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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케이팝이 빌보드 핫100 차트 1위를 했다는 소식을 아침 뉴스에서 속보라고 전해도 덤덤해지는 거 같다. 워낙 밥 먹듯이 1위를 하기에 더 차오를 국뽕이 없어서 그런걸까?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드라마가 세계적 화제를 일으키고 언론에 매일 언급되며 난리인 거 같지만 실상 많은 사람들은 시큰둥하다. 역시 쿨내 진동하는 우리라서 그런걸까? 

 

그 소식이 반갑지 않아서가 아니다. 아마도 케이팝이라 용어를 독점 중인 아이돌 음악이 한국 대중음악의 전부가 아님에도, 마치 아이돌 음악만이 한국 대중음악인 양 호들갑을 떠는 모습에 짜증이 났던 건 아닐까. 

 

내용의 개연성 따위는 밥 말아 드신 PPL로 도배된 드라마가 여전히 공중파를 가득 채운 와중에, 그런 투자자의 입김에 휘둘리는 제작 관행에서 요행히 벗어난 [오징어게임]이나 [지옥]을 한국 드라마 컨텐츠의 당연한 표준이나 성과처럼 과장하는 목소리가 지겨워진 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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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2021년을 마무리 지으며 언론이 호들갑 떨며 다뤄주지 않았던, 빌보드 차트 따위는 신경도 안 쓰고 제 갈 길로만 걸어간, 하지만 후덜덜한 자기 완성도를 가진, 최소 10년 후에 꺼내 들어도 계속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만큼 자기 세계를 파고든 한국 대중음악의 성과 10장을 쓰윽 추천한다. 

 

물론 여기에는 필자의 취향이 작동하고 있다. 주의를 요한다. 20년 전 ‘딴지영진공’에서 영화음악을, ‘음악딴따라’에서 각종 장르 음악을 디비던 필자의 취향을 신뢰하는 분은 한 번 꼭 찾아 들어보시라. 참고로 아래의 번호는 임의로 설정한 것으로, 10장의 음반에 순위는 없다. 

 

참고로 소개된 각 앨범마다 한 곡씩 선정해 영상을 첨부했다. 앨범의 오피셜 뮤직비디오가 있으면 그것으로, 없으면 필자가 좋아하는 곡으로 선정했다.        

 

 

1. 아그네스 [Hegemony Shi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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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네스 - Hegemony Shift

 

올해 7월 20일에 발매된 밴드 아그네스(AGNES)의 [Hegemony Shift] 음반이다. 헬로윈(Helloween)이 전성기 멤버를 보강하여 7인조로 월드투어를 한다는 소식과 그 결과물을 들으며 혼자 입맛을 다셨던, 어느새 일기예보보다 어깨와 허리가 먼저 알려주는 올드 메탈 키드에게 전하는 선물 같은 작품이다. 

 

쫄깃쫄깃한 기타 리프, 화려한 키보드와 기타 솔로 배틀, 쩍쩍 달라붙는 드럼 소리, 쏙쏙 귀에 박히는 멜로디를 시원시원한 고음으로 찔러넣는 보컬까지. 당신이 생각하는 그 헤비메탈의 이상형이 2021년 한국 보컬리스트 김성훈의 솔로 프로젝트 속에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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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네스의 김성훈.

출처-<김성훈 트위터>

 

김성훈이 활동하고 있는 일본 프로그레시브 메탈밴드 레이첼마더구즈(Rachel Mother Goose) 동료 멤버들은 물론 제프 콜만(Jeff Kollman), 후안 코로나(Juan Corona) 같은 국제적 A급 세션맨들이 자신의 헤비메탈 감성을 양껏 표현한 연주를 기분 좋게 풀어낸다. 파워메탈 혹은 멜로딕 스피드 메탈이라 칭해지는 유사 장르를 추구하는 해외 밴드 누구와 견줘도 아쉽지 않는 곡 쓰기, 연주, 녹음, 믹싱, 마스터링 상태를 자랑하는 놀라운 완성도가 꾹꾹 눌러 담겨있다. 

