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썸네일.JPG

 

 

이 시국에 이탈리아를?

 

더블린에서의 어학연수 마침표를 어떻게 찍으면 좋을까 생각하다 여행만큼 남는 것이 또 있을까 싶어 정한 여행지. 로마.

 

어학연수와 동시에 중국인 사장이 운영하는 라멘 가게에서 일하고 있어 몇달 전부터 225 ~ 28일의 일정을 예약해놨던 여행이었다.

 

디데이가 다가올수록 여기저기 코로나19로 시끌벅적하다. 그저 더블린에 있는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일 뿐이라 생각했는데, 세상에 유럽까지 뚫린 거야?

 

37.PNG

< 이탈리아 코로나19 추이 그래프 >

 

이탈리아 북부지역은 롬바르디아주에서 확진자가 등장하며 2월 말에는 순식간에 400명의 확진자가 나온 상황이었고 지역 간 이동을 제한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동양인 혐오도 나오고 있다 해서 조금 무섭기도 했다.

 

기사1.JPG

 

1.jpg

<이탈리아의 스페인 광장에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관광객들>

 

기사를 찾아보니 로마는 북부만큼 심각한 상황도 아닐뿐더러 동양인 혐오가 북부에 비해 심하지도 않다는 현지 상황을 전해 듣곤 조금 안심하며 친구와 함께 로마 행 비행기에 올랐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마스크와 장갑을 착용한 직원들과 마스크를 쓴 탑승객들을 볼 수 있었다. 열감지 카메라도 설치해놔 그곳을 통과해야 공항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공항에서의 모습과 달리 시내에는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채 돌아다녔다.

 

시내의 가게들은 모두 오픈 상태였고, 카운터에서 보호막이나 손 세정제는 볼 수 없었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현지 사람들도 볼 수 없었다.

 

기사2.JPG

 

이탈리아 북부에 관한 일부 기사와는 다르게, 로마에서는 가게나 식당에 못 들어오게 막거나 내쫓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오히려 슈퍼마켓 사장님, 젤라또 가게, 레스토랑 직원들은 한국인이냐며 악수를 청하며 반기는 모습이었다.

 

우습게도 우리를 반겨주는 이탈리아인들이 고마우면서도 겁이 났다.

 

거리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니긴 했지만, 이전과 비교했을 때 확연히 줄어든 모습이었다.

 

4.jpg

< 캄피돌리오 언덕에서의 관광객들 >

 

관광지는 여전히 운영 중이었다. 중국인 관광객들이 없어서인지, 소문으로 듣던 바티칸 박물관의 1시간짜리, 2시간짜리 줄은 단 1분이면 입장이 가능했다.

 

2.jpg

< 바티칸 박물관 입장권과 한산한 입구 >

 

3.jpg

< 바티칸 박물관 내 붐비지 않는 모습 >

 

5.jpg

< 콜로세움 역시 붐비지 않는 모습 >

 

알고 보니, 2월 말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북부 지역의 확산세로 인한 중국발 입국을 금지하게 되어 중국인 관광객의 이탈리아 관광이 어려웠다. 마스크를 착용한 한국인, 일본인 관광객들은 많이 보였다.

 

기사3.JPG

출처 - < 오마이뉴스 >

 

2월 말, 당시 한국에서는 신천지의 활약으로 총 2,000여 명의 확진자가 발생하며 마스크 매점매석으로 품귀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기사를 접했고 이탈리아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약국 앞엔 NO MASK 라고 적혀있는 안내문이 전부였다. 더블린으로 돌아가기 하루 전, 마스크가 입고될 것이라 예상됐던 약국에 재방문하여 마스크 구입에 성공하였지만, 개당 16.7유로라는 가격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기사4.JPG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다른 약국들도 방문해보니 16.7유로짜리 마스크 외엔 개당 2.2유로의 질 떨어지는 마스크뿐 이었다.

 

6.jpg

< 16.7유로짜리 마스크 >

 

 

7.jpg

< 2.2유로짜리 마스크 >

 

한국처럼 개별포장도 되어 있지 않아 구매 전부터 많은 사람의 손을 타게 되는 마스크라 영 찜찜한 마음이 있었지만 귀한 마스크를 샀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만 했다.

 

8.jpg

< 개별포장되어 판매하는 한국의 마스크 >

 

 

코로나가 가져온 더블린의 변화

 

덜컹대는 비행기에선 승무원의 도착 안내방송을 들으며 더블린에 도착했다는 안도와 함께 피로감이 몰려왔다.

 

이탈리아발 비행기이다 보니 더블린 공항 내에서도 코로나에 대한 대비를 하는 모습이 있겠지라고 예상한 나의 기대를 비웃기라도 하듯, 마스크를 착용한 동양인과 몇몇 노부부들을 제외한 승객들과 입국심사관들 그리고 공항 내 모습까지 단 하나도 변한 것이 없었다.

 

단 하나 달라진 모습이 있다면, 입국장 앞에 덩그러니 있는 코로나 예방수칙에 관한 안내문 정도랄까.

