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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내 주류회사들의 마케팅에 화가 좀 났다. 주류회사들의 소비자 기만적인 마케팅 때문이다.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배경지식으로 술을 만드는 과정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그래서 이 부분을 먼저 설명하겠다.

술 중에 소주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희석식 소주’와 ‘증류식 소주’이다.

 


희석식 소주, 증류식 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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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석식 소주는 주정(酒精. 식용 에틸알코올)에 물을 섞고, 각종 첨가물을 넣어 맛을 낸 술이다.

어떤 사람들은 희석식 소주의 주재료인 주정을 공장에서 화학 합성을 통해 만든다고 알고 화학 소주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식용으로 사용되는 주정은 작물을 발효 시켜 만든다.

다만, 목적은 맛과 향이 좋은 술을 만드는 게 아니라 작물에서 알코올을 대량으로 뽑아내는 것이기 때문에 타피오카 같은 값싼 작물을 발효시킨 뒤 증류해서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주정은 95% 이상의 높은 순도를 가진 에틸알코올이다. 주정은 화장품이나 의약용품의 재료로도 사용된다. 모두 알코올 소독약 냄새는 맡아본 경험이 있을 텐데, 이렇듯 술이라고 할만한 맛과 향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게 주정이다.

그래서 주정으로 술을 만들려면 물을 섞어 알코올 함량을 낮추고, 갖가지 첨가물을 넣어 맛과 향을 내야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게 ‘희석식 소주’이다. 이름 그대로 주정에 물을 타서 희석한 소주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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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증류식 소주’는 쌀이나 고구마 등의 작물을 발효 시켜, 먼저 막걸리 같은 밑술을 만들고 그 밑술의 맑은 부분(청주)을 건져낸 뒤 열을 가해 기화된 알코올을 모아 만든 술이다.

이렇게 혼합물을 가열해서 원하는 성분을 추출하는 것을 증류라고 한다. 물과 알코올의 끓는 점이 다른 특성을 이용해서 술의 증류를 한다.

알코올은 끓는점이 조금 유동적인데, 탄소와 많이 결합할수록 끓는 점이 높아진다.

보통 밑술을 걸러낸 청주를 78도 이상으로 가열하면, 알코올이 먼저 끓기 시작한다. 이렇게 기화된 알코올을 모아 식히면 ‘증류식 소주’가 된다.

순도 95% 알코올인 주정도 이런 증류를 통해 만들어진다. 다만, 주정은 ‘연속식 증류’를 통해 만들어지고, 안동소주나 위스키, 럼 등등의 증류주는 단식 증류를 통해 만들어진다.

밑술을 가열하면 알코올이 먼저 끓는다고는 하지만, 그렇게 처음 기화된 성분엔 순수한 알코올만 들어 있는 게 아니라 가열 과정에서 발생한 불순물까지 섞여 있게 된다.



희석식, 증류식 소주의 다른 증류의 방식 (단식 증류, 연속식 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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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소주의 제조 과정을 보면, 증류 초반에 나오는 술은 알코올 함량이 70%가 넘을 정도고, 불순물까지 섞여 맛과 향이 안 좋기 때문에 상품성이 없다.

그래서 증류 초반을 지나 밑술의 안 좋은 성분이 빠져나가고 난 뒤, 맛과 향이 좋은 술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안동소주는 알코올 함량 45%에서 최상의 밸런스를 갖게 된다.

이렇게 한 번의 증류를 통해서 술을 만드는 걸 ‘단식 증류’라고 한다.

위스키나 럼, 데킬라 등등 사용된 재료와 증류 방식에 따라 밸런스가 좋은 최적의 알코올 함량은 제각각이지만 어쨌든 원재료의 좋은 맛과 향을 담은 술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렇게 단식 증류를 해야 한다.

반면, 주정은 재료의 맛과 향 따위는 필요 없고 그저 많은 양의 알코올을 뽑아내려는 목적으로 만든 것이라 여러 번 증류를 거듭하게 된다. 증류한 원액을 다시 증류하고, 또 증류하다 보면 순도 95% 이상의 알코올만 남게 된다.

이런 방식을 ‘연속식 증류’라고 한다.



