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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시민 다시 중국민 만들기

 

많은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공간으로 홍콩을 꼽는 시절이 있었다. 이유는 국가로부터의 자유, 민족으로부터의 자유가 있던 곳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홍콩은 국가나 민족 등 각종 거대 담론으로부터 해방된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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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자유는 국가가 아님에서 가능한 것이었다. 홍콩 특유의 창의성도 국가가 아니어서 가능했다. 그랬던 홍콩이 주권 반환 이후, 국가라는 권력 체제 속으로 들어갔다.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는 절대적 기준의 틀에 다시 갇힌 것이다. 충성과 효도는 모두 테두리 내의 질서를 말한다. 우리는 그만큼 자유를 국가에 반납해야 한다.  

 

원래 홍콩에는 국방의 의무는 없고, 납세의 의무만 있었다. 홍콩이 국가가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홍콩은 누구나 세금만 납부하면 큰소리 뻥뻥 내지를 수 있는 곳이었다. 

 

“나는 세금 내는 사람이야!” 

 

정기적으로 비자를 갱신해야 하는 외국인들은 이민국 창구에서 이 말을 내뱉는 것을 잊지 않았다.  

  

홍콩 반환 6주년이 되었을 때 중국의 관방 학자는, 여섯 살짜리 아이가 아직까지 아빠 엄마를 부르지 못한다고 꾸짖었다.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특구 정부의 치욕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홍콩인들은 우리에게는 부모가 필요 없다고 말한다. 155년 동안 부모 없이 잘 살았다는 말로 대응한다. 

 

중국 정부는 홍콩시민을 ‘다시 국민 만들기’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나라 없는 시민으로 마냥 둘 수는 없었다. 홍콩인의 입장에서는 ‘신분세탁’이라고 말한다. ‘거듭나기’라는 말로 표현되기도 한다. 홍콩학 학자 뤄용셩(羅永生)은 무국적 신분에서 ‘중국인’으로 신분을 세탁하고 있다고 했다. 홍콩은 국제도시와 중국 도시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고도 한다. 개인이든 지역이든 국가든 정체성의 변화는 그만큼 어렵다. 

 

중국 정부는 시민이 아닌 국민 만들기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사회학자 송두율에 의하면 중국에서는 ‘시민’이라면 대개 서구화된 매판 세력과 비슷한 말로 이해되었다. 홍콩의 ‘시민’은 애초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숙명인 것이다. 더욱이 2020년 국가보안법 발효 이후 홍콩 시민사회의 성장은 아득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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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부터 홍콩의 모든 초중등학교에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기인 오성홍기가 게양될 것이다. 매주 1회 게양식을 하고 국가를 제창해야 한다. 역사학자 임지현은 거듭되는 국민 의례를 통하여 아이들의 자아는 ‘조국’과 ‘민족’이라는 집단적 자아 속에 함몰된다고 했다. ‘우리’ 속에서 개별적 자아는 설 자리를 잃어버리게 된다. 국민이 되는 길은 유연한 사유를 반납해야 걸어갈 수 있다. 

 

 

중국에 대한 홍콩의 반작용

 

‘나’라는 정체성은 다른 정체성에 저항하기 마련이다. 살아오던 대로 내버려 두어 달라고 말한다. 내 모습 그대로 인정해달라고 한다. 나의 ‘다움’, 너의 ‘다움’ 그것이 정체성이고 본토다. 

 

1997년 주권 반환 이후부터 홍콩학계에서 본토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곧 회자되기 시작했다. 홍콩에서는 지역성(로컬리티)이라는 의미로 정착되었다(나는 한국에서도 본토가 대륙을 가리키는 말보다는 지역적 정체성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기를 바란다. 본토라는 말이 가지는 자기중심적인 반동성을 경계하기 위하여).

 

중국으로의 주권 반환이라는 충격에 홍콩이라는 나의 정체성이 더욱 소중해졌다. ‘홍콩다움’을 지키고자 하는 흐름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작용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주권 반환 2년 뒤부터 홍콩인들의 불만이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1999년 7월 1일 시위대는 홍콩의 법치가 사망했음을 뜻하는 검은색의 완장을 차고 시위를 했다. 

 

-2001년 7월 1일에도 수천 명이 ‘민주, 인권, 법치의 사망’을 상징하는 묘비를 들고 행진했다. 

