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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월급쟁이는 마음을 비우면 편하다

 

조세 전문지의 사장과 면담하던 순간이 잊혀지지 않는다. 사장실에 놓인 회의용 탁자에 마주 앉아 면접을 봤다. 사장은 땅딸막했으며, 가운데 머리가 휑하고, 키에 비해 얼굴이 컸다. 얼굴이 산유국이라도 된 듯 굉장히 기름기가 돌았다.

 

“자소서를 잘 봤는데, 그동안 거쳐 온 회사들이 왜 망한 거 같아요?”

 

“인터넷이 매체가 발달하면서, 사람들이 돈 주고 신문을 안 사보는 시대가 되었잖아요. 굳이 신문을 안 보더라도 필요한 정보는 쉽게 얻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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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채 맺지도 못했다. 그 후로부터 사장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사장은 코 한참 아래로 끼고 있던 돋보기까지 빼서는, 시선은 필자가 아닌 다른 허공을 응시한 채 20분 넘게 자기 이야기를 했다. 내용은 국내 경제 이야기였다. 주로 한국 경제 신문에서 그날 나온 이야기, 그리고 별로 기억에 남지 않는 사장 자신의 이야기였던 거 같다.자세한 내용은 딱히 기억에 없다.

 

사장의 말이 10분을 넘어가기 무섭게 필자의 영혼은 유체이탈을 했다. 말을 똑같은 톤으로 계속 이어나가는, 일정한 방향성이 없고 이 얘기했다가 저 얘기했다, 삼천포로 한참을 빠져 그대로 끝내버리는 스타일이었다. 자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언제 출근할 것이냐’고 물었다. 빠르게 출근이 가능하다고 하니, 밖에 있는 총무팀 이 과장을 불러 필요한 서류와 자세한 내용을 설명해주라고 했다.

 

과장이라기엔 조금 젊고 작은 여자 직원이 복스런 미소를 띠고 들어오자 사장은 나가버렸다. 과장은 신체검사 증명서와 이전 회사 재직증명서, 이력서와 최종 학력 증명서를 준비해오라고 했다. 보건소 가서 신체검사도 해야 했기에, 이틀 후에 출근하겠다고 하고는 면접을 마치고 나왔다.

 

감쪽같이 가슴을 짓누르고 있던, 모든 무게들이 한꺼번에 사라졌다. 세상의 모든 근심들이 없어졌다. 학교도 종강했기에 다시 학교 도서관으로는 가기 싫었다. 면접을 오전 10시에 봤기 때문에 면접을 마치고 나왔을 때도 아직 낮 12시가 채 되지 않았다. 모처럼 가볍게 정장 차림으로 홍대 거리를 걸었다.

 

참 단순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느냐 없느냐는 간단했다. 당장 직장이 있느냐 수익 활동을 하느냐였다. 직장과 직업이 운명처럼 한 사람의 인생 거의 전부를 좌지우지했다.

 

어쨌든, 출근했다. 월요일도 아닌 수요일이 첫 출근 일이었다. 오전 8시 출근인데 새벽 5시에 일어나 준비하고 나와 회사 근처에 도착하니 7시 전이었다. 여름이라 새벽 5시가 조금 넘으니 날이 훤했다.

 

사옥은 3층 양옥집을 개조한 곳이라 은근히 마음에 들었다. 주차장도 크게 있었고, 주변 환경이 좋았다. 홍대 상상마당과 상수역으로 통하는 딱 메인 거리고 과거 출판사가 많았던 동네였다.

 

편집국 문을 열고 들어가니, 50대 중반의 아저씨와 머리가 벗겨진 중후하지만 알고 보니 조금 젊은 남자가 책상을 들고 닦고 하다 반겨주었다. 50대 중반의 아저씨는 국장이었고, 머리가 벗겨진 중후하지만 알고 보니 조금 젊은 남자는 연배는 필자보다 한 살 어린 부장이었다. 부장은 영업을 담당했다. 셔츠와 양복, 손목시계 등이 죄다 명품이었다.

