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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위시한 서구 열강들은 쿠바가 달갑지 않다

 

쿠바의 면적은 한반도 크기의 절반 정도에 해당하고, 인구는 약 천 백만 명으로 한국의 1/5 수준이다. 정치경제 체제는 우리와 다른 사회주의 국가다. 체제의 성격이 다른 탓에 공식적인 우호국이 아니며, 수교를 맺고 있지 않다. 무엇보다 세계 패권국 미국이 지난 60여 년간 체제 전복을 벼르고 있는 세계 몇 안 되는 국가 중의 하나다. 

 

미국을 위시한 서구 유럽 열강들은 쿠바가 달갑지 않다. 정확하게는 쿠바의 사회주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현재 세계 경제의 주도권을 쥔 패권국들의 게임 법칙은 자본주의가 유일하게 적법한 경제질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쿠바가 주장하는 사회주의는 지금의 국제 질서에서는 그 정당성을 인정받기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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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는 영국을 필두로 시작된 자본주의 역사와 함께 등장한 사상적 흐름으로 사회주의 국가들이 세워지는 이론적 토대였다. 자본주의 시스템이 차고 넘치는 물자를 생산하는 데는 탁월하게 우수했지만, 그에 못지않은 사회적 폐단 때문에 반자본주의 운동으로 이어졌고, 사회주의가 등장하는 배경이 되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이 해체되자 자본주의 체제의 일방적인 승리가 선언되었다. 이에 따라 이른바 좌파들의 골치 아픈 사회주의 사상은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이고 헛꿈일 뿐이라는 분위기가 압도했다. 그렇게 더는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쐐기를 박는 듯했다.  

 

 

자본주의에 배신당한 라틴아메리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굵직한 체제경쟁은 그렇게 막을 내렸고, 이제 자본주의가 약속한 번영을 누리는 일만 남았다고 모두가 믿었다. 그러나, 1989년 이후 약 30여 년간 지속된 자본주의 독주는 적어도 라틴아메리카 현실과는 동떨어진 약속된 번영일 뿐이었다.   

 

점점 벌어지는 빈부격차, 경제 위기, 치안 부재, 마약 카르텔, 정치 쿠데타의 난립 등 소위 라틴아메리카의 고질적인 정치경제 위기와 사회갈등은 일상이 되었다. 그런데도 왜 이 같은 일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가에 관한 질문은 부재하다. 

 

그래서 폴란드의 사회학자 바우만은 이렇게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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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출신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1925~2017)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단언컨대 지금과 같은 경제질서가 유지되는 한 절대 해결되지 않을 문제들이다.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이미 외채보다 더 많은 금융 이자를 월스트리트에 갚고 있다. 세계금융시장의 합법적인 고리대금이다. 노동과 생산이 자국의 이익이 되는 것이 아니라 빚을 갚는 데 이용되는 것이다. 

 

과거에는 군사력과 강제 조공이 제국을 유지하는 수단이었다면, 이제는 빚이 그런 수단을 대체하고 있다는 주장이 새삼 소환되는 라틴아메리카의 현실이다.  

 

자본주의 경제의 착취구조는 노동자 계급은 물론 다수의 무산자 계층을 옭아매는 시스템으로 진화했고, 자유경쟁이라 부르지만, 각자도생이 유일한 생존방식이다. 부익부 빈익빈의 법칙과 가장 호혜성이 좋은 체제로서 빈곤과 부의 극단적 격차는 이제 천문학적 수치다. 

 

라틴아메리카 민중들의 고혈이 월스트리트를 수혈하면서, (라틴아메리카)국내는 빈곤의 확산으로 우후죽순으로 갱 조직들이 생기고 범죄는 갈수록 늘어만 갔다. 소수 기득권과 지배계층은 필요한 해결책으로 그들을 수용할 감옥 시설 증축을 생각했다. 중미 국가 엘살바도르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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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살바도르의 감옥 / 이미지 출처-<BBC News>

 

길거리의 날치기범을 잡겠다고 현장 사살 조를 배치하는 엽기적인 국가 폭력도 서슴지 않는다. 이는 과테말라의 일이다. 그곳에서는 이들을 늑대 경찰로 불렀고, 2인 1조를 이루며 범죄자에 대한 현장 사살 권한이 주어진 공권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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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테말라 2인조 '늑대 경찰' / 이미지 출처-<Diario de Centro América>

 

 

쿠바는 어떻게 다른 중남미 국가와 다른 대처가 가능했을까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라틴아메리카 역내 국가들은 코로나19에 대해서도 제대로 대처하고 있지 못하다. 반면, 같은 라틴아메리카 역내 국가인 쿠바는 잘 대처하고 있다. 

