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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면, 삼프로, 그리고 대국민 사랑극

 

이번이 몇 번째 대유행인지 이제는 딱히 알고 싶지도 않은 코로나 확산 때문에 뒤로 미뤄진 일상회복으로 인하여 ‘크리스마스는 얼어 죽을...’이 되어버린 이번 크리스마스는 진짜 얼어 죽기 딱 좋을 정도의 한파 덕에 사적 모임은 꿈도 꾸기 어려운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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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이 기간 동안 대선 정국에 던져진 떡밥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활활 타올랐다. 24일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 발표가 있었고 25일에는 유튜브 채널 ‘삼프로 TV’가 대선 특집으로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의 경제 정책 대담을 각각 업로드하였으며 26일에는 허위 경력 의혹으로 자타공인 대한민국 남바완 핵인싸가 된 윤석열 후보의 부인 김건희 씨의 대국민 사과, 라고 하기에는 사과 대상이 국민이 아닌 것 같고 대국민 사기, 라고 하기에는 너무 편파적인 느낌이라 그냥 대국민 사랑극이라고 부르기로 한 암튼 그런 일이 있었다.

 

지나고 보니 뭐 이런 명절 연휴 TV 특선 영화보다 더 화려한 라인업이 있나 싶지만, 가운데에 낑겨 있는 삼프로TV 대선 후보 정책 대담의 반응이 이렇게까지 화끈할 거라고 예상했던 이는 거의 없었을 거다. 

 

사면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구했고, 김건희 씨의 대국민 사랑극은 윤석열 후보 부부의 사랑을 구했다. 이 와중에 삼프로TV는 나라를 구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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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존버 능력 연마엔 '삼프로TV : 윤석열 편'만한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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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유튜브<삼프로TV_경제의신과함께>

 

김프로(김동환), 정프로(정영진), 이프로(이진우)를 주축으로 하는 경제 전문 유튜브 채널 삼프로TV는 부캐로 동학개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잘 나가는 이 바닥 탑티어다. 구독자 수가 171만이고 나 또한 그중 하나다. 평소 즐겨보던 유튜브 채널에 무려 여야 대선 후보가 출연해 경제 정책으로 썰을 푼다고 하니 대선 후보 토론 한 번 제대로 보기 어려울 것만 같은 이 시국에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영상은 25일 오전에 업로드됐지만 이재명 후보 편을 본 건 26일 밤, 그런데 영상을 보기도 전에 온갖 커뮤니티에서 먼저 본 자들의 간증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삼프로TV가 나라를 구했단다. 그거 말고 눈에 띄는 후기가 하나 더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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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후보 편 영상에 달린 대략 이런 류의 댓글들이 퍼날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는 1.5배속으로 겨우겨우 끝까지 다 볼 수 있었다고 했고 어떤 이는 2배속을 돌리고도 반도 못 보고 껐다고 했다. 정배속으로 세 번 츄라이한 끝에 완주했다는 자랑글도 보였다.

 

그때였던 것 같다. 마음속에서 도전 정신이 꿈틀댄 것은. 그건 19대 대선 TV 토론회 관전평과 ‘진중권 VS 김호창’ 토론 관전평을 쓰게 한 몹쓸 도전 정신이었다. 남들은 맨정신에 보기에 너무 괴로워 반쯤 넋을 놓고 보려다가 그마저도 포기했다던 희대의 난전을 꾸역꾸역 두 번, 세 번 보면서 심지어 발언 내용을 받아 적어가며 관전평을 썼던 변태적 도전 정신이 하필 이 타이밍에 기어 나왔던 것이다. 

 

 

3. 삼프로TV 윤석열 편, 이렇게 봤다.

 

먼저 다녀간 자들의 비명이 내 고막과 뇌를 단련시켰던 것일까. 아니면 19대 대선 TV 토론의 홍준표 후보와 안철수 후보, 진중권 대 김호창 토론의 진중권 덕분일까. 삼프로TV 윤석열 편을 완주하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심지어 기대 이상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몇 가지 소소한 문제를 빼고 보면 그랬다. 

