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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회항 급 갑질

 

이 사람 얘길 글로 옮기기까지 고민 많았다. 주저리주저리 늘어놔봐야 결국 뒷담화밖에 안 될 거 같아서. 그런 글이 과연 가치 있는 글인가 싶어서. 그럼에도 얘기하기로 결심한 건 어떤 의미에서, 너무 신선하고 재밌는 캐릭터여서다. 묵혀두자니 너무너무 아까웠다. 실제로 친구들에게 이 사람 얘길 해주면 빵빵 터지면서 꼭 이렇게 묻는다.

 

“그런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긴 하는 거야? 너 거짓말하는 거 아니지?”

 

당근, 거짓말 아니다. 진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이다. 이 사람을 처음 만난 건, 하청 직영팀에 들어갔을 때다. 이 사람은 직영팀 새끼 반장이었다. 나이는 딱 일흔 살. 그중 40년을 목수로 보냈다. 노쇠해 더 이상 목수 일을 할 수 없어 직영팀에 들어오긴 했으나, 누구보다 노가다판을 잘 아는 진짜 꾼이었다. 지금부터 이 사람을 박 반장이라 칭하겠다.

 

첫날, 난 박 반장이 범상치 않은 인물이란 걸 단박에 알아챘다. 내 입장에선 그 현장에 간 첫날이었고, 직영 일이라는 것도 처음이었다. 그날따라 비까지 내렸다. 여러모로 정신 차릴 수 없었다.

 

그렇게 어리바리하고 있는데, 박 반장이 버럭 화를 냈다. 뭐 이런 놈이 왔냐부터 왜 일을 이따위로밖에 못하냐는 둥, 쌍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러다 오후 참 시간이 됐다. 배가 고팠다기보단 담배라도 피우며 한숨 돌려야 할 것 같았다. 조심히, 아주 조심히 물었다.

 

“저기……, 박 반장님. 참은 따로 안 드시나 봐요?”

 

“이 새끼가!! 참 먹을 시간이 어딨어. 첫날부터 참 타령이여. 빨리 저거나 가져와. 뭐 이런 새끼가 다 왔어. 일하기 싫으면 꺼져. 너 아니어도 일할 사람 많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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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정신없는 첫날이 지났다. 둘째 날, 출근하는 날 보며 박 반장이 대뜸 또 화를 냈다.

 

“난 저 새끼랑 답답해서 일 못하겠으니까 최 반장(또 다른 새끼 반장)이 데려가서 하든가 말든가. 뭐 저딴 놈이 다 왔어.”

 

최 반장이 오전 참 시간에 넌지시 말을 꺼냈다.

 

“박 반장이 여기 하청 사장의 친형이여. 나한테는 사돈이기도 해. 우리 마누라 동생, 그러니까 처제 남편이 여기 하청 사장이여. 그 사람의 형이 박 반장이니까……. 박 반장이랑 나는 젊을 때부터 목수로 같이 일했어. 나이는 내가 한 살 많고. 근데 성격이 아~주 지랄이라, 나한테도 맨날 뭐라 뭐라 해. 그러니까 송 군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박 반장 말에 스트레스 받기 시작하면 일 못 해.”

 

그런 거였다. 같은 직영 잡부끼리 뭐 그렇게 어깨에 힘주고 다니나 했더니, 사장의 친형이란다. 노가다판에서 설마하니 땅콩회항 급 가족 갑질을 경험하게 될 줄이야.

 

노가다판의 스티브 잡스

 

박 반장 스스로는, 관리자라는 책임의식 비슷한 게 있는 듯 보였다. 바로 이점이, 말하자면 직책에 맞지 않는 책임의식이 여러 사람 불편하게 했다.

 

가장 큰 피해자는 역시 직영반장이었다. 직영반장 입장에서는 소장에게 지시받은 업무를 직영팀 인부들에게 분배해서 착착 처리해야 하는데, 박 반장이 직영반장 지시를 귓등으로도 안 들었다. 안 듣는 정도가 아니라, 도리어 직영반장에게 훈계했다. 인부 관리를 제대로 못한다는 둥, 일머리를 모른다는 둥 하면서 말이다. 말하자면 내가 회사 부장인데, 사장 아들이 낙하산 차장으로 들어와 날 까는 격인 거다. 그것도 대놓고.

 

박 반장 때문에 직영반장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었다. 박 반장이 사사건건 시비 걸어오는데 사장 친형이라 들이받지도 못하겠고, 미꾸라지처럼 자꾸 헤집고 다니니 일은 일대로 진행이 안 되고, 한마디로 환장할 노릇이었던 거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만만한 나 붙들고 하소연하는 정도.

