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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태어난 한 소년이 있었다. 그곳 아이들이 대부분 그랬듯, 그도 사직구장에서의 추억이 가득한 야구소년이었다.

 

소년은 야구 선수를 꿈꿨다. 오직 야구가 하고 싶어서 야구팀이 있는 중학교로 진학했다. 우여곡절 끝에 입단 테스트까지 받았지만, 감독 선생의 한 마디에 그는 선수의 꿈을 접는다. 

 

"아부지 뭐하시노? 집에 돈 많나?"

 

그래도 소년은 야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체육교육과에 진학했다. 당시에는 흔치 않았던 '트레이너'라는 직업을 알게 되었다. 다시 야구에 대한 열정이 불타올랐다.

 

군 제대 후 어학연수 길에 올랐다. 트레이너가 되면, 외국인 선수와 직접 소통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해서였다. 연수지역을 물색할 때도 지역 야구팀이 있는 곳을 골라 갔다. 이 자는 야구에 진심이었다.

 

현대 유니콘스에서 코치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그는 눈부신 커리어를 쌓는다. 2010년대 초반 '넥벤져스'라고 불리던 넥센히어로즈의 강한 타선의 밑바탕에는 그의 트레이닝이 있었다.

 

양보다 질 우선의 훈련 방식, 휴식과 회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그의 코칭 철학은 옮겨간 팀마다, 결과로 증명했다. 인생사 새옹지마요, 사는 건 알다가도 모를 일이며, 어느 구름에서 비가 올지 모른다. 선수 출신이 아닌 덕에 통념과 관성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그의 트레이닝 방식은 이제 한국 야구의 새로운 표준이 되었다.

 

그러던 그가, 2020년 SK와이번스를 마지막으로 홀연히 그라운드를 떠났다. 그만의 새로운 야구를 하기 위해서였다. 아마추어 클럽팀에서 어린 학생들을 지도하며, 그동안 야구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글로 가다듬는 시간을 가졌다. 본지에 연재된 <이지풍 코치의 반대 의견>의 시작점 이었다.

 

그러던 지난 11월. 이지풍 코치는 돌연 딴지 편집부에 절필을 고했다. 팀의 부름을 받고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간다는 선언. 칼럼 연재를 지켜보던 한화 이글스 정민철 단장이 이번 스토브리그에서 그를 직접 영입한 것이다.

 

대어가 다시 대양으로 나아감은 축하할 일이나, 하루아침에 주력 필진을 강탈당한 딴지 편지부로선 통탄함을 금할 길이 없다. 부들부들. 대기업의 횡포를 규탄하며, 대전 한화 이글스 구단에 다짜고짜 항의 방문,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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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계의 프로이직러

 

근육병아리(이하 '근') : 아무튼 일단, 재취업 축하드린다. 요즘처럼 취업이 힘든 시기에.. 대기업에 막 스카웃되고.. 역시 사람은 능력 있고 볼일이다.

 

이지풍(이하 '이') : 엣헴.

 

근 : 새 직장 한화 이글스는 어떤 거 같나?

 

이 : 다 좋다. 진심으로. 요즘 자주 하는 이야기다. 야구 빼고 다 잘하고 있다. 이제 야구만 잘하면 된다.

 

근 : 현대, 넥센, KT, SK 여러 기업을 경험한 프로이직러다. 직장인으로서 한국화약은 어떤 곳 같나?

 

이 : 듣던 대로다. 신용과 의리. 야구단 운영에도 그런 사풍이 있는 거 같다. 

 

근 : 코치님의 이번 한화 합류를 두고 야구팬들 사이에서 꽤 많은 화제가 되고 있다. '실력 있는 코치로 알고 있는데 왜 저렇게 팀을 자주 옮겨 다니는 거지?'라는 댓글도 있던데 어떻게 생각하나?  

 

이 : 일단은 코칭스태프가 팀을 자주 옮기는 건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다. 어쩌다 보니 제 이름을 아는 분들이 많아졌고, 그래서 제 거취에 관한 기사가 종종 나기 때문에 유난히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다. 그게 좀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근 : 이름난 자의 숙명 아니겠나.

 

이 : 내가 팀에서 호불호가 많은 사람이기도 하다. <반대 의견>에 썼던 내용만 봐도 그렇지 않나. 팀에 있을 때에도 난 별로 다르지 않았다. 좋아하는 사람보다 싫어하는 사람이 많을만한 주장을 했으니. 아무튼 그랬다. 내 의견을 존중해주는 곳에서 일하고 싶은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그런 면에서 나는 운이 좋은 편이다. 만약에 누군가 내 성과라고 말해주는 것들이 있다면, 그건 모두 좋은 감독, 좋은 동료, 좋은 선수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결과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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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바완 야지맨

 

근 : 대전에 거처는 정했나?

 

이 : 전지훈련 끝나고 2월 말쯤에 잡을 생각이다. 지금은 구단 숙소에서 지내고 있다.

 

근 : 이곳저곳 보따리를 새로 풀고 하는 일은 이제 좀 익숙해졌나?

 

이 : 초등학교 때 부터 전학을 세 번 다녔다. 팀 연고지 따라 많이 움직이기도 했고. 모 선수가 그러더라. '적응력은 국내 탑'이라고.