 

 

 

2. 가족 같은 회사는 가장 ‘졷’같은 회사

 

제대로 시스템이 갖춰진 회사에, 나름 언론사 소속 기자라고 할 수 있는 그런 기사를 쓰리라고 애초부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이곳에 온 목적은 월급쟁이였다. 월급이 밀리지 않고 나오고 어느 정도 회사가 재정적 안정성만 있으면, 학위 과정을 마칠 때까지 대출금 갚으며 생활비 마련하면서 버틸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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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부장 옆 책상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기자들은, 특히 언론사는 기자들에게 제공되는 컴퓨터가 유일한 작업 도구인데 데스크탑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의 컴퓨터가 늙은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를 내면서 작동했다. 모니터는 손바닥만했고 인터넷 창을 열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시간이 한두 시간 정도 지나자 대충 사람들이 하나둘씩 출근을 했다. 오전 10시쯤이 되자 면접 때 본 사장이 편집국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와 ‘자 좀 앉아 보입시다!’하는 것이었다. 모두 하나둘씩 사무실 가운데 있는 회의 탁자에 앉았다.

 

사장은 가장 상석에 앉아, 눈동자는 허공을 바라보면서 한창 연설을 해댔다. 핵심은 그날 나온 조간들 중에서 빠졌거나 다루지 못한 기사들이 있으면, 온라인판으로 ‘우라까이’를 해서 기사를 올리란 것이었다. 그리고는 무슨 말을 했는지 상당히 많은 말을 했는데, 정리 안 되는 말들을 자기 혼자 한참 쏟아내다 나가버렸다.

 

구성원들이 몇 안 됐는데, 나름 서열 체계는 있었다. 나이가 70이 훨씬 넘은 남자들이 주필, 편집장이라고 있었고 또 국장이 있었다. 차장이라는 젊은 여자와 편집판을 앉히는 젊은 여자 편집기자가 있었다.

 

마침 첫 출근하는 날이 주간지 마감 날이었다. 첫날 출근해서, 필자는 또다시 사장 방으로 불려 들어갔다. 현대증권에서 증권 계좌를 개설하라고 했다. 그 계좌를 개설해 주식을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깔아 매일매일 주식 현황 기사를 쓰라고 했다. 더하여 관보를 꼭 챙겨 보라는 말까지 곁들였다.

 

회사에서 발행하는 신문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줬다. 매일매일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해야 할 온라인 기사, 주간지, 날마다 회원사들에게 팩스나 이메일로 발송되는 A4용지 두 장 분량의 매일 뉴스(일종의 증권가 찌라시와 같은 세정가 찌라시)가 있었다. 책도 있었는데, 국세청 조직도와 전화번호가 실린 책이었다. 일 년에 두 번 정도 국세청 인사가 있으면 책이 발행되었다.

 

사장 말은 정리가 안 된 산발적인 말이라 알아서 정리하면서 들어야 했다. 첫날 앉아서 오전에 가볍게 보도 자료 온 것을 정리하는 수준의 기사를 한두 꼭지 썼다. 컴퓨터 상태가 좋지 않아 기사를 올리는 데 상당히 애를 먹었다. 점심때가 되자 풍채는 중후하지만 자세히 보면 젊은 부장이 와서는 ‘사장님이 같이 점심을 먹고 싶어 하신다’면서 불러내서는 홍대 골목 사이를 지나 중식집으로 데리고 갔다.

 

식당엔 사장과 맞은 편에 눈이 퉁눈붕어처럼 크고 튀어나온 뚱뚱한 노인이 앉아 있었다. 회장이라고 했다. 인사를 하고 앉으니 회장이 ‘걸음걸이도 야무지고, 인상이 아주 똑똑할 것 같다. 손도 아주 돈복이 있게 생겼다’고 칭찬을 했다.

 

가만히 앉아서 밥을 먹자니 묘하게 사장과 부장의 얼굴이 닮아 있었다. 눈매는 닮지 않았는데 머리숱이 없는 것, 얼굴형, 고르지 못한 치아 배열이 닮아 있었다. 순간 아차! 싶었다. 한번 눈이 뜨이다 보니 면접 때 서류 안내를 해주었던 총무실의 젊은 이 과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키가 작고 얼굴은 상대적으로 컸던, 웃음이 서글서글했던 여자. 아차! 싶었다. 말로만 듣던 가족 기업이 이거구나 싶었다.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먹고 나왔다. 오후 시간에도 조금 앉아 있다 적당히 써 달라는 기사를 썼다. 사람들은 죄다 자기 일하기 바빴고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했다. 편집국장도 특별히 일을 시키거나 하지 않았다.