 

 

①소소한 문제들

 

그 몇 가지 소소한 문제를 간략하게 짚고 넘어가 보자면,

 

첫째, 경제 방송을 진행하는 준전문가~전문가 수준의 진행자 세 명을 앉혀 놓고 아주 기본적이고 원론적인 수준의 개념 설명을 장황하게 이어가는 점이 아쉬웠다. 예를 들어 공매도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서 ‘공매도란 이런 건데 이게 원래는 이런 목적으로 시행되는 거지만 이런 문제 때문에 개미 투자자들이 불만을 가지고 있다’ 류의 설명을 2~3분 넘게 깔고 들어간다. 

 

경제 전문 유튜브 채널의 진행자와 그 채널의 구독자들에게는 전혀 필요하지 않은 이런 설명을 굳이 해야만 했던 것은, 평소 해당 채널을 보지 않으면서 주식 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유권자들을 위한 넘치는 배려가 아니었다 싶다. 설마 벼락치기로 공부해서 면접장에 나온 지원자 마냥 ‘내가 이렇게 많이 안다’고 자랑하기 위함은 아니었을 것이다. 

 

암튼 이 외에도 시장 경제에서 기업과 정부의 기본 역할에 대해 중고등학교 교양 수준에서 역설하는 등 1시간 30분 되는 영상의 20분 이상을 이렇게 과도한 배려에 할애한 것이 ‘조금’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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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다소 지나친 비유가 소소한 문제였다고 할 수 있겠다. 윤석열 후보는 대담 중 경제를 ‘강’에 비유하며 본인의 주장을 이해하기 쉽게 펼쳤는데 이를테면 이런 식의 앙칼진 비유를 들었다.

 

“흐르는 강이 경제라면 강을 잘 활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유수지도 만들고 주변에 도로도 만들고 하면서, 강을 특정 세력이 이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정부의 역할”

 

“하지만 거꾸로 물길을 돌리게 하거나 강의 본질과 생리도 잘 알지 못하면서 정부가 그냥 밀고 들어가서는 재앙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이게 좀 과했다. 윤 후보는 1시간 30분짜리 대담에서 틈나는 대로 ‘강 비유’를 활용하는 바람에 아주 조금 지루한 감을 선사했다. 당장 기억나는 것만 세 차례 이상이었던 것 같다. 이 또한 자신의 정책 철학을 시청자들에게 보다 쉽게 전달하고자 하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일 테니 그 의도를 나무라기는 어렵다. 

 

간혹 질문에 딱 떨어지지 않는 답변을 하거나 답변 자체가 너무 길어지는 문제가 있기는 했다. 말하는 문장 하나가 딱 맺어지지 않거나 말의 단락이 완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음 단락으로 넘어갔다가 다시 이전으로 돌아오는 등의 혼선이 듣는 입장으로 하여금 아주 조금 혼란스럽게 하는 면이 있었다. 

 

대담 중 윤 후보의 답변 중 이런 부분이 있었다. 

 

“그러니까 저는 분양가 상한제보다, 그것도 이제 과연, 상품의 가격 통제가 그게 과연 그 시장을 합리화하는 데 맞느냐에 대해서는 이론이 많지 않습니까. 만약에 어떤 사업자가 재건축을 통해서 물량을 공급했는데 돈을 많이 벌었어. 이익을 많이 남겼어요. ‘야, 그거 배가 아프다, 걷어 와야 된다’이런 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100채가 있었는데 200채의 집이 들어옴으로 해가지고 그 주변에 교통 유발도 일어나고 환경 부담도 생기고 하면은 그거를 해결하기 위해서 또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야 되니까 거기에 대한 소위 수익자로서 부담을 하라는 그런 차원에서 합리적으로 공공환수를 하는 거지 그냥 번 돈의 일률적으로 50%라든지 70% 그런 개념으로 생각해서는 곤란하지 않냐.” 

