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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7. 16. 월요일

Matti


 


 


신입생 OT가 시작되고 후배가 들어오면서 기존의 신입생들은 비로소 선배가 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국면들이 펼쳐지기 시작합니다.


 


* 신입생 OT와 개강


선배들이 했던 실수들이 그대로 반복되는 시기입니다. 물론 선배들도 자신들의 경험을 반추하며 후배들에게 이런저런 조언들을 해주지만 잘 먹히지 않습니다. 2학년과 3학년만 비교해도 어느 정도의 온도차가 있습니다. 학생운동에서 초반 1, 2년의 격차는 지적 수준뿐만 아니라 열정이라는 측면에서도 차이가 납니다. 2학년 초반의 시기는 이제 막 각성의 단계로 들어가, 본인이 알고 있는 것들을 남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은 욕구가 강한 시기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운동의 확신만을 심어주던 선배 운동가들이 '신입생들에게 목적의식을 갖고 다가가지 말라'는 조언을 하게 되면 당황스러워하게 됩니다.


 


이들은 신입생들을 대할 때 어떻게든 이들을 운동의 길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집니다. 그리고 그런 의식은 자연스레 얼굴에 나타납니다. 그렇지만 신입생들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학생들이 학생운동에 대해 거부감이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입생들에게 운동 이야기를 꺼낼 때는 뻘쭘함과 긴장감이 있습니다. 선배들에게 조언을 받은 대로 사심 없이 다가가고 싶지만 그렇게 능수능란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 과정에서 분명하고 세련되게 거절의 의사 표시를 하는 친구들의 경우 오히려 고맙기도 합니다. 앞으로 그 선을 지켜가며 관계를 유지하면 됩니다. 힘든 것은 은근한 싸늘함과 무관심입니다. 이게 대체 어떤 의사 표시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 사실 알고는 있지만 애써 외면합니다. 세상은 어느 정도 자신을 중심으로 해석이 되어야 버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작정 목적의식이 없이 다가가도 문제입니다. 그런 경우에는 선배들에게 '목적의식 없는 대중활동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거냐'라는 질책을 받기도 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선배들과 트러블이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운동의 길로 들어서면 선배들이 함부로 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잡은 물고기에 밥을 주지 않는 원리이기도 하지만, 일단 서로 간의 관계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학년에 따라 맡아야 할 역할과 의무가 있고, 그것은 학번 문화의 특성상 일방적 지시로 나타나게 됩니다. 후배 운동가들은 갑자기 달라진 듯한 선배들의 모습에 상처를 받기도 하고 모순된 조언들에 우왕좌왕하기도 합니다.


 


* 과부하


2학년이 되면 신입생 시절과는 달리 과부하가 걸리기 시작합니다. 80년대와는 달리 학생운동을 한다고 무조건 잡아가는 시대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학생운동가들에게 지워진 업무들의 양이 엄청나게 많아졌습니다. 2학년이 되면 신입생 사업, 집회, 학습, 동아리, 학생회 활동 등 갑자기 많은 일들이 생깁니다. 학생이기에 수업도 들어야 하고 학점도 챙겨야 합니다.


 


이 부분에서 90년대 운동가들의 트라우마가 생깁니다. "상실감"입니다. 대학시절을 돌아보면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남은 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학생운동가로서 주어진 의무들이 어느 순간부터는 직장인처럼 처리해야 하는 업무가 됩니다. 학우들을 만나 매일 저녁 술을 마시고, 학생회 사업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봉사 활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여유가 없어집니다.


 


운동 이론조차도 제대로 학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매번 회의나 모임 때마다 위에서 내려온 문건들을 읽고 들어가기에 급급합니다. 그래서 머리에는 조악한 이론의 틀만 남고 내용이 채워지지 않게 됩니다. 운동가로서의 성찰과 학습이 비집고 들어가기란 쉽지 않습니다. 반성과 성찰도 뭔가 머리 속에 많은 것들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시간이 흐르고 나면 대부분의 대중활동가들에게 본인이 할 수 있고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사람들에게 연락을 돌리고 술자리를 만드는 것 밖에 없게 됩니다. 전문성은 커녕 학점 메꾸기도 버겁습니다. 물론 특출난 운동가들은 자기 생활도 챙기면서 운동도 제대로 해냅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은 평범한 대학생들입니다. 운동도 하지만 다른 것들도 하고 싶습니다. 문화적 소양도 쌓고 싶고, 다른 전문 지식도 갖추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모든 욕망과 자기계발을 포기하고 바보처럼 살아야 합니다.


