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반(武班)으로 유명한 가문이 몇 있다. 능성 구씨, 의령 남씨, 전의 이씨, 덕수 이씨 등인데 원주 원씨 가문도 그 중 하나로 꼽힌다. 고려 충렬왕 때 합단적의 침입을 맞아 원주성을 사수했던 원충갑이나 임진왜란 때 강원도에 침입한 일본 사쓰마의 영주 시마쓰 요시히로 군대를 무던히도 괴롭혔던 원호, 문신이긴 하지만 어영대장 등 무관직도 지냈던 문무겸비의 호걸 원두표 등 쟁쟁한 인물들이 포진해 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을 말아먹고 이순신을 모함한 한국 역사의 영원한 악역 원균 때문에 스타일을 빠지직 구기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원균의 아버지 원준량도 원씨 가문 스타일을 구기기로는 부전자전(父傳子傳)이었다. 원준량은 무과에 급제하여 각지의 수군 절도사나 병마절도사를 역임했는데 평이 영 좋지 않았다. 왕에게 인사하고 떠날 때 왕이 “군사들 잘 보살피고 방비 잘해라.”고 하교했는데 사관이 이렇게 이를 갈아붙이고 있는 것이다.
“원준량이 욕심 많고 사납고 무지함은 이원우라는 놈보다 더하다. 그런데 이원우는 퇴짜를 놓고 준량은 보냈으니, 이는 필시 원준량의 뇌물이 권력 쥔 자의 마음을 사고 간관의 입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이리라. 아! 어찌 원준량이 군사들을 보살피고 방비를 굳게 할 수 있단 말인가.”
그 욕심과 사나움 속에 아래 병졸들은 얼마나 고달팠을까. 뇌물은 결국 백성과 군대를 쥐어짜서 바치는 것이었으니 사관이 열 받는 것도 이유가 있다. 활을 바다에 쏜 뒤에 화살 주워오라 할 위인이었고 이를 만류하면 “아니 그럼 그걸 졸병이 하지 내가 하리?” 라고 뇌까릴 장수였다.
싸움에 능하기보다는 뇌물 바치기에 능란하고 권력자에 아첨하기를 입안의 혀같이 하는 무장이었다는 것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실제로 그는 화려한 무관 경력과는 달리 귀신같이 싸움을 피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전라우수사로 있을 때 제주도에 왜구들이 나타났으나 이를 구원하지 않아 귀양을 갔고 을묘왜변 때에는 달량포가 함락됐다는 소식을 듣고도 태연히 술 마시고 즐기면서 뭉개는 통에 적이 더욱 기승을 부리게 했다. 어찌된 일인지 그렇게 하고도 별 처벌을 받지 않았다. 전투보다는 처세에 능한 무장.
자식 사랑은 꽤 극진했다. 어느 날 임금은 이런 보고를 받는다.
“함경북도 병사 곽흘(郭屹), 평안 병사 이택(李澤), 경상우도 병사 원준량(元俊良)이 그들의 자제를 무과 초시(初試)에 응시하도록 한 일은 지금 조사 중입니다. 신들이 듣건대, 무과는 문과에 비해 일정한 규정과 기준을 세우지 않은 까닭에 그 자제들이 군관으로서 관례대로 응시하도록 허락한 것입니다. 법을 어기고 거짓으로 응시한 것과는 비할 바가 아니니, 상께서 참작하여 처리함이 어떻겠습니까?”
좀 과한 면이 있긴 한데 통념상 허용이 안되는 일도 아니니 용서해 달라는 상주였다. 아마도 원준량 등이 약을 쳤던 것 같다.
이런 이들이 장수로 있으면서 어진 사람들을 탄압하고 순박한 병사들을 제 몸종 부리듯하고 그러고도 지은 죄를 몰랐으니 임진왜란의 참화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원준량에게서모든 나쁜 점을 물려받은 듯한 아들 원균이 가져온 참극을 어찌 필설로 다하겠는가. 그 비극의 시작은 다름아닌 원준량이었다.
병사들에게는 잔인하면서 외적 앞에서는 무능했던 원준량. 그 몰골을 탄식하며 한 무명의 선비가 지은 시가 조선왕조실록 부록에 전한다. 작자는 미상이다. 사진은 잘못 들어갔다.
舶竄舟躇軍跋罹 박찬주저군발이
배들은 숨거나 나아가기 망설이고 군대는 비틀거리며 앓아누웠네
將軍忘信多食噫 장군망신다식희
신의 잃은 장군은 헛소리투성이라 통탄할 뿐이로다
三請嘂六打鈴哀 삼청교육타령애
(원병을) 세 번 요청하며 울부짖고 여섯 번 휘장을 두들겨 슬퍼하나
駿豹盜旣迦幕喜 준표도기가막희
날랜 표범같은 도적은 이미 장막 가로막고 희희낙락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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