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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와 콩의 정치학

2022-01-11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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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아직은 쌀쌀한 신년벽두이건만 온라인은 신세계그룹 정용진 부회장이 인스타그램에 #멸공이라는 해시태그를 달아 올린 포스팅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멸공(滅共)이란 공산주의를 부정하고 없애버리겠다는 뜻이므로, 공산주의에 반대한다는 반공(反共)이나 공산주의를 이기겠다는 승공(勝共)보다 더 수위 높은 단어지만, 동서 냉전이 끝나고 공산주의/사회주의를 표방했던 국가들마저 대거 노선을 전환한지 어느덧 30년이 넘어가는 이 시점에선 거의 들을 일이 없었던 말인 것 같다. 그나마 군필자들에게는 훈련소 때부터 지겹게 들었을 군가 '멸공의 횃불' 덕분에 아주 낯설지는 않겠지만, 과체중으로 면제받은 정용진은 물론 부동시로 면제된 윤석열과 여성이라 군대에 가지 않은 나경원마저 멸공이란 말을 쓰다니 어색한 느낌도 든다.

 

다급한 토끼몰이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있는 대한민국에서, 사인(私人)인 재벌그룹 총수가 의견 표명을 하는 것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그 의견이 적절한지는 읽는 이들 각자의 판단에 달린 것이고, 필요하다면 논쟁을 하면 되는 것이다. 문제는 정용진 부회장의 포스팅을 필두로, SNS 상에 보수 우파 셀렙들의 멸공 챌린지(?)가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인데, 대통령선거가 60일 남은 이 시점에 그러한 메시지를 줄줄이 띄우는 의도가 무엇인지는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특히 야당의 대선후보가 친히 정용진을 거드는 듯한 행보를 취하는 것은 자못 의미심장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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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국민의힘 선대위, 나경원 전 의원 인스타그램>

 

우리 주위에 여전히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중국과 북한이 남아 있다고 하나 중국과는 어느덧 수교 30년을 맞아 여러 가지로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고, 북한 역시 '반국가단체'면서 동시에 '대화와 협력의 상대방'이라는 이중적 지위를 갖고 있는 이상 단정적으로 '멸'하여 없애버리겠다고 말하기엔 조심스럽다. 더구나 대기업 회장이라면 몰라도, 정치 지도자라면 외교적인 문제까지 생각해서 신중하게 얘기했어야 할 일. 그런데도 굳이 정제되지 않은 메시지를 내놓은 건, 실제로 공산주의자나 공산주의국가를 없애겠다는 의미보다는 공산주의(국가)에 대한 혐오 정서에 기대려는 제스처로 볼 수밖에 없는데...

 

대선 60일을 앞둔 국민의힘과 윤석열 후보는 탄핵 직후 치러진 지난 대선 못지않은 위기에 처해 있다. 단시간 내에 지지도를 회복하고 이재명 후보를 따라잡지 못하면 후보 교체 또는 안철수와의 단일화 압박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결국 윤석열로서는 야권 대표주자로서의 입지를 잃지 않기 위해 선명한 보수색을 드러내 소위 '집토끼'라 불리는 전통적인 야권 지지층을 결집할 필요가 있었던 것. 아울러 선거판을 보수 VS 진보의 이념 대결 구도로 몰고 가면 상대적으로 중도나 부동층에 강점이 있는 안철수의 입지는 좁아질 것이고, 이를 통해 본인 중심의 단일화를 추진하거나 안철수 지지층을 흡수하여 이재명과의 양자 대결에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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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뉴시스>

 

여성가족부 폐지, 병사 월급 200만 원 등 많은 논의가 필요한 정책들을 7-8자로 줄여 SNS에 일단 지르는 행보 또한 합리적 중도층보다는 적극적 지지층을 확실하게 다지겠다는 전략으로 보이는데, 그만큼 캠프의 다급함과 후보의 조바심이 느껴져 쓴웃음이 났다. 어제(1월10일) 아침 뉴스공장 인터뷰에 따르면 명색이 정책총괄본부장을 맡고 있는 원희룡조차 미리 알지 못한 내용이라던데, 이는 캠프의 정책이나 후보의 메시지가 전혀 관리되지 않고 있다는 반증으로 보인다.

 

콩의 늪

 

결국 윤석열 후보는 이재명 후보의 여러 정책들을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하면서도 막상 이렇다 할 정책을 내지 못하고 단말마적인 구호만 외치며 대학교 총학생회만도 못한 선거운동을 하는 중이고, 멸치나 콩을 사고 '멸공' 해시태그를 다는 수준의 SNS 홍보 역시 인스타놀이를 즐기는 재벌그룹 부회장에게 어필할 뿐 물가 상승에 노심초사하며 반찬거리를 고르는 대다수 서민들에게는 와닿지 않는 이야기일 뿐이다.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홍진호는 잦은 준우승으로 인해 본인의 별명이었던 '콩'을 2위의 상징으로 만들어 버렸다. 윤석열의 콩 구매인증샷은 보수층 결집을 통해 안정적인 2위를 확보하는 대신, 중도층을 포기함으로써 1위로 올라가는 것 또한 사실상 불가능하게 할 거라는 점에서, '콩라인'에 드는 확실한 지름길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