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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하고 쓸모없는 내 꼴이 부끄러웠다. 밀려오는 후회와 버려졌다는 분노에 잠들지 못했다. 아침에 눈 떠지는 것이 두려워 잠에서 깨도 한참 동안 눈을 뜨지 못했다.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새해. 그 몇 달, 필자는 방구석에서 폐인으로 지냈다. 돈 걱정에 아이들 걱정. 이제는 남편 걱정까지 해야 하는 아내가 안쓰러웠다. 아빠의 눈치를 보는 아이들 얼굴을 마주하기 싫었다. 도망가고 싶었지만 갈 곳도 없었다. 자책과 무력감. 끝이 보이지 않는 무거운 일분일초에 현실 지옥이라는 말이 자꾸 떠올랐다. 현실이 지옥이라면 필자는 분명 지옥 불에서 구석구석 빈틈없이 잘 구워지는 중이라 생각했다.

 

메일이 한 통 날아왔다. 회사의 빚을 지분만큼 변제하라는 것이었다. 그동안 받지 못한 급여를 빚으로 대체하겠다고 했다. 그래도 꽤 큰 금액이 남으니 그 돈을 변제하라고 했다. 회사 돈 이라고는 급여 외에는 구경도 못해봤는데, 퇴직금도 없이 개인 돈 써가며 회사를 다녔는데, 언제 어떻게 생긴 빚인지도 모르는 회사 빚을 나누어 책임지라니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엎친 데 덮친다고, 남의 자동차 할부 연체와 각종 위반 딱지들이 날아왔다. 회사 멤버 중 한 사람이 자동차를 사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으니 명의와 카드를 빌려 달라는 것을 들어 준 적이 있었다. 바보짓인 줄 알았지만 친구라 생각했기에 돕고 싶어서 한 일이었다. 그것이 해산 후에도 한참 동안 정리가 되지 않아 낭패를 봤다.

 

너밖에 없다는 이야기. 끝까지 함께 하자던 약속.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대책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 과거에 대한 회한과 억울한 마음은 점점 커져갔지만 억지로 떼어낼 수 없었다. 그것은 결국 나의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나의 판단과 선택의 총합으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다. 아무런 의욕이 없었다. 그냥 깊이깊이 가라앉는 자신을 내버려 둘뿐이었다.

 

저문 강에 삽을 씻고

 

그러던 어느 날 밤. 그날도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컴컴한 책상에 혼자 멍하니 앉아있었다. 지난 몇 년 동안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했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친구들, 개발자들, 디자이너들, 투자자들. 다들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생각했다. ‘뭐… 잠을 자겠지. 바쁜 하루를 살았을 테고 내일을 위해 충전 중이겠지.’ 나는 이 지경인데 아무렇지도 않게 하루를 살아내고 있을 그들이 부러웠다. 어느 날 갑자기 없어져 버린, 아니 버려진 나를 전혀 궁금해하지 않는 그 사람들이 미웠다. 그들의 삶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러다 정말 신기하게도… ‘그 사람들, 진짜로 아무렇지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메모지를 꺼내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1) 그들에게 주어졌을 선택의 여지는 곧 자기 가치의 증표가 되어 자존감을 높여 주었을 것이다.

2) 그 자존감이 아무렇지 않은듯한 일상의 외형을 받쳐주는 힘이 되었을 것이다.

3) 하지만 갑자기 모든 것이 바뀌어버린 환경(어제까지 함께 했던 필자의 부재를 포함한)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4) 그 이유가 궁금하진 않았을까? 이유를 물어볼 수는 있었을까? 속 시원히 대답해주는 사람은 있었을까?

5) 필자처럼 버려지면 생활이 망가질 수도 있다는 불안과 압박이 그들로 하여금 생존에 몰두하도록 하지 않았을까?