 

근 : 대전이라는 도시는 어떤 느낌인가?

 

이 : 좋다. 이게 어느 도시에 처음 정착할 때 묘한 기운이라는 게 있다. 아무 이유 없이 이상하게 마음이 편치 않은 곳도 있었다. 대전은 왠지 마음이 너무 편하다. 느낌이 좋다.

 

근 : 다른 팀에 있을 때 한화와 원정 경기도 많이 했을 텐데, 여기 대전구장에서 가슴 웅장한 추억 같은 거 없나.

 

이 : 2015년 인가, 넥센에 있을 때 나 때문에 벤치클리어링이 일어날 뻔한 적 있다.

 

근 : 엥 어쩌다가?

 

이 : 더그아웃에서 파이팅 외치고 있었는데..

 

근 : 트레시 토크?

 

이 : 뭐.. 일종의 야지?

 

근 : 그런 쪽으로 강한 스타일인가.

 

이 : 허허 유명하다. 암튼 욕을 하고 그런 건 절대 아니었고. 연장전에서 그냥 우리끼리 파이팅하고 재밌자고 장난치고 있었는데,, 그때 마침 말도 안 되게 대전구장 관중들이 조용해져서 정적이 흘렀다. 우연치 않게. 그걸 상대팀 투수가 들어버렸다.

 

근 :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

 

이 : 다행히 일이 커지진 않았고, 잘 넘어갔다. 그런데 그게 영향을 미쳤는지 이후에 우리 팀이 5점을 냈다. 연장전 1회 한 이닝에서. 그때 넥센 선수들이 덕분에 이겼다고, 심리전의 대가라고, 볼때마다 따봉을 날렸던 기억이 난다. 

 

근 : 연봉값을 다양하게 하는 스타일이시다.

 

이 : (긁적) 그땐 내가 여기서 근무하게 될지 몰랐지..

 

근 : 지금 한화 팀에서 그때 일을 기억하는 선수나 프론트 직원분들이 있지 않나?

 

이 : 있다. 뭔가(?) 든든해 하고 있다. 내년 더그아웃 분위기는 걱정 없겠다고. 이제 야구만 열심히 하면 되겠다고.

 

근 : 그런 식으로도 코치의 본분에 충실..

 

이 : 상대 팀에게 엄청 얄미운 선수는, 그 팀에게는 굉장히 좋은 자원이 된다.

 

근 : 정민철 단장이 이 코치님을 영입한 이유가 트레이닝 전문가가 아닌 다른 뜻이 있어서가 아닌가. 'KBO 남바완 야지맨' 이랄지..

 

이 : 연봉에 조금은 영향이 있다고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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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지의 정석

 

딴지의 스케일

 

근 : 경쟁팀 한화는 어떤 이미지였나?

 

이 : 외부에서 봤을 땐 '올드하다'라는 이미지가 있었던 건 사실이다. 그런데 와보니 전혀 그런 게 없다. 지금 한화는 내가 있었던 팀 중에 일처리가 제일 빠르다. 무엇보다 일적인 부분에서의 요청이 신속하게 반영된다. 사실 야구단에서 선수들이 운동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마련해주는 것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나. 아까 야구 빼고 다 잘하고 있다는 게 빈말이 아니다. 한화가 야구도 잘할 날이 머지않았다. 좋은 시그널들이 보인다.    

 

근 : 혹시 구단 홍보팀 업무도 겸업하고 있는 건가?

 

이 : 빈말 아니다. 방금 전 말은 궁서체로 써달라.

 

근 : 그러고 보니 한화그룹 임직원이 되었는데, 뭐 쌈빡한 복리후생 같은 거 없나? 63빌딩 무료입장권이랄지..

 

이 : 그건 모르겠다. 갤러리아 백화점 할인 해준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근 : 딴지일보 복리후생은 영 마뜩지 않아 한화로 옮긴 건가? 캉탕 버터 그거, 딴지마켓에서 진짜 어렵게 구해서 드린 건데.

 

이 : 총수님에게 화환 감사히 잘 받았다고 전해주시라. 근데 보통 이럴 땐 화분을 보내지 않나? 나 환갑잔치하려면 아직 멀었는데.

 

근 : 그게 딴지의 스케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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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철 단장의 연락

 

근 : 한화 이글스 수석 트레이닝 코치로서 첫 공식 일정은 마무리캠프 참가였다. 어땠나?

 

이 : 열심히 한다. 이 역시 빈말이 아니다. 가능성 있는 어린 선수들이 많다.

 

근 : 한화 이글스에서 영입 제안은 어떤 식으로 들어왔나? 

 

이 :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왔다. 한화 정민철 단장님이었다. 통화 가능한 시간을 알려주면 전화하시겠다고. 바로 전화를 드렸다. 만나고 싶다고 하시면서 언제 시간이 괜찮냐고 물으시더라. 직접 뵙고 자리에 앉자마자 첫 마디가 "칼럼 잘 보고 있습니다."였다.

 

근 : 필드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글을 쓰고 있었을 때였는데, 기분이 어땠나?

