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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나 다른 과학기술처럼 지난 몇 십 년간 로켓과 우주선 기술도 장족의 발전을 해왔다고 믿는 분들이 많을 거다. 물론 사실이다. 화성에는 월E를 닮은 큐리오시티 로버가 돌아다니고 목성과 토성, 명왕성 같은 태양계 먼 지역에도 탐사선이 진출했다. 소행성과 혜성, 달의 뒷면에는 착륙도 했으니 말이다. 토성의 위성 타이탄의 액체 메탄 바다와 명왕성 표면의 선명한 하트 사진도 찍어 보내는 등 예전에는 꿈도 못 꾼 광경을 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모든 성과는 '무인 우주선', 즉 사람 없는 우주선에 국한된 이야기라는 점.

 

그럼 유인 우주선의 상황은 어떠냐? 일단, 인간이 달에 마지막으로 발을 디딘 게 언제인지 아시는가들. 답은 1972년, 자그마치 ‘48년’ 전이다. 글타. 물경 반세기 동안 인간은 달에 한 번도 다시 간 적이 없다. 발전된 기술로 화성이나 더 먼 곳을 갔지 싶다면 개뿔, 저 때 이후 인간은 달은 고사하고 지구 궤도를 넘어서 나가 본 적조차 없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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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면에 발자국 찍으면서 거대한 도약이라고 가오잡을 때

50년 후까지 여기서 한 발짝도 더 못갈 거라고 생각이나 했겠냐

 

우리의 달나라 수학여행 꿈이 실렸던 우주왕복선, 혹은 스페이스 셔틀은 2011년에 단종된 상태. 이것도 거의 10년이 다 된 옛날 이야기고, 미국은 지구 궤도상에 있는 국제 우주정거장에 사람을 보내기 위해 러시아의 소유즈 우주선을 빌려타고 있는 신세다.

 

그런데 이 '소유즈'라는 녀석이 실은 아폴로 시대부터 다니던 바로 그 넘이다. 고장 적고 잘 움직이니까 계속 쓰고 있지만, 우리가 상상했던 21세기의 이미지나 이상을 구현하기에는 아무래도 너무 늙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거 좀 아니지 않냐 싶은 유인 우주탐사의 암흑기가 계속되던 중, 대충 때맞춰 일론 머스크라는 이름도 특이한 양반과 그의 회사 스페이스X가 등장한다. 다른 건 좀 제껴 두고 전세계인에게 충격과 경악을 안겨준 2년여 전 일부터 보자. 꼭 보고 계속 읽으셔야 함.

 

 

아폴로를 달에 보낸 새턴5에 근접하는, 1973년 이후 인류가 쏘아 올린 가장 강력한 로켓인 팰콘 헤비. 거기에 실어서 화성으로 (대충이지만) 날려보낸 테슬라 전기차. 마지막으로 로켓의 사이드 부스터 2개를 재사용하기 위해 완벽히 착륙시키는 것에 이르기까지. 야 이건 진짜, 인류가 그간 잊어먹고 있었던 로켓의 꿈, 우주여행의 이상 자체를 자극하는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참고로 스페이스X는 부스터 재활용에 여러 번 성공해 왔다. 이날 펠콘 헤비의 경우 메인 로켓인 코어 부스터 착륙은 실패했다. 자잘한 이야기를 여기서 다 읊을 수는 없으니 상징적인 씬들이 모여있는 이것만 보여드리는 거다)

 

일론 머스크와 스페이스X 가 추구하는 것은 이런 일이다. 우주를 나가는 것도 중요하고, 잘 갔다 오는 기능적인 측면도 다 중요하다. 그런데 이 인간들은 그걸 자기들이 보고 싶어했던 모습, 아니 우리가 은연중에 보고 싶었던 모습 그대로 하려고 든다. 근데 이게 또 막상 잘하면 열라 멋있는 건 물론이고 과감한 신기술도 선보일 수 있다. 성공하면 돈도 아끼는 방향이니 일타삼피는 기본.

