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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전형적이다. 마키아벨리, 홉스, 로크라니, 오락가락 마구잡이를 원했는데, 어쩌다 보니 코스를 밟아버렸다. 그나마 루소를 다른 걸로 먼저 읽어서 다행스럽다. 이들의 관계는 마치 굴비와도 같다. 어느 하나를 잡으면 나머지들이 주루룩 딸려나온다. 아마 덕질에 친숙하신 님들이라면 어떤 느낌인지 잘 아실 듯 싶다. 아이언맨을 보다 보면 스파이더맨도 보고 싶어지고, 캡틴 아메리카도 봐야 한다. 그렇게 파고 들어가다 보면 언제나 하나의 문제의식을 만날 수가 있다. 씨바, 그건 바로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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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레쉬맨 보고 나면 바이오맨 보고 싶고, 또 마스크맨 보고 싶고. 그런 거다.



늘 함께 회자되는 다윈, 마르크스, 프로이트 3인방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를 끝장낼 때까지 세상은 아름다운 것이었다. 값비싼 양털을 얻기 위해 무자비하게 농민들을 내쫓았던 울타리도, 인구라기보다는 차라리 빈민들이 증가해 갔던 도시도, 그 모든 게 조화롭다는 말로 간단히 설명되었다. 서로 베풀고 나누고 사랑하라는 기독교의 가르침은 적어도 화려한 옷차림으로 우아한 음악을 들을 때만큼은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예술은 활짝 꽃을 피웠고, 극적인 명암이 인상적인 바로크의 시대이기도 했다.


빈곤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웠던 시기는 아마도 없었겠지만, 헨리 8세의 통치기 무렵부터 빈곤은 더 이상 불운의 문제가 아니었다. 개인적으로는 도시화가 진행되고 대영제국의 기틀이 마련되었던 15세기에 빈민이 사회적 문제로 표면화되고, 또 대영제국의 영광이 극에 달했던 19세기에 이 문제 역시 극에 달했다는 사실이 흥미롭기만 하다. 굳이 인용하자면, '국민생산의 증가는 그것을 이룩한 사람들의 소득을 감소시키면서 이루어'(페르낭 브로델 지음, 주경철 옮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 까치, p.813)졌다.


풍작에도 도시로 몰려드는 빈민들의 숫자는 계속해서 증가해 갔고, 흉년을 대비하던 구호소는 상설화되었다. 왕과 지배층은 자비롭게도 당장의 한 끼 식사를 베풀었으나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충고 역시 잊지 않았다. 가난을 게으름 탓으로 돌리는 세계에서 자선은 언제나 미적 행위로만 머무를 뿐이다. 빈민들은 게으르다는 이유로 처형대에 올라야 했다. 부의 집중을 가난의 진짜 원인으로 지적하고 신의 가르침에 충실할 것을 요구했던 토마스 모어도 반역으로 몰려 처형을 당했다. <유토피아>는 단순히 어떤 할 일 없는 몽상가가 그려낸 이상세계만은 아니었다. 세상은 아름답지 않다는 말 한 마디로 목이 잘릴 수도 있었던 세계의 어두운 반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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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과 직물업을 되살려서 가난 때문에 도둑이 된 사람, 부랑자들이나 나태한 시종생활을 하다 도둑이 될 것이 뻔한 사람들에게 일거리를 주십시오. 이러한 악폐에 대해 어떤 대책도 강구하지 못하면 도둑을 상대로 하여 정의를 실현한다고 자랑할 일이 못 됩니다. 이 정책은 정의로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의롭거나 현실적이지도 않은 겉치레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젊은이들을 처음부터 잘못 가르쳐서 부패하도록 만들었다면 잘못을 저지르도록 유도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놓고 어른이 되었을 때 그런 잘못에 대해 처벌한다면 도둑을 만들어 놓고 처벌하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 토마스 모어 지음, 김현욱 옮김, <유토피아>, '제1권', 동서문화사, p.24