 

이 : 무엇보다 단장님이 서울까지 나를 만나러 오셔서 놀랬다.

 

근 : 보통의 영입 과정은 다른가?

 

이 : 제각각이다. 일단 구단으로 와보라고 하는 곳도 있고. 17년 동안 여러 팀에서 제의를 받아봤지만, 단장님이 직접 찾아오셔서 식사를 함께하며 야구에 대한 깊은 대화를 나누며 제안받은 건 처음이었다. 무척 인상적이었다. 존중받는 느낌이 들었다.

 

근 : '나와 나의 야구를 존중하는구나' 하는?

 

이 : 아니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아무튼 내가 팀으로 갈지 안 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직접 오신 거니까. 겉모습대로 정말 젠틀하셨다.

 

근 : 무슨 이야기를 나눴나?

 

이 : 단장님이 칼럼에 쓴 내용들을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어서 놀랐다. 지금 팀에 이런 이런 개선할 부분이 있고,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하시고. 단장님도 내가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직접 만나보고 판단하고 싶으셨던 것 아닐까 싶다. 식사 자리에서 대화를 나누며 '이 팀이라면, 내가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가 봐도 되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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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Eagles TV>

 

근 : 어디서 뭘 먹었나?

 

이 : 청담동 소고기 집.

 

근 : 아, 인정. 소고기는 못 참지. 

 

반대 의견

 

근 : 칼럼을 연재했을 때, 주변 야구인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이 : 가깝게 지냈던 선수 중 한 명이 어느 날 연락이 왔다. 칼럼 잘 보고 있다고. 그 친구 포지션이 포수인데, 특히 볼 배합과 관련된 회차(기사링크)를 인상 깊게 봤나 보다. "글을 보고 너무 속이 시원했다.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포수들이 이걸 읽으면 마음의 위안이 될 거 같다. 나중에 지도자가 되었을 때도 이 내용은 정말 도움이 될 거 같다." 뭐 그렇게 말했던 거 같다.

 

근 : 포수 포지션에선 말 못 할 고민을 건드려주었나 보다.

 

이 : 포지션을 막론하고 주변에 선수들은 글을 다 좋게 봐줬던 것 같다.

 

근 : 운동선수란 무릇 견디고 인내하는 게 덕목처럼 되다 보니, 문제의 원인을 모두 스스로에게 돌리는 데에 익숙해져 있어서 그런 것 아닐까 싶다.

 

이 : 맞다. 그런 문화가 분명히 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지도자분들도 선수를 그렇게 대한다. 선수들이 자기 의사 표현을 하는 게 쉽지 않다. 요즘에는 좀 바뀌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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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 칼럼을 연재하는 동안, 이 코치님 개인에게는 원고 작업이 어떤 의미가 있었나? 오랜 기간 한 가지 주제로 글을 쏟아낸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이 : 일단 내가 글을 쓰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처음 원고를 구상할 때 생각했던 제목은 <고통받는 야구 선수들을 위해서>였다. 프로 구단을 떠나 아마추어 팀을 지켜보며 선수들과 지내 볼 기회가 있었다. 염려했던 그대로였다. 2021년에도 야구를 하는 많은 아이들이 고통받고 있었다. 딴지일보에 칼럼을 연재한 것은 그러한 염려와 고민들을 글에 담아 여러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닭가슴살과 고구마만으론 홈런을 칠 수 없다

 

근 : 수베로 감독이나 케네디 수석 코치하고는 통역 없이 직접 소통하나? 영어 잘하신다고 들었는데.

 

이 : 아 1년 쉬니까 안돼 안돼. 감독님 코치님하고 처음 만나서 이야기 할때, 엄청 버벅댔다. 적응하는 데 시간 좀 걸리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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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 적어도 야구 이슈에 있어서는 그래도 영어로 할만하지 않나?

 

이 : 뭐 그 정도는 하고 있는 거 같다.

 

근 : 야구단에서 외국인 선수, 외국인 코칭스텝과 통역 없이 직접 소통하는 경우는 드문 일인가?

 

이 : 그렇지 않다. 내가 일을 시작할 때는 드문 케이스이긴 했지만, 요즘은 다들 영어 잘한다. 어릴 때 외국에서 생활한 선수들도 많고. 그리고 야구에 관해서는 전문 통역을 거치는 거보다 바디랭귀지를 섞어서라도 직접 소통하는 게 효율적일 때가 많다.

 

근 : 그렇다면 더더욱, 영어 구사가 자유로운 코치가 드물었던 예전에는 여러모로 팀 내 역할이 많았겠다.

 

이 : 좀 엉뚱한 방향으로 쓰일 때도 있었는데, 통역이 없는 날에 외국인 선수가 경기 MVP 받으면 방송 인터뷰 통역을 대신했어야 하는 날도 있었다. 내가 영어를 그렇게 잘하는 것도 아니고, 전문 동시통역을 공부한 것도 아닌데. 그래서 선수한테 "니가 무슨 말을 하든 난 트레이너들한테 고맙고 어쩌고 하는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할 테니까 그렇게 알고 있으라"라고 한 적도 있다. 다행히(?) 통역이 없을 때 외국인 선수가 MVP를 받은 날이 없어서 그런 야매통역을 할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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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Eagles TV>

 

근 : 수베로 감독과는 케미가 어떨 것 같나? 느낌 오나?