 

“그리고 필요한 정부의 재정 투입을 유발시키는 부분에 대해서 어느 정도 받아 가는 거 그런 개념으로 보고. 분양가 상한이라는 거는 그거는 이제 일반 물량 말고 정부가 공공 주도로 하는 거는 정말 싼값에 나눠주려고 하는 거니까 원가 주택이든지 아니면 이윤을 아주 조금만 내고 그 이윤 갖고는 다른 공적인 목적에 쓰던지 이렇게 하는 거니까 일반 시장에서는 그게 과연 맞는지... 분양가를 어느 정도 자율화하는 것이 맞지 않느냐.”

 

윤 후보의 위 대답을 이끌어낸 질문은 이랬다.

 

Q : 지금 집이 없는 사람들이 주택을 소유하게 되는 경로가 주택을 매매하는 게 있고, 분양 받는 방법이 있지 않습니까. 실제로 분양도 적지만 분양가를 묶어놔서 분양이 로또가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죠. 이것도 어떻게 보면 분양받은 사람에 대한 너무 큰 혜택을 제도가 만든다는 지적이 있거든요. 분양 시장에 대한 대책은 어떤 걸 갖고 계십니까?

 

... ...

 

그래, 말을 조리 있고 맵시 있게 한다고 해서 대통령직을 더 잘 수행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후보의 정책에 집중해서 잘 듣는다면 큰 문제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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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원론적인 해결책을 강조하느라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하지 못한 부분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Q : 강자와 약자는 시장에서 만날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양극화를 해결할 수 있겠는가?

 

“강자와 약자 간에, 강자의 인정할 부분은 인정해주되 힘을 인정하면 시장이 깨지고 약자들의 기회가 박탈되고 하는 부분은 정부가 규제를 해줘야 한다.”

 

이러다 보니 진행자들이 하나의 질문에 대한 답을 듣고는 이어서 하는 질문에 앞서 ‘구체적으로’라는 말을 붙이는 일이 종종 있었다. 

 

자신의 경제 정책 핵심 키워드를 ‘행복 경제’로 들며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되 정부가 그 운동장을 잘 건설하고 공정하게 게임이 이루어지게 (중략) 그걸 일일이 소비자가 다 확인하게 만들면 점검 비용이 들고 그럼 거래가 줄어든다. 거래가 늘어야 국민소득이 늘어나는 것”이라고 주장한 부분에서도 구체적인 방법론이 아쉬운 대목이었다. 

 

다만 1시간 30분이라는 몹시 ‘짧고’ 한정된 시간 내에 자신의 정책 철학을 내놓으며 구체적 방법론까지 제시하기에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점에서 큰 문제는 아니다.

 

이 영상을 보고 중간에 껐다는 둥,  2배속으로 겨우 봤다는 둥 하는 것은 이런 소소한 문제들의 벽을 넘지 못한 탓이 아닐까 싶다.  

 

 

②이것만큼은 기대 이상이었다

 