 

한국 헤비메탈 역사의 한 페이지에 굵은 글씨로 적어놓아야 할 명작이다. 솔로 프로젝트지만 완벽한 밴드의 작품. 이 모든 것을 기획하고 이룩한 보컬리스트이자 작곡, 편곡, 키보드 연주자인 김성훈을 반드시 기억해두자.    

 

 

2. 버둥 [지지않는 곳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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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둥 - 씬이 버린 아이들

 

귀를 잡아끌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없다. 대신 특별할 거 없어 보이는 곡 전개와 음들, 악기 소리와 가사 하나하나까지 버둥만의 것으로 만들고자 노력한 흔적이 가득하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버둥의 음악을 만들려고 한 게 아니라, 세상 어디에나 있을 법한 소리를 그대로 껴안으며 그 안에 자기 소리를 담아내려 노력한 앨범이다. 3초 안에 귀에 콕 박히는 훅을 찾는 사람들에겐 닿지 않을 음악이다. 그렇다고 고독하고 어려운 자기 세계로 침잠하는 노래로 가득한 것도 아니다. 

  

베이스는 플랫 위에서 자박자박 옮겨 다니며 그루브를 만들어 차분히 어깨를 흔들게 만들고, 쨍쨍한 톤의 신디사이저 연주는 낯설지 않은 신비함을 제공한다. 익숙한 신선함을 연주로 표현한 동료들의 연주 위, 아래, 사이로 등장하는 이 모든 노래를 만든 버둥의 목소리는 맑지만 청자의 귀에 오래 깊이 남을 자국을 남긴다. 버둥의 목소리는 청아함에 목매지도, 디바의 절창을 억지로 만들지도 않는다. 때론 노래 끝을 흐려버리기까지 한다. 

 

그런데 잊히지 않는다. 앨범 단위로 들어야 그 맛이 느껴지는, 두 번, 세 번 다시 들을수록 더 맛이 깊어지는 싱어송라이터 버둥의 첫 정규앨범이다. 그녀의 다음도 이렇게 가벼우면서도 짙기를 바랄 뿐이다. 

 

 

3. 전파사 [억겁의 싸이-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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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파사 - 거짓말

 

아는 사람만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겠지만, 전파사의 멤버 중 한 명인 김대인은 지난 몇 년째 광폭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우선 2005년부터 지금까지 모던록과 일렉트로니카가 행복하게 공존하는 음악을 하며 해파리소년이란 이름으로 원맨밴드 활동을 하고 있고 지금은 소멸했지만, 국내외를 오가며 폭풍행보를 보였던 포스트록 밴드 ‘아폴로18’에서 베이스로 활동하기도 했다. 

 

현재는 한국 무(巫)의 살풀이 정서를 헤비니스로 구현한 밴드 ‘팎’의 기타와 보컬로 꾸준히 활약 중이다(팎의 2021년 앨범 [불가살] 또한 S등급이 아깝지 않은 수작이다). 그뿐인가 비슷한 성향의 모즈다이브, 모노디즘 등의 음반 작업에도 프로듀서, 엔지니어 등으로 참여했다. 

 

그런 김대인이 모즈다이브 출신 윤성훈, 강민석과 함께 모여 ‘전파사’란 이름으로 라이브 잼을 시전한다. 즉흥과 약속된 연주 사이로 자가발전을 지속해가는 이 삼인조가 만드는 음악의 정체는 말 그대로 싸이키델릭 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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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윤성훈, 강민석, 김대인.

 

즉흥연주는 갑자기 하늘에서 영감이 뚝 떨어져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평소에 듣고 연습했던 음악들이 손버릇, 입버릇이 되어 연주 사이로 치고 들어가는 성격의 것이다. 세 멤버는 1960년대 팝부터 최신 대중음악까지 다양한 음악의 테마와 요소를 연주 사이로 치고 빠지는데, 가히 그 솜씨가 천의무봉이다. 억겁의 시간도 살아남을 날카로운 유쾌함으로 무장한 2021년 최고의 연주 음반이다.    

