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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이 내려간다면 행복할까

 

간단한 질문으로 시작해보겠다. 서울 아파트 가격이 하락하면 여론이 좋아질까? 서울 아파트 가격 폭등으로 여론이 나빠졌으니, 그 반대면 좋아지는 것 아닌가? 서울에 집을 가지고 있거나, 혹은 집을 구매할 계획이 있는 독자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집값 폭등으로 인한 여론의 변화를 살펴본 후에 위 질문의 답을 찾아보자.

 

우선, 집값 상승으로 무주택자 중에서 집을 사고 싶은 사람들의 박탈감이 커졌다. 집값 상승률은 서울, 수도권, 지방 대도시 순이다. 학교, 직장, 사업 등 주변 환경이 좋은 순으로 집값이 더 뛴다. 그리고 집값이 높은 지역일수록 자가점유율은 낮다. 경제 불황에는 인구와 자본이 더욱 서울 수도권으로 집중된다. 여기에 2천 년대 이후 만혼, 비혼으로 1인 가구도 빠르게 증가했다. 먹고살 만한 지역에서 살 집을 사기란 원래 어려운 법인데, 집값이 폭등하니 그 어려움이 더 가중됐다.

 

다음으로, 집값 상승은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했다. 집값 상승률이 천차만별이었기 때문이다. 서울이 두 배 뛸 때, 지방은 별로 오르지 않았다. 서울에서도 강북은 강남보다 덜 올랐다. 사실 주택 매매는 무주택자의 신규 구매만 있는 게 아니다. 유주택자 간의 매매도 많다. 주택 간 가격 차이가 벌어지면 이사할 때 필요한 자금 규모가 커진다. 지방에서 서울로 가려면, 강북에서 강남으로 가려면, 집을 한 채 더 산다는 각오로 돈을 빌려와야 한다. 이런 식으로 주택 시장에서는 가장 높은 곳을 기준으로 상대 가격이 측정된다. 그래서 강남을 제외하면 상대적으로 모두 집값이 하락한 꼴이 되고 만다. 부동산 불만은 집값의 절대 가격 상승이 아니라 상대 가격 하락에 영향을 받았다.

 

이런 불만 속에서 정부는 투기 수요를 표적으로 삼았다. 이전 연재에서 봤듯 정부 부동산 정책은 철저하게 ‘적폐청산’을 목적에 두었다. 투기꾼이 움직이는 모든 곳에 덫(핀셋 규제라고 불렀다)을 설치하면 된다는 발상이었다. 주택 관련 대출을 규제했고, 세금도 높였다. 하지만 꼬인 줄을 푸는 문제에 줄을 댕강 잘라 답을 냈기에, 줄이 온전치 못했다.

 

우선 대출을 규제하자 구매 자금이 부족한 사람들이 난리가 났다. 실수요자는 규제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투기꾼 머리에 뿔이 달린 것도 아니고, 도대체 실수요자가 누구인지 어떻게 구별할 수 있었겠는가. 새로 아파트를 구매하려는 사람부터 살던 아파트를 팔고 새 아파트를 사서 이사하려는 사람까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실제 투기꾼은 꼼수로 빠져나갈 구석이 많았다. 전세를 끼고 새 아파트를 구매하는 이른바 ‘갭’ 투자가 처음에는 투기로, 나중에는 아예 일반화된 거래 방식으로 이용됐다. 대출로 집을 사고 싶다는 건 한국 시민 대다수의 욕구다. 이런 조건에서 대출 규제는 대출 불평등이란 역설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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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영화 비열한거리>

 

죄가 아닌 죄

 

부동산에 죄악세를 매긴 정책도 부정적이었다. 죄악세는 소유할 자유를 금지할 수는 없지만, 공익을 위해 사회적 규제가 필요한 상품에 매기는 세금을 뜻한다. 주세와 담배세가 대표적이다. 음주와 흡연으로 인한 만족(편익)은 개인이 누리고 건강 악화로 인한 건강보험 지출(비용)은 사회가 부담하는 꼴이니 세금을 부과한다는 논리다. 경제학에서도 편익과 비용의 균형 차원에서 죄악세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정부는 이런 죄악세의 논리로 부동산 대책을 발표할 때마다 다주택 또는 고가 주택 소유자에게 세금을 더 부과했다. 그런데 부동산 소유에 죄악세 논리를 적용하는 게 맞는지에 대한 고민은 좀 더 깊을 필요가 있었다. 그만큼 꼬인 줄이기 때문이다. 

 

토지는 희소한 것이지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욕구에 비해 토지는 질적ㆍ양적으로 제한되어 있다. 희소한 것을 사적으로 소유하기 위해서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특히 대도시 토지처럼 공급이 극도로 제한될 때는 수요 변화에 따라 토지 가격이 천정부지로 상승한다. 서울의 주택 가격을 분해하면 건물 건축비보다 토지 가격이 몇 배 높다. 신규 부지를 개발하거나 용적률 상향 같은 주택용 토지 공급 방법이 고안되지 않는 한, 1명이 10채를 가지고 있으나, 10명이 10채를 가지고 있으나, 토지 희소성에는 차이가 없다. 그런데 희소한 토지를 분배하는 방법의 차이를 가지고 죄악 여부를 따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심지어 근대적 자유는 소유할 자유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토지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소유 대상이었다. 토지 소유 자체를 죄악으로 규정할 수 있는 규범은 민주주의에 존재하지 않는다.