 


90년대 학생운동이 결국 몰락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론의 낙후함도 있지만, 이런 시스템의 문제가 결정적입니다. 누가 의도한 것도 아닌데 서로서로 가지고 있는 것들을 갉아먹으면서 운동을 합니다. 한총련이라는 시스템은 완벽하게 돌아가고 있지만 그것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은 개개인이 소모품처럼 사용됨으로 인해 가능합니다. 낮은 수준에서 결의하고 자기 생활을 어느 정도 챙기면서 운동하는 것을 용납치 못합니다.


 


조직에서의 과도한 요구들을 소화할 수 있는 운동가들의 숫자는 점차 줄어들고, 사람이 줄어든 만큼 개개인이 맡아야 할 의무는 더욱 많아집니다. 언제나 대중사업을 강조하고 좀 더 많은 동지들이 있기를 원하지만 열심히 사는 만큼 현실은 정반대로 돌아갑니다. 결국 신념이 투철하거나, 극단적 성향을 가진 운동가들만이 남게 되는 악순환의 구조가 됩니다.


 


운동가들이 이러한 자신들의 모습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되는 순간은 언제고 반드시 옵니다. 왜냐하면 시대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합법과 비합법, 대중조직과 비밀결사 사이를 매일같이 왕복합니다. 정파 내부에서는 언제나 심각한 정세 속에 살고 있지만, 그 밖으로 나가면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바라보고, 문제점을 인정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건 열심히 살아온 자신의 청춘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까지는 운동가의 삶이라는 추상적 형상을 가지고 마음 속에 뚫려 있는 구멍들을 메워 갑니다. 그러다 더 이상 그 구멍들이 메꿔지지 않는 순간 운동을 정리하게 됩니다.


 


* 자주적 학생회


대학에서 '자주적 학생회'라는 단어를 들어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NL은 학생회를 잡으면 자신들 학생회를 '자주적 학생회'라고 명명합니다. 의미는 좋습니다. 학우들의 자주적 이해와 요구를 받아 안고 그것의 실현을 위한 학생회가 자주적 학생회입니다. 그렇지만 실제 학우들이 생각하는 이해와 요구가 학생회에서 실현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왜냐하면 일반적인 학우들이 생각하는 '자주적 이해와 요구'는 NL의 그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NL에게는 NL 목표에 집중하는 것이야말로 학우들의 '자주적 이해와 요구'입니다.


 


이 말도 안 되는 괴리는 간단하게 합리화가 됩니다. 학우들이 보통 생각하는 '이해와 요구'는 학우들이 스스로 생각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이런저런 왜곡된 과정과 피상적 사고 속에서 나온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자주적 이해와 요구'란 학우들의 진짜 삶과 처지 속에서 나오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철학적으로는 인식론적 사고와 존재론적 사고 중 후자를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학우들이 당장 이해해주지는 못하겠지만, 자신들의 노선이야말로 진정 학우들의 '자주적 이해와 요구'라는 합리화가 이루어집니다. 물론 그것은 아주 자의적 기준입니다. 신앙에서의 '전도'와 똑같은 구조입니다. 자신들이 진짜 원하는 것을 모르는 무지한 학우들을 위해 우리가 투쟁을 해야 합니다. 선민의식입니다.


 


그리고 여론은 반영하는 게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론작업은 선전선동이지, 소통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운동가들 간의 회의에서도 자주 충돌하는 부분입니다. 만약 어느 누가 조직의 방침과는 달리 학우들의 의견은 이러이러하다라고 주장을 하면 학우들의 여론을 잘못 읽고 있다는 반박이 돌아옵니다. 그리고 패배주의적 시각이라는 비판이 가해집니다. 여론조사 결과를 가지고 논쟁하는 것이 아니니 결국에는 문제제기를 한 운동가가 지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그러면서도 지도부는 토론을 통해 모두가 동의했다는 결론을 냅니다. 납득이 되지 못한 운동가가 차후에 재차 문제제기를 하더라도, '너도 토론을 통해 동의한 결론 아니냐'라며 족쇄를 채웁니다.


 


여기서 대중성의 딜레마가 생깁니다. 입만 열면 대중적이어야 한다고 강조를 하지만 실제 대중들의 의견을 따라가려고 하면 '대중추수주의'라는 비판이 나옵니다. 자주적 학생회와 같은 논리입니다. 결국 대중적이어야 하는 것은 우리의 주장을 잘 관철하기 위한 수단인 것이지 소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 좋아 보이는 운동가들이라도 대화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딱 막히는 부분이 나옵니다.