 

 

4. 천용성 [수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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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용성 - 있다 (ft. 시옷과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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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용성. 

출처-<튜나레이블> 

 

음반을 듣는 내내 ‘균형’이라는 단어가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코드를 풀어내는 어쿠스틱 기타 하나에 더해진 침잠하는 노래와 현악·관악·타악의 화려함이 균형을 이룬다. 노래하는 목소리가 조금이라도 커지거나 화음을 통해 풍성해지면 악기들은 숨을 죽인다. 

 

음반을 지배하는 정서는 무너지고 사라지는 자연에 대한 연민과 인간에 대한 절망이다. 그러나 이 연민과 절망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소통하면서 상황을 개선하려는 아티스트 천용성의 노래짓과 그로 인해 발현되는 음악의 힘은 희망이다. 이 상반된 것이 균형을 갖추고 있다.

 

[수몰]은 앨범 단위로 그것도 수록곡 순서대로 들어야 한다. 노래가 하나씩 쌓일 때마다 균형의 미를 잃지 않는 음악 세계가 제곱으로 확장되어 나가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단촐한 포크가 마지막 곡에서 풀 오케스트라로 변신한다는 건 아니다. 대신 청자가 (천용성의 음악과) 느끼는 공감의 크기가 시작과 비교할 수 없이 커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스타일을 타지 않는 편안한(누군가에게는 아마추어처럼 들리겠지만 그게 바로 강점인) 천용성의 가창, 포크록과 아트록 장르가 지난 50여 년간 쌓아온 검증된 스타일을 균형 있게 연출한 연주가 더해진 음반이다. 10년, 아닌 20년이 지나도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이란 바로 이런 것!

  

 

5. 스핏온마이툼 [Necro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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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핏온마이툼 - God's Les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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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핏온마이툼.

 

소위 익스트림 메탈을 추구하는 밴드는 많다. 세부 장르로 들어가면 수없이 많은 갈래로 나뉘지만, 핵심은 독하고 무거운 소리가 주는 쾌감을 목표로 한다는 사실이다. 

 

2020년 EP 한 장을 발표했고, 2021년 첫 정규앨범을 낸 이 젊은 메탈 밴드가 제공하는 음악의 쾌감은 그 누구보다 지독하다. 기타와 베이스 리프는 쉼 없이 머리를 흔들어 대라고 몰아가고, 드럼은 온몸으로 슬램하라 밀어낸다. 저음임에도 엣지가 살아있는 그로울링은 이 선동적인 3인조가 만드는 음악을 더 광기로 몰아간다. 셋이 만드는 사운드는 둔탁하다. 그런데 둔탁한 타격감의 디테일이 짜릿하게 살아있다. 여기서 비슷한 스타일과 성향의 음반과 차별이 만들어진다. 

  

드럼과 리프가 타이트하게 맺어진 음악이 만드는 이 익스트림 메탈을 만들고 있는 멤버들은 이 장르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핵심을 정확하게 짚어낸다. 멤버들이 깨달은 핵심을 소리로 구현을 해낸 아이어 스튜디오의 엔지니어링도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익스트림 메탈이 지난 30년간 만들어 온 소리의 미학이 갑자기 사라지지 않는 한, 이 앨범은 앞으로 30년간 한국 익스트림 메탈 사운드의 한 특이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6. 크럭스 [Who Defines What's Div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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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럭스 - One More Last Mista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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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럭스.

 

드림씨어터(Dream Theater)나 퀸스라이크(Queensryche)를 들으며 왜 우리는 이런 음악을 만들지 못할까 한탄하던 세월이 있었다. 하긴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십과 상관없이 저스틴 비버(Justin Bieber)의 음악을 들으며, 한국 아이돌 음악의 완성도를 한탄하고 있지 않았던가. 

