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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들어가며

 

글쓴이는 공무원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사무실에서 일상적인 나날들을 보내고 있던 행정공무원.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해진 2월 말 이후 종종 코로나 대책반으로 차출당하기는 했지만, 상황실에서나 근무했던 공무원 말이다. 현장으로 투입된 적 없고 투입될 리 없는(의학지식이 없으므로) 행정공무원1에 불과했더랬는데...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하여 업무 메일을 확인하던 날이었다. 인사과에서 메일이 와있었다. 

 

"선별진료소에서 근무할 지원자를 받으며, 지원자가 없을 경우 어쩔 수 없이 차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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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보다, 대수롭지 않게 '뒤로가기'를 클릭하고 오전 업무를 처리하던 중, 아침부터 회의를 다녀오신 팀장님이 말씀하신다. 

 

“어떡하지? 선별진료소 근무를 나가야 한다는데.”

 

그러니까 나에게. 

 

“...저요?”

“응. 다음주는 우리 팀 바빠서 안 될것 같다고 했는데, 차출 순번상 어쩔 수가 없나봐.”

 

다른 팀 분이 이쪽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다가오신다. 

 

“햄까스 주임, 괜찮겠어요?”

 

계속 남일일 거라 생각했던 게 갑자기 내 일이 되니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괜찮아야지 어떡하나... 다시 메일함을 켜서 아까 시덥잖게 넘긴 메일을 열어보았다. 근무대상은 '기저질환이 없는 젊고 건강한 직원'이었다. 쩝... 

 

옆자리에 계신 같은 과의 두 분이 주거니 받거니 하고 계신다. 

 

“우리 팀 다음주에 행사 있는 거 알잖아. 그 날만 (햄까스 주임 대신) 다른 직원이 근무하면 안돼?”

“안된대요. 근무기간이 1주일씩이라서.”

 

잠깐, 일주일이요? 근무기간을 보니까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다. 주5일 근무를 의심조차 하지 않았는데 일주일이 진짜 '일주일'이었다. 토요일과 일요일까지도 알차게 해당되는 '9시부터 18시' 근무. 배신당한 기분에 이야기중인 두 사람을 쳐다 봤지만 나한테 별 관심이 없다. 

 

일주일 근무도 근무지만, 업무 마무리도 문제였다. 통보를 받은 날은 금요일이었는데, 나가야 하는 건 당장 그 다음주 월요일부터였다. 야근수당 찍는 소리가 벌써 귀에 선명했다. 

 

그렇다고 별 수는 없었다. 가라면 가야 한다. 뉴스에서만 보던 '콧구멍에 면봉 넣는 거'를 시키는 건 아닐까, 옆자리 주임님과 시시껄렁한 얘기를 주고받으면서 착잡한 마음을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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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 마무리를 하고 퇴근할 때 쯤 다들 작별인사를 하며 몸 건강히 잘 다녀오라는 덕담을 해주었다. 

 

“홍삼이나 유산균 잘 챙겨먹고...”

 

그래, 믿을 건 면역력밖에 없지...

 

 

나. 본격적인 근무

 

퇴근길, 선별진료소 단톡방에 초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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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은 보호복 입는 법에 대해 교육을 받아야 하니 30분 일찍 도착하도록 하고, 복장은 편하고 간소하게 하라는 내용이었다. 연락을 받고 본능적으로 느꼈다. 아, 빡세겠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부모님에게 '다음주부터 이동식 선별진료소 근무를 나가게 되었다'는 비보(?)를 전했다. 당연히 내 안위를 걱정하신다. 

 

사실 나도 그렇고, 주변도 그렇고, 감염의 위험성에 대해 제일 먼저 생각한다. 뉴스에서만 보던 곳이라 근무환경이 어떤지, 또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도 몰라 두려움이 컸기 때문이다. 자가격리 여부에 대해서도 궁금했지만, 별다른 안내가 없어서 '겪어보면 알겠지' 하고 마음을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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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이자 첫 출근날 아침, 업무분장과 보호복에 대한 두려움에 약속시간인 8시 30분보다 10분 일찍 도착했다. 그곳엔 천막과 컨테이너가 여러 개 있었는데, 우리(나를 포함한 차출된 공무원들)는 대기실로 쓰는 천막에 모여서 간단히 오리엔테이션을 들었다.