 

“나보다 몇 살이나 많은 사람한테 이렇게 말하면 안 되지만, 그렇게 지 멋대로 할 거면 지가 직영반장을 하던가. 아님 현장 소장을 하던가. 그것도 아니면 본사 가서 넥타이 매고 임원을 하던가. 왜 직영 잡부로 와서는 여러 사람 피곤하게 하느냐고. 지가 사장 친형이면 다여? 똑같이 작업복 입고 삽질하는 잡부 인생 주제에 누가 누구한테 훈계질이여 훈계질이.”

 

“그러게 말이에요. 저도 박 반장님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 죽겠어요.”

 

“아닌 말로 사장 친형이면 행동 더 조심해야지. 저렇게 날뛰고 다니면, 지 동생만 욕 먹이는 거여. 안 그려?”

 

나는 박 반장 보면서 종종 스티브 잡스가 떠오르곤 했다. 월터 아이작슨이 쓴 『스티브 잡스』를 보면 잡스의 괴팍한 성격이 잘 나온다. 가령, 잡스의 현실 왜곡장(순전히 정신력만으로 자신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말하자면 의도적인 현실 거부로 타인뿐 아니라 자기 자신도 기만하는 잡스 특유의 최면)이라든가, 세상을 이분법(인간을 무조건 깨달은 자와 멍청한 놈으로 분류하는 잡스만의 독특한 세계관)으로 바라보는 기질 같은 것. 잡스는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한마디로 괴짜 같은 기질을 타고난 사람인데, 박 반장이 딱 그랬다. IT의 괴짜가 스티브 잡스라면, 노가다판 괴짜는 박 반장이었다. 양대 산맥 같은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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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명이면 100명 다 다른 게 세상이니

 

괴짜 박 반장에겐 몇 가지 특징이 있었다. 우선, 세상 모든 것이 마음에 안 드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직영팀뿐 아니라 철근, 형틀, 타설 가릴 것 없이 본인 마음에 안 들면 쫓아가서 시비를 걸었다. 그러니 툭하면 싸움이었다.

 

박 반장이 하청 사장 친형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더러워서라도 피하는데, 그 사정 모르는 사람 입장에선 웬 직영 잡부 할아버지가 와서 시비 거는 어이없는 상황이 연출되는 거였다. 그러니 싸움이 벌어질 수밖에.

 

또 박 반장은 성격도 매우 급한 데다가 다혈질이었다. 그런 사람 특성 중 하나가 입이, 정확하게는 혀가 뇌를 못 따라간다는 점이다. 이게 뭔 말이냐 하면 생각은 벌써 저만큼 가 있는데, 말은 그 생각을 못 따라가는 거다. 그러니 늘 버벅거리며 말하고, 발음은 뭉개졌다.

 

박 반장 같은 경우, 화낼 때 그런 특성이 더욱 도드라졌다. 그럴 때면 정말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더 큰 문제는 정말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서 어리둥절하는 건데, 박 반장 스스로는 상대방이 일머리 몰라 못 알아듣는다고 착각한다는 점이었다. 언젠가는 나한테 이렇게 말했다.

 

“히, 히, 히, 히께 가져와 히께.”

 

“네?”

 

“히, 히, 히께 가져오라고. 빨리 가서 히께 가져와.”

 

“히께요? 히께가 뭐예요?”

 

“하~ 진짜 이 새끼. 히께 몰라? 쓰, 쓰, 쓰레기 주울 때 쓰는 거, 히께.”

 

“집게요?”

 

“그래, 히께. 왜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쳐, 쳐, 쳐먹어.”

 

“…….”

 

박 반장 때문에 나 또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었다. 언젠가 최 반장이 또 넌지시 말을 꺼냈다.

 

“박 반장이 하는 말,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겄지? 나도 40년이나 같이 일했는데 지금도 반밖에 못 알아먹어. 좀 지내다 보면 조금씩 들릴 거여. 그리고 이 세상에서 박 반장 마음에 들 사람, 한 사람도 없어. 박 반장 마음에 들려면 공장에서 찍어내야 돼. 송 군 정도면 일 잘하는 거여. 그러니까 그런 줄로만 알어.”

 

박 반장 마지막 특징은 일관적이지 않은 태도였다. 세상 두려울 거 없어 보이는 박 반장도 딱 한 사람, 소장한테는 굽실굽실했다. 그건 도대체 무슨 기준인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랬다. 소장 앞에선 순한 양이었다. 소장이 무슨 말 하든 싱글벙글 웃으며 “네! 알겠습니다!” 하고 씩씩하게 대답했다.

