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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26. 금요일
Ath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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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서 현장에 도착하면 6시였다. 아침밥 먹고 아침 체조하면 7시다. 7시에 12층, 13층까지 걸어 올라간다. 해도 뜨지 않아 껌껌한데 일을 시작했다. 폼 핀을 뽑고 빠루로 폼을 뜯어내는데 하다 보면 감이 와서 눈에 뵈는 것이 없어도 빠루가 들어가는 자리를 찾아낸다.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좆빠지게 일했다. 몸이 버티지 못해 밤새 끙끙 앓아도 새벽 5시 30분이 되면 어김없이 일어났다. 그래 봐야 대학 수업료는 턱도 없었다. 그래. 종종 비 와서 쉬는 날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기도 했다. 종종 비 오는 날 데마찌 나면 식장산 아래 가든에서 개고기에 소주 마시며 하루를 진탕 낭비하기도 했었다.

억울했다.
 

친구가 떨어져 죽었다. 아파트 모델 하우스 짓는데 지붕을 올리는 나무가 얼었다가 해가 들어 녹았다. 그 나무에 못질해 지붕을 올리는데 나무에 옹이진 자리가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왼쪽에서 못을 박고 친구는 오른쪽에서 못을 박으며 오비끼 하나씩을 대못으로 박고 그것을 발판 삼아 지붕을 올렸다. 탕탕탕


"다 박았냐."


"어. 다 박았다."


다음 나무를 받아 다음 칸에 데고 좀 전에 박아 놓았던 나무를 발로 디디고 일어서 다음 나무에 못질하려던 순간이었다. 친구가 못질했던 나무에 발을 디디자 나무가 부러졌다. 20m 아래로는 아무것도 없었다. 어! 하는 순간 나무가 부러지고 친구가 그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저 아래 바닥에는 아시바파이프가 가득 쌓여 있었다. 친구는 아시바 더미로 떨어졌다. 아! 할 때 손을 내밀었지만, 손은 닿지 않았다. 친구가 떨어지는 것을 그대로 지켜보고 있었다. 친구가 아시바 쌓인 바닥으로 떨어지는 순간 눈, 귀, 입, 코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사람들이 뛰쳐 왔다.
 

친구는 하이바를 쓰지 않고 있었다. 그런 꼴을 많이 보았던 사람이 하이바를 망치로 쳐서 깨고 친구의 머리에 씌웠다. 20m 위에서도 피가 흐르는 것이 눈에 선하게 보였다. 다리부터 시작해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 자리에서 내려가려면 지붕에서 뒷걸음질 치고 다시 H빔을 타고 뒤로 10m 를 뒷걸음질 친 뒤 다시 10m 아래로 H빔을 타고 내려가야 했다.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평소에는 20cm 너비의 H빔 위를 겅중겅중 걸으며 철근과 목재를 들어 날랐는데 한 발자국도 발을 내디딜 수 없이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H빔을 붙들고 바들바들 떨었다. 내가 오른쪽에서 못질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떨어져 죽은 놈이 내가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아직 숨이 붙어 있기를 바랐고, 가벼운 뇌진탕이길 바라기도 했다. 며칠 후에 병문안을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몸을 바들바들 떨며 땅으로 내려와 죽지 않고 살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구토가 밀려 나왔다. 아침에 먹었던 빵과 바나나우유가 곤죽이 되어서 노리끼리하게 흘러나왔다. 사람들은 "이제 일 못 하게 되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미리 점심이나 먹자고도 했다. 젊은 놈이 조심성이 없다며 핀잔을 늘어놓는 사람도 있었다. 친구는 세 시간 후에 죽었다.