 

그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태를 보는 저마다의 눈과 감정과 판단이 당연히 있었을 테니까. 어쩌면 살아남은 그들도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있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버려진 자의 절망, 남은 자의 불안. 차이는 그것뿐이었다. 보호색을 두르고 자신의 생각을 숨기는 것. 그것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개인적 연락조차도 소원해지게 만든 ‘어쩔 수 없는’ 이유일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렇다. 인정한다. 말도 안 되는 착각이며 궤변이고, 정신승리일 뿐이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었을 수도 있고, 혹자는 내가 없는 새로운 환경을 더 좋아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날 밤 그 순간, 많은 것이 이해되었다. 생각을 돌려세우고 자기 연민에서 벗어나는 전환점이 되었다. 회사를 날리고 옛 동료에게 돈을 내라며 소송을 언급하는 그 사람이 처음으로 안쓰럽게 느껴졌다. 새로 짠 판에 누구를 버리고 누구를 올릴까 눈치 보고 고민하며 하나하나 따로 만나 물밑으로 작업했을 그 사람의 수고가 딱하게 느껴졌다. 이해하려면 ‘왜 그랬을까’보다 ‘오죽하면 그랬을까’라는 질문이 필요하다. 그들도 살아남으려고, 최대한의 이익과 최소한의 손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겠구나 생각했다.

 

내가 내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들도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믿었을 것이 당연하다. 최소한, 어쩔 수 없었다고 자신의 행동을 변명하거나 스스로의 행동을 정당화했을 것이었다. 그날 밤, 그것이 보였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과연 나는 100% 정의로웠고 그들은 100% 불의했던가. 필자도 동료들과 갈등을 빚었고, 때로는 반목도 했다. 변명할 수 없는 사실이다. 더 중하게 말하지 못했고 더 깊이 동료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그래서 누군가는 나의 날선 말과 행동에 크게 상처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결국 그 대가를 마주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행동이 이해가 됐다. 용서는 다른 이야기이지만.

 

싸우자면 한없이 오래갈 것 같았다. 누군가는 절대 안 된다고, 아이들 생각하라고. 돈도 없으면서 그렇게 줘버리면 되냐고 훈수했다. 하지만 이겨도 지고 져도 지는 싸움 같았다. 이런 일에 인생의 소중한 시간을 ‘더’ 쓸 생각을 하니 나 자신이 처량하고 딱해보였다. 진창에서 그만 허우적대고 싶어졌다. 그래서 메일을 보냈다. 그 돈 주겠다고 했다. 스스로를 진창에서 건지는 비용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한때, 정말 운 좋게 파도의 앞쪽에 올라탔지만 더 높이 뛰어오르거나 최소한 그 앞쪽 자리를 유지할 힘은 없었다. 작고 약했지만 크고 센 줄 착각했고, 자만했다. 자존심을 세우려 애썼지만 자격지심이 드러났다. 자존감이 무너졌고, 당황한 나머지 친구를 공격했다. 신뢰를 무너뜨렸고 서로에게 등을 돌렸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다 잃어도 친구는 잃지는 말았어야 했다. 모르긴 해도, 투자가 들어온 것은 우리가 잘나서도 아니고, 사업 아이템이 좋아서도 아니었을 것이다. 친구끼리 설립한 우리 팀의 끈끈함이 믿음직스러워 보였고 그것이 매력적으로 보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팀이야말로 스타트업의 가장 소중한 자산이라는 사실. 우리만 그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위기를 극복하고 더 단단한 팀이 될 기회를 스스로 걷어찬 셈이었다.

 

나도, 우리도 모두 신중하지 못했고 어른스럽지 못했다. 나라도 먼저 따뜻하게 손 내밀었다면 어땠을까. 어차피 망할 거, 용감하게 같이 어깨 걸고 버텼으면 어땠을까. 뒤돌아보니 긴 연애 끝에 이별을 한 것처럼 후회만 남았다. 안타깝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새로운 시작, 언제나처럼

 

실패보다 무기력하게 쳐져 있는 모습이 훨씬 더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가라앉기를 멈추는 것이 급한 일이었다. 움직여야 했다.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하기로 했다. 느릿느릿 산책을 하는 것으로 몸을 움직였다. 어쩌다 마주치는 동네 사람들도 죄다 나를 측은하게 보는 것만 같았다. 그런 생각을 떨쳐내고 산책을 나서는 것도 용기가 필요했다.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했다. 걷다 보면 온갖 잡생각에 힘들어졌지만, 책을 읽으면 마음을 가라앉았다. 그렇게 일상을 다시 만들어갔다.

 

제대로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일이 있는지 돌아봤다. 혹시 지키지 않았던 약속이 있었는지 되짚어 보았다. 마음에 걸리는 한 가지 일을 끄집어냈다.