 

질문을 던져본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을까? 쿠바가 지금의 코로나19를 여타 라틴아메리카 국가와 다르게 대처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은 무엇일까? 

 

현실에서 자본주의가 자유번영과의 등치관계가 아닌 것처럼, 사회주의가 독재가난을 동반한다는 식의 고정된 사고를 잠시 보류한 채 쿠바 사회를 들여다보기를 제안한다.

 

우선, 쿠바 사회는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일반적 특징인 극심한 빈부격차, 치안 부재, 정치 혼란, 경제 위기, 범죄조직의 난립 등과 같은 만성적이고 고질적인 사회 문제를 안고 있지 않다는 것으로부터 시작해도 좋을 것 같다. 

 

쿠바는 1980년대부터 WHO(세계보건기구)가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제안한 1차 보건의료 시스템을 가장 모범적으로 정착시킨 유일한 사례이다.  

 

쿠바는 세계보건기구가 제안한 보건 의료체계를 가능하게 하는 유리한 사회적 조건을 형성하고 있었다. 신(新) 신분 질서를 방불케 하는 불평등이 고착된 사회에서는 사회 전체를 포괄하는 공중보건 시스템을 정착시키는 일은 그렇지 않은 사회보다 훨씬 어렵기 마련인데, 쿠바는 라틴아메리카 역내 국가의 특징인 극단의 빈부격차, 즉 양극화 사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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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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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의 모습

 

사회 불평등은 마치 암세포와 같다. 주변 조직을 파괴하고 종국에는 몸 전체의 기능을 마비시킨다. 라틴아메리카의 고질적인 불평등 문제는 단순한 빈부격차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전체의 사회조직을 병들게 한다. 범죄가 증가하고 치안이 불안해지는 것은 이 같은 이유에서다. 

 

그럴수록 사회적 비용은 증가하고 소수의 부유층은 사설 경비를 고용하여 안전을 강화한다. 그들의 경제 권력은 정치 권력 독점으로 이어지는 패턴을 만들고, 특권층은 계속해서 정치 권력을 좌지우지하며 그들의 이해관계를 보장하는 통상교역이나 외교 관계를 구축함으로써 기득권을 확대하고 재생산한다. 

 

그들만의 리그를 만드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계층 간 이동을 가능하게 했던 사다리는 없어진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덕분에, 대도시 곳곳에 공권력조차 접근할 수 없는 슬럼가들이 즐비하고, 농촌의 파괴로 인해 도시로 몰려드는 실업자와 늘어가는 생계형 범죄, 국가 시스템에서 배제된 토착민 집단과 취약 계층은 방치되고 증가한다. 사회적 혼란은 양극화와 빈곤의 확산이 초래하는 불가피한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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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테말라 도시 중심부에서 길거리에 버려진 MS-13 갱단원의 시체를 한 소년이 보고 있다. 중심 도심지 내에서조차 모든 연령대의 사람에게 폭력과 범죄는 가까이에 도사리고 있다.  

 

이 같은 사회가 할 수 있는 그다지 많지 않다. 늘어가는 범죄자를 수용할 감옥을 증축하는 일이 고작 할 수 있는 전부일 게다. 

 

 

안전한 사회는 평등한 사회일 때 가능하다 

 

쿠바의 1차 보건의료는 개인이 아닌 건강한 지역사회를 목표로 하는 지역 보건의료 체계다. 즉, 지역사회 주민의 협조와 소통, 더 나아가 의료진과 지역주민의 상호신뢰 관계가 굉장히 중요하다. 그래서 지역사회의 공동체 기반을 기대할 수 없는, 예를 들어 도시 슬럼가 환경에서는 지역사회 기반의 의료체계의 기대효과가 낮을 수밖에 없다.