 

유토피아 사람들은 하늘에 반짝반짝 빛나는 별들이 그토록 많은데 그에 비해 미미한 빛을 내는 작은 돌멩이를 보고 기뻐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또한 자신들보다 질 좋은 양털 옷을 입었다고 해서 더 잘났다고 바보처럼 으스대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양털은 양털일 뿐 그보다 더 훌륭한 것이 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온 세계에서 금과 같이 아무런 쓸모도 없는 물질을, 그것에 가치를 부여한 인간보다 훨씬 더 가치 있게 여기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너무나도 타락한 바보가 단지 우연한 기회에 많은 금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현명하고 선한 사람들을 지배한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유토피아 사람들이 가장 혐오하는 것은, 부자에게 빚진 것도 없고 어떤 의무도 없는데 단지 부자라는 이유만으로 그를 찬양한다는 것입니다. 그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절대로 한 푼도 거저 주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말입니다.

 

- '제2권', p.67

 

 

어쨌든 시대는 변하고 있었다. 아무리 X같고 거지같아도 어쨌든 째깍째깍 돌아가는 내무반의 시계처럼 빌어먹을 역사도 어쨌든 시간을 멈출 수는 없었으니까. 극한의 종교대립으로 불탔던 17세기 전반기가 끝나고, 17세기 후반부터는 드디어 사회적 문제들이 종교의 그늘에서 탈출하기 시작한다. 계몽주의의 정신을 대충 요약하자면, "대충 퉁치고 넘어갈 생각 따윈 하지 말라능. 세상은 조화롭지도, 그다지 보기 좋지도 않다능."이라고 할 수 있겠다. 홉스의 말처럼 세속의 나라는 천상의 나라가 아니었다. 현존질서를 부정했던 반항아들, 존 로크는 일렉기타가 없어 펜을 들었고, 롹스피릿이 없어 이성을 강조했던 계몽주의의 첫 타자였다.

 

큰 틀에서 로크는 홉스의 생각을 거의 고대로 이어받는다. 인간은 평등하고, 노동으로 먹고 살며, 무지하거나 예속되도록 태어나지도 않는다 등 흡사 쌍둥이빌딩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뭔가 다른 게 있으니까 유명해졌겠지? 글타. 결정적으로 통치자에 대한 태도가 달랐다. 어찌되었든 홉스까지는 그래도 "쫌! 잘 좀 해봐염"이라는 기대가 있었다면, 로크에게는 그런 거 없다. 왕정복고로 새로이 들어선 왕에게서 도통 희망을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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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자는 얼마든지 해악을 가할 수 있는 권력을 가졌기 때문에 그의 모든 행위는 정당한 것이 된다. 어떻게 하면 침해와 해악으로부터 몸을 지킬 수 있을까 하는 물음 자체는, 매우 강대한 힘을 휘두르며 그것을 행사하고 있는 측에 있어서는 음모와 반란의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이것은 마치 모든 인간이 자연 상태를 포기하고 사회에 들어가면서 한 사람을 제외한 모든 사람은 법의 구속하에 있어야 하지만, 한 사람만은 자연 상태의 자유를 누리고 권력을 통해 증강하고 독단적으로 행동해도 죄에 붙여지지 않는다고 합의하는 것과 다름 없다. 이것은 인간이 스컹크나 여우에게 화를 입지 않도록 주의를 하면서도 사자에게는 잡아먹혀도 만족하고 오히려 안전하다고 생각하라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이다.

 

- 존 로크 지음, 김현욱 옮김, <통치론>, '제7장 정치사회 또는 시민사회에 관하여', p.351

 

 

일방통행으로 일관하던 왕이 청교도 혁명으로 목이 잘린 후에도, 화끈한 금욕주의와 중상주의를 밀어부쳤던(말로만) 공화정의 군사독재가 짧게 마무리된 후에도,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여전히 가난했고 무시받았다. 왕권은 신이 내린 것이라는 주장이 다시금 반복되었으며, 오랜 혼란에 지쳐 평온을 갈구하던 기대는 빠르게 사그러들었다. 현실이야 어떻든 '국왕님은 신이 내리신 분♥'이라고 열심히 똥꼬를 빨던, 아니 옹호하던 이들에게 로크가 보인 반응은 시크했다. 씨바, 조까.


