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열이 형. 지난주에 뉴스 보다가 깜놀했어. 어휴..
“조금 더 발전하면, 학생들 휴대폰으로 말이죠.. 앱을 깔면은, 어? 어느 기업이 지금.. 어떤 종류의 그... 저... 사람을 필요로 한다고 하는 것을 실시간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어.. 있을 때가 아마 저.. 여기 일이학년 학생이 계시다면 졸업하기 전에 생길 것 같아요 예...”
아 혀엉. 명색이 대통령 되겠다는 사람이 이렇게 상식에 약해서 어뜨케 증말. 가뜩이나 ‘상식’을 저렇게 대문짝만 하게 박아놓고 그러면 어떡하라는 거야. 아휴..
형은 아주 옛날에 사시패스한 뒤로 신경 쓴 적 없겠지만, 요즘 애들은 취업하려면 취준이고 공시고 간에 면접이다, 공무직 일반상식 시험이다 해서 시사/상식 공부를 엄청 해야 해. 형도 엄밀히 말하면 지금 공무원 되려고 일종의 시험을 치르고 있는 셈이잖아. 형 면접 가서 그렇게 답변하면 백방 떨어진다고! 으이구 증말.
그래서 내가 도와주려 해. 요즘 개나 소나 ‘윤핵관’이 되고, 이수정도 신지예도 다 캠프에 데려가던데, 나라고 못할게 뭐가 있겠나 싶어서. 형의 시사상식, 딴지 막내인 내가 책임질게.
형, 세상은 생각보다 편리해
이거부터 좀 보자 형. 다시 봐도 기가 막히네. 형이 말한 게 그러니까 스마트폰 앱으로 일자리를 찾아볼 수 있다 그런거자나. 형.. ‘잡코리아’라는 어플이 출시된 게 2012년이야... ‘사람인’이라고 경쟁사도 버젓이 있다구. 10년 동안 대체 뭐하고 산 거야 형... 그동안 배달의민족에서 치킨 한번 안 시켜 먹었던 거야? 야놀자로 숙소도 안 잡아 봤어? 대체 어떤 삶을 살아 온 거야...
아, 그렇지 참. 형은 그동안 킹한민국의 정의를 위해 최전선에서 싸워왔지. 사람에 충성 안 하고 조직에 막 충성하고. 아 맞다. 이제 보니 그럼 조국 전 장관 집 털러 갔을 때, 짜장면은 그럼 어떻게 시킨 거야? 설마 막 수도계량기 옆에 붙은 전단지 보고 시킨 거야? 아이고.. 형 앱으로 시키면 쿠폰도 주고 리뷰 이벤트로 군만두도 먹을 수 있는데. 형 아껴야 잘 살지. 월급 150만 원 받고 사는 사람들에겐 군만두도 소중하단 말야.
아무튼, 형. 내가 진짜 간단한 거부터 알려줄게. 요즘 사람들은 눈뜰 때부터 자기 전까지 스마트폰이라는 걸 써. 형도 쓰지? 형 거기엔 기능이 제법 많아. 강아지 눈동자 접사 사진만 찍을 수 있는 게 아니라구. 형이 말한 대학교 1~2학년들은 지금 출석도 앱으로 하고, 수업도 앱으로 듣고, 필기도 앱으로 하고, 밥도 앱으로 끊어 먹고, 데이트 맛집도 다 앱으로 찾아. 공모전도 앱으로 찾고, 인턴도 앱으로 찾고, 취준 정보도 앱에서 찾고, 공시 정보나 자료도 다 앱으로 찾아. 심지어 형 좋아하는 어르신들도 정규재 티비 이런 거 지하철에서 다 스마트폰으로 보신다구. 혹시 검찰 비품은 2G폰만 공급되었던 거야?
하긴, 형은 취준을 안 해봤으니 그럴 수 있어. 사법고시 그거 9년 동안 존버하면서 얼마나 힘들었겠어. 형이 고등학교 졸업한 게 79년이고, 사시에 붙은 게 91년이니까. 30대 초반이 될 때까지 취준이란 걸 해본 적이 없는 거잖아? 그러게 형 푸릇푸릇한 막내 검사들 들어오면, 술자리에서 못된 것만 가르치지 말구, 요새 애들은 스마트폰에 뭐 깔아서 쓰는지 정도는 물어보지 그랬어..