주류회사들의 마케팅

당연히 좋은 술로서 가치를 가진 것은 단식 증류를 통해 원재료의 좋은 맛과 향을 간직한 증류주이다.

희석식 소주는 과거에 밥 먹을 쌀도 부족했던 시대에 값싼 주정에 물을 타서 첨가물로 맛을 낸 술이기 때문에 사실 ‘증류식 소주’와 ‘희석식 소주’는 이름만 같을 뿐 전혀 다른 술이다(소주의 한자 해설까지 하면 글이 너무 길어지므로 패스).

먹을 쌀 걱정하는 시대가 지나고 사람들의 입맛도 까다로워지기 시작하면서 희석식 소주와 증류식 소주의 차이를 아는 주당들이 늘어났다.

주류회사들은 자신들이 판매하는 희석식 소주가 좋은 재료로 정성껏 빚은 술이 아니라, 식용 알코올에 물을 타고 각종 첨가물로 맛을 낸 질 낮은 술이라는 걸 소비자들이 모르길 바랐을 것이다.

때마침 식약처에선 2013년 12월 26일부터 희석식과 증류식 구분 없이 '소주'라고만 표기해도 되도록 관계 법령을 수정했다.

그리고 일부 주류회사들은 자신들의 희석식 소주를 증류식 소주인 양 홍보하고 판매하기 시작했다.

많은 주류회사가 그러지만, 한 예를 들어보겠다. 요즘 주당들에게 인기 있는 A 소주이다.

많은 이들이 제조사의 홍보를 믿고, 이 소주를 증류식 소주로 알고 있다. 아래 사진은 제조사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A 소주의 소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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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소비자들이 주류업체들의 소비자 기만 마케팅에 속지 않길 바라고, 그 주류업체들에 충고하는 기사이다. 특정 주류업체만을 비방하려는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정보제공을 위해 필요한 부분 외에 다른 부분들은 모자이크 처리를 하였다.>

‘청정 제주에서 생산된 쌀로 만든 증류 원액과 화산 암반수로 만든 프리미엄 소주’라고 홍보하고 있다.

물론 그 뒤엔 연속식 증류를 통해 만든 고순도 주정에 청정 제주의 쌀로 만든 증류 원액을 블랜딩했다고 적어놨지만, 술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저 문구만 보고 OO산 소주가 희석식 소주라고 생각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국산쌀로 만든 증류식 소주라고 착각하기 쉽다.

아래 사진은 A 소주의 라벨인데, 자세히 보면 원재료가 표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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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제수, 주정, 액상과당, 증류식 소주 원액 등등이 적혀있는 걸 볼 수 있는데, 정작 중요한 '함량'은 표기되어 있지 않다. 그러니까 주정과 증류식 소주 원액이 각각 얼마나 들어갔는지 소비자는 알 수가 없다.

그래도 제조사가 대놓고 제주에서 생산된 쌀로 만든 증류 원액과 화산 암반수로 만든 프리미엄 소주라고 홍보할 정도면 적어도 한 병 부피에서 절반 이상은 쌀 증류 원액이 들어가지 않았겠나 생각하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A 소주 제조사는 연간 1,880만 병 정도를 생산하는데, 제주산 벼를 수매한 양은 6톤 정도에 불과하다.

제주도 현지 언론사가 제조사에 문의해서 알아낸 바에 의하면, A 소주 흰색 병 제품에는 0.06%의 쌀 증류 원액이 들어가고, 초록색 병 제품에는 0.2%의 쌀 증류 원액이 들어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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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제주시대>

 

소주 한 병에서 0.06%라는 게 어느 정도 분량일까?

0.2ml이다. (360ml X 0.0006)

대략 액체 한 방울의 부피가 0.05~0.07ml 정도니까, 소주 한 병에 증류주 원액 서너 방울 정도가 들어간 셈이다.

이런 술을 제주에서 생산된 쌀로 만든 증류 원액과 화산 암반수로 만든 프리미엄 소주라고 할 수 있을까.

A 소주의 경우를 예로 들 것이지만, 고급술로 알려진 제품이나 다른 많은 제품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소주, 서글픈 현실

순수하게 쌀과 누룩과 물로만 술을 빚으면 소주잔 한 잔 분량을 만들기 위해 밥 한 공기 분량의 쌀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 가난했던 시절 쌀로 술을 빚어 마신다는 건 엄청난 사치이자 호사였다. 하지만 21세기 대한민국에는 쌀이 남아돌아 처치 곤란할 지경이다.