 

선별진료소를 총괄지휘하시는 분을 “반장님”이라고 하는데, 반장님은 나를 비롯한 근무자들이 가장 걱정하는 안전(감염으로부터) 문제에 대해 먼저 말씀을 해주셨다. 다음 '최근 확진자 수가 많이 감소함에 따라 선별진료소에 찾아오는 인원도 많이 줄었으며, 3월 중순쯤 이후부터는 여기 진료소에서 확진자가 안 나왔으니 염려를 조금 덜어도 될 것 같다'고 말해주셨다. 다들 그 말에 조금 안심한 눈치였다. 

 

업무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드라이브스루 선별진료소는 이렇게 진행된다고 했다.

 

1. 안내

2. 문진표 작성

3. 진료 및 검체채취 

4. 귀가 및 결과통보(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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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기도 하고 당연하기도 하지만, 진료 및 검체채취는 의료진 담당이었다. 공무원들의 일은 안내, 문진표 작성 및 선별진료소 관리 등이다. 나는 안내요원으로 배정되었다. 

 

보호복 착용법 교육을 받은 뒤, 처음으로 보호복을 착용했다. 위험지역에 출입하는 의료진들이 입는 것과 같은 수준의 '레벨D 보호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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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속장갑을 착용하고, 보호복을 입은 다음, 덧버선을 신고, 겉장갑을 끼고, 마스크와 고글을 착용한다. 마무리는 보호복 머리 부분을 뒤집어쓰기. 최대한 외부 노출을 피하기 위해 목 부분(멱살부위), 장갑과 보호복 이음새(손목부분)에 종이테이프를 붙인다던가, 마스크가 닿는 콧등과 고글이 닿는 이마 부분에 거즈를 덧대는 등 꿀팁도 배웠다. 

 

보호복을 입어 감염으로부터 몸을 보호할 수 있었지만, 보호복을 입고 있는 동안은 화장실에 가지 못한다는 게 단점이다(당연히 음식물도 못 먹는다). 보호복은 벗자마자 바로 폐기하는 게 원칙이기 때문에 화장실을 한 번 가면 보호복을 벗어야만 했다. 즉 화장실 갈 때마다 새 보호복을 착용해야 한다는 것인데, 감염방지도 방지지만, 우선 보호복 입고 벗는 게 꽤 귀찮은 일이다.

 

그리고 의외로 안면부가 고통스럽다. 고글과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어 금고아를 착용한 손오공이 된 것 같다. 이마와 코 부분에 거즈와 종이테이프를 붙이는 등 여러 가지 발악을 해도 얼굴에 자국 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새삼 코로나와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들에 대한 존경심이 들고는 했다. 나는 절대 못한다.) 

 

이런 상황이니 보호복을 갈아입는 일이 없도록, 교대근무를 하는 4시간 동안 생리현상을 최대한 참아가며 근무해야 했다. 

 

 

다. 실제근무와 예상치 못했던 고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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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는 일이자 안내요원은 '방문자가 오면 몇 가지 안내'하는 일이었다. 먼저 동승자 여부(드라이브스루 진료소는 동승자 없이 혼자 차를 타고 와야 한다)와 코로나-19 의심증상 여부(선별진료소이고 검사비가 무료이므로 증상없이 단순 검사는 불가)를 확인한다. 이후 선별진료소에 진입하기 전에 차량 공기를 '내부 순환모드'로 바꾸게 한다. 

 

증상에 따라, 경우에 따라 내 선에서 돌려보내는 분도 있고, 일단 진료소 내에 진입하되 의료진의 판단에 따라 검체채취 전에 돌려보내는 분도 있다.

 

의외로 증상 없이 검사를 받으러 온 분들도 꽤 계셨다. 어떤 분은 여행(국내)을 다녀왔기 때문에, 또 어떤 분은 아내분이 출산을 하여 함께 병원에 있다가 왔기 때문에 이상이 없는지 검사를 받겠다고 하셨다. 이 분은 회사로부터 검사결과를 제출할 것을 요청 받았다고 했다. 다만 이런 경우 사비를 들여서 검사를 해야하므로 가까운 보건소나 지정의료기관에 가야 한다. 설명을 드리자 대부분 수긍하고 돌아가셨다. 