 

한참 앱을 개발하고 있을 때, 우리 SNS에 어떤 콘텐츠가 채워지면 좋을까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모바일 컴퓨팅이 모든 영역에서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전망은 모두가 내놓았지만 어떤 콘텐츠가 모바일에 잘 맞는 좋은 콘텐츠일지는 아무도 똑 부러지게 말하지 못했다. 그러다 눈이 번쩍 뜨이는 콘텐츠를 만났다. 한 외국인 화가의 그림이었다. 코끼리 그림들이 그려진 여러 장의 천이 하늘 높이 걸려있었는데, 그림을 보는 순간 피가 끓었다.

 

그림 속의 익살스러운 표정의 코끼리는 유쾌하지만 진지했다. 화려한 색감이 눈을 떼지 못할 만큼 매력적이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화가를 꼭 찾아서 연락해보리라 마음먹었는데 신기하게도 다음 날 같은 자리에서 그 화가를 만났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바짝 마른 몸, 허름하다 못해 남루해 보이는 옷차림.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간달프처럼 흰머리와 수염을 기른 할아버지였는데, 산에서 막 내려왔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비주얼이었다.

 

홀린 듯 그 자리에서 명함을 주고 손짓 발짓 섞어가며 전자책을 앱스토어에서 출간해보자는 제안을 했다. 할아버지는 화가일 뿐 아니라 이미 자기네 나라에서 그림책을 여러 권 출간한 적이 있는 작가였다. 디지털 그림책을 만든다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멋진 기회가 될 것이라 설명했다. 할아버지는 흔쾌히 수락해주었다. 디지털 콘텐츠의 미래를 만들어 볼 기회를 잡은 듯했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스케줄이 자꾸 밀렸다. 그러다 회사를 해산하는 바람에 이 프로젝트는 시작도 못하고 부러져버렸다.

 

자기 나라로 돌아간 할아버지가 이런 사정을 알 리가 없었다. 잔뜩 기대하게 해놓고 나 몰라라 모른척하는 것은 도리가 아닌 것 같았다. 늦었지만, 사실을 알리고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회사가 해산하게 되어 디지털 그림책의 출간은 어렵게 되었고 많이 미안하다는 메일을 보냈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준 할아버지에게 실망스러운 메일을 보내게 되어 미안했다. 어떻게든 약속을 지키고 싶은 마음에 디지털 그림책은 어려워졌지만 책 출간을 할 수 있도록 뭔가 해보겠다고 했다.

 

원고를 들고 출판사의 문을 두드렸다. 운 좋게 한 출판사가 관심을 가졌다. 무려 다섯 권의 출판계약을 한꺼번에 하게 되었다. 다른 출판사를 통해서였지만, 우리나라에 할아버지의 그림을 출간해보자는 약속은 지킨 셈이 되었다. 5월 어린이날을 맞춰 출간 일정을 잡고 도서전 행사에서 마케팅을 시작하기로 했다. 할아버지도 행사를 위해 전시할 그림들을 보내왔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가 터져 온 나라가 슬픔에 빠졌다. 안타까운 사고 소식에 계획했던 행사들도 모두 취소되었다. 할아버지는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책을 들고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참여했고, 독일에서 출간 계약을 하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말레이시아 그림책의 위상을 높인 공로로 자국에서 문화훈장을 수여받았다. 말레이시아 그림책의 아이콘이 되었다. 할아버지는 한국어로 나온 책이 독일어 출간 계약에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며 고마워했다.(우리나라 책, 정말 예쁘게 잘 만든다.) 그리곤 나에게 뭐든 해보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내가 책을 만드는 일을 허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당시 나는 취직을 하기엔 경력과 나이가 애매했고 창업을 하기에 자본도, 팀도 마땅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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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창업지원사업에 지원했다. 덜컥 선정되어 난생처음 지원금을 받아 사업이라는 것을 시작하게 되었다. 보육 기간 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직장을 잃고 필자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친구들을 불러 팀을 만들었다. 몇 달을 백수로 살던 루저가 갑자기 대표가 되었다. 백수의 사업을 도와주다니. 우리나라 정말 좋은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나 고맙던지 감사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화가들의 그림을 카드로 만들어 우편으로 발송해주는 O2O(online to offline) 서비스 개발에 돌입했다. 아무리 해도 팀을 유지하기 버거웠다. 당장 수익을 내든, 가능성을 증명하고 투자를 받든 해야 했지만 양쪽 다 가능성이 희박해보였다.