 

마감 날에는 언제 퇴근해야 하는지, 하물며 교정이라도 봐야 하는 거 아닌지, 먼저 물어볼까 고민했다. 옆에서 챙겨주던 부장한테 물어보니 잠깐 총무실에서 거기 컴퓨터를 사용해 마감할 때까지 온라인 기사들을 써달란 소리를 들었다.

 

총무실에 가니 이 과장이 있었다. 이 과장 앞자리 경리 직원은 이미 퇴근한 뒤였다. 그 여직원 자리에 앉았다. 뒤에서 이 과장이 말을 걸어왔다. 애인은 있냐, 집은 어디냐, 대학원 수업은 종강했냐, 뭐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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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하는 말 모두가 사장 귀에 들어가거나, 어떤 식으로든 평가가 되어 전달되겠구나 싶었다. 이 과장과 시간을 보내면서 회사 파악이 어느 정도 되었다. 이곳은 다들 타성에 젖고 게으른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신문을 만들어도, 인터넷 뉴스를 내보내며 부지런을 떨지 않아도, 돌아가는 곳이었다. 세금 전문지를 보는 사람들은 국세청, 관세청, 세무서, 세무사, 관세사, 기업이었다.

 

세금은 돈을 어떻게 벌까가 문제가 아니라 이미 있는 돈을 어떻게 나눠 쓸 것이냐가 문제인 부분이다. 과거의 관성 그대로 가져가도 오히려 회사 수익에는 문제가 없는 곳이었고, 직원들도 그렇게 업무 습관이 굳어져 왔다. 회사 건물도 25년 전에는 땅값이 비싼 곳이 아니었는데 2000년대가 되면서 땅값이 뛰어 평당 1억이 되었다. 그 작은 4층 가정집 건물이 수십억대였다. 1층 옷가게와 지하에 칵테일 바 임대를 주었는데, 한 집의 한 달 월세만 400만 원이 넘었다.

 

그렇지만 더 이상 인터넷 신문을 안 하기엔 한계에 부딪친 것 같았다. 온라인 신문 사이트를 열어도 기자들이 온라인에 기사를 올리지 않으니, 연합뉴스와 계약을 맺어 연합뉴스 기사를 가져다 싣거나, 연합뉴스 기사를 보고 '우라까이'해서 회사 기명으로 올리는 식이었다. 기자 바이라인이 들어간 뉴스가 몇 개 안됐다.

 

첫날은 그렇게 저녁도 못 먹고 앉아서 인터넷 뉴스 몇 꼭지 쓰다 저녁 8시가 넘어 퇴근했다. 다음날 회사에 출근해 발행된 주간지를 보니 뭔가 많이 허술했다. 광고는 많았다. 희한했다. 전면 광고, 5단 광고들이 대부분 대기업이었다. 신세계, 삼성전자, 보령제약, 삼성중공업… 32면 정도 발행되는 신문에 전면 광고가 8면 정도였다. 전날 점심 먹으러 가면서 부장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수익의 90%를 사장님이 담당하고 계셔서...'

 

사장이 광고를 끌어오고 영업을 하는 사실상 주식회사지만 사장 개인의 회사라는 말이고 돌아가는 회사 꼬라지는 뻔할 뻔자라는 소리다. 편집권 독립 그런 건 회사 사옥 뒷마당에 자주 들락거리는 길냥이에게 줘 버렸단 소리다. 그런 건 감히 찾거나,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마감을 하고 다음날이 되니 사장이 또 편집국에 내려와 일장 연설을 늘어놓고 갔다. 사장이 말을 하면 다들 고개를 수그리고, 그저 빨리 끝나길 바라며 딴 생각을 하는 듯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부장은 아침에 출근해서 오전 10시쯤이면 회장과 함께 외근을 나갔다. 회사마다 돌아다니면서 광고 수익이 줄지 않도록 광고 담당자, 영업 담당자를 만나며 영업 관리를 했다. 회장도 과거 기자 시절 보건복지부에 출입하면서 안면을 익힌 회사 관리자들과의 인맥으로 끌어오는 제약회사 광고들이 꽤 됐다. 부장과 회장은 광고가 들어오면 광고 수익의 20%를 인센티브로 받는다고 했다.

