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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가 폭발하고 있던 4월 중순. 프랑스 외교부 장관이 주프랑스 중국대사를 초치했다. 프랑스는 친중 국가로 널리 알려진 데다 3월에는 중국에서 마스크와 진단키트 등을 수혈받는 등 밀접한 교류를 이어오고 있던 중 의외의 소식이었다.

 

발단은 그로부터 이틀 전 루사예(盧沙野) 프랑스 주재 중국대사가 대사관 홈페이지에 올린 (중국정부 코로나19 대응 성과 홍보 캠페인의 일환으로 보이는) '왜곡된 진실의 복원-파리에 부치는 한 중국 외교관의 관찰’이라는 글이었다. 글에서 루사예 대사는 “프랑스를 비롯한 서방사회의 대응이 느림보와 같고, 프랑스 양로원 직원들이 환자를 져버려 굶고 병들게 했다"라는 등의 내용을 담았다. 그랬다. 열받을만했다.

 

중국때리기

 

우연의 일치인지 중국 대사 초치 이틀 후인 4월 16일,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바이러스 관리의 투명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중국정부의 대응에 대해 직접적으로 비난했다.

 

 “우리가 모르는 일이 분명히 있었다. 모든 것이 더 잘 관리되었다고 믿는 순진한 태도는 없다. 우리는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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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AFP>

 

앞서 영국 정부가 중국의 초기 대응에 대한 의문을 드러내며 경고성 발언을 한 데 이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 정부가 초기 바이러스에 대한 정보를 숨겼으며 세계보건기구(WHO)와의 커넥션에 대해 비난하기도 했다. ‘느림보’ 서방사회의 지도자가 앞다투며 중국정부의 대응을 ‘씹고 있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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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Le Monde>

 

이어 언론들도 중국을 때렸다. 중국의 실제 환자 수는 수치보다 최대 4배 이상일 것이라는 홍콩의 연구 결과를 보도했다. 르 몽드는 <세계보건기구와 중국의 위험한 관계가 코로나바이러스 위기를 강조했다>제하의 특집 기사로 가세했다. 이 기사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 대응 극초기 단계부터, 중국정부와 WHO가 보인 의문스러운 포인트들을 시간순으로 짚어내며 각국 지도자들이 제기한 비난에 대해 심도 있게 분석했다.

 

사실 이전에 몇몇 언론에서, 우한을 과감하게 봉쇄하는 등 중국의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성공적인 대응으로 확산을 멈출 수 있었다는 칭찬의 기사를 왕왕 쏟아내기도 했던 터였다. 프랑스 확산 초기에는 한국이나 대만의 방식과 중국의 방식을 비교하며 어떤 방식이 자국에 가장 적합할지 이야기하기도 했었다.

 

프랑스가 중국을 본격적으로 비난한 4월 중순은 프랑스를 비롯한 다수의 서방국가 확진자 수가 중국의 숫자를 넘어서 10만 명을 초과한 시점이다. 상황이 예상보다 급격하게 심화하자 중국의 숫자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이에 대한 국민들의 비난을 줄여보기 위한 정치적 의도도 있었을 터. 바이러스 대응을 두고 세계의 지도자들이 앞다투어 지분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언터쳐블 대한민국

 

마크롱 대통령은 집권 초기부터 비슷한 시기에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 간 지근거리를 유지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이번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대응에서도 마크롱 대통령이 문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를 요청해 대응 방법에 관해 논의했다. 문 대통령이 G20 화상정상회의를 제안한 것도 그 통화였다.

 

코로나 대응에서, 프랑스는 대한민국과 유사점이 많았다. 지방선거를 앞둔 프랑스는 이 와중에 국회의원 선거를 치러내는 대한민국의 대응을 주목해왔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은 전 세계의 기준점이 되고 있다. 5월 11일부터 완화되는 프랑스의 이동 제한 조치는 한국의 ‘생활 속 거리두기’ 정책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확진자와 더불어 접촉자도 검사를 시행하고, 자가격리 또는 시설격리하는 것, 대중교통에서 마스크를 의무적으로 착용하는 것, 확진자와 접촉한 사람을 찾는 애플리케이션 “STOP COVID” 개발 역시 한국을 모델로 한 방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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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Le Point>

 

때문에 프랑스 언론이 한국에 갖는 관심은 상당히 높다. 시사주간지 르 뿌앙은 4월에 특파원이 직접 한국이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에 대해 다룬 르포를 표지 기사로 발행했다. 르 몽드, 리베라시옹, 르 피가로 등 다수의 전통 언론에서도 여러 차례 한국의 대응 방식에 대한 특집 기사를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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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FRANCE24>

 

방송도 마찬가지다. 확산 초기 프랑스 최대 민영 방송사 TF1에서 특집 기사를 방송하며 우리나라의 대응 시스템에 대해 자세히 알렸다. 또한, 프랑스의 국제 보도전문채널 France24에서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화상 인터뷰를 통해 구체적이고 다양한 질문들을 쏟아내기도 했다. 기사들은 SNS를 통해 프랑스 전역으로 재확산되고 있다.