마키아벨리의 말대로 세속의 나라는 세속의 통치를 받는다면, 홉스의 말대로 세속의 권력이 구성원들의 안전과 복지를 위해 위임된 사회계약이라면, 왜 꼭 왕이나 혹은 절대적인 권력자에 의해 통치가 이루어져야만 하는지를 그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람들의 삶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권력은 전제에 불과했다. 그는 왕권 옹호론자들에게 간단하면서도 치명적인 반문, "그래, 왕권이 신으로부터 내려온다고 치자. 근데, 왕이 언제부터 있었는데?"라는 질문으로 <통치론Two Treatises for Government>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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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크는 홉스가 "자연상태=전쟁상태"로부터 쌓아올린 사회계약의 기초공사부터 다시 다져올리기로 마음먹는다. 그에게 자연상태란 오늘날의 개념으로는 원시적 공산주의에 가깝다. 애초에 인간은 평등하고도 자유로웠다. 누구에게나 자기 스스로를 보호할 권리가 있기에 자연법은 최초의 계약이 아니라 본래부터 존재하는 법칙이었으며, 자연상태에서는 각자가 자신의 정의를 지키는 집행자다.

 

그런데 화폐의 등장으로 인해 자연상태의 평화는 깨지게 된다. 화폐는 소유물의 축적을 가능케 했고, 자연의 부패는 더 이상 매일의 필요로 소유물을 제한할 수 없었다. 로크는 화폐 그 자체를 불평등의 원인으로 보았다. 화폐는 타인의 소유물에 대한 탐욕을 발생시켰으며, 이에 따라 자연상태는 전쟁상태가 되었다. 불평등으로 인해 더 이상 각자가 자신의 정의를 수행하기란 불가능해졌고, 나의 소유물을 빼앗거나 혹은 나를 지배하려는 누군가의 적의를 방지할 장치가 요구되었다. 또한 사람들에겐 서로 교류하고 협력해야 할 필요도 있으며,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사회가 이루어진다.

 

따라서 사회계약을 통해 탄생한 권력에게는 구성원의 생존에 필수적인 소유물을 지켜줘야만 하는 책무가 있다. 소작농들이 '자발적 계약'으로 땅을 빼앗기고 농노나 빈민으로 전락한다던가, 힘없는 약자라고 해서 아무렇게나 집에서 쫓겨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거다. 개발을 빌미로 거주민들을 쫓아낸다던지, 국익이랍시고 치적이나 쌓으라고 권력이 존재하는 게 아니다. 로크는 사회의 안전과 복지가, 갑질을 못하게 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고 본다. 즉, 그에게 소유권이란 탐욕의 억제를 의미한다.


 

내가 감히 주장하고 싶은 것은, 화폐를 발명하고 묵시적 합의로 그것에 가치를 두는 사람들이 더 큰 소유물과 그에 대한 권리를(동의에 의해) 도입하지 않았더라면, 소유에 대한 똑같은 규칙, 즉 모든 사람은 자신이 이용할 수 있는 만큼 가져야 한다는 규칙은 아무에게도 고통을 주지 않고 여전히 세계에서 통용될 수 있었을 것이다.