역시 예나 지금이나 공무원이 짱이긴 한가부다. 스티브잡스가 아이폰을 만들든 말든, 일론머스크가 우주로 비행기를 쏴제끼든 말든, 평생 그냥 사람 잡아넣고 조지다가 대통령까지 될 판이니까. 혹시 요즘도 조서 타자기로 치는 건 아니지?
형, 일단 깔자
형, 문제가 한두 개가 아니야. 이것도 좀 보라구.
“제가 볼 때는...디지털 고도화가 되어 있는 학생은...절대 취업 걱정 안 할 것 같습니다....”
형 디지털 고도화라는 말은 누가 알려준 거야? 형이 말하는 디지털 고도화가 혹시 당장 애플 입사해도 손색이 없는 초고수 개발자를 말하는 건지, 아니면 취업 같은 거 내던지고 코인 시장에 올인하는 친구를 말하는 건지는 모르겠어서.
근데 취업하는 건 형 때나 지금이나 똑같아. 나한테 맞는 기업? 그딴 게 어딨어. 내가 기업에 맞춰야지. 그러니까 결국 다 시험이야. 준석이형도 그러잖아. 시험이 짱이니까 공직자도 시험으로 뽑자고. 혹시 진짜 NCS니 인적성 검사니 같은 그지같은거 싹 다 불질러버리고 시험 없는 세상, 취준 없어도 되는 세상을 만들어주려는 거야? 그러면 내 표 가져가. 두 번 가져가.
말이 나와서 그런데, 형 PSAT 풀어 봤어? 안 풀어 봤겠지? 그래도 대빵 공무원 공시생인데 PSAT가 뭔지는 알고 있어야 하잖아. PSAT은 인사혁신처나 국회사무처에서 공무원 채용을 위해 실시하는 시험이야. 한번 풀어볼래?
지문 졸라 길지? 13번의 답은 1, 14번의 답은 2야. (형이 120시간 좋아한다고 다른 거 고르면 안 돼. 금요일 최대는 12시간이야) 물론 맨날 조서 쓰고, 긴 판결문 읽고, 수많은 자료 보고 그랬던 형이니까 이 정도는 가볍게 맞혔을 거라 생각해.
그런데 요즘 공시생들, PSAT은 어차피 타고나는 거라고 해서 그리 많은 시간 투자도 안 해. 그거 아니라도 할 게 너무 많거든. 나도 공시생이 아니라서, 공시 준비하는 학우한테 물어봤어. 공시생 필수 어플만 다 봐도 하루가 다 간대. 한번 볼래?
먼저 [선재국어]란 어플이 있어. 맞춤법이나 표준어 알려주는 어플이야. 보니까 형 맞춤법이 좀 약한 거 같드라. 사시 답안지에는 한문을 많이 써서 그런 거야? 형 중국인이야? 그 암튼 요즘 이제 한문 병용 안 하는 시대니까 국어 맞춤법을 잘해야 지성인이라구. 인터넷에 ‘됐’을 ‘됬’으로 쓰면, 얼마나 놀림 받는데.. 법전만 파고 살 거 아니면 형도 공부 좀 해. 어떻게 어디 가서 뭐 쓸 때마다 기사가 나고 그래 증말 속상하게.
형 도저히 안되겠다 싶으면, 어디 가서 뭐 쓰기 전에 몰래 핸드폰으로 ‘맞춤법 검사기’같은 거 돌려보고 써. 국립국어원 홈피가면 교열 다 해주거든? 취업하기 빡세지 형.. 요즘 세상이 그래. 호락호락하지 않아.
사실 맞춤법 가지고 시비 거는 거, 화통한 형 입장에서는 좀 찌질해 보일 수도 있어. 그런데 어쩌겠어. 요새는 자소서 맞춤법 하나만 털려도 바로 서류 광탈이야. 내 친구는 자소서에 감명 깊게 본 작품으로 ‘모레시계’라고 썼다가, 면접관한테 내일 모레 다시 오라고 얼마나 개털렸다구.