 

이 : 프로야구 코치 일을 그만두면서 가장 아쉬웠던 것이, 외국인 감독하고 한 번도 일을 해보지 못했던 거였다. 이렇게 기회를 얻게 되어 기쁘다. 기대된다.

 

근 : 타격 코치인 워싱턴이 이번 시즌을 마지막으로 한화를 떠났다. 타격뿐만 아니라, 선수들과도 정신적인 교감이 많았던 지도자였다고 들었다.

 

이 : 인상적이었던 장면이 있었다. 워싱턴 코치가 한화를 떠나는 날 선수들 다 모아놓고 작별 인사를 했는데, 워싱턴 코치가 우는 거다. 좀 충격이었다.

 

근 : 왜 충격이었나?

 

이 : 나도 예전엔 저랬었는데, 일을 하다 보니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 어느 순간 그런 마음을 잃고 선수들을 비지니스로만 대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반성하게 되었다.

 

근 : 초심을 찾는 계기.

 

이 : 그날 배웅하러 나와서 같이 울었던 선수들도 있었다. 이 친구들은 왜 워싱턴 코치에게 이런 감정을 느낄까. 이건 사실 내가 평상시에 고민하고 이야기하는 내용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워싱턴 코치가 대단한 이론을 가진 지도자여서 이 친구들이 이렇게 슬퍼하는 건가? 아니다. 지도자와 선수 간에 관계가 잘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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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Eagles TV>

 

근 : 라포가 잘 쌓였다.

 

이 : 맞다. 라포 형성이 잘 된 거다. 이건 정말 중요한 부분이다. 가끔 야구 하는 자녀를 둔 학부모님들에게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야구를 잘하려면 웨이트가 중요한가요, 수면이 중요한가요, 영양이 중요한가요?"

 

그러면 내가 되묻는다.

 

"어머님, 학교 지각하지 말고, 수업 시간에 한눈팔지 말고, 예습 복습을 철저히 하면 공부를 잘할 수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심지어 아이들도 다 잘 압니다. 그걸 어떻게 하게 할 건지가 중요하죠. 야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웨이트, 휴식, 수면, 영양 그런 게 야구를 잘하는데 중요하다는 걸 선수들도 다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왜 힘들어할까? 나의 관심은 그들이 무엇 때문에 힘들어하는지, 어떻게 하면 스스로 하게 할 수 있을지다.

 

워싱턴 코치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상호 교감이 잘 되었으니, 지도자가 가진 지식과 생각이 잘 전달되었을 것이고 선수들도 그것을 이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맞는 소리를 맞다고 주장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어떤 선수가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을 때, "야 야구 선수로 성공하려면 자는 게 엄청 중요해. 잘 자야 돼."라는 하나 마나 한 말을 해주는 건 지도자가 할 일이 아니다.

 

근 : 어떻게 하면 잠에 들게 할 수 있을까 같이 고민해주는.

 

이 : 맞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같이 고민해주는 사람이 필요한 거다. 칼럼에도 자주 이야기했지만, 선수가 어떤 문제에 봉착하게 되면 그 문제에 심각성에 대해서 이미 수십 수백명에게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게 된다. 그걸 또 반복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내가 지금 한화에 와서 만난 선수들에게 "장타를 치려면 웨이트 트레이닝이 중요하다. 웨이트 해라." 이런 말을 단 한 번도 한 적 없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선수들의 마음을 읽도록 노력하는 거다. 내가 웨이트 트레이닝에 있어서 알고 있는 지식이 뭐 얼마나 특별한 것들이겠나. 유튜브 치면 다 나오는 것들이다. 왜 그동안 웨이트를 열심히 하지 않았고 체력적으로 떨어졌는지, 뭐가 운동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드는지, 그것을 개선하도록 어떻게 도와줄까. 그런 고민을 같이 해주는 게 코치의 역할이다.

 

근 : 같이 고민을 해주는 사람.

 

이 : 닭가슴살이랑 고구마를 먹는 게 몸에 좋은 거, 다 안다. 그런데 그것만 먹고 어떻게 사냐고 사람이. 사는 게 즐겁지 않은데. 선수도 사람이다. 즐겁지 않은 인생을 어떻게 지속할 수 있나. 체중관리로 선수들이 상담을 오면, 네가 생각하는 몸에 안 좋은 음식 5가지를 골라보라고 한다. 거의 다 라면이 들어가 있다. 라면을 먹으면 몸에 좋지 않다는 걸 선수들이 몰라서 먹는 게 아니다. 왜 먹냐? 라면은 맛있으니까. 그럼 이걸 어떻게 줄여줄까. 방법을 찾는 거다. 일주일에 라면을 몇 번이나 먹는 거 같아? 5번? 좋아 그러면 이번 주는 두 번으로 줄여보자. 그러고 너의 몸에 어떤 변화가 오는지 관찰해 보자고. 어때 컨디션이 좋아진 것 같아? 그럼 이번 주는 딱 하나만 먹어보자. 이런 식으로.     

 

근 : 변화의 쾌적함을 본인이 깨닫는 것.