 

불란서 기레기

 

언론의 반응이 항상 긍정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확진자를 가려내고, 접촉자를 찾아내는 한국의 방식에 대해 사생활 침해 가능성을 꾸준히 제기해왔다. ‘모두에 동의를 얻어 합법적으로 취합한 꼭 필요한 정보만 구현되며, 구체적인 사생활 정보는 공개하지 않는’ 한국정부 정책의 디테일이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던 것이다.

 

경제 전문지 레 제코에 올린 한 기고문은 프랑스 사람들이 잘못된 정보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이 글은 레 제코의 공식적인 기사가 아니며, 작성자 역시 한 독자인 조세 전문 변호사로 언론으로서 가치는 없다. 사실, 프랑스 사회에 미친 영향력도 미미하다.

 

작성자는 한국의 확진자 추적 시스템에 대해 “한국은 감시·고발에 있어 세계 둘째가는 나라”라며 “개인의 자유를 경시하는 나라”라고 표현했다. 프랑스 교민사회에서 큰 비난을 얻었다. 한국 언론에서도 크게 다뤘다. 해당 칼럼의 영향력을 고려하면 상당히 이례적이지만, 주 프랑스 대한민국 대사관은 레 제코 측에 공식적으로 항의했다. 주 프랑스 한국 문화원장 명의로 <대한민국은 국민의 자유를 존중합니다>라는 제목의 반박 기고문을 보냈다. 레 제코는 이를 게재했다. 코웃음 나는 에피소드지만, 일부 프랑스인이 어떤 관점으로 다른 국가를 이해하고 인식하는지 볼 수 있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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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Les Echos>

 

사실 대한민국은 프랑스의 언론이 자주 다루는 국가 중 하나다. 최근 프랑스인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이 점점 증가하던 차였다. 바이러스 확산 전이지만, 축구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일명 ‘노쇼 사건’에 대한 첫 소송의 배상 판결도 보도될 정도다. 이전에는 국제 이슈를 주로 다루는 언론사들의 보도가 많았다면 이제 프랑스 사람들의 생활에 더 밀접한 언론사에서도 한국에 대한 보도가 늘고 있다.

 

한국에 관해서는 특히, 정치와 문화 두 가지 주제가 다뤄진다. 단골 이슈는 단연코 북한 이슈다. 한국 정치에 관한 관심도 만만치 않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촛불시위, 세월호는 물론이고 최근에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에 대해서도 종종 다뤄왔다. 한국 문화에 있어서는 영화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다. 프랑스 유수 영화제에서 수상한 많은 한국 감독들 덕분이다. 최근에는 BTS를 필두로 K POP에 대한 보도가 증가하는 추세다.

 

이번 코로나19 이슈로 한국에 대한 주목도가 더 높아지고 있다. 우려스러운 것은, 깊이 있는 기사보다 겉핥기 식 기사가 눈에 띈다는 것이다. 기자들의 한국 사회와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이 원인이다. 이런 전문성이 결여된 기사들의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무지한 변호사의 레 제코 칼럼 같은 잘못된 기사가 또 발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언론에 한국이 다뤄질 때, 최소한 사실관계가 틀린 기사가 보도되는 일은 없도록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약진앞으로

 

전 세계가 완화된 제한 조치의 시점에 들어섰다. 중국은 바이러스의 원인과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서라도 꾸준히 이슈가 될 전망이다. 최근, 지난해에 이미 코로나19에 걸린 환자가 프랑스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며 새로운 논쟁이 시작되었다. 중국은 사실상 코로나19의 종식을 주장하고 있다. 발생에 대한 책임도 회피하고자 하는 눈치다. 대부분 서방국가의 상황이 안정되면, 적극적으로 이 이슈에 참전할 것이다. 어떤 식으로 불이 지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국은 대규모 확진 사례 없이 안전하게 총선을 잘 치러냈다. 코로나19를 관리하는 데에 있어 대한민국의 안정성은 여전히 독보적이다. 무관중이지만 프로야구와 축구가 개막했고, 시민들은 한결 숨통 트인 생활 방역의 단계에 들어섰다. 지난 3월 지방선거를 잠정 연기하고, 5월 11일부터 점진적인 이동 제한 조치 해제하는 프랑스는 그런 한국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전인미답의 길을 모색하는 한국의 행보는 분야를 막론하고 프랑스의 중요 뉴스로 다뤄질 것이다. 비단 프랑스만 그러겠는가. 말도 안 되는 오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외신 보도에 대한 지극한 관심과 국가 차원의 홍보정책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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