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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6. 26. 목요일

논설우원 파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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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토의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18]






지난 시간에 소개한 SF 단편 <30 초>를 안 읽으신 분은 일단 그것부터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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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 쯤이다.


간암 말기로 투병 중이던 친지의 병문안을 갔는데, 그 분이 돌아가시게 되어 본의 아니게 직계 가족들과 함께 임종을 했다. 이전에도 친척들 중 돌아가신 분은 많지만 그 자리에 직접 있었던 적은 그 때가 처음이다.


침대에 누워 있던 그 분 옆에는 모니터에 그래프를 그리는 장치가 붙어 있었다. 영화에서 보던 심장 뛸 때마다 뚜-뚜- 하는 기계 비슷했지만 이것저것 좀 복잡하게 디스플레이 돼 있었는데, 그 기계가 규칙적인 모습을 보이다가 갑자기 랜덤하고 복잡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여하튼 움직임은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아직 그 분이 살아 계신 줄 알았는데 잠시 후 의사가 들어와서 이미 돌아가셨다는 거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그 화면을 가리키며 아직 움직임이 있다고 항변했지만 의사는 "저건 무의미한 노이즈일 뿐입니다."라며 사망시간을 체크하고 병실을 나갔고, 우리는 그 분이 떠나는 순간을 알지 못했다는 생각에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단편 <30 초>의 아이디어는 이 경험에서부터 비롯됐다. 죽음의 순간은 과연 언제였으며, 그 ‘무의미한 노이즈’는 대체 뭐였을까?


그 랜덤해 보이는, 하지만 활발해 보이던 신호들은 정말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었을까. 불규칙해 보이는 패턴이라도 확대해 보면 뭔가 의미있는 모양이 나타나지 않을까. 혹시 뇌에서 뭔가 활동이 진행되고 있는 건 아닐까. 가족들과 함께 애도하는 와중에도 우원의 머리 한 구석에서는 그런 생각이 맴돌았다.


생각해 보면 아마 그 기계는 근육에 남은 약한 전기 신호 같은 것을 포착하고 있었을 뿐일 거다. 하지만 그 일을 계기로 한 번 떠오른 생각은 사라지지 않았고, '몇 년 후에는 언젠가 이런 이야기로 글을 써 봐야겠다'라는 맘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이렇게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쓰게 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우원이 픽션 작가가 아니라는 점이다. 십여 년간 수백 편의 글을 썼지만 99%가 논픽션이나 칼럼이었고 픽션은 의도적으로 쓰지 않았다. 당시의 내 정체성과 뭔가 맞지 않는 것도 같았고, 여하튼 이런저런 이유로 ‘때가 되면’ 저절로 쓰게 되지 않겠냐는 생각으로 미뤄 둔 거다.(지금이 그 때인 건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또 한 가지 이유는 과학적인 문제다. 이 소재는 "죽음 직후의 뇌파 그래프를 잡아 늘이면 뭔가 패턴이 보인다"는 가정에 근거하는데 의사들이 "그런 현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하면 사이언스 픽션조차 아닌 그냥 허황된 이야기가 되고 만다. 이렇게 당장에 부정될지 모를 현상을 마음대로 가정해서 스토리를 쓰는 건 별로 내키지 않았다.


그러다가 불과 얼마 전, 우원은 우연히 한 논문을 발견하게 된다. 2013년에 PNAS, 즉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에 실린 거니 신비주의류의 유사과학은 절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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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일부 

원본 전체는 아래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www.pnas.org/content/early/2013/08/08/1308285110.full.pdf


머, 복잡한 이야기니 간단히 정리를 하자면 이렇다.



1. 실험을 위해 여러 마리의 쥐의 뇌에 전극을 삽입한다. 이 불쌍한 쥐들의 뇌는 죽기 한 시간 전부터 죽은 후 30분까지 모니터된다.

2. 약물을 투입해 쥐들을 마취시키고, 이어 사망에 이르도록 한다. 