 


학생운동을 하고 성장을 하다보면 이런 순간들이 여러 번 닥칩니다. 논리적 과정이 아니라 신념과 같은 결단으로 사고의 틀을 정해야 하는 순간입니다. 언제나 과학적 사고를 강조하지만 중요한 단계에 다다르면 믿음으로 극복하던가 스스로를 속이고 얼렁뚱땅 합의를 하면서 넘어갑니다. 제가 이 시리즈에서 '점프'라고 명명하는 부분입니다.


 


그렇지만 분노에도 열정에도 유통기한이 있습니다. 이런 순간들을 몇 번 넘어가게 되면 머리가 굳을 뿐만 아니라 최초의 마음가짐도 사라지게 됩니다. 정파적 관성만 남습니다. 그래서 운동가의 성장은 깨달음의 축적이 아니라 의문을 억누름으로 인해 이뤄진다는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이 되면 의문은 튀어오르지 않고, 억누르는 기제들만 발달하게 됩니다. 조직의 방침에 대해서는 언제나 의문을 삼키는 과정만이 반복되기 때문에, 상상력이 풍부하고 유연해야 할 진보가 가장 보수적이고 경직된 집단이 됩니다.


 


이런 과정들을 거치다보면 정해진 생각들만 하게 되고, 조직의 방침에 부합되는 판단만 하게 됩니다. 자연스레 정상적 토론 스킬이 부족해지고 유연성이 떨어집니다. 상대방이 백 번 옳은 이야기를 해도 그게 자신의 신념을 꺾는 결론이라면 결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공개적 토론에 나와도 져서는 안 되기에 말싸움에서 지지 않는 기술만 늘게 됩니다. 자신의 견해를 잘 이해시키기보다 상대에 대한 비판에만 능숙한 운동가들이 많은 이유입니다.


 


* 고립의 심화


2학년이 되면 고립은 더욱 심화됩니다. '고립'이 아니라 인간관계가 좁아지는 것으로 해석해도 됩니다. 동아리나 운동가들 중심으로 인간관계가 굳어져갑니다. 그렇지 않은 활달한 운동가들도 있지만 대개의 운동가들이 그렇습니다. 이 때부터는 대오에서의 이탈은 개인적 이탈 차원이 아닙니다. 여기서 운동을 그만둔다는 것은 지금 맺고 있는 인간관계가 대부분 무너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뭔가 생각이 달라져도 동기나 선배들에게 차마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등록금투쟁을 비롯해 일 년 내내 이어지는 집회들에 나가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농활과 같은 대중적인 사업들 역시 한 번이라도 빠지면 곧바로 소외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생각이 다른 이들끼리 자연스레 따로 술자리를 갖고 입을 맞춰가기 시작합니다. 내부를 바꿔보거나 다 같이 빠지자는 움직임이 생깁니다. 혼자 나갈 수도 없고, 혼자 바꿀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이란 다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생각을 갖게 마련입니다. 이 때 선배들과 충돌이 일어납니다. 후배들의 반란은 사실 소박합니다. 이런저런 사람들이 모두 공존할 수 있는 조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지만, 선배들이 보기에는 용납불가의 요구들이고 운동을 망치는 짓들입니다.


 


이런 일들은 매년 일어납니다. 기계가 아닌 사람들이 사는 곳이니 당연합니다. 그래서 선배들도 그 부분에 대해 늘 안테나를 세웁니다. 초기에 손을 쓰지 않으면 반란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동아리나 모임 전체를 휘감습니다. 그래서 뭔가 불만을 가진 것 같거나 갑자기 소극적이 된 후배들은 따로 불러 조용히 정리를 하고 혼자 나가도록 합니다. 그렇지만 절대 나쁘게 끝내지는 않고 기존의 인간관계들이 연착륙이 될 수 있도록 최대한 도와주면서 우호적으로 마무리를 짓습니다.


 



 


인간관계 때문에 운동을 계속하거나 혹은 비판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단순히 친분관계를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내가 여기서 운동을 정리한다는 것은 간단하게 당장 밥을 먹을 사람이 없어지고, 술을 마실 사람이 없어짐을 의미합니다. 순식간에 캠퍼스에서 혼자가 됩니다. 사회 운동에서 당직자나 상근자 등의 위치라면 밥줄이 끊김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내부비판에 용감한 사람들을 보면 대개 인간관계나 밥줄에 어느 정도 초연할 수 있는 이들이 대부분입니다. 운동조직이라고 특별한 법칙이 적용되는 게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조직은 어디를 가나 비슷한 원리로 돌아갑니다.


 


* 대중사업의 스트레스


운동가들에게 대중사업은 대단한 스트레스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활달한 운동가들도 하나하나 뜯어보면 사실은 예민하고 내성적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실제 성격과 맞지 않는 대중사업들입니다. 매일 같이 많은 학우들을 모아 왁자지껄한 술자리를 가집니다. 점심 때면 친하지 않은 후배들과도 따로 약속을 잡아 밥을 먹습니다. 본래 활달한 사람이라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굉장히 곤혹스런 일입니다. 서비스업의 감정노동과 다를 바 없습니다.