 

9.jpg

< 아일랜드 공항 내의 코로나 예방수칙 안내문 >

 

이탈리아 여행 중 북아일랜드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탈리아 북부 여행 후 더블린을 거쳐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확진을 받았다고 한다

 

기사5.JPG

 

북아일랜드가 영국령이긴 하나 아일랜드 내로 자유롭게 육로이동이 가능하다 보니 아일랜드에서도 대비를 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10.JPG

 

이후 곧바로 3월이 시작되자마자 아일랜드 내에서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고, 감염경로는 역시나 이탈리아 북부 여행으로 확인됐다. 한국의 코로나 대처와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면 확진자의 신상과 사생활 보호라는 명분으로 동선 등의 정보를 정확히 공개하지 않았다.

 

아일랜드 서쪽에 위치한 곳에서 확진자가 발생했고, 그 확진자는 일을 계속해오던 것으로 확인 됐다는 둥 두루뭉술한 발표로 국민들은 정확한 정보를 알기 힘들었다.

 

더블린이면 더블린이고, 코크(아일랜드 제2의 도시)면 코크지 아일랜드 서쪽에 위치한 곳은 뭐야?

 

알아두기나 해라란 식인 정부 발표와 기사에 불안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기사6.JPG

< 제목 아일랜드 서부에서 코로나바이러스 확진 4건 더 발생  링크 >

정부의 발표와 기사의 내용에서 확진자의 정확한 동선은 전혀 알 수 없다.

출처 - < RTÉ >

 

이탈리아 여행으로 2주간 근무할 수 없다는 중국인 사장의 메시지를 받고, 2주간의 격리를 마친 뒤 바라본 바깥세상은 그 전과 크게 달라져 있었다.

 

312일 오후 6시부터 초, , , 대학교뿐 아니라 어학원까지 기약 없는 휴교에 돌입했고 모든 펍과 공공시설들은 문을 닫았다. 유럽 내 불필요한 여행을 금지한다는 발표도 나오며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기사7.JPG

< 3/12, 코로나바이러스: 아일랜드의 학교, 대학 그리고 어린이집 휴교령 >

 

 기사8.JPG

< 3/15, 코로나바이러스 아일랜드: Covid-19의 새로운 사례 40건 확인됨에 따라 모든 펍 휴업령 >

출처 - < Independent.ie >

 

 기사9.JPG

<3/16, EU는 코로나바이러스의 느린 전파를 위해 30일 동안 유럽 내 모든 불필요한 여행을 금지할 것이다.>

출처 - < BUSINESS INSIDER >

 

도시 락다운으로 곧 슈퍼마켓이 닫을 것이고 마스크의 재료인 화장지의 생산이 중단될 것이다. 더블린 공항을 폐쇄해 입출국이 몇 주간은 불가능해질 것이다. 대중교통 역시 올 스탑될 것이다.’라는 등 터무니없는 유언비어가 퍼졌다.

 

더블린 곳곳의 슈퍼마켓에선 많은 사람들이 몰리면서 입장 제한까지 생기는 지경에 이르렀다.

 

11.jpg

< 입장 제한하는 테스코 >

 

정보공유를 목적으로 하는 더블린 내 한국인들의 단톡방에서도 현 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 수많은 사진들이 오갔고, 직접 방문한 테스코(영국에 본사를 둔 대형마트)의 모습은 폐업 준비를 하는 슈퍼마켓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사재기가 시작된 것이다.

 

 12.jpg

< 텅 빈 테스코 >

 

 < 테스코 텅 빈 신선식품 코너 >

 

< 테스코 몇 개 남지 않은 휴지들 >

 

퍼지는 유언비어와 사재기를 하는 사람들을 보니 덩달아 마음이 조급해져 나 역시도 사재기에 동참하게 되었다.

 

13.jpg

 

14.jpg

< 당시 사재기한 물과 각종 면 >

 

더블린의 거리도 서로를 경계하며 옷과 목도리로 코와 입을 가리고 최대한 거리를 유지한 채 지나다니는 사람들과 굳게 닫혀버린 많은 가게들로 다소 썰렁한 거리의 모습이었다. 나의 근무지인 라멘 가게도 잠정휴업에 돌입했다.

 

15.jpg

 

16.jpg

<한산한 더블린 시티의 모습>

 

22222222233333333.jpg

<입장 인원 수를 제한하는 AIB 은행의 모습>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

 

정부에선 발 빠르게 렌트비 인상과 임차인 퇴거금지라는 정책을 내놓았고 안심할 새도 없이 여기저기선 잡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기사11.JPG

< 제목 임대료 인상 및 퇴거 금지 긴급정책은 연장될 수 있다. >

출처 - < Independent,ie >

 

더블린에서는 높은 임대료로 인해 여러 사람들과 한 집에서 쉐어하는 경우가 대다수이고,

중심가에 가까울수록 두세 명이 하나의 방을 같이 사용하는 경우도 흔한 편이다.

 

한국에 비해 열악한 의료시설을 가진 아일랜드 내 확진자가 3월 초부터 점점 늘어나면서 긴급귀국을 결심한 유학생들은 물품 정리를 위해 중고거래를 하러 나갔다. 상황이 이런지라 룸메이트들 또는 하우스메이트들 간 서로의 외출에 예민해지며 마찰이 생기기도 했다.