3. 뇌파(EEG)는 아래와 같이 측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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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king’은 멀쩡히 살아있을 때, ‘anesthesia’는 마취 상태,

그리고 CA 를 기점으로 ‘cardiac arrest’는 마지막 심장 박동 후, 즉 죽은 다음을 의미한다. 

아래 숫자는 초(second)다.


4. CA 이후부터는 의미있는 활동이 없는 것 같지만, 확대해 보면 아래와 같이 실험체 모두에서 비슷한 움직임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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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1은 죽음 직후부터 2초대, CAS2는 7초대, CAS3는 17초대를 나타낸다. 30초대인 CAS4가 되면 더 이상 의미있는 액티비티는 감지되지 않는다.


5. 위를 분석하면 CAS1에서는 130Hz대의 고주파 활동이 뇌 전역에 걸쳐 전개되고, CAS2에서는 저주파대로 이동한다. CAS3는 35~50Hz의 중역대로 이어지는데, 이런 다양한 영역에서의 뇌 활동은 심장이 멈춘 후에도 뇌가 꽤 긴 시간 동안 ‘깨어 있는’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상태에 진입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6. 특히 가장 늦게 나타나는 CAS3 영역의 중역대 신호는 단지 깨어 있는 수준이 아니라 평상시보다 더욱 ‘고양된’ 의식 상태를 드러내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논문의 저자들은 이 상태가 소위 ‘임사체험’의 초실제적 경험(Realer-than-real mental experience)을 반영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7. 다만 쥐의 실험이기 때문에 인간의 경우 어떤 양상으로 나타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대충 이런 이야기고, 이 논문이 바로 우원으로 하여금 그 해묵은 소재를 갖고 스토리를 써 나갈 명분을 제공한 셈이다. 실은 우원의 상상과 너무 잘 부합되는 연구라서 깜짝 놀랄 정도였다. 물론 저 짧은 시간 동안 천 년이 넘는 세월을 경험한다는 소설의 이야기는 연구 결과와는 무관하지만, 픽션이라는 게 드라마틱한 재미가 있어야 하니 그런 정도 과장은 필요했다.


그럼 이제 궁금해진다. 심장 정지 직후 ‘실제’로 벌어지는 일은 과연 무엇일까.


물론 이제부터는 상상과 추론의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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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받은 자의 승천>

히에로니무스 보쉬, 15세기 말 추정


일단 쥐의 실험에서 저런 결과가 나왔다면,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큰 인간의 뇌에서 적어도 저것보다 못한 결과가 나오진 않을 것 같다. 이를 검증하기 위해선 소설 속에서처럼 실제로 죽는 사람의 뇌를 실험해야 하는데, 특성상 쉬운 일은 아니지만 언젠가 지원자가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하지만 이때는 지원자가 정말 죽어가는 상황이기 때문에 저 뇌 활동의 결과 본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정확하게는 어떤 것을 주관적으로 경험하게 되는지 증언할 사람이 없어져 버린다. 그래서 대신 등장하는 게 연구에서도 제기된 ‘임사체험’ 증언이다.


하지만 임사체험의 맹점 중 하나는 그들이 겪었다는 사후의 경험이 정말로 심장 정지 후에 일어나는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소설 속에서처럼 그 순간의 뇌파를 영상으로 만들 수 있으면 모를까, 그게 아닌 한 실은 죽음 직전에 만들어진 환각일 수도 있다. 나아가 현대 의학에서는 심장이 멎는 순간을 명확한 죽음의 지점이라고 규정하지도 않는다. 그렇게 따지면 심폐소생술로 살아난 사람들은 전부 ‘부활’한 거다.


이렇게 죽음의 순간이라는 게 명백하지 않은 만큼, 임사체험의 경험들이 정말 존재한다면, 그리고 그게 진짜 내세를 갔다 온 것이 아니라고 가정한다면, 그 철학적 가치는 그 경험이 사전과 사후 어느 지점에서 벌어졌냐보다는 그 속에서 시간 압축 효과가 실제로 나타나느냐는 점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 단 30초 동안 경험하는 내세 따위는 생리학적인 측면 외에는 아무 의미도 없기 때문이다.