 

- '제5장 소유권에 관하여', p.313

 


(따라서) 군주나 귀족은 분명하게 신민 사이에 소유물을 규제하는 법을 만들 권력을 가졌더라도 신민 자신의 동의 없이는 그 소유물의 전부뿐 아니라 일부조차도 마음대로 징수할 권력을 가질 수 없다. 왜냐하면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신민에게는 사실상 소유물이 전혀 남아 있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제11장 입법권의 범위에 관하여' p.386

 

 

그럼 누가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로크의 경우 사회계약은 불평등에서 비롯된다는 입장이었기에, 홉스처럼 동등한 개인들의 합의에 의한 대표자로 곧바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최초의 군주를 아버지(로크는 아버지라는 단어를 부모라는 단어와 혼용해서 사용하는 편이다. 그럼 어머니는?이라는 반론과 더불어 부권보다는 친권이 보다 적합한 용어라고 지적하는 대목도 있고)로 가정한다. 부모에게는 자녀들을 양육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자녀들에겐 부모의 말을 따르고 존경해야 할 의무가 있다. 부모는 자녀들간의 다툼을 조정하기에 적합한 대상이었고, 이러한 관계가 세월에 따라 한 사람에게 권력을 위임하는 관습으로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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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모, 국부 드립으로 섣불리 결론을 내리지는 마시길. 로크는 롹스피릿 충만한 반항아였다니까. 미드 <로스트>에서 괜히 아버지와의 사이가 개판인 인물(하긴 죄다 그렇긴 하지만)에게 로크의 이름이 붙여졌던 게 아니었더랬다. 진짜루~

 

일단 부모-자녀 간의 관계를 불평등의 관점으로 접근한다는 것부터가 심상치가 않다. 즉 자녀들은 부모의 양육을 받는 존재이자 동시에 지배를 받는 존재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녀들이 부모의 행복을 위해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더욱 중요하게는 소유물도 아니다. 친권은 오로지 교육과 보호를 위한 목적으로 한정되며, 자녀들이 성인이 되는 순간 효력을 상실한다. 만약 부모가 절대적이면서도 독단적인 지배권을 행사코자 한다면, 자녀들은 단순히 노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자녀들은 성인이 되어 부모들과 동등한 인간이 된다. 왜냐하면 인간은 애초에 평등하고 자유로운 존재이니까. 따라서 부모는 성인이 된 자녀들에게 합당한 존경 이상의 것을 요구할 수는 없다. 자녀들의 소유물과 처분권에 대해 아무런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것은 물론, 결정과 판단을 강요하거나 명령을 내려서도 안 된다.

 

 

아버지의 자식들에 대한 지배력은 일시적인 것이며, 자식들의 생명과 소유권에까지는 미치지 못한다. 그것은 자식들이 미성년일 때의 연약함과 불완전에 도움을 주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그들의 교육에 필요한 규율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 자식들이 물질의 결핍으로 인해 죽을 위험에 처하지 않는 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기 자신의 소유물을 처분해도 좋으나 그 권력은 자식들의 생명, 자식들 자신의 근로, 다른 사람의 기부로 자식들의 것이 된 재산에까지는 미치지 못한다. 또한 자식들이 분별력이 생기고 참정권을 가질 나이에 달하면 그들의 자유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때 아버지의 지배권은 끝이 나며, 그 이후에는 다른 사람의 자유와 똑같이 자식의 자유도 자신의 뜻대로 처리할 수 없다. 그것은 절대적이거나 영구적인 지배권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 '제6장 부권에 대하여', p.332

 

 

로크는 이 논리를 그대로 밀고 나가서, 최초의 군주는 아버지였으나 그(녀)의 권력은 성인이 된 자녀들의 동의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설령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인류가 그들의 자손이라 하더라도, 권력은 언제나 새로이 성인이 된 자녀들의 동의가 필요하다. 당연히 왕과 귀족들은 세습을 이유로 자신의 권력을 정당화할 수도 없고, 합의에 의해 선출되었다고 해서 그 후임자를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국민의 자유에 가장 큰 위협이 되는 것은 훌륭한 군주의 치세(왜냐하면 다음 왕도 그럴 거라고 믿게 하기 때문에, 그리고 훌륭한 선례도 얼마든지 자의적으로 이용될 수 있기 때문에)'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로크는 권력이 전제에 빠져들 위험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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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권력은 분립되어 의회(입법부)가 왕(행정부)의 독단을 견제하고, 세상의 불평등을 완화시켜야 했는데, 아시다시피 중간계층이 기득권이 되는 순간 "세상은 왜 불공평한가"라는 질문은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그냥 복잡할 뿐인 설명으로 바뀌게 되었다. 혈통을 앞세운 귀족들은 능력을 앞세운 엘리트주의자로 바뀌었을 뿐이고, 가난의 이유에는 게을러서에 무능력이 대치 혹은 추가되었고, 세상은 이윤 추구 아래 다시 아름다워졌다. 씨바. 하지만 아직은 좀 더 훗날의 이야기.