 

1990년 데뷔한 밴드 크럭스의 두 번째 정규앨범 [Who Defines What's Divine]는 프로그레시브 메탈 장르에 대한 갈망을 가진 팬이라면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완성도를 음반 처음부터 끝까지 쏟아내는 작품이다. 

  

변화무쌍하다 이외의 적당한 표현을 찾기 힘든 악곡의 진행, 드럼과 키보드를 중심으로 베이스, 기타 등 모든 파트가 고루 역량을 최대치로 발휘하는 연주력이 모두 빛난다. 프로그레시브 메탈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생각할 수 있는 음악적 요소가 올올이 살아 있다. 

 

특히 정교하게 리듬을 가르는 드럼 연주와 이에 호응하는 베이스, 키보드가 만드는 역동성은 놀라운 수준이다. 여기에 장르의 특성상 등장하는 시간이 짧지만 다양한 창법을 통해 음반에서 가장 극적 장면들을 독점하고 있는 보컬의 활약은 수훈 갑이다. 음악의 완성도가 녹음이나 믹싱의 열악함을 뚫고 자기를 드러내는 진기한 경험을 제공한다.   

 

 

7. 신박서클 [유사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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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박써클 - 밀실의 선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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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박서클.

출처-<플랑크톤뮤직>  

 

신현필(색소폰), 박경소(가야금), 서영도(베이스), Christian Moran(드럼)을 이름 앞글자를 따서 만든 재즈와 가야금의 크로스오버 밴드의 두 번째 앨범이다. 멤버들의 면면만 봐도 이미 슈퍼밴드지만, 음악을 들으면 그 이름값이 괜히 나온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수록곡들의 제목도 ‘밀실의 선풍기’, ‘평면지구’, ‘파워스톤’, ‘당신의 혈액형’까지 수록곡 제목들도 유사과학을 표방하고 있지만, 앨범 제목의 의미는 따로 있는 듯하다. 국악기와 서양악기가 이상적으로 결합하는 크로스오버의 꿈은 유사과학에 가깝다는 의미처럼 들리기도 한다. 

  

무슨 얘기인고 하니, 어떤 곡은 모던 재즈의 어법으로 만들어졌고, 어떤 곡은 누가 들어도 국악의 어법을 따르고 있다는 거다. 어설프게 타협한 결과물이 아니다. 서로의 다른 음악에 대해 철저히 연구하지만, 곡을 만들 때는 각자가 추구하는 장르의 스타일을 밀어붙였다. 

 

덕분에 오히려 곡의 완성도는 완성도대로 높아지고, 개성은 개성대로 살아났으며, 팽팽한 긴장감은 덤으로 생겨났다. 심각해지지 않고 즐겁게 연주하려는 멤버들의 성격도 묻어난다. 2021년 국악-재즈 크로스오버의 정점에 있을 뿐 아니라, 두고두고 꺼내 들을 빛나는 작품이다.    

  

 

8. 바나나문 [Garden Var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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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문 - Outl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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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문.

 

이상하리만치 한국 음악에는 뒷박(back beat)을 강조하는 그루브를 표현하면 그 맛이 어색하곤 했다. 한국의 전통음악이 서구식으로 표현하자면 박자의 강세를 앞에 두는 음악이라곤 하지만, 미국식 대중음악 형식이 한국의 청자들에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진 지 반세기가 지나지 않았던가. 

 

그렇게 시간이 지나도 뒷박과 꿀렁대는 그루브를 멋지게 들려주는 음악이 참으로 드물었다. 그런 면에서 제주 출신의 밴드 바나나문의 음악이 들여주는 미국식 에토스는 신기할 정도다.

 

블루스, 컨트리, 하드록, 레게, 사이키델릭 등이 제멋대로 섞여 있는 음악이라 제목도 [Garden Variety]인 이 앨범은 환상적인 연주력을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최고의 곡쓰기를 자랑하지도 않는다. 다만 멤버 모두가 뒷박의 매력을 다양한 스타일로 맛깔나게,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만들어 낸다. 