임사체험 중에는 빛의 터널을 통과해서 가족 친지들을 잠시 만나고 돌아왔다는 이야기들도 있지만, <나는 천국을 보았다>라는 책을 쓴 하버드대 신경외과의사 이븐 알렉산더의 경우처럼 아주 긴 주관적 시간에 걸친 경험을 술회한 경우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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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7일 간에 걸친 뇌사 상태에서 ‘겪은’ 내세 경험담들은 읽어볼 만하지만

그 근거와 관련해서는 "내가 신경외과 의사라서 잘 아는데"

라는 주장이 반복해 등장할 뿐 기대했던 과학적인 접근은 거의 없다.


실제로 시간 압축이 일어난다면 소설에서 박사의 입을 통해 이야기했듯 상황은 좀 미묘해진다. 그 압축의 효과가 충분히 크다면 어떤 의미에서는 내세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건 객관적 세계가 아니지 않냐고 항변하겠지만, 우리가 ‘이승’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도 감각기관을 통해 입력되는 전기신호를 뇌에서 적당히 해석한 주관적인 것이다. 그래서 이 삶 자체도 환상일 가능성마저 존재한다.


쥐에서 인간에 이르는 생물들의 뇌에 실제로 이런 기능이 있다면 이 장치는 죽음의 순간에 유독 대량 분비되는 강력한 환각계 호르몬인 디메틸트립타민(DMT)과 관련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렇다면 이 뇌내 환각제가 진화 과정 속에서 죽음의 공포와 허무에 대한 일종의 안전장치로서 사후세계를 구현하는 역할을 맡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곧 죽는 상황에서 그런 장치가 무슨 소용이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사실 그 효용은 우리 문명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심장 정지 후 되살아나 사후세계를 증언해 온 동서고금의 많은 경우들을 통해 내세와 영생에 대한 구체적인 상을 인류의 관념 속에 성공적으로 심어 왔기 때문이다.


이런 장치가 적자생존에 유리하다면 아메바에서부터 인간을 낳은 진화의 강력한 힘이 만들어내지 못할 이유는 없다. 어쩌면 그 덕에 인간과 쥐, 그 외 많은 생물들은 죽음에 대한 적당한 두려움 속에서 한편으로는 무모한 모험과 희생에 용기있게 나서서 지금의 진화 단계에 이르렀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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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메틸트립타민 화학식.

우원이 상상한 물질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며

우리 뇌 속에서 분비되고 있다.


물론 진실이 뭔지 우원은 모른다. 뇌 속에서 저런 현상이 정말 벌어지는지 아닌지, 만약 벌어진다면 그게 바로 인류가 그려온 내세의 실체인지, 혹은 진짜 내세는 따로 존재하는지, 그 무엇에 대해서도 확신을 가질 수는, 당연히 없다.


다만 저런 것이 실제로 동작하고 있다면 우원에게는 개인적으로 좋은 뉴스로 받아들여진다. 본질이야 뭐든 내가 그걸 진짜처럼 경험하고 느낀다면 그것만으로도 죽음 후 아무 것도 없는 것보다는 낫지 싶어서다. 어차피 이승이 정말 존재하는지도 확신하지 못하는 게 우리 인간들인데, 저승이라면야 저 정도 모호해도 괜찮은 거다.


만약 그런 거라면, 때가 왔을 때 내 뇌와 디메틸트립타민이 이 글을 기억하고 있을 우원을 확실하게 속여 주길 바랄 뿐이다. 이 모든 이론이 인간의 얄팍한 과학의 착각이자 오류였고, 호르몬의 화학작용과 뉴런활동이 만들어낸 그 내세가 실은 진실이라고 철석같이 믿게 될 만큼 말이다. 아니면 계속 뭔가 오류를 찾으려 들 테고, 그러다보면 스스로의 환상을 파괴할지도 모르고, 그러면 30초 혹은 수백, 수천 년의 저승살이 재미를 못 누리게 될 테니.


...넌 할 수 있어. 뇌.






 논설우원 파토

트위터 : @patoworld


편집 : 홀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