 

 

(아니) 아무리 법과 선임된 재판관에게 호소할 길이 열려 있어도, 재판이 왜곡되고 법이 공공연히 날조되고 일부 당파 사람들의 폭력과 가해 행위가 옹호되거나 불문에 붙여지는 곳에서는, 전쟁 상태 이외의 것을 상정하기란 곤란하다. 적어도 폭력이 행사되고 위해가 가해지면, 그것이 재판을 위해 임명된 사람들의 손에 의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리고 또한 법의 이름을 빌려 법의 체제를 이용해 분식을 해도 역시 그것은 폭력이며, 위해한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 '제3장 전쟁 상태에 관하여', p.301

 


장남이 아버지 자산의 가장 큰 부분을 상속받는다고 해서 그에게 동생들의 몫을 얼마든지 빼앗을 권리가 있다고 한다면 그 주장은 합당한 것일까. 또는 어떤 한 지방을 몽땅 소유하고 있는 부자가 그것을 이유로 가난한 이웃의 집이나 정원을 멋대로 빼앗을 권리가 있다고 한다면 그 주장은 합당한 것일까. 아담의 자손들이 대다수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권력과 부를 정당하게 소유하고 있다고 해도 그것으로 아무 권한도 없이 다른 사람의 소유를 강탈하거나 억압해도 좋다는 구실을 만들지 못하며, 더구나 그 이유도 될 수 없다. 그로 인해 도리어 죄가 더욱 무거워지게 될 것이다.

 

- '제18장 전제에 관하여', p.432


 

불평등을 용인한다는 점에서 로크는 분명 강경한 인물은 아니었으며 방법에 있어서도 온건한 편이었다. 재산이든 권력이든 집중이 문제이며, 이를 어떻게 개선해나갈 수 있느냐가 그의 가장 큰 관심사였다. 기득권은 이미 가진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이를 제어해야 할 권력은 엉뚱하게도 약자들에게만 화살을 겨눌 뿐이었다. 로크의 주장은 간명하다. 기득권의 재산이 보호되어야 한다면 비기득권의 재산 역시 보호되어야만 하고, 따라서 권력이 기득권을 편들지 못하도록 견제해야 한다는 거다. 정부건 의회이건 자기네들의 이익만 챙긴다면 생각을 달리 해야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1688년 명예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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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이다. 전제군주만 전제를 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자신을 위해서만 행동하는 이는 누구나 전제자이다. 로크에게 전제란 갑질과, 갑질을 옹호하는 권력에 다름 아니다.

 

 

분명 개인의 자존심이나 야심, 포악성이 때로는 국가에 커다란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당파싸움이 국가나 왕국의 생명을 단절시키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재해는 국민의 방종과 지배자의 합법적인 권위를 무시하려는 그들의 욕구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았는가 아니면 지배자의 오만불손한 태도, 즉 국민에 대해 자의적인 권력을 획득하고 행사하려는 노력에서 나온 경우가 많았는가? 다시 말해 맨 처음 혼란을 불러일으킨 것은 압제인가 아니면 불복종인가? 이 물음에 대한 판단은 공정한 역사에 맡기고 싶다.

 

- '제19장 통치의 해체에 관하여', p.450-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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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보리삼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