 

이 : 바로 그것이다. 야! 라면 절대 먹지 마. 먹기만 해. 다 체크하고 감시할거야. 이런 게 무슨 소용이 있냐는 거다. 집에 가서 못 참고 먹으면 아무 소용 없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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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운동선수

 

근 : 그러고 보니 사람들은 운동선수를 구도자적인 관점으로 보는 게 있는 것 같다. 본능에 휘둘리지 아니하며 마땅히 참고 견디어서 정진해야만 하는 직업으로.

 

이 : 맞다. 나는 그게 너무 불편하다.

 

근 : '어디 선수가~', '선수라면~'으로 시작되는 말들.

 

이 : 다 똑같은 조건으로 대해야지. 저녁에 회식하는 직장인들 보고, "다음날 출근해서 맑은 정신으로 일해야 할 회사원들이  어디 밤늦게 술을 마시고 다니나" 이런 말 안 하지 않는가. 물론 프로 선수로서 넘지 말아야 할 선과 지켜야 할 본분이 있다. 모든 직업인들에게 그러한 선과 본분이 있듯이. 그들도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는 거다.

 

근 : 직업으로서의 선수.

 

이 : 한 번은 우리 팀의 노시환 선수와 체중관리 고민에 대해서 이야기 한 적 있다. 썼던 칼럼 중에 다이어트와 관련된 회차(기사링크)를 보여줬다. 글을 본 시환이가 정확하게 자기 이야기라고 놀라워했다. 매년 겨울에 다이어트에 들어갔다가 시즌 끝나면 그전보다 몸이 더 부는 악순환. 그러지 말라고 했다. 다이어트하지 말라고. 

 

근 : 마침 코치님의 한화행이 결정되었을 때, 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긴 했다. 벌크업 전도사 이지풍이 한화에 갔으니 노시환 선수 뱃살을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이 : 굶고 참고 그런 다이어트 절대 하지 말라고 했다. 오히려 먹고 싶은 거 다 먹으라고 한다. 배부를 때까지. 끝까지 먹으라고 한다. 적게 먹지마, 절대로. 운동선수들이 식사량을 줄이면 살은 금방 빠진다. 문제는 목표치에 도달한 이후다. 다시 원래대로 먹으면 요요가 온다.  

 

근 : 보상심리가 폭발하니까.

 

이 : 제발 그런 거 하지 말라고. 그러니까 살이 더 찌는 거다. 그냥 맘 편히 있으면 몸무게를 유지할 가능성이 훨씬 높은데 왜 쓸데없는 걸 해서 오히려 체중을 늘리냐는 거다. 

 

근 : 운동선수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적용되는 말 같다.

 

이 : 당연하다. 운동선수를 일반인과 구분해서 생각하는 것부터가 잘못된 생각이다. 다이어트를 시도하는 전 세계 인구의 94%가 다이어트에 실패한다. 그게 그렇게 쉬운 것이었으면 선수들이 체중관리에 고통받을 일이 없었을 것이다. 어제도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PT를 받으며 다이어트 중이라고 했는데, 전보다 살이 많이 쪄있었다. 식습관부터 서서히 바꿔보라고 조언해줬다. 지금 하고 있는 방법을 평생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차라리 안 하는 게 좋다. 결국엔 살이 더 찔 거니까. 선수든 일반 사람이든 지속적으로 꾸준히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좋다. 그게 동기부여가 훨씬 잘 된다. 조금씩 할 수 있는 것부터 찾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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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최적값

 

근 : 야구 선수가 체중을 감량한다는 것은 어떤 이득이 있나?

 

이 :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살을 빼면 성적이 나아지는지. 살이 찐 사람을 보면 게으를 것 같다는 편견이 있다. 그런데 다이어트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의사들과 이야기해보면, 살이 찐 이유는 게을러서만 은 아니다. 호르몬 문제일 수도 있고, 여러 가지 다양한 요인들이 있다. 그런데 살찐 모습이 게으르다고만 보니 다이어트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근 : 실력 향상, 기록 향상을 위한 체중 감량보다는 사람들에게 살찐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위한 다이어트를 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 결과적으론.

 

이 : 단지 날씬해보이려고 다이어트를 하는 선수가 어디 있겠나. 하지만 어떤 선수가 살을 뺀다고 해서 실력이 나아질 거란 100% 확신이 없는데 맹목적으로 10kg, 20kg 감량하는 코칭에 동의할 수 없다는 거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야구 잘하는 이대호, 최형우 이런 선수들 봐라. 각자 자기 스타일이 있는 거다.  

 

근 : 류현진도 그렇고.

 

이 : 맞다. 야구 스타일이나 포지션이나 이런 거에 각자 다르게 영향을 받는다. 오늘도 한 선수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체중관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질문을 받았다. "너는 어떨 때가 야구하기에 좋았니?"라고 물어보니, "저는 이 몸무게 때가 제일 컨디션이 좋았습니다."라고 한다. 그럼 답이 나온 거다. 그 몸무게 정도로 유지해보자고 했다. 빼지도 찌우지도 말고.

 

근 : 각자의 최적값이 있다.