 

 

 

3. 지진 발생 전 나타나는 괴현상들

 

그나마 주간지라도 잘 만들면 모르겠는데 그동안 세금 분야는 제대로 다뤄본 일 없는 필자의 눈에도 신문에는 오‧탈자가 난무했다. 심지어 헤드라인에 오‧탈자가 버젓했다. 두 면이 새로 나온 조세 판례였는데, 이해 당사자 실명을 가리기 위해 법원에서 ‘ㅇㅇㅇ’ 으로 표기한 그대로 실어 버렸다.

 

요즘같이 각 법원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판결문 원문이 그대로 뜨는데 굳이 왜 똑같이 복사, 붙여넣기해서 신문으로 출판까지 하는지 이해가 안 됐다. 기사가 기본이 안 된 글들이 꽤 많았다.

 

뿐만 아니었다. 차장이라는 여자 취재기자도 얼마 안 있다 외근한다며 나가버렸고 회사 안은 적막했다. 이틀 뒤 사장이 새로 온 부국장이라며 나이가 지긋하고 풍채가 아주 좋은 사람을 소개시켜줬다.

 

그 부국장은 사장과 언론정보대학원에 다니며 알게 된 사람이라고 했다. 인터넷 제약 신문에서 기자로 오래 일했고 시도 쓰면서 신학대학에서 공부한 목회자라고 했다. 참 이력이 다양했다. 적당히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앉아서 컴퓨터 모니터만 뚫어져라 보며 기사를 찾아보고, 회사 공용 메일에 들어가 보도 자료를 확인해 기사만 작성했다.

 

가끔씩 맞은편 책상에 앉은, 사장과 언론대학원 동기 부국장이 ‘카악 퉷!’ 하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쓰레기통에 가래를 뱉는 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등 뒤쪽으로 칸막이를 두고 앉아 있는 국장은 워낙 조용해서 뭘 하는지 몰랐다.

 

입사하고 사흘째가 되던 날 점심때가 되니 어쩐 일인지 편집기자가 다가와 점심 먹으러 가자는 소리를 했다. 편집기자는 차장과 함께 점심 식사를 했는데, 차장이 없으니, 꿩 대신 닭이라고 필자에게 같이 식사하자는 말을 꺼낸 것 같았다.

 

“근데 새로 온 부국장님! 가래 뱉는 소리 정말 비위 상하지 않아요? 전 바로 길 건너 옆이라 다 보이는데, 아 정말 신경 쓰여요.”

 

편집기자가 어지간히 진저리를 쳐댔다. 편집기자는 이곳에 근무한지 1년 반이 지났다고 했다. 편집기자를 통해 부장과 총무실 과장이 사장의 아들, 딸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곳이 가족 기업이라는 사실도 확인했다. 총무실 실장도 사실 사장의 와이프라고 했다. 가끔씩 큰 외제차를 끌고 나타났다 장부 관리하고 일찍 퇴근하는 실장이었다.

 

원래 이곳에서 경리로 근무하다 사장과 바람이 나서, 사장은 본 부인과 이혼을 하고 새 장가를 든 게 실장이었다. 총무실 이 과장과는 모르겠는데, 부장과는 묘한 긴장감이 흐른 이유가 있었다. 편집국장도 사장의 사촌 조카이자 부장의 사촌 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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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고민과 상념이 몰려들 것 같았으나 그렇게 괴로워 봐야 현실은 바뀌는 게 없으니, 그냥 밀려드는 수많은 생각들을 억지로 차단했다.

 

며칠째 일만 하고 있자니, 정말 인터넷 신문을 운영해 본 일이 없는 사람들이 데스크를 보고 있다는 게 확실히 드러났다. 온라인 신문을 활성화하기 위해 사장이 특별히 개인 인맥으로 데려온 부국장이 더 했다. ‘새누리당’을 ‘새 누리 당’이라고 제목을 달아 온라인에 출판하지를 않나(부국장은 편집국장을 거치지 않고 기사 노출 권한이 있었다), 조간신문에 나온 기사를 ‘우라까이’해서 오후 늦게 기사를 올렸다. 조간도 늦은 판국에 그걸 베껴서 저작권 따윈 생각하지도 않고 기사를 써댔다. 전혀 현안과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다.

