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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어느덧 마지막 주제까지 오게 되었네요. 오늘은 제가 생각하는 은행의 무기계약직으로서의 미래에 대해 적어보려고 합니다. 사실 제목은 되게 거창하지만, 제가 경험하며 느끼고 생각한, 앞으로의 무기계약직의 방향성을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하는 것을 적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기 앞서, 현재에 대해 조금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딴지에 계신 여러분들도 대부분은 직장생활을 하시겠지요? 직장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뭘까요? 솔직히 전공이나 꿈, 업무 만족도 등도 분명 중요하겠지만 일을 해서 임금을 받고, 이 임금으로 먹고 살고, 결혼하고 아이들 키우고, 부모님 용돈도 드리고... 이러기 위해 직업을 구하는 것 아닐까요?

위와 같은 목적의 연장선상에 회사의 규모, 급여문제, 업종 등을 선택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처음 사회생활, 직장생활을 할 때는 잘 몰랐습니다. 어떻게 보면 '평생 이 직장을 다녀야겠다' 라거나 '이 회사 망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라는 생각을 안 하고 살았던 것 같네요. 그저 월급 나오면 월급 받는 재미, 돈 쓰는 재미에 살면서 20대를 보냈었죠.

그러다 20대의 마지막을 보내고 현재 은행에 들어오면서 직업에 대한 미래를 생각하게 된 것 같습니다. 중소기업이라도 입사하게 되면 연차가 쌓이면서 승진을 하고, 급여가 오르고, 업무가 확대되고, 흔히 말하는 '짬밥'이 쌓여갈 텐데요. 은행의 무기계약직에겐 이러한 체계가 없다보니 회사가 망할까? 하는 자체에 대한 불안보다 회사 내에서 나의 미래를 고민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우선 무기계약직이라는 이름부터 상당히 모순적입니다. 무기계약직이라 하면 '기간의 정함이 없는 계약직'이라고 풀어서 쓸 수 있습니다. 통상 정규직이라고 하면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라고 합니다. 반대로 계약직의 경우엔 '기간의 정함이 있는 근로자'라고 할 수 있겠죠. 대입해서 해석하면 '기간의 정함이 없는 기간의 정함을 가진 근로자'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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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무기계약직은 쉽게 해고할 수 없습니다. 고용불안이라는 문제에선 자유롭죠. 심지어 정년도 보장이 됩니다. 본인이 퇴사를 하지 않는 이상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건 은행의 일반직 행원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요즘 국가 정책적으로 비정규직 제로화 등을 앞세워 기사에서도 많이 접하셨겠지만 무기계약직의 신분에 대해서 경영계는 '정규직'으로 분류합니다. 이유는 계약직처럼 계약종료와 함께 해고하거나 할 수 없다는 부분에서이죠.

하지만 노동계에선 무기계약직을 '비정규직'으로 분류합니다.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처우 문제 입니다. 전편에서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했던 급여문제와 호봉문제가 무기계약직으로 근무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 직업(직장)을 포기하게 되는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정규직들은 대부분 정규직의 절반정도의 급여를 받으며, 별도의 승진체계, 호봉체계가 없습니다. 퇴직자들의 대부분은 위의 사유로 인함이고, 퇴직을 하지 않았더라도 위의 내용과 관련해서 계속해서 고민하는 분들도 많죠. 특히 "여기를 평생직장으로 할 수 있을까?"란 질문에 대해선 확답을 못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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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근무하는 은행의 부서에서도 10년이 넘게 근무를 하며, 은행장의 표창도 받고 심지어 업무관련 책을 만들어 낼 정도로 베테랑인 직원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여전히 저와 같은 직급이며, 똑같은 기본급을 받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무기계약직은 고인물 같습니다. 업무성과가 뛰어나도, 근속년수가 올라가도 변하는 건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고용불안이 없습니다. 이 두가지가 합쳐지면서 이상한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바로 '막 나가는' 사람들인데요. 어차피 내가 잘해봐야 돌아오는 것도 없고, 마음대로 해고도 못하니 정말 회사를 X같이 다닙니다. 출근시간은 안 지키지만 퇴근은 한 발 빠르게 하고 점심시간에 나가면 안 들어오고, 일처리는 느릿느릿 시간만 때우자, 상사가 일을 시키면 왜 그걸 자기한테 시키냐며 싸우기까지 하고... 정말 가관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저 정도로 행동하는 직원은 100명 중 1~2명 정도입니다. 하지만 저런 직원들이 있음으로써 사무직군을 바라보는 전체적인 시선이 안 좋아지기도 하고, 저 정도로 직장생활 해도 안 짤리는 모습에 본인도 조금씩 물들어 가는 등, 한마디로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강을 흐린다는 표현이 맞지 않을까요?

위와같은 상황들로 사무직군들의 이미지나 분위기가 안 좋아지게 되면, 결국 사무직군들은 자리만 지키고 시간만 때우는, 그저 그런 직원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또 언제 어디든 이직하거나 그만둘 생각을 하면서 하루하루 버티는 직원이 되어 버리죠. 이런 직원들에게 회사에서 더 나은 처우를 위해 고민하게 될까요? 또한 이런 직원들에게 애사심이란 게 있을까요? 이런 직원들에게 회사에서 그토록 강조하는 주인의식이 있을까요?