 

난 그 모습 볼 때마다,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참 미운 마음이 들었다. 사람 성격, 지랄맞을 수 있다. 말이나 행동, 거칠 수 있다. 가치관이나 성향도 다를 수 있다. 100명이면 100명 다 다른 게 세상이니, 얼마든 이해한다. 근데 그런 지랄도 일관적이어야지 이해해 줄 수 있는 거다. 약자 앞에서는 한없이 강하고, 강자 앞에서 한없이 비굴한 박 반장 모습은 진짜 좀 멋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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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 볶듯, 쥐 잡듯

 

어릴 때부터 어른들 앞으로 지나가지 마라, 어른이 먼저 수저 들면 그때 들어라, 좋은 거, 맛있는 거 있으면 어른 먼저 챙겨라 등등의 말(그게 늘 옳은지는 모르겠으나) 지겹게 들으며 컸다. 아무리 더럽고 아니꼬운 어른 봐도 그냥 그러려니 하는 편이다. 그런 내가, 살면서 거의 처음으로 큰 아버지뻘 되는 사람한테 대들었다. 박 반장에게.

 

몇 번 얘기했듯, 난 어떤 일이든 열심히 하는 편이다. 그게 속 편하다. 생긴 거와 달리, 은근 일개미 스타일이다. 근데, 박 반장만큼은 날 베짱이 취급했다.

 

“11시면 밥 먹으러 가고, 4시면 집에 갈 궁리하고, 너는 일을 언제 하냐?”(당연히 그런 적 없다.)

 

“너는 일은 안 하고 하루 종일 담배만 피고 앉자 있냐?”(어쩌다 담배 피는 모습 볼 때면)

 

“너는 참 먹으러 현장 나왔냐? 음료수 한 개, 빵 한 개만 먹어.”(어쩌다 음료수 두 개 먹을 때면)

 

그럴 때마다 최 반장 조언대로 “네네.” 하며 넘어갔다. 근데, 그런 것도 한두 번이고, 어지간해야 하는 건데, 박 반장은 나만 보면 콩 볶듯, 쥐 잡듯 했다.

 

문제의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통상 일요일은 현장 전체가 쉰다. 간혹 바쁠 때만 일요일에도 현장이 돌아간다. 일요일 출근이 의무는 아니기에 내 입장에선 안 나가도 그만이었다. 그래도 나름 책임감 가지고 일요일에 나오라면 군말 없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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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일요일은 4시쯤 일을 마무리한다. 그렇게 정해진 건 아니고, 관행적으로 그렇다는 거다. 그날은 내가 3시 55분쯤 마무리하고 들어왔던 모양이다. 그 모습을 박 반장이 본 거다. 일은 안 하고 집에 갈 궁리만 한다며 노발대발하기 시작했다. 참고 참다가 나도 터졌다.

 

“아니, 일요일까지 나와서 개고생 했으면 수고했다는 말은 못 할망정, 5분 일찍 들어왔다고 사람을 죽일 듯하면 일을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진짜 어지간히 좀 하세요.”

 

“야 너! 이 새끼가. 너 당장 꺼져. 너 아니어도 일할 사람 많으니까.”

 

“네네~ 현장이 여기 하나만 있는 줄 아세요? 안 그래도 저보고 같이 일하자는 사람 많습니다.”

 

“어허! 이 새끼 봐라?”

 

정말 그만둘 생각이었다. 실제로 같이 일하자는 반장이 여럿 있었다. 짐 싸려는데 소장이 쫓아 내려왔다.

 

“박 반장님 여기서 혼자 일하실 거요? 인부들 다 내쫓고 혼자 하실 거냐고요. 젊은 애가 하루도 안 빠지고 성실하게 나와서 열심히 하는데 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에요. 박 반장님이 자꾸 그렇게 하시면 저도 여기서 소장 못해요.”

 

그러고는 날 따로 불렀다.

 

“얌마. 너 일 열심히 하는 거 이 현장에서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 내가 박 반장이랑 현장 몇 군데 같이 해봐서 잘 아는데, 원래 저래. 자기 몸 피곤하면 괜히 옆 사람한테 화내고 그래. 너도 이제 저 사람 성격 알잖아. 그냥 그러려니 해야지.”

 

“소장님. 진짜 어지간해야죠. 스트레스 받아서 일 못하겠어요.”

 

그 사건이 있고 얼마 뒤, 현장을 옮겼다. 박 반장 때문은 아니고, 상황이 그렇게 됐다. 현장 옮긴지 꽤 지났는데도 가끔 박 반장 생각난다. 돌이켜보면 박 반장은 나에게 예방주사 같은 사람이었다. 박 반장한테 쌍욕 워낙 많이 먹었던 덕분에 이제 어지간한 욕 정도는 웃어넘길 수 있다. 이것도 고마워해야 할 일인지는 모르겠다만, 미운 정도 정은 정인가 보다. 고마워요, 박 반장님! 잘 지내시죠?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