전히 피해자의 수가 쉽게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런던의 경우는 시신을 수습하기도 벅찬 상황입니다. 

 

최초로 집단면역이라는 정책을 펼치다가 악화된 상황에 급하게 노선을 변경한 탓에 초기 대응에 미진했고, 감염자 확산을 막을 수 없었다는 것이 주요 원인이었습니다. 때문에 전쟁통에도 ‘침착하라’(Keep Calm)을 외쳤던 영국은 극단적인 ‘롹다운’(Lock-Down) 조치를 취했으나 역부족입니다. 현재 영국은 모든 상점들의 운영을 중단했고, 심지어 개인 운동이나 식재료를 구매하는 것 이외의 어떤 야외 활동도 허용하고 있지 않고 있습니다. 

 

코로나19 대응에는 크게 실패했지만, 그래도 영국이 아직 강점이 있는 분야가 있습니다. 바로 노동 문화 입니다. 특히 노사관계에서 만큼은 국민도 정부도 모두 노동자의 편에 서 있습니다. 사회주의를 최초로 시작한 나라 답게 말이죠.

 

단적인 예로, 영국의 지하철이나 버스 등이 파업으로 운행을 중단해도 거리에서 노동자를 비난하는 이들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기업이나 기관들도 출근시간을 늦추는 등 대비를 하지만 파업을 문제삼지 않습니다. 오랜 기간 누적되어온 ‘노동’에 대한 인식 때문이죠. WEF의 보고서에서도 영국이 갖는 노동시장 효율성에 대한 경쟁력은 최상위(5위)권입니다. 

 

노동자를 존중하는 사회의 시작

 

다 함께, 더불어 잘 살아보자는 가치를 실현하고자 시작되었던 사회주의는 영국의 성공한 사업가이자 감리교도였던 로버트 오웬(Robert Owen)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하고자 했던 노동운동의 일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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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 당시 엄청난 수의 노동자들, 특히 어린아이와 여성들까지도 공장에 나와 주6회 80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일을 해야 했습니다. 당시 노동을 할 수 있는 연령이 6세였으니 당시 상황이 얼마 비참했는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방직공장을 운영하며 크게 성공한 로버트 오웬은 기독교인으로서 이들의 사람을 지켜보는 것을 옳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잘못된 구조를 바꿔보고자 노력합니다. 특히, 자본가의 이윤보다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노동조합을 만들어서 노동자들이 착취 당하지 않고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다 함께 잘 살아야지 몇몇의 자본가들만 잘 사는 사회가 되는 건 옳지 않다고 본 것이죠. 그렇게 로버트 오웬은 노동환경을 바꾸고 노동자들의 복지를 개선하기 위해 자신이 가진 권리를 기꺼이 내려 놓았습니다. 이러한 로버트 오웬의 정신은 지금까지도 영국의 노동시장에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가령 로치데일은, 1840년대에 로버트 오웬의 정신을 이어 받아 탄생하게 된 협동조합입니다. 노동조합원들의 직접적인 출자, 운영 참여, 여성과 남성의 차별 없는 1인 1표제 등 혁신적인 운영 등을 바탕을 노동운동의 시조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Co-operative’ 라는 형식의 상점이나 은행 등 각종 업계를 대표하는 협동조합 형태의 사업체가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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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일상생활에 필요한 식자재, 설탕이나 버터, 밀가루 등의 물품을 어려움 없이 구할 수 있도록 28명의 노동자들이 1파운드씩 모아 물건을 구매, 합리적인 가격에 팔기 시작했는데, 이 작은 운동이 현재 전세계 노동시장의 정신을 지배하는 뿌리가 되었습니다. 특히, 젠트리피케이션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21세기인 현재도 영국은 협동조합 선택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가로수 길, 경리단 길과 같은 핫 플레이스에 몇몇 자본가들이나 건물주로 인해 임대료가 비상식적인 상승을 해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영국은 이러한 현상을 극복하고자 지역주민들이 정부와 협력하여 협동조합을 운영, 지역 노동자들이 연합하여 자금을 출자 건물을 매입하고 저렴하게 혹은 무상 장기 임대하는 형식으로 소상공업자, 예술인들의 작업 공간을 마련해 주고 있습니다. 결국 지역 부동산 시장의 주도권도 협동조합에 생기다 보니 젠트리피케이션 관리까지 도맡아 할 수 있게 된 것이죠. 

 

물론, 협동조합이 제대로 작동되기까지 잡음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지역사회의 관심과 조합 운영에 대한 논의가 지속적으로 이뤄져왔고, 특히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투명하게 조합을 운영하고, 정확하고 공평한 비례 이윤 배분이 지금의 영국의 협동조합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러한 오랜 신뢰를 바탕으로 쌓인 가치가 현재 영국의 노동시장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아닐까요. 

 

대한민국에서 노동자로 산다는 것 

 

16년 째, 한국은 세계에서 산업재해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국가로 선정되고 있습니다. 매 해 2천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고 있죠. 지난 4월 28일 경기도 이천 물류창고의 화재는 여전히 노동자의 삶과 안전을 뒷전이고 이윤만을 챙기려는 자본가들의 욕심이 여실히 드러나 있는 증거입니다.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은 철저했습니다. 세계의 귀감이 되었고,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습니다. 특이점이 온 세계에서, 우리가 지금부터 결정하고 만들어가는 많은 것들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기준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먼 분야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노동 분야가 그렇습니다.

 

물론,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습니다. 역사란 한 번의 사건으로 쉽게 변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어떤 시대 사람들의 염원이 모이는 곳에서 역사의 진보는 시작됩니다. 우리는 그 전환점을 만들어 낼 자격이 있습니다. 우리에겐 전 세계적 위기를 앞장서 헤쳐나가고 있는 국가와 시민들이 있습니다. 

 

코로나19에 맞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하여 여겼던 정부의 정책처럼, 가슴 아픈 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건이 노동자들의 일터와 삶도 소중하게 여기는 의식이 고취되는 계기가 되기를. 

 

노동현장에서 생을 달리하신 모든 분들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