 

-2003년 7월 1일에는 기본법 23조에 규정된 보안법의 입법을 반대하기 위해 홍콩 역사상 최대 인파인 50만 명이 참가한 시위가 열렸다. 

 

-2004년 7월 1일에는 다시 수십만 명의 시위대가 특구 지도자를 뽑는 보통선거를 요구했다. - 2006년 7월 1일에는 50만 명이 최저임금제, 환경오염 문제, 유아 교육 지원 등과 함께 보통선거를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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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7월 1일에 열린 시위.

출처-<AFP>

 

2006년 홍콩인들은 이전하기로 한 스타페리부두 보호 운동을 전개했다. 2007년에는 철거하기로 한 여왕전용부두를 보호하자는 운동에 나섰다. 자신들의 흔적 즉, 집단기억들이 갑자기 소중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자신들만의 추억과 기억을 지키고 싶었다. ‘본토 수호’라는 표어가 각종 시위 현장에 등장했다. 이런 흐름을 학자들은 홍콩에 본토주의(本土主義)가 대두되고 있었다고 말한다. 

 

2009년에는 광저우-홍콩을 연결하는 고속철도 건설을 반대한다는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이 또한 모두 ‘강자’ 중국에 의해 ‘약자’ 홍콩의 정체성이 사라질 것을 두려워해서 나오는 움직임이었다.

 

 

중국이 홍콩인을 중국인으로 만드는 방법

 

대한민국을 바꾸고 싶다면 무엇부터 바꾸어야 할까? 한국인의 정체성을 바꾸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언론부터 장악해야 할 것이다. 정권이 바뀌면 방송사의 사장부터 교체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박물관장도 바꾸어야 하고, 교과서도 새로 써야 한다. 기존의 역사가 왜곡되었다고 하고, 지우고 새로 쓰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때부터 역사 교과서가 이렇게 저렇게 잘못되었다는 내용이 연일 톱뉴스로 나온다. 방송사 사장을 교체하면 뉴스의 우선순위가 뒤바뀌고, 박물관 관장을 교체하면 전시가 재편된다. 과거의 방송과 전시는 모두 잘못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하는 것이다. 

 

1997년 주권 반환 이후 중국 정부는 아래와 같은 조치를 통해 홍콩인 다시 만들기 작업을 진행했다. ‘시민’을 ‘국민’으로 만드는 과정이었다.

 

중국의 관방 출판사라고 할 수 있는 중화서국이 낸 『도해 홍콩수책』의 ‘국민교육’ 항목 첫머리에 이런 설명이 나온다. 

 

홍콩이 조국으로 반환된 이후, 특구 정부는 국민교육에 노력하여, 

홍콩인의 국가 관념과 민족의식을 증강시켰고, 

국민 신분이라는 정체성을 배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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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29일, 중국 국민교육 수업 도입을 반대하는 시위.

출처-<THEAsiaN>

 

정부 내에는 국민교육센터가 들어섰다. 업무 추진 현황을 『도해 홍콩수책』은 아래와 같이 정리하고 있다. 시민, 학생, 공무원 등을 대상으로 각각 진행되었다. 

 

시민 (민정사무국 책임)

 

①국기 · 국가(國歌) · 국가발전과 관계있는 텔레비전 선전 단편을 방영한다.

②중화문화와 관련 있는 전람회를 개최한다.

각 커뮤니티 단체와 합작하여 다양한 유형의 국민교육 보급 활동을 전개한다.

 

학교 (교육부 책임)

 

①초등학교 · 중고등학교에서 국민교육 커리큘럼 개설을 추진하고, 다양한 과목에 국민교육 요소를 삽입한다.

학교에 국기 게양을 장려한다.

국민교육과 유관한 강좌, 세미나, 군사 여름 캠프, 학생 교류단 등 활동을 전개한다.

 

정부 내부(공무원 사무국 책임)

 

국가 정세 강의를 연다.

국가 업무 연습 과정을 개설한다.

중국 답사단을 조직한다.

홍콩과 중국 공무원의 교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방법 1 : 프로파간다

 

마오쩌둥은 ‘가장 아름다운 시는 백지 위에 기록된다’고 했다. 나는 매 학기 초 강의 시간, 학생들에게 ‘여러분의 두뇌는 백지 같은 거라서, 내가 빨갛게 칠하면 빨갛게 되고, 파랗게 칠하면 파랗게 됩니다’라고 말한다. 