 

이 : 당연하다. 한 번은 빼짝 마른 선수가 상담을 왔다. 자기는 몸을 불리고 싶은데, 몸이 불면 사람들이 느려졌다고 할까봐 걱정을 했다. 그 선수에게 설명을 해줬다.

 

"사람들은 왜 몸이 불면 느려진다고 느낄까. 실제로 초를 재보고 느려졌다고 판단하는 건가? 아니다. 보기에 그냥 느낌이 그런 거다."

 

그 선수에게 김하성 선수가 입단했을 때 사진을 보여줬다. 그 선수만큼 마른 몸매였다. 근데 김하성은 몸을 불려서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지금 누가 김하성 보고 느려졌다고 하나? 

 

근 : 메이저리거라고 하지.

 

이 : 맞다. 느려진 선수가 아니라 메이저리거다. 한마디로 선입견이라는 거다. 예를 들어보자. 키가 190cm, 170cm인 선수가 있다. 둘이 스피드가 같다고 가정해보자. 둘이 따로 뛰는 걸 보면 누가 빨라 보이겠나. 같은 거리를 10발에 뛰는 190보다 13발로 뛰는 170이 더 발이 빨라 보인다. 뚱뚱해서 야구를 못하는 게 아니라, 야구를 못하니까 뚱뚱해 보이는 거다.

 

근 : 한마디로 착시.

 

이 : 몸집이 큰 선수가 성적을 낼 때는 아무도 뚱뚱하다고 뭐라고 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성적이 부진하고 슬럼프에 빠지면 뚱뚱해서 그렇다는 말이 나온다. 투수가 삼진 잘 잡고 그럴 때는 아무 말 없다가, 구속이 조금만 떨어지면 같은 몸무게인데도 체중이 문제라고 이야기 한다. 홈런 잘 치던 노시환이 삼진 먹으면, 살쪄서 그렇다고 그런다. 야구는 그렇게 단순한 종목이 아니다. 그런 단순한 솔루션은 선수들에게 고통만 줄 뿐이다. 

 

근 : 잘못된 오답정리.

 

이 : 맞다. 그래서 몸을 불려 힘을 붙이고 싶은데 스피드가 느려질까봐 걱정하는 선수들에게 자주 해주는 이야기가 있다. 100m 달리기 선수는 0.1초의 기록 변화를 주기 위해서 피나는 연습을 하지만 우리는 고작 30m 뛰는데, 0.1초 정도가 그렇게 쉽게 느려질 리가 없다. 느려진다 해도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그걸 누가 알아. 그리고 애초에 안타를 치지 못하면 1루까지 뛰는 게 느리나 빠르나 의미가 없다. 안타를 쳐야 1루에 나가지. 뭐 하러 스피드부터 걱정하고 있냐고. 안타를 치는 게 첫번째지. 누가 가만히 있는데 공짜로 1루에 걸어나가게 해주겠어.   

 

근 : 맞는 말이다.

 

이 :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스피드, 파워 이런 운동 요소들이 한두 달 뭘 한다고 좋아지는 게 아니다. 말이 안 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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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 살이 좀 쪘다고 나빠질 것도 아니고.

 

이 : 당연하다. 수년간 꾸준한 트레이닝과 노력을 들여도 조금 변화가 있을까 말까다. 두세 달 살 빼고 웨이트 좀 해서 뭐가 바뀐 것 같은 건 다 기분 탓이다. 그래서 더 다이어트에 몰두하는 것 일 수도 있다. 눈으로 확연하게 보여줄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니까.

 

근 : 지도자들도 결과로 보여주기 쉽고.

 

이 : 그렇다.

 

프로와 기본기

 

근 : <반대 의견>을 편집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이미 실력을 인정받아 프로 무대에 온 선수들을 아마추어 대접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프로는 프로 대접을 해줘야 프로처럼 플레이할 수 있다고.

 

이 : 프로 무대에 데뷔한 선수들은, 고등학교 때까지 야구 못한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 없는 사람들이다.

 

근 : 그럴 테다. 전국에서 손 꼽히는 선수들이 지명을 받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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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 그런데 구단에 입단하는 순간. 못한다는, 부족하다는 소릴 듣게 된다.

 

근 : 전교 1등들이 서울대에 모여서 서로 천하제일 자존감 사수대회를 벌이는 그런 건가.

 

이 : 얼마 전에도 한 선수와 문제점으로 지적받아온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물었다. "너 고등학교 때 그 부분이 문제라고 지적받아 본 적 있어?" 당연히 한 번도 없었다. 고등학교 때 전국권에서 놀다가 프로에 온 선수가 갑자기 없던 단점이 생기나? 프로 선수에게 기본기 같은 걸 문제 삼는 것 정말 어이없는 것이다. 만약 정말 기본이 문제라면, 그 선수를 데려온 스카우터와 프런트는 전부 사표 써야 한다. 프로에 들어온 선수들은 모두 기본기가 되어있다. 문제는, 성적이 부진할 때 그 원인을 체중 증가나 기본기 문제 같은 단순한 것들로 귀결시킨다는 거다. 이 관성에서 벗어나 선수의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개선점을 찾아간다면, 한화 이글스도 빠른 시간 안에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고 본다.