 

조금 의외였던 것은 사기업에서도 상당히 엄격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코로나-19 확산 초기를 보면, 공공기관이나 회사 등에서 근무하는 직원 중 확진자가 나올 경우 해당 건물을 폐쇄하는 등 회사 전반적으로 차질이 생기니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반장님이 말씀하셨던 대로 방문하는 사람이 매우 적었다. 확진자가 많이 줄었다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1시간에 1~2명 방문할까 말까 했다(일평균 방문자 수가 5~7명이었으니).

 

방문객이 없다고 해서 휴식할 수 있다는 건 아니다. 보호복을 입은 근무자들은 항상 자신의 위치에서 대기해야 한다. 교대시간인 오후 1시 30분까지 그저 고요한 숲길을 보고 가만히 있는 거다. 시간과 정신의 방에 있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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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도 보호복 껍데기 비닐로 싸서 가지고 있긴 했는데,

고글을 쓰고 있는 데다가 보호장갑이 두 겹이라 오타나기 일쑤다

시야도 불분명해서 실질적으로 뭔가 하기 어려웠다

 

방문자가 적어 시간을 견디는 것 빼고는 문제가 없을 것 같았지만, 고난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튀어나왔다. 

 

선별진료소 근무 전 큰 걱정 중 하나는 '보호복을 입으면 더울 것 같다'였다. 뉴스에서 의료진 분들이 땀범벅이 된 모습을 많이 봤고, 대구에 의료봉사를 간 안철수도 보면 땀범벅이었지 않나. 나 또한 땀범벅이 될 것을 예상해, 요즘 날씨에 맞추어 옷을 최대한 얇고 간소하게 입고 갔다. 

 

그런데 웬일, 근무 이튿날 하필 비바람이 불었다. 그것도 강풍. 이동식 선별진료소가 약간 산속에 있어 날씨의 영향이 더 심했다. 4월이라고는 절대 믿기지 않는 날씨에, 보호복을 입고 진료소 입구에 앉아있으려니 바람이 살을 베는 듯 했다. 입구까지는 전기도 끌어올 수 없어 나를 지켜주는 건 가스 히터 하나와 몸 여기저기 붙인 핫팩 뿐이었다. 으슬으슬 떠는 것 빼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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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과 달리 이동식 선별진료소 근무가 위험(?)하지는 않았다. 위생수칙 등을 준수한다면, 감염위험으로부터 충분히 자신을 지킬 수 있다. 생각지 못했던 추위와 장시간 입고 있어야 하는 보호복이 조금 힘들었을 뿐. 그래도 다시 보호복을 입어 볼 일이 없을 것 같아 즐거운 마음으로 보내려고 했다(갑자기).

 

 

라. 글을 마치며

 

선별진료소에 계신 의료진 얘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의사선생님은 오전 오후로 한 분씩 교대로 계셨고, 간호사선생님은 두 분, 임상병리사 선생님은 한 분 계셨다. 한창 바쁘던 시기(2~3월)에는 의사선생님이 두 분 씩 계셨다던데 그 때는 한 분씩 계셔도 충분했다. 

 

의사선생님들은 공무원처럼 차출이 아니라 지원, 즉 자원봉사라고 하셨다. 힘든 시기에 자원해서 오셨던 것이다. 교대 후 식사를 하시던 의사선생님 한 분은, 문의 전화를 하신 분이 계속 염려 섞인 질문을 하자 직접 전화를 받아 안심시켜드리는 것은 물론 차분하게 설명을 해주셨다. 

 

간호사 및 임상병리사 선생님들은 시립병원 등에서 오셨다고 했다. 근래 코로나 사태로 시립병원의 간호, 보건 인력들은 계속해서 여러 근무지를 전전하고 계신다고 한다. 정말 힘드실 텐데도 묵묵히 근무하시고, 도움을 많이 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통상적으로만 말하던 '의료진에 대한 존경심'을 몸소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할까. 모쪼록 코로나-19로 고생하시는 분들이 빨리 회복되셨으면 하는 마음이다.

 

짧게 근무했을 뿐이고, 최전선도 아니지만, 이 글을 본 사람들이 이동식 선별진료소를 이용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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