 

즉,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죄가 될 수 없는 것을 죄로 만든다는 명분을 제공한 셈이다. 2015년 박근혜 정부에서 담배 세금을 대폭 인상했을 때, 흡연자들은 불만이 있어도 저항(?)이라고 느껴질만큼 대놓고 드러낼 순 없었다. 담배에 죄악세를 매기는 것에는 동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동산 세금은 담배세와 사정이 다르다. 죄악이 아닌데 죄로 몰리는 느낌을 받으니 내는 사람은 불만이었고, 내지 않는 사람도 불안했다. 결국, 4년 동안 세율을 올렸다 내렸다, 범위를 넓혔다 좁혔다, 하면서 누더기가 된 셈이고 여론은 싸늘했다. 아쉽게도 기대한만큼 효과가 없었다.

 

이제 글 앞에서 던진 질문을 풀어보자. 서울 집값이 하락하면 국민의 행복도는 높아질까, 낮아질까?

 

집값이 하락해도 불행한 이유

 

우선, 서울에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불행해진다. 특히 대출 비중이 많은 가계는 집을 매각해도 원금도 못 갚는 꼴이 되니, 이를 이자로 환산해서 계산하면 수십 년간 사채업자에게 시달리는 꼴이 된다. 전세를 끼고 집을 산 사람은 집을 팔아도 전세금을 내주지 못할 수 있다. 파산의 벼랑 끝에서 사투를 벌여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지방에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행복해지지 않는다. 서울 집값이 하락한다고 지방 집값이 뛰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지방 집값의 서울 대비 상대 가격은 웬만해서 오르지 않는다. 서울 아파트 가격이 하락하면 '서울마저' 하락하는 국면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자가점유율은 약 60%다. 국민 60%가 집값 하락으로 인한 불행의 영향권에 놓인다.

 

그렇다면 나머지 40%는 어떨까? 서울 집값이 하락하면 구매 기회가 열렸다고 열렬히 환영할까? 또 막상 그렇진 않다. 서울 아파트 가격은 이미 지나치게 높아 아무나 구매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득이 어느 정도 높아야 하고, 주택담보대출도 최대한 받아야 한다. 한마디로 일생일대의 투자일 수밖에 없는데, 이런 투자 자산의 가치가 장기간 하락한다고 예상되면 어떻겠는가? 당연히 쉽게 구매할 수 없다. 서울 집값 하락은 슬퍼할 일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크게 기뻐할 일도 아니게 된다. 사실 서울에서의 ‘내 집 마련의 꿈’은 이중적이다. 주거의 의미와 자산 증식의 의미가 꽉 들러붙어 있어서 그렇다. 이 둘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울 부동산 문제에 관해서는 이래도 불만, 저래도 불만이 될 수밖에 없다.

 

서울 아파트를 중심에 둔 부동산 문제는 어떤 식으로 해결해도 여론의 전폭적 지지를 받기 어렵다. 그래서 여론을 따라가다가는 정책이 삼천포로 빠져버린다. 부동산 시장에서 적폐를 찾아 청산하려 들면, 대한민국 국민 마음 한구석의 욕망을 모두 불살라야 한다. 빈대 잡다가 초가삼간 다 태운다. 이렇게 적폐청산과 여론은 부동산 정책과 상극이다.

 

부동산 문제의 해결책을 찾으려면 적폐를 청산하고 여론을 따르는 게 민주주의라는 식의 사고부터 버려야 한다. 따져보면 역대 정부가 합리적 대안을 찾을 수 없어서 부동산 정책에 실패한 것이 아니다. 합리적 대안을 찾을 수 없도록 만드는 각자의 이데올로기에 갇혀서 실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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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MBC>

 

토지 가격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주택 가격은 더도 덜도 없이 수요와 공급에 따른다. 현재 한국경제에서 주택 자산을 늘리는 건 모든 국민이 가질 수 있는 합리적 선택이다. 대도시의 토지 공급은 절대적인 제약이 있다. 수요와 공급 모두에 시장 금리가 큰 영향을 미친다. 한국적 특색인 전세 제도는 수요 예측에 조금 더 복잡한 변수가 된다. 투기 수요 역시 변수이긴 하지만 상황을 지배하는 요인은 아니다. 고려는 하되 과장해선 안 된다. 부동산 문제를 다루는 수많은 경제학 논문들은 수요와 공급에 영향을 미치는 이런 변수들을 분석해 정책 대안을 제시한다. 매년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온다. 나는 학계에 어느 정도 컨센서스도 있다고 생각한다.

 

다음 정부가 부동산 출구를 찾으려면 부동산 정책의 각론을 두고 갑론을박할 일이 아니다. 총론부터 방향을 틀어야 한다. 적폐청산과 여론의 민주주의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부동산 문제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다음에는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우리가 민주주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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