 


무엇보다 목적의식을 갖고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굉장히 피곤한 일입니다. 마치 불편한 소개팅을 하는 기분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많은 만남들은 모두 증발해버리고 파편화가 됩니다. 캠퍼스를 지나가면서 인사를 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많아지지만 가슴을 터놓고 고민을 털어놓은 사람들의 숫자는 점차 줄어듭니다. 씁쓸하기도 하지만 힘이 빠지기도 합니다. 대체 언제까지 사람들을 이런 식으로 만나야 할지 감도 오지 않습니다. 민족해방의 그 날이 올 때까지 계속 이래야 하는 것인지. 지칩니다.


 


* 후배


학생운동가들의 최우선 목표는 민족해방이 아닌 후배 양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재생산에 실패하는 순간 단위 운동은 끝입니다. 한 번 대가 끊긴 단위에 사람을 다시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바로 밑 학번에 후배가 한둘이라도 생기면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후배들의 존재는 동시에 마음의 짐이기도 합니다. 후배운동가들이 존재하는 경우 이런저런 사정이 생겨 운동을 정리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습니다. 본인이 뱉은 말에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생각이 달라져도 그걸 쉽게 입 밖에 꺼낼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후배운동가의 양성은 시스템 속에서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어떤 운동가의 사상이 조직의 방침과 달라졌다는 게 인증되는 순간 사문난적이 됩니다. 후배들에게도 기피대상이 되고 학생회실에서 투명인간과 같은 대우를 받습니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 조직의 노선이란 받아들이냐 그렇지 않느냐의 선택만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각이 달라졌다 해도, 그 공간을 떠날 생각이 없는 이상 그냥 어느 정도 타협을 하면서 운동을 지속하게 됩니다.


 


* 군대


학생운동가들에게 가장 스트레스가 되는 것 중 하나가 '군대'입니다. 이건 당사자에게도 고민거리지만, 조직 차원에서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90년대 학생운동은 돌아보면 RPG 게임처럼 돌아갑니다. 끝없이 미션들이 내려오고 그걸 하나하나 깨 나가면서 성장을 합니다. 그러면서 점차 중요한 역할들이 부여됩니다. 그런데 군대는 그 모든 것들을 무의미하게 만듭니다. 학생운동가들에게 부여된 업무들은 많아지는데, 사람이 줄어든다고 업무들도 줄어드는 건 아닙니다. 단위에 운동가가 한 사람 밖에 없어도, 출범식은 가야 하고, 농활대는 조직해야 합니다. 어느 한 미션도 방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군대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 차원의 결정사항입니다. 당연히 어떻게든 개인 차원에서 미루고 희생하기를 원합니다.


 



 


반면에 대다수의 남성 운동가들은 군대 문제를 빨리 해결하고 싶어합니다. 당연합니다. 그렇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늦게 가게 됩니다. 대개 단위에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 명의 견실한 운동가가 빠지게 되면 타격이 큽니다. 본인이 떠나면 남은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어질지에 대해 너무나 잘 압니다. 그래서 남게 됩니다.


 


그렇지만 결국에는 투철한 운동가 이전에 학생들이고 20대 초반의 청년들입니다. 집안에 사정이 있는 경우도 많고, 본인 스스로도 군대 문제를 조기에 해결하고파 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조직에서 최대한 배려를 해줍니다. 이 친구가 군대에 갔을 때 단위 운동이 어떻게 될 것인가 고민해본 뒤에 남은 운동가들이 빈 자리를 메꿀 수 있겠다 판단이 되면 허락을 해줍니다. 계속 잡고 있으면서 사람이 망가지느니 깔끔하게 갔다 온 뒤에 운동을 지속하는 게 낫다고 판단합니다. 물론 군대를 갔다 오면 대개의 경우 정리를 하고 우호세력으로 남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물론 이것 역시도 이상적인 해결 방법일 뿐입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잠수를 하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아무리 연락을 해도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불쑥 학교에 모습을 내밉니다. 군대 가기 일주일 전입니다. 주위 사람들은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제 와 돌이킬 수도 없습니다. 동시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겠습니까. 결국에는 성대하게 환송회를 해주고 따뜻하게 배웅을 해줍니다.


 


따뜻한 배웅 뒤에 남겨진 것은 차가운 현실입니다. 남은 운동가들은 또 다시 시스템 속으로 들어가 운동을 계속합니다.


 


 


 


(계속)


 



 


 


Mat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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