억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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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들 밥을 해 먹이며 주말이 되면 출장 뷔페를 나갔다. 아침, 점심, 저녁을 해 먹였다. 새벽 5시에 나와 조리지도를 했다. 10시가 되면 식재료를 탑차에 싣고 학교로 향했다. 10시 30분부터 밥을 준비해 12시부터 배식을 했다. 1시 30분까지 배식을 하고 2시 30분부터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오후 6시가 되면 배식이었다. 아침은 200인분, 점심은 500인분, 저녁은 250인분이었다. 목요일이 되면 출장뷔페 일정이 잡혔다. 출장뷔페는 보통 토요일, 일요일 점심과 저녁 식사였는데 적으면 500인분, 많으면 2,000인분의 음식을 만들어야 했다. 조리인원은 500인분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에 2,000인분의 음식을 만들 때는 며칠간 밤을 새웠다. 출장뷔페 음식은 목요일 오후부터 준비하기 시작한다.

 

두 가지 일이 겹친다. 목요일 오후부터 일요일 저녁까지는 쉴 틈이 없다. 학생들 밥을 준비하면서 케이터링 준비도 해야 했다. 회사에서는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호텔조리과 학생들을 알바로 기용했다. 책으로는 배웠고 칼질은 익숙지 않은 어린아이들이었다. 찬모 두 명에게 알바생들을 보조로 배치하고 밤새도록 음식을 준비했다. 하루도 쉴 수 없었고 주말이면 주말마다 밤을 새웠다. 그러다 보니 월급은 많았다. 연봉이 6000을 넘었다. 하루도 쉬지 않았고, 주말마저도 밤을 새운 보답이었다.


어느 날인가 3,000인분의 음식을 준비해야 했다. 한나라당 모 의원의 신년회였다. 좆빠지게 음식을 만들어주고 그날로 사직서를 냈다. 

억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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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0시간을 운전하고 200만 원을 준다는 운수회사에 들어갔다. LCD 용액과 반도체 세척제를 운반하는 일이었다. 빨리 달려야 10시간이었다. 회사에서는 기름값을 아끼면 그 기름값의 50%를 지급한다고 했다. 80km/h로 달리면 10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를 70km/h로 달렸다. 매일 14시간을 운전하고 60만 원 정도의 유류절감비를 받았다. 겨울에 눈이 내리자 일하는 시간은 평균 16시간으로 늘어났고 길이 막히면 24시간 이상 운전을 해야 했다. 길이 막혀 도로에서 허비하는 기름이 많아지다 보니 겨울에는 유류절감비를 받지 못했다. 돈이 부족했다.

 

회사에서 돈 되는 일감이 있다며 제안을 했다. 여수에서 재천까지 반도체 세척제 폐기물을 운반하면 한 달에 300만 원과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얘기였다. 두 번 고민하지 않고 응했다. 전주에서 새벽 5시에 출발해 여수에 8시에 도착했다. 폐기물을 차에 담고 11시에 출발하면 재천에 오후 4시 도착이었다. 시멘트 공장에 물건을 하차하면 오후 7시였다. 7시에 출발해 전주에 도착하면 밤 11시. 가장 빠른 순번일 때의 얘기고 여수에서 늘어지고 재천에서 늘어지면 집에 도착하는 시간은 새벽 2, 3시였다. 차에서 잠깐 자고 다시 새벽 5시에 여수로 출발했다. 석 달 만에 몸이 망가졌다. 일이 고되기도 하지만 폐기물 상·하차 작업을 기사가 해야 했다. 손으로 만지고 옷에 묻고 신발에 묻어 운전석으로 폐기물이 묻어 들어왔다. 매우 독성이 강한 물질이었지만 안전 장구는 없었다. 구토가 일고 몸에 알 수 없는 두드러기가 일어났다. 몸은 축축 늘어졌고 운전대를 잡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르러서 사직서를 썼다. 

억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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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해서 그랬다. 영화 <카트>를 보다가 염정아의 아들이 "억울해서 그랬어"라고 말할 때 꺽 꺽 울었다. 벽돌이라도 한 장 집어 던질걸. 억울해서 지금 이 짓을 한다. 나도 한때는 꿈 많은 소년이었고, 지금도 꿈을 꾸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억울해서 그랬다. 당신들의 노예가 아니라고. 당신들한테 밥을 빌어먹지 않아도 내 몸뚱어리 하나로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억울해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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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hom

편집: 나타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