그럼에도 윤석열 후보의 이번 방송이 생각보다 기대 이상이었던 이유는 소소한 몇 가지 문제에 비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는 부분이 상당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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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자신감이 돋보였다. 윤 후보는 시종일관 여유롭게 대담을 이끌어가며 모든 질문에 막힘 없이 답변을 술술 이어갔다. 물론 사전에 질문 리스트를 확인하고 답변을 준비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1시간 30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대담 시간에 쏟아낼 모든 답변을 외워서 준비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평소 쓸데없는 외부 일정을 굳이 만들지 않고 이른바 ‘통상업무’ 시간에 상당한 공부와 준비를 해왔음이 분명해 보인다. 나의 뇌피셜에는 아마 2주 전에 강원도 18개 시군 번영회장 간담회에서 사진만 찍고 후딱 가버린 일도 공부에 더 시간을 쏟으려는 열정 때문 아니었을까 싶다. 권성동 의원과 함께 한 강릉시의 어느 한 술집에서 그 소란스런(?) 사건을 미연에 방지하지 못 한 것도 당시 술집에서조차 공부에 심취해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이렇게 탄탄한 준비 과정이 만들어낸 자신감은 윤 후보의 표정에 그대로 드러났는데 본 대담 영상을 본 유권자들의 반응을 이미 알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김프로가 이재명 후보와의 정책 토론을 슬쩍 제안하자 토론은 싸움 밖에 안된다며 차라리 이렇게 각자 이야기하는 것이 낫다고 말한 것에서 그의 만족감을 엿볼 수 있다. 오늘 같은 정책 대담이라면 언제든 오케이라는 의미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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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에 대한 자신감은 거침없는 발언으로도 이어졌다. 최저임금제에 대한 질문에서 지불 능력이 안되는 기업에 최저임금을 부과하면 결국 문을 닫아야 되는 일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경제라고 하는데, 사업하고 이익을 보는 문제에 대해서 어떤 도덕이나 규범을 먼저 들이댄다는 거는, 저는 그건 문제고요”라고 말하는 장면은 가히 압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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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경제 정책 철학을 강조하기 위해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음을 알면서도 위와 같은 발언을 한 것은, 적어도 자신은 대선 승리를 위해 대중에 영합하는 포퓰리즘 정치인이 아니라는 자기 선언이 아니었을까.

 

정치인 이재명이 그동안 해온 숱한 연설과 토론을 봤을 때, 그가 이번 삼프로TV 대담에서 어떠한 모습을 보여줄지 예상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재명 후보는 ‘예상대로’였다. 즉, 평소의 철학이 드러났다. 허나 윤석열은 달랐다. 예상 밖, 기대 이상이었다. 그러니까 삼프로TV가 나라를 구할 수 있었던 공은 윤석열 후보 쪽에 더 크게 있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4. 그런데 삼프로TV는 어떻게 나라를 구했나

 

잠깐 딴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야겠다.

 

많은 사람들은 삼프로TV가 나라를 구했다고 한다. 도대체 삼프로TV는 무슨 신묘한 능력으로 어떻게 나라를 구할 수 있었던 걸까.

 

별거 없다. 당선이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 둘을 초대했고, 정책에 대해 물어봤다. 질문에 대한 답이 부족하다 싶으면 더 깊이 물어봤다. 그게 전부다.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걸 해놓고 무슨 나라를 구했다는 소리까지 들어야 하는가라고 묻는다면 아래의 영상 댓글로 먼저 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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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렇게 특별할 것도 없는 걸, 아무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삼프로TV가 나라를 구했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는 말이다. 자리에 앉혀 놓고 제대로, 끈질기게 묻지도 않았다는 거다.

 

그동안 주류 언론이 대선 주자를 놓고 벌여온 취재 경쟁의 결과물이 어떠했는지는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바다. 그들에게도 억울함이 왜 없겠나. 일부는 ‘우리도 초대했지만, 후보자들이 응하지 않았다’고 답답함을 토로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그건 스스로를 훨씬 더 초라하게 만드는 일이다. 레거시 미디어, 주류 언론 임을 자처하는 이들의 요청을 거부한 유력 대선 후보들이 고작 유튜브 채널 따위의 초대해 응했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를 모를 리 없을 테니. 

 

그렇게 삼프로TV는 나라를 구했나 보다.

누구나 할 수 있었는데 아무도 하지 않은 일을 했거나,

아무도 하지 못한 일을 가장 먼저 해냈거나.

 

 

5. 봤으면 마음 가는 대로 투표하면 될 일이다

 

영상을 본 사람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실시간으로 수많은 댓글을 남기고 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걸 보고 누구를 찍어야 할지 정했다’고 한다. 그게 누구를 의미하는지 나는 정말 모른다. 저마다 마음 가는 정책을 펼친 후보에게 투표하면 될 일이다.

 

아무튼 윤석열 후보 참 애쓰셨다.

 

 

 

 

나도 참 애썼다. (토닥)(토닥)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