 

다수의 유학생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빈방들도 많이 생겼는데, 남아있던 거주자들은 새로운 룸메이트 및 하우스메이트들의 입주를 환영하지 않는 분위기도 생겼다.

 

간혹 다음 입주자를 직접 구해야만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집들이 있는데, 아일랜드에 오는 새로운 유학생들이 없으니 다음 입주자를 구하지 못해 결국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채 귀국한 유학생들이 꽤 많았다.

 

나와 이탈리아 여행을 함께 한 친구는 한국, 아일랜드 국제 부부가 주인으로 있는 집에서 1년 넘게 살던 중, 6살 자녀의 안전을 위해 나가 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이것은 명백하게 정부지침에 어긋나는 일이었지만 을의 위치에 있는 친구는 울며 겨자 먹기로 이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 집주인과 함께 사는 유학생은 집주인이 외출을 금지해 슈퍼마켓 배달 서비스를 이용하려 했으나 예약 가능한 날이 없어 친구가 대신 장을 봐서 집 앞에 걸어주기도 했다.

(현지 슈퍼마켓 배달 서비스는 시간 단위로 예약을 받으며 예약이 쉽지 않다. 예약에 성공하더라도 사회적 약자를 위해 취소해 달라는 메일이 온다.)

 

코로나 증상이 있던 한국인 유학생은 검사 후 무려 15일이 지난 뒤 양성 결과가 나왔고, 증상이 거의 사라졌다면 일주일간 자가격리 후 격리 해제하라는 안내를 받았다.

 

아직 기침을 가끔 하기에 재검사 요청을 했지만 이미 검사를 받아 더 이상은 불가하며 응급상황일 때 응급실로 연락하라는 말만 들었다. 불안한 마음에 격리해제 이후에도 자가격리를 셀프로 진행하고 있다.

 

이외에도 옆방에 사는 하우스메이트가 코로나에 걸린 것 같아요라며 두려워하는 사람들,

코로나 의심증세로 검사를 위해 7~ 10일의 대기시간을 가지며 불안에 떠는 사람들,

코로나의 증세가 아닌 일반적인 진료(심한 치통, 화상, 방광염 등)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 역시 GP 방문이 어려워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5555555.JPG

< 아일랜드의 한 GP >

(GP : General Parctitioner, 지역 보건의라는 뜻으로 1차 의료시설. 더 큰 병원에 가기 위해선 꼭 방문해야 한다.)

 

한국의 코로나 확산세로 입국금지 국가가 늘어나면서 한국행 운항 편이 감소해 긴급귀국을 결심한 유학생들의 발목을 잡게 되었다. 한국과의 직항이 없는 아일랜드의 경우 유럽 내 경유를 통해 한국을 가는 것이 일반적인데 유럽 내 항공편 역시 대폭 감소했고, 유럽 내에서도 역시 빠른 코로나 확산세로 출발 당일에도 취소가 되는 등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취소된 항공편 환불을 받기 위해서도 최소 4 ~ 6주를 기다려야 하거나 현금이 아닌 바우처로 대체하겠다는 황당한 항공사들도 나오면서 귀국을 포기하는 유학생들도 생겨났다.

 

나 같은 경우는 비자 만료를 앞두고 있던 상황이었는데, 코로나 사태 동안 두 달 비자 연장이 될 것이라는 정부의 발표를 보고, 지금은 항공편이 조금은 안정화 될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

 

<제목- 바이러스로 인해 출입국 관리 사무소가 문을 닫아 두 달 동안 비자 만료가 연장된다.>

출처 - < RTÉ >

 

우습게도 반대의 경우가 있었는데, 입국 금지가 될까 오히려 서둘러 아일랜드에 입국한 한국인 유학생들에게는 입국을 앞둔 2 ~ 3일 전 홈스테이 측에서 일방적으로 취소를 하고 숙박업소(호스텔 및 호텔 등)에서는 한국발이라 하니 예약을 받지 않겠다는 곳도 생겼다.

 

빈방이 많이 올라오니 쉽게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겠지만 아일랜드 입국한 지 2주 이상 된 사람들만이라는 조건이 있어 입국하려는 당일에 입국을 포기한 사례도 있었다.

 

코로나 국면에서 유럽의 고질병인 인종차별문제도 심해졌다.

 

 

< 31초부터, 더블린에서의 인종차별 >

 

동양인이 지나갈 때 갑자기 옷으로 코와 입을 가리고 지나가거나 동양인에게 코로나!’를 외치며 조롱하는 등의 행태들이 심해졌다. 꽤 많은 한국인 유학생들이 경험했고, 특히 마스크를 착용한 동양인에게 많이 행해졌다.

 

코로나 사태 전까지만 해도 맞지만 않으면, 난 괜찮아. 말로만 하는 인종차별쯤이야라고 생각했었지만, 갈수록 인종차별은 심해졌다.

 

5월 초인 지금도, 나는 두려움에 떨며 플랫 메이트와 함께 장을 보러 간다.

 

 

예고편

 

다음 화에서는 아일랜드 락다운이 시작된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이야기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