 

물론, 일단 체계가 제대로 잡히고 나면, 해체된 지역공동체를 재건하는 역할을 기대해 볼 만하다. 불가능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려운 일임은 분명하다. 특히나, 극단적으로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가지고 있는 현재 라틴아메리카의 다른 국가들에서는 쿠바와 같은 지역주민들의 상호신뢰가 형성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쿠바는 역내 다른 어느 국가보다 안전한 사회다. 그리고 이 같은 조건이 현재 쿠바의 1차 보건의료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장착시킬 수 있었던 결정적인 사회적 조건이다. 

 

그렇다면, 쿠바 사회는 왜 안전한 것일까? 

 

라틴아메리카에서 진화한 자본주의가 양극단의 빈부격차를 통해 사회 불평등을 완벽히 고착시켰다면, 쿠바에서는 극단적인 사회 불평등이 존재하지 않는다. 지역공동체 기반의 유대관계가 여전히 유지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혹시 쿠바가 구축한 사회의 안정성을 사회주의는 통제와 독재라는 고정된 틀로 이해한다면, 쿠바 현실과는 다소 동떨어진 해석이다. 자본주의가 민주주의의 등가물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쿠바는 결코 수동적인 사회가 아니다. 이 사회의 내적 동력은 국가의 통제 감시가 아니라 오히려 너도나도 오른쪽 검지를 번쩍 들며(쿠바에서 토론이나 모임에서 발언하기 위한 차례를 얻는 행위를 이른다) 경쟁적으로 발언하려는 토론문화에서 오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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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의 정치인이 발언하려 하고 있다.

 

 

쿠바의 1차 보건의료, 가족 주치의 

 

쿠바의 안정적인 사회환경이 1차 보건의료 체계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유리한 조건이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대략 200여 가구를 기본 단위로 지역사회 내 진료소라는 1차 보건의료 기관이 설치되었고, 우리가 흔히 가족 주치의라고 부르는 가정의와 간호사가 상주한다. 따라서, 모든 쿠바 주민들은 개인 주치의가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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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주치의 진료소 내부. 벽에 동네 아이들의 사진과 주민들의 건강 정보를 담은 메모가 붙어 있다. / 출처-<쿠바 아바나 의대 김해완>

 

가족 주치의에게는 지역주민과 생활공간을 공유하도록 진료소가 있는 건물이나 지역에 집이 제공되어 해당 지역사회 주민과 지속적인 소통이 가능하다. 이는 질병의 치료와 관리뿐만 아니라 예방 차원의 건강 캠페인, 정보공유 및 전달 등을 담당하여 건강의 사전 관리와 사회적 의료비용을 낮추는 효과를 동시에 기대할 수 있다. 

 

지역사회에 배치된 가정의와 간호사로 구성된 진료소는 1차 보건의료가 시작되는 기본 의료 단위이다. 질병 예방이라는 차원에서 지역주민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조도 동반된다. 덕분에 쿠바의 2세 이하 영유아에 대한 13대 백신 접종률은 98%에 이르고, 95%의 임산부가 산전 관리를 받는다. 그리하여 쿠바의 영아 사망률은 선진국 수준으로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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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주치의는 ‘마을 건강 보고서’를 쓴다. 주민이 태어나서 사망할 때까지 건강 정보가 주치의에 의해 축적된다. / 출처-<쿠바 아바나 의대 김해완>

 

지역마다 배치된 진료소에 근무하는 가정의는 동시에 그 지역의 동네 주민이기도 하며, 심지어 유년 시절을 함께 보낸 이웃의 가족 주치의이기도 하다. 의대 졸업 후 가정의로 20년 넘게 진료소에서 근무한 알레만이라는 이름의 한 의사 이야기는 인상 깊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제가 처음 출산을 도왔던 신생아가 이제는 임산부가 되어 이 진료소에 정기 검진을 받으러 옵니다.”