 

전설적인 백비트 장인의 리듬 연주를 샘플링한 힙합도 아니고 손과 발, 목소리로 하나하나 직접 연주하는 밴드가 들려주는 이 담백하면서도 움찔움찔한 리듬의 파고는 이러면 안 되는데 싶으면서도 ‘제주의 신비’인가 싶을 정도다. 

  

 

9. 지혜 리 오케스트라 [Daring M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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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리 오케스트라 - Relentless Mind (ft. Sean Jones, Alan Fer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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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Kickstarter>

 

해외 재즈 리뷰 사이트에서 이 앨범에 대한 극찬을 먼저 봤다. 아무래도 이 오케스트라의 리더이자 작곡가인 이지혜가 주로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고, 이 앨범도 미국서 먼저 공개했기 때문이리라. 

 

빅밴드 재즈라고 하지만 카운트 베이시(Count Basie)처럼 엄청난 스윙의 홍수로 쓸어버리거나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처럼 체이싱의 묘미를 선보이는 음악은 아니다. 대신 반복되는 연주 속에 악기마다 조금씩 변화하며 이를 쌓아 만드는 빅밴드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한 연주를 들려준다. 

 

빅밴드의 매력은 유지하지만, 전통적인 빅밴드에선 한 발 빠진 음악이다. 그렇다고 클래식적인 접근을 하는 더하는 윈턴 마샬리스(Wynton Marsalis)나 소울 재즈를 빅밴드로 구현하는 카마시 워싱턴(Kamasi Washington)의 음악과도 다르다. 

 

미국인 멤버들 덕분에 재즈의 뿌리에 확실히 닿아있지만, 20대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까지 한국 음악만을 들었다는 이지혜의 음악적 성격도 스멀스멀 발견된다. 재즈의 전통에서 한 발 뺀 곡쓰기, 하지만 유행을 타지 않는 자기 음악으로의 회귀가 이 앨범을 오랫동안 즐겁게 듣게 만들어준다. 

 

 

10. 정은혜 [단테의 신곡 – 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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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혜 - 악마의 먹잇감

 

이 정체불명의 판소리 음반은 시커먼 표지만큼이나 무어라 규정할 수 없는 강렬함으로 가득하다. 정은혜는 단테의 [신곡]을 판소리로 늘어놓는다. 고수가 호응해주나 싶으면 전기 베이스와 앰비언트 사운드가 가청 공간을 휘어잡고, 첼로와 피아노 사이로 판소리의 사설과 발라드 창법 사이 어디엔가 위치한 노래가 흘러나온다. 

 

아니리인지 독백인지 사설인지 알 수 없는 이야기를 읊어대다가 자신의 목소리를 몇 겹으로 쌓아서 낯선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한다. 기본은 판소리다. 이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고수가 추임새를 넣어가며 소리꾼과 호흡을 하는 구성이 뼈대를 이루고 있으니 말이다. 소리만 들어도 발림이 느껴진다. 

 

그런데 이 음반에 담긴 음악을 판소리라고 규정하는 순간부터 그 판단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판소리와 연관 없는 악기가 등장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 악기들을 배치하는 방식이 익숙함 사이를 빠져나간다. 

 

판소리가 판소리를 잘하고, 전기 악기를 사용하는 밴드가 자기 악기 연주를 잘해서 붙여놓는 기존의 크로스오버와도 다르고, 서로가 상대의 스타일을 자기 악기로 다시 연주하는 크로스오버도 아니다. 자기에게 익숙한 음악을 흩뜨리며 양편이 만나서 이도 저도 아닌 소리 공간이 만들어진다. 내용은 [신곡] 속 ‘지옥’ 편인데, 음악은 ‘연옥’ 편이랄까? 

 

이상. 2021년 한국 대중음악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10개의 음반 소개를 마친다.

 

 

 

 

헤비죠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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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올해의 음악 결산,

아래에서도 볼 수 있다는 점 알려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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