 

근 : 부임 이후 한화 이글스에서 눈에 보이는 그런 지점들이 있나?

 

이 :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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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도, 사람이 먼저다

 

근 : 이지풍 하면 '벌크업'이라는 단어를 연상시키는 사람들이 많다. 어떻게 생각하나?

 

이 : 그건 예전에. 경험이 쌓이면서 점점 생각이 바뀌고 있다. 벌크업이 전부가 아니란 이야기다. 궁극적으로 중요한 건, 선수가 운동을 마음 편하게 할 수 있는 환경개선이다. 원래 야구를 잘하는 선수들이기 때문에 그것만 바꿔도 가진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 벌크업은 그중 하나의 방법인 거다. 

 

근 : 벌크업은 배트 스피드를 늘려 장타를 뽑아내는 방안 중 하나였고, 거기서 시작된 고찰이 점점 확장되고 있다고 보면 되나?

 

이 : 벌크업은 뭐 이제 당연한 것이 되었으니까. 내가 강조하지 않아도 웨이트의 중요성은 지금 선수들이 다 잘 안다.

 

근 : 2010년대 초중반 '넥벤져스'라고 불린 넥센의 막강 타선 구축 이후, '근력 강화와 효율적 훈련 그리고 충분한 휴식'으로 요약할 수 있는 이지풍식 트레이닝은 이제 업계에서 통용되고 있다. 프로 무대의 그런 흐름은 아마추어 야구 지도 방식에도 영향을 주지 않나?

 

이 : 그렇다. 맞다. 많이 바뀌었다. 10년 전 신인들과 비교하면, 지금 들어오는 신인들은 피지컬이 확실히 좋아졌다. 초중고 팀들의 훈련 현장을 모두 본 것은 아니지만, 신인 선수들 몸을 보면 정말 달라졌다. 예전에는 마른 선수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어릴 때부터 몸을 다져온 친구들이 많다. 

 

근 : 그러고 보니 그들은 요즘 흔히 말하는 MZ 세대다. 소통법에 있어서도 달라진 부분이 있나?

 

이 : 당연. 표현법이나 그런 게 확실히 다르다. 그들과 이야기 하다보면, 코치와 선수 관계가 이전보다 훨씬 덜 경직되어 있다는 걸 느낀다. 나로서는 너무 반가운 현상이다. 그들과 속 깊은 이야기를 많이 나눌수록, 그들의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지점을 더 잘 발견할 수 있으니까. 고등학교 때 야구를 어떻게 했는지 이야기를 들어보면, 놀랄 때가 많다.

 

근 : 무엇이?

 

이 : 이전보다 아이들이 고통 없이, 상처 없이 성장할 수 있도록 지도하시는 훌륭한 지도자분들이 많다는 걸 느껴서다. 좋은 현상이다. 계속 더 많이 그래야 한다.

 

근 : 좋은 코칭이란 결국 소통의 문제인 것 같다.

 

이 : 바로 그렇다. 딸아이를 키우면서 육아 관련 서적을 열심히 들여다봤는데, 결국 핵심 키워드는 공감이었다. 성인도 똑같다고 생각한다. 선수가 고통받고 있는 부분을 공감해주고 같은 편이 되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마음을 공감해주는 어른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가 하고 싶은 말보다는 선수가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근 : 그것이 업무의 주안점인 건가?

 

이 : 동시에 업무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그렇게 해야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방향대로 이 친구들을 따라오게 할 수 있다. 그래야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거고. 어쨌거나 우리 팀은 이번 시즌에 꼴찌를 했다. 내년에 반드시 성적을 내야 한다. 세이버매트릭스 이런 수식으로 계산을 해보면 어떤 선수는 몇 점이고 우리 팀은 내년에 몇 승할지가 나온다. 그걸로 돌려보면 우리는 내년에도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 어려운 수치가 나올 거다. 하지만 숫자에 보이지 않은 것들이 있다. 나는 그것을 더 크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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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 역시 사람이 먼저다?

 

이 : 숫자가 잡아내지 못하는 잠재된 능력을 끌어내는 것. 그게 내가 할 일이다.

 

요즘 아이들의 야구

 

근 : 1년 휴식기 동안 칼럼 연재 외에도 고등학생 클럽팀을 지도했다고 들었다.

 

이 : 여주 ID 베이스볼 클럽 팀.

 

근 : 팀과 어떤 인연이 있었나?

 

이 : 유선정 감독과 넥센에서 같이 있었다. 선수 시절, 나와 나눴던 대화들을 기억하고 있다가 지도자가 되었을 때 꼭 실현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근 : 홍길동의 율도국 같은 건가..

 

이 : 좋은 일을 한다는데 도움을 주고 싶었다. 어차피 놀고 있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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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ID 베이스볼 클럽

 

근 :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 단계의 선수들을 지도해보니 어땠나?

 

이 : 일선 지도자들의 고충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근 : 어떤 점에서?