 

 

지역사회 의료체계라서 가능한 것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쿠바가 구축한 1차 보건의료 시스템은 사회주의 체제의 독특한 의료체계가 아니라, 세계보건기구가 권고한 전략적 의료시스템이다. 

 

지역사회에 촘촘하게 배치된 진료소는 의료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는 인구집단을 최소화하고, 지역주민의 전반적인 건강 상태를 파악하고 있어야 함은 물론 당뇨, 고혈압 같은 만성 질병 주민이나, 건강의 고위험군에 해당하는 노인, 그리고 임산부와 신생아가 있는 가구들을 파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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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한겨레>

 

현재 이 제도는 1984년에 처음 도입하기 시작해, 지금과 같은 형태의 가족 주치의와 간호사로 구성된 진료소로 1990년대 이후에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약 30여 년간 예방의료 중심으로 발전한 이 체계는 속칭 가난한 나라이면서 선진국에 뒤지지 않는 높은 의료적 성과를 거두며 국제사회의 이목을 끌어왔다. 

 

결과적으로, 지난 3월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온 이후 지금까지 사회의 큰 혼란과 동요 없이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었던 것은 지역의 진료소와 약 20-30여 개 진료소를 총괄하는 해당 구역의 폴리 클리닉(준종합병원 정도에 해당함)을 기반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었던 의료체계가 구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지역사회기반의 의료체계 강점은 무엇보다 의료 사각지대에 놓이는 주민을 최소화함으로써, 지역주민 모두가 건강할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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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한겨레>

 

아이러니하게도, 쿠바가 1차 보건의료를 도입하는 1980년대는 라틴아메리카에 이른바 미국 월스트리트 주도의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이 도입된 시대였다. 의료의 효율성이라는 그럴싸한 핑계는 의료 민영화를 가속화 하였고, 그 결과는 빈부의 격차만큼이나 심각한 건강 불평등을 초래하였다. 사회 불평등이 건강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쿠바 현재 기준(1월 14일), 총 확진자 17,096명, 이 가운데 12,942명이 회복되었으며 사망자는 162명으로 치사율 0.95%를 나타낸다. 전 세계 치사율 평균이 약 2.14%인 점을 고려하면 아주 낮은 수치에 해당한다. 

 

코로나19로 인해 쿠바 사회가 직면하는 경제적 문제와 이에 동반되는 사회 문제들은 다른 여느 국가에서 겪는 어려움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최근에는 외국에서 입국하는 자국민을 통해 지역 감염사례가 급증함에 따라 최근 다시 단계가 격상되는 등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코로나19 이후 미국의 봉쇄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 미국 자국민들이 코로나19로 사망자가 속출할 때, 쿠바에 대한 경제제재와 봉쇄를 강화했고, 의료장비 구매를 방해하는가 하면, 임기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트럼프 행정부는 쿠바를 테러 지원국 명단에 포함시키는 조치를 내렸다. 정작 전 세계에 군대를 보내 전쟁을 지원한 국가는 미국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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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쿠바 일간지 Granma, 1월 13일 자> 

 

쿠바는 코로나19 이후 지금까지 약 40여 개국에 국제 의료지원단을 파견했고, 26개국에서 38팀의 의료진들은 여전히 활동 중이다. 코로나19위기 앞에 쿠바가 대처해야 하는 것은 바이러스만이 아닌 것 같다. 

 

 

결론을 요약하면 이렇다

 

쿠바가 역내 다른 라틴아메리카와 구별되는 코로나19 위기를 대처하는 방식이 다르고, 그에 따른 긍정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쿠바가 상대적으로 평등한 사회를 구성하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지역사회 중심의 의료체계를 구축, 소외되는 계층을 최소화하는 보편적 의료를 제공하는 기반을 체계화했기 때문이다.  

 

비록 이 두 가지가 코로나19를 대처하는 쿠바의 방식을 완벽히 설명할 수는 없어도, 쿠바 사회를 이해하는 출발점으로는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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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정이나 (쿠바 아바나 의과대학, 중남미 사회인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