 

여기저기 빚을 끌어와 아무리 아껴 써도, 두세 달이면 급여와 각종 비용으로 돈이 말랐다. 돈이 떨어지면 팀원이 떠나고 서비스 개발이 단절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모두가 주인이 되어 힘을 합쳐보자는 생각에 급여 외에 지분을 나누어도 봤지만 큰 어필이 되지 않았다.

 

다들 사업을 접으라고 했다. 사업할 재목이 아니니 이쯤에서 다른 일을 찾아보라고들 충고했다. 어설픈 만듦새, 빈약한 자본, 흔들리는 팀워크가 매력적 일리 없었다. 보이지도 않는 미래 가치는 내가 내밀 수 있는 패가 아니었다.

 

다시 욕심을 부렸던 것이다. 안 되는 일을 억지로 되게 하려고 용을 썼었던 것이다.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떠나는 팀원들을 잡지 않았다. 그들의 결정을 존중해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비전 없는 사업에 이만큼 고생해 준 팀원들이 고마웠지만 해 줄 것이 별로 없었다. 각자 쓰던 컴퓨터를 가져가게 했다. 나누었던 지분과 상관없이 그동안 생긴 빚은 모두 내가 안았다. 함께 있던 팀원들은 좋은 데로 이직했다. 걱정을 덜었다.(역시 전문직에 젊은 게 짱이다.) 몇 년 동안의 노력이 적어도 의미 없는 일은 아니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다시 혼자가 되었다. 여기서 멈출 수 없었다. 최소한 가라앉는 속도라도 늦추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 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생각했다. 코끼리 할아버지가 뭐든 필자와 함께 해보자고 한 것이 생각났다. 책을 만드는 일은 전혀 모르는 생초보였지만 이야기를 좋아하고,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기를 좋아하니 어쩌면 잘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잘하는 일이기를 바랬다.

 

할아버지의 그림으로 한글을 표현하면 멋질 것 같았다. 일단은 할아버지와 콘텐츠를 만드는 일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할아버지에게 한글 자음과 모음을 가르쳐드렸다. 할아버지에게 한글을 그려달라 하고 나는 이야기를 지었다. 그렇게 책을 만드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책의 판매량은 정말 보잘것없었다. 하지만 책의 의의에 동감하고 할아버지의 그림을 좋아해주는 독자들을 만났다. 아주 작지만 의미 있는 흔적을 남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운 글과 그림을 보았고 고운 생각을 가진 작가들을 만났다. 그 사람들과 함께 책을 만들었고 그 책을 좋아해주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렇게 사람들로부터 힘을 얻었다. 그것은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멋진 일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그랬다. ‘돈이 벌리는 일이라면 절대 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사는 사람 같다고. 남의 속도 모르고 하는 말에 웃어넘겼지만 영 틀린 말도 아니었다. 사실 나는 어떻게 돈을 버는 줄 몰랐다. 그저 열심히만 하면 되는 줄 알았던 미련곰탱이었다. 그러면서 세상에 아주 작은 흔적 하나 남기겠다는 욕심쟁이기도 했다. 그러면 돈도 자연스레 따라올 줄 알았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성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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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주변의 걱정은 한결같다. 요즘 같은 때에 책을 만들다니.. 밥은 먹고 살 수 있겠냐고 한다. 얼마 전 한참 연락이 뜸했던 옛 회사의 대표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때 새로 만든 회사를 팔고 엑시트 했다고 했다. 돈을 꽤 번 모양인지 엄청 비싼 강남의 아파트로 이사했다고 했다. 같이 있던 사람들도 돈을 많이 벌었다고 했다. 잘 됐다고 축하해줬다.