 

이런 측면에서 가르치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편파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 가능할 것이다. 그 사람의 정체성이 약할수록 그 사람의 정체성을 쉽게 만들어줄 수 있다. 그것을 ‘세뇌’라고 하고, 반복학습을 통해서 완성된다. 히틀러의 선전장관 괴벨의 말이었던가? 계속 말해주면 그것을 진실인 것처럼 믿게 된다. 

 

2004년 10월부터 홍콩인들은 텔레비전을 통해서 ‘조국’을 학습해야 했다. 하루 두 차례씩 뉴스를 보기 전에 중국의 국가인 의용군행진곡이 나오는 영상이 방송되었다. ‘마음은 조국과 하나(心繫家國)’라는 제목의 짧은(45초) 영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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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조국과 하나(心繫家國)’ 영상 中

 

홍콩의 정체성이 뚜렷한 사람들은 그것을 ‘세뇌’작업이라고 했고, 중국의 정체성을 자랑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두뇌가 건강해지는 ‘건뇌’공부라고 했다. 중국 정부로서는 홍콩인들의 성장환경을 바꾸어야만 했다. 조국이 실제적으로 돌아왔음을 알려주어야 했다. 

 

영상은 여러 차례에 걸쳐 다른 버전으로 업데이트되었다. 2020년 11월부터는 ‘마음은 하나(心連心)’라는 제목으로 바뀌었다. 영상에 나오는 장면들은 아래와 같다.

 

 

-만리장성

-홍콩의 학생들이 국가를 합창하는 장면

-중국 각 지방의 민속과 풍광

 

-중국의 올림픽 대표팀이 선전하는 장면

-중국의 인민해방군이 훈련하는 장면

-중국의 인민해방군이 대민 봉사(수재, 지진 등)를 하는 장면

 

-중국의 우주선이 발사되는 장면

-중국의 유명 인사가 역사를 설명하는 장면

-태극권 등 중국 문화와 전통예술을 소개하는 장면 

 

-중국의 고금 건축물, 도시 발전상

-중국의 경제, 과학기술, 체육 분야의 발전상

-홍콩오케스트라가 중국 국가를 연주하는 장면

 

-홍콩경찰악대가 중국 국가를 연주하는 장면

-중국과 홍콩이 맺은 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CEPA) 강조

-시진핑 주석의 통치 이념인 ‘중국몽(中國夢)’ 강조

-홍콩인들의 분투, 창의 정신, 법제 등

 

 

어쩌면 이런 장면들이 모여서 ‘중국’을 구성하는지도 모르겠다. 하기야 ‘한국’을 구성하는 이미지도 ‘중국’과 대동소이할 것이다. 한국을 홍보하는 영상물도 중국의 그것과 별반 차이 없다. 이미지가 국가의 전부일 수도 있다. 결국 선전과 홍보는 국가의 숙명일 수도 있겠다. 2006년에는 홍콩 정부 내 국민교육센터가 강화되었다. 

 

2007년 ‘주권 반환 1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국가 주석 후진타오(胡錦濤)는 ‘국민교육’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중국-홍콩의 청소년 교류를 확대하자고 했다. 그나마 백지상태라고 여겨지는 청소년들의 ‘두뇌’에 관심을 표한 것이고 향후 중국 정부의 목표가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하게 밝힌 것이다. 이후 홍콩-중국 정부는 그렇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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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1일 홍콩 주권 반환 20주년 기념식에서의 시진핑 주석.

 

2017년 ‘주권 반환 2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국가 주석 시진핑 역시 ‘국민교육’을 강조했다. 그는 우선 이렇게 질책했다. 

 

"세계 각지에 당연히 존재하는 국민교육이 왜 홍콩에서만 항의를 받고 있는가?"

 

"마카오에서는 보안법이 입법되었는데 홍콩에서는 왜 안 되는가?" 

 

"보안법이 없기에 ‘홍콩독립’ 분자들이 날뛰고 있지 않은가?" 

 

그의 결론은 국민교육이 부족하기에 홍콩의 젊은이들의 국가 의식이 갈수록 결핍되어간다는 것이었다.       

 

류영하(백석대학교 중국어학과 교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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