 

이 : 아이들 진학 문제도 있고, 성인 팀을 이끄는 것과는 다른 복잡한 것들이 얽혀있더라. 선수를 지도하면서 조급해지면 안되는 건데, 그러지 않기가 쉽지 않은 환경이었다. 다행히 유선정 감독이 중심을 잘 잡고 처음 가진 생각을 끝까지 실행하려고 노력했다. 참 좋은 지도자라고 생각했다. 많이 배웠다. 아이들한테도 많이 배웠다. 프로는 인생을 걸고 연봉을 받는 자기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이지만, 아직 성인이 아닌 아이들은 달랐다. 그들과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까 고민해보는 값진 시간이었다.

 

근 : 결국 그들이 머지않아 프로무대의 루키가 될 테니까.

 

이 : 대학 동기들이 교직에 많이 있다 보니, 술자리에서 요즘 애들이 어떻고 요즘 신입생이 어떻고 하는 이야기를 자주 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말한다. "야 우리도 그랬어." 그렇지 않나. 우리도 한때는 그런 세대였고 지금 세대도 똑같다. 바꿔 말하면 인간의 근본적인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는 거고. 타인과 어떻게 공감할지 마음을 어떻게 움직일지 그 고민이면 된다.

 

자율학습 맛집, 한화 이글스

 

근 :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본다. 내년 한화, 가을야구 하나?

 

이 : 목표다. 포스트시즌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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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 목표 달성을 위한, 수석 트레이닝 코치로서 개선 지점 같은 건 좀 보이나? 

 

이 : 다 했다. 그거는.

 

근 : 벌써? 한 달 만에 시스템을 전부 바꿨단 말인가?

 

이 : 어려운 거 아니다. 첫째도 둘째도 환경개선이다. 운동 할맛나게 다 바꿨다. 집이 대전까지 출퇴근하기 먼 타지에 있는 선수들이 많은데, 12월 1월에 훈련하겠다고 숙소를 따로 구한 사람들도 있다. 

 

근 : 스스로 의지로?

 

이 : 의지로. 남아서 웨이트 하겠다고. 11월 한 달 동안의 스스로 느낀 변화가 동기부여가 된 거다. "어? 나 여기서 좀 더 해볼래" 하고.

 

근 :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한 건가?

 

이 : 선수들이 웨이트가 중요하다는 것도 알고있고 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집중을 하지 못하는 이유를 고민했다. 일단 구단에 말해서 대전구장에 있는 쓸모없는 웨이트 머신들을 다 정리해달라고 했다. 운동을 할 분위기가 안 잡혀있다고 판단한 거다. 기계들이 빠진 자리에 프리 웨이트 공간을 확보하고 선수들이 자발적으로 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데 주력했다.

 

근 : 이지풍의 헬스교실?

 

이 : 아니다. 나는 별말 하지 않는다. 선수들에게 개별적으로 차트를 만들어주고 프로그램을 짜줬을 뿐이다. 오래지 않아 '우리도 이렇게 할 수 있구나'라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잡혔다. 많은 선수들이 처음 경험하는 시스템이었다고 한다. 며칠 지나니까 "코치님 오늘은 몸이 안 좋은데 하루 쉬어도 될까요?"라는 질문이 들어왔다. 당연히 가서 쉬라고 했다. 좋은 현상이다. 무리했을 땐 쉬어야 하고, 스스로가 그렇게 판단하고 의사 표현도 할 줄 알아야 한다. 대전 훈련장 환경이 개선되니, 선수들이 굳이 비시즌 때 다른데 가서 돈 주고 훈련할 이유가 없어졌다. 대전에서 겨울에 이렇게 많은 인원이 훈련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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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 방학 때 학교 도서관을 잘 정비해서 개방해놓으니, 학생들이 학원 갈 필요가 없어졌다는 거네.

 

이 : 맞다. 게다가 공짜 아닌가. 거듭 말하지만, 내가 선수들에게 해주는 건 지극히 상식적인 운동처방이다. 누구나 아는. 바뀐 건 환경인 거다.

 

근 : 그렇겠다. 이지풍만의 비법 스쿼트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 : 내가 아는 스쿼트자세는 유튜브에 있는 거랑 똑같다.

 

건투를 빈다

 

근 : 그건 그렇고, 재취업으로 급 중단된 우리 연재 기획은 어떻게 할 건가. 이야기하다보니 까먹었는데, 나 항의 방문 온 거다 지금.

 

이 : (먼 산) 에.. 벌써 시간이. 이제 가봐야 하지 않나? 늦게 출발하면 평일에도 서울까지 차 많이 막힌다.

 

근 : 아직 남은 반대의견이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 

 

이 : 못다한 이야기는 아마 내년 초쯤 책으로 나올 거 같다. 원고 작업도 거의 마무리되어간다.

 

근 : 알겠다. 쿨하게 보내주겠다. 대신 노시환 싸인볼 하나만 받아줘라.

 

이 : 빨리 올라가라 이제.

 

근 : 마지막으로 질문 3개만 하고 끝내겠다.

 

이 : 오케이.

 

근 : 이지풍에게 정민철 단장이란?

 

이 : 또다시 스트레스의 길로 인도하신 분.

 

근 : 이지풍에게 김어준 총수란?

 

이 : 버터와 화환 보내주신 분. 다음엔 화분으로 부탁드린다.

 

근 : 이지풍에게 김승연 회장이란?

 

이 : 사...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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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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