 

하물며 필자가 이미 전날 보도자료를 보고 보충취재해서 쓴 기사를 확인도 안 하고, 하루 지나 다른 조간신문에 나온 기사를 ‘우라까이’해서 노출시켜 버렸다.

 

한 번은 이 말 저 말 긴말하는 거 싫어하고 사람들에게 모질게 말 못 하는, 그저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인 편집국장이 ‘부국장님 방금 올리신 거 이미 어제 김기자가 썼습니다. 내립니데이’했다. 부국장의 태도는 고쳐지지 않았다. 최소한 우리 신문의 기사도 제대로 보지 않았다. 어쨌든 앉아서 일만 하고 있는 금요일 오후, 처음으로 편집국장이 ‘김기자! 좀 쉬었다 하자!’ 라며 회의용 탁자에 불러 앉혔다.

 

"내 니 이력서를 이제 봤다. 법대 나왔데? 내도 법대 출신이다."

 

말 한두 마디하고 차 한 잔 하고 있으려니, 진상끼가 보이는 부국장이 화장실 갔다 와서(화장실도 참 자주 갔고, 갔다 하면 한참 있다 왔다) 아는 체를 하며 합석했다. 그리고는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 것이었다. 목소리 톤은 순진한 목사 같았는데, 말의 내용은 정말 무식한 매판 자본가에게서 나올 법한 말이었다.

 

“난 노조는 정말 싫어요. 이 사회에서 노조가 제일 해악인 것 같다. 저렇게 파업하는 건 법으로 쎄게 다스려야 한다고 봐요.”

 

한참을 혼자 떠드는데 국장은 사람 좋은 웃음을 웃었고, 필자는 고개를 수그리고 커피 잔만 바라봤다. ‘반박하지 말자! 많은 기대를 하지 말자! 서른 넘은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다!’를 가슴속에 여러 번 되새겼다. 그래도 부국장의 말은 언제 끝날지 모르게 계속됐다.

 

“제가요 사실은 다 알아요. 법도 다 알거든요. 여기 법대 출신들 우대하더라고요. 이력서엔 안 썼는데, 방통대 법대 다니고 있어요.”

 

“여기 김 기자도, 법대 나와서 지금 대학원까지 다녔잖아요.”

 

부국장이 거들먹거리기 무섭게 편집국장이 말을 잘랐다. 그러자 부국장은 ‘아, 그럼 전공 때문에 일하는 데 어려움은 없겠네…’라고 시금털털한 말을 내뱉었다.

 

“아니에요. 세금 분야니 잘 모르죠.”

 

잠깐의 차담은 거기서 끝나고 다시 자리에 앉아 며칠을 꿀 먹은 벙어리처럼 기사만 써댔다. 가끔 확인이 필요한 사안이 있으면 확인 취재 전화를 했고, 부장이 광고용 기사를 주문하면 흔쾌히 써주었다.

 

그러기를 불과 일주일 후 직장 복 상사 복이란 애초부터 필자의 몫은 아니었는지, 회사가 큰 풍파와 변화를 겪었다. 필자가 들어온 지 딱 일주일이 지나고 한 번의 주간지 마감을 더 했다. 다음날 목요일 사장의 조카인 편집국장이 그 자리에서 해고돼 짐을 싸서 나갔고, 부장이 하루아침에 국장이 되었다. 출근한 첫날부터 필자를 탐탁지 않게 여겨왔던, 예규와 판례 기사를 써서 올리니 ‘판례 내용은 국장한테 확인을 받았어? 이해 못 하고 잘못 나가면 큰일 나!’라며 겐세이를 놓다가 국장한테 법대 출신이라는 말을 전해 듣고는 ‘어쩐지 판례 핵심을 잘 잡더라’라며 안면을 싹 바꾸던, 주필도 월말에 퇴사하기로 결정 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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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장이 다음 날 필자의 자리까지 와서 잠깐 밖에 나가 이야기하자고 불렀다. 그렇게 필자는 호랑이 등에 올라타게 되었다. 얌전하고, 조용한, 남들 하는 만큼 하는, 튀지 않는 직장 생활을 하리라 먹은 마음의 유통기한은 딱 일주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