자소서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형 요즘 세상은 예전이랑 달라. 쓴다고 다 경력이 아니여. 면접 올라가면 인사팀에서 어느 공모전에 어떤 상을 진짜 탔는지 하나하나 주최 측에 문의해서 다 찾아보고 확인하고 그래. 들통나면 끝장이야. 특히, 허위 경력은 걸렸다 하면 진짜 인생 조지는 수가 있어.
물론 자소서가 기본적으로 소설 장르라서, 쓰다 보면 있는 거 없는 거 영혼까지 끌어다 쓰고 싶지. 아 왜 우리가 그걸 이해 못 하겠어. 근데 구라 치다 걸리면 진짜 손모가지 날아가. 오함마 준비해야 쓰는겨. 자소서에 부정이 적발되면 5년간 지원이 막히고 막 그래. 어학연수 다녀온 걸 유학이라고 썼다가, 대기업 취준은 영영 물 건너가는 친구도 있어.
출처 - <권인숙 의원실>
글고 형 요즘은 공무원 되려면 한국사도 필수야. [한국사 비법노트]라는 앱이 좋대. 깔아둬. 그러고 보니 형은 안중근 의사랑 윤봉길 의사도 헷갈리더라.
전두환은... 아휴. 진짜 형 너무 바쁘면 유튜브에 <제5공화국>같은 드라마 요약 클립 있어. 왔다 갔다 차 안에서 뭐해. 그런 거라도 좀 봐.
형 여기 파란 글씨 누르면 디지털 고도화된 영상이 나와 짱 신기하지?
형 이왕 진짜 공부하기로 맘먹은 김에 [열품타]라는 앱도 좀 써봐. 공시생의 성지, 노량진러나 신림러들이 스터디 운영할 때 쓰는 거래. 형 사시 공부할 때 술 먹는 거 좋아해서 공부 안 했다며. 사실 스터디도 반쯤은 그래. 절반은 그 안에서 연애하더라고. 형도 형수님 술 먹다가 만났다며. 형한테 딱이야.
죽 써보면서 왜 청년세대들이 그렇게 공무원이 되고 싶어 하는지, 그들에게 직업과 노동이 어떤 의미로 다가왔길래 그렇게 공시에 목을 매는지 함 알아봐봐. 그러면 ‘주 120시간 바짝 일하고 쉬면 된다’라는 말에 사람들이 왜 그토록 아연실색하는지 알 수 있을 거야. 형, 주 120시간 채우려면 토요일 일요일까지 숨도 안 쉬고 일해도 하루 17시간 조져야 하거든? 산업혁명 때도 그렇게 일 안 했어... 아니 무슨 모던타임즈여?
킹왕짱 형, 파이팅
아무튼 형. 일단 다 때려치우고 가장 시급한 건 [하루 1분 시사/상식] 앱이야. 이글 보자마자 바로 깔아줘. 아무래도 그동안 형은 뉴스를 보는 것보다, 뉴스를 흘리는 데에 더 익숙할 거니까. 형, 뉴스는 보는 거야. 친한 기자들한테 흘리는 게 아니라. 누구 고발했고, 누구 잡아넣었고, 대학 총장 표창장 직인이 어디서 나왔고 이런 뉴스보다 세상엔 신비하고 다채로운 소식들이 많아. 이제 좀 폭넓게 보자. 이직하려면 그 정도 준비는 해야지.
물론 나이 먹고 이런 거 배우는 거, 불편하겠지. 알아. 오후에 토리 산책이나 나갔다가 간식으로 인도사과도 좀 사먹이고, 저녁에 친구들이랑 소주도 한잔하고, 노래방도 가고 그런 여유로운 은퇴생활을 했어야 할 형인데... 내가 맘이 참 안 좋아.
그래도 형, 힘을 내. 형은 왕이 될 상이잖아. 이건 보통 일이 아니야. 정말 간절하게 원하면 전 우주가 나서서 같이 도와준다잖아. 내가 요즘 형이 우주의 원기옥을 자꾸 스매싱하는 거 같아서 막 혼이 비정상 될라 그래. '우리의 핵심 목표는 내년에 달성해야 될 것은 이것이다'하는 것으로 정신을 차리고 나아가면 우리의 그 어떤 에너지를 분산시키고 해낼 수 있다는 그런 마음을 가지란 말이야 형. 바쁜 벌꿀은 슬퍼할 시간도 없어.
잘하자 형.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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