*위에 적은 몇가지 사유들이 어떤분들에게는 말도 안되는, 소설같은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제가 근무하는 은행에서 발생했던 일들이며, 사무직군의 전체적인 사기나 분위기는 매우 안 좋습니다. 농담삼아 '모래알 같은 조직'이라고 할 만큼 응집력도 없는, 어떻게 보면 재미없는 직장입니다.

무기계약직의 현재에 대해 글쓰기를 시작했는데 어떻게 보면 현상태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은 것 같습니다. 사실 여러분들도 잘 알고 계시겠지만 현재의 상황들을 타개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처우개선 밖에 없습니다. 처우개선이라면 많은 부분이 있을 수 있죠. 급여인상, 승진제 도입, 호봉제 도입, 정규직 전환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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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기사들을 보면 '공공기관 비정규직 정규직 된다', '금융권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등의 기사가 쏟아지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저희 은행에서도 올해 사무직군 채용에서는 채용시점부터 무기계약직으로 채용한다고 합니다. (원래 무기계약직은 입행시 2년간의 계약직으로 근무 후 전환심사를 통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이 되었습니다)

*여담이지만 위의 상황에서도 알 수 있듯 경영계 측은 무기계약직을 정규직으로 분류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또 얼마 전엔 모 은행에서는 기존에 무기계약직이던 텔러직군들을 전원 정규직으로 전환했습니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 보면 정말 이름만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바뀌었고 급여는 그대로, 업무만 늘어나서 희망퇴직 때 엄청나게 많은 인원이 퇴사했다는 기사가 실린적도 있습니다.

이 외에도 은행의 무기계약직들에 대한 정규직화의 실패(?) 사례들은 어렵지 않게 찾아 보실 수 있습니다. 사실 무기계약직, 계약직으로 근무하시는 모든 분들은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단순히 직급의 변화, 기업의 생생내기 식의 정규직화는 무기계약직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일반직화를 외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치열한 경쟁과 뛰어난 스펙으로 입행한 일반직 행원들, 이들은 업무량도 엄청나고 실적압박도 심합니다. 회사에서도 많은 연봉을 주고 채용하고, 교육시키는 건 회사의 미래를 위해서 투자하는 거죠. 그런 일반직들 직원들에 비해 조금은 수월하게 입행한 사무직군이 단번에 정규직화 되는 건 개인적으로 형평성에 매우 어긋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사무직군의 사기는 올라가겠지만 일반직이나 텔러직군들의 사기는 내려가겠죠?

저는 무작정 정규직화, 급여인상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아니 바란다 해도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무엇일까요? 저는 직군별 호봉제도 도입이라고 생각합니다. 무기계약직, 사무직군이라는 별도의 직군을 인정하고 이 직군내에서 별도의 호봉, 승진제도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 호봉과 승진이 정규직의 그것과 동일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전 직군이 통일화 된다면 그건 사내에서 반발도 심할 것이기 때문이죠.

무기계약직들의 가장 큰 문제점이 적체현상입니다. 10년차나 1년차가 차이가 없다는 점은 장기근속자도 미래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신입조차 미래를 고민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직군별로 나름의 기준을 만들어서 승진과 호봉을 만들고 그 안에서 만큼은 적체현상을 해소해야 한다고 봅니다.

사실 당장에 실현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사측에서도 잘 생각해 봐야 할 점은 사기저하나 퇴직자들이 조직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이번 저희 은행에서 텔러직군의 노사협상에서도 승진제도의 완화는 협상이 완료 되었으나 끝내 호봉제도는 협상에서 빠졌습니다.

이로 인해 텔러직군들은 단체행동도 불사할 만큼 강한 반발을 보이고 있습니다. 아마 연내 재협상에 들어갈 확률이 높을 것 같습니다. 혹은 연말 임단협에서 다시 협상안으로 나오겠죠. 서두에도 던졌던 질문이지만 직장을 고르는 데 있어 미래를 생각해 볼 수 있느냐의 문제는 매우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걸 찾지 못하면 직원들은 고민하게 되고, 고민하게 되면 업무보다 다른 곳에 더 신경쓰게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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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정부에서 많은 부분, 친노동정책이 펼쳐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최저임금도 정말 깜짝 놀랄 만큼 올랐습니다. 글에서는 단점과 푸념만 늘어놓은 것 같지만 저는 묘한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분명 지금보다 더 좋아지고 앞으로 더 좋아질 것이라는, 앞으로도 계속 은행에서 근무하게 된다면 변화하는 무기계약직의 상황에 대해서 여러분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딴지에 계신 분들 중에서도 무기계약직이나 계약직으로 근무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저마다 직종이나 입장이 다르겠지만 큰 틀에서는 제가 생각한 부분과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또 근로자가 아닌 사용자로 계신분도 있을 듯 싶습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노동자의 입장에서만 생각한 부분이라 사용자분들의 입장에선 생각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한 부분에서 보완해야 할 부분, 잘못 판단하고 있는 부분들이 있다면 공유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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