정부에서 전통주 장려 정책을 펼치는 것도 이렇게 남아도는 쌀을 어떻게든 소비하기 위함이 있다.

오해는 하지 않았으면 한다. 희석식 소주의 필요성도 인정하는 바이다. 술의 맛과 향을 따지기보다는 값싸게 취할 수 있는 술이 필요한 이들도 분명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식용 알코올에 물을 타고 첨가물로 맛을 낸 술이 한국을 대표하는 소주로 알려지는 건
참 서글픈 일이다.

우리나라에도 제대로 빚은 좋은 술들이 많은데 대부분의 술집에선 찾아보기 어렵고, 희석식 소주들만 가게에 깔려있는 것이 안타깝다.

그리고 이렇게 맛과 향에 상관없이 취하는 용도로만 만들어진 희석식 소주 때문에 앉은 자리에서 몇 병씩 폭음하는 음주 문화가 생긴 것도 사실이다.

좋은 재료를 써서 정성껏 빚은 술은 희석식 소주보다 비싼 게 사실이다. 하지만 술도 음식일진대 좋은 우리 문화, 좋은 우리 술을 찾아 마시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본다.



가성비갑 술 추천

아래 사진은 얼마 전 온라인으로 주문한 국내 양조장들의 술이다. 전통주라고 하긴 애매하지만, 가성비가 꽤나 괜찮은 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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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두레앙(22%), 서울의밤(25%), 매실원주(13%), 이강주(19%) 이다.

두레앙은 국산 거봉 포도를 발효 시켜 증류한 술인데, 와인을 증류한 꼬냑과 비슷한 술이다. 물론 저렴한 가격에 주정을 섞어 만든 술이다 보니 고급 꼬냑의 맛과 향을 따라잡긴 어렵지만
그래도 크게 나쁘진 않다.

서울의 밤은 좀 특이한 술인데, 일단 러시아 바카디사의 럼(사탕수수를 발효한 후 증류한 술)을 수입해 국산 황매실을 넣어 매실 담금주를 만들어 숙성시킨다. 그 후 이걸 또 증류한 다음 물을 섞어 도수를 낮춘 술이다.

주정을 넣지 않고 럼으로 만든 매실주를 또 증류했다는 게 발상의 전환이다.

같은 양조장의 매실원주는 럼주로 담근 매실주를 따로 증류하진 않고 물을 섞어서 낮은 도수로 출시한 제품이다.

이강주는 강력 추천하는 제품이다. 이강주 38%짜리가 맛은 최고지만 10만 원이 넘어가기 때문에 구입에 부담을 느끼는 이들은 아쉬운 대로 이강주 19%짜리를 추천한다.

전통주 계열의 술들은 인터넷으로 온라인 주문 가능하다. 밖에서 소주 마셔도 한 병에 4천 원씩 하는데, 위 사진에 올라온 국내 양조장의 술들은 온라인에서 병당 6천 원 안팎에 구할 수 있는 가성비갑 술들이다.

코로나 시국에 밖에서 모임 가지기도 힘든데, 많은 이들이 집에서 한 잔씩 하실 때 기왕이면 좋은 술을 먹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추천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내가 구입한 위의 술들은 순수하게 소비자로 구입한 것이다. 저 양조장들과 저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저 술들이 가성비 괜찮은 술들이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최고의 맛과 향을 가진 술이라는 것은 아니며 좀 더 예산을 높이면 훨씬 맛있는 술들도 즐비하다.

하여간 주류업체들, 주정에 물 타서 희석식 소주 만들면서 고급 증류주인 양 홍보하지 말길 바란다.

소비자들 속이면서 주류시장을 왜곡하면, 결국 돌아오는 건 소비자들의 외면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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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불가사의한 우주, 어마어마한 범위의 시간과 공간,

온갖 동물들, 서로 다른 행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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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복잡한 것들이

겨우 신이 선악을 위해 다투는 인간을 지켜보는 무대일 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우주는 그런 드라마를 위한 무대라고 하기엔 너무나 광활하다."

-리처드 파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