 

여태 그와 같이 있었으면 나도 그 돈을 벌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가 머리를 흔들었다. 돈에 관해서는 여전히 자유롭지 않다. 대표는 대푠데, 영화에 맨날 나오는 코딱지만한 출판사의 찌질한 대표. 딱 그렇게 됐다. 그저 작가들 인세나 따박따박 지급할 수 있고, 사무실 임대료나 안 밀릴 수 있으면 싶다. 밀린 빚을 조금씩이라도 갚고, 집에 치킨 한 마리 사들고 들어갈 수 있으면 선방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요즘 같은 시절, 책 만들어서 부자 되겠다는 것은 매우 과도한 욕심이다. 하지만 그래도 힘닿는 대로 계속하고 싶다. 중년에 접어들어 여러 번의 실패 끝에 비로소 찾은,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해 준, 그래서 잘 하고 싶은 일이기 때문이다. 멘토선생님이 그랬다. 먹고사니즘의 해결이 사업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큰 돈 버는 것은 그 후에 하늘이 점지해주는 거라고. 맞는 말이다. 지나고 보니 정말 그렇다. 그렇게 버티며 사는 것이 곧 성공이 아닐까 한다.

 

“아빠 회사는 아빠 혼자야?”

 

얼마 전, 코로나 핑계로 출근을 미루며 방바닥을 뒹굴던 나를 보고 이제 열 살 먹은 딸랑구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아차 싶었다. 뭐라고 둘러대나 고민하다가 마땅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아 그냥 혼자라고 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대답이 돌아왔다.

 

“에이. 오빠랑 나랑 엄마가 있잖아.”

 

뜨끔했다. 나는 혼자라고 생각했는데, 딸랑구 생각은 그게 아니었다. 혼자라고 대답한 것이 미안했다. 아빠는 모름지기 일도 잘하고 돈도 많고 젊고 멋진 슈퍼맨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맨날 넘어지고 깨지고 실패하는 아빠가 부끄럽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빙글거리며 고백했다. ‘아빠가 책을 만들어서 좋다.’고. 얼굴이 빨개져서 수줍게 고개를 돌렸다.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다른데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나는, 그쪽으로 한 걸음 가까워지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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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링크>

 

20년을 넘게 달려왔는데 여전히 출발선에 서있다. 그래도 그동안 철이 좀 든것 같은 느낌이다. 중년 아저씨가 되어서야 비로소 옆에 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 사람들이 고맙고 감사하다. 가족이, 내 손을 잡아준 사람들이, 친구들이, 동료들이, 이웃들이, 진심으로 사람들이 고마워서 인사를 아주 잘하는 아저씨로 거듭났다.

 

아침에 일어나 갈 곳이 생긴 것이 감사하고, 찾아오는 사람이 있어 감사하고, 일이라는 것을 할 수 있게 된 것에, 그 일을 해서 밥을 먹고 세상에 작은 흔적을 남길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어 감사하다.

 

힘들어 죽을 것 같은 터널을 여럿 지나온 것 같은데, 그래서 ‘실패담 메들리’라는 거창한 제목까지 달았는데. 이제 글을 마무리하며 돌이켜보니 나의 삶이 아주 특별히 역경에 가득 차지도, 그다지 드라마틱 하지도 않았더라.(뻘쭘하다.)

 

세상은 그대로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번갈아 있을 뿐, 그때도 지금도 세상은 그대로다. 달라진 것은 그저 내 마음이었다. 내가 모자란 탓에 보지 못했고, 보려 하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온갖 감정과 원망을 걷어내고 보니 모두가 ‘자기 삶의 무게만큼 자기만의 방식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는 것이 보이더라. 잠 못 들던 그날 밤 그 생각의 가지들이 많이 아파 마주하기 힘들었지만, 결과적으로 필자 자신을 다시 추스를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저 그런 중년 아저씨의 말이지만, 속는 셈치고 한 번만 믿어주시라. 누구에게나 자기의 삶이 가장 어렵고 힘들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일이 마음먹기 달렸다는 말, 참말이다. 혹시 지금 넘어져서 많이 아프고 외로운 분들이 있으시다면 부디 용기 내어 드러내고 적극적으로 위로받으시라. 당신은 충분히 그럴 자격 있다. 단 한 사람에게서만 이라도 위로받을 수 있다면, 단 한사람에게만 이라도 위로가 되어줄 수 있다면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나의 메들리는 여기까지다. 찌질한 아저씨의 찌질하고 지루한 이야기를 꾹 참고 읽어주신 모든 분께 감사하고 또 감사드린다. 모두,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