 

그리고 지난 5월 30일, 스페이스X는 드디어 두 명의 우주인을 태운 크루 드래곤을 성공리에 발사, 국제우주정거장 ISS와 도킹에 성공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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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 드래곤은 이렇게 생겼다

전반적인 분위기부터 좀 달라

 

크루 드래곤의 가장 중요한 건 ‘유인’이라는 점. 앞에서도 말했지만 최근 들어 유인 우주비행이란 것 자체가 러시아 소유즈와 중국 쪽 외에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미국이 다시 나선 건데, 사실 미국인이 아닌 우리 입장에서는 그 일이 대단히 감동적일 이유는 없다. 

 

중요한 건 미국 나사와 러시아의 로스코스모스, 그리고 중국의 국가항천국과 함께 스페이스X가 역사상 네 번째로 인간을 우주에 보낸 집단(? 조직?)이 됐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수십 년 역사를 가진 일본의 작사(JAXA)와 유럽연합의 유럽우주국(ESA)도 하지 못한 유인우주선 발사를 ‘사기업’이 해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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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국가항천국.

미국과 러시아를 제치고 매년 가장 많은 로켓을 쏘고 있다.

유인우주선발사 및 자국 우주정거장 도킹도 여러 번 성공시켰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사실을 잘 모른다.

 

크루 드래곤의 성공은 지난 50년 간 정체돼 있다시피 한 유인 우주탐사의 동력과 열정을 새로 꽃피우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더 중요하다. 지난 몇 년 간 사기에 가까운 화성 유인 로켓 프로젝트도 있었고, 일론 머스크도 화성행을 여러 번 이야기하기도 했고, 나사도 아르테미스 계획이라며 달에 다시 유인 우주선을 보내는 계획을 진행하고 있지만, 말이나 계획보다 더 실감나는 것은 역시 기술적인 성공과 성취를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주체가 국가가 세금을 때려 박는 기존의 '총동원' 스타일이 아니라 투자를 받아 이윤을 추구하는 사기업이라면, 더욱 강렬한 국면전환의 느낌이다. 그런 점에서 크루 드래곤의 유인 발사와 ISS 도킹 성공이 가진 의미는 일단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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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크루 드래곤의 1단 로켓도 재활용을 위해

발사 3일 후 플로리다의 스페이스 코스트로 돌아왔다.

실제 착륙 직후 사진.

 

두번째 의미는 뭐냐. 일단 아래 사진들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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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좀 익숙하실 아폴로 11호의 계기판이다. 겁나 많은 스위치에 이름도 몇 개 안 적혀 있다. 이걸 거진 다 외워서 키고 꺼야 하는 게 아폴로의 조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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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풀해진 스페이스 셔틀 아틀란티스의 조종석과 계기판. 조명 때문에 분위기는 달라도 수많은 스위치가 달린 건 크게 다르지 않다. 

 

반면 아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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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 드래곤의 조종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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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조종장치와 계기판이다. 터치 스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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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1969년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2001 Space Odyssey> 에 등장한 디스커버리 1의 내부.

 

하나 더. 아래는 예전의 우주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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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우주복은 말이 옷이지 내부를 들여다보면

굵직한 기계 장치에 사람이 ‘들어가는’ 형상이다.

 

반면 아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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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실제 사용된 크루 드래곤의 우주복이다.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슬림함과 세련됨을 갖추고 있는 이 신상은 자그마치 마블의 디자인 팀이 참여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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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1969년작 <2001, Space Odyssey>의 우주복.

비슷하다 비슷해

 

글타. 50년 전 영화에서 상상했던 우주선의 성능과 우주복 디자인 같은 것들이 크루 드래곤을 통해 실현되기 시작한 거다. 2001년도 아니고 2020년이나 돼서야. 자동으로 회수되는 로켓과 (비교적) 널찍한 공간, 간편하고 미니멀한 계기판, 가볍고 얇은 우주복 등등. HAL 9000같은 인공지능은 아직 멀었지만서도. 

 

대체 왜 이렇게 늦어졌을까? 이유는 두 가지다. 생각과 달리 로켓 기술 자체는 '걍 아주 강력한 엔진을 만들고 제어하고 그걸로 밀어 붙이는' 것이기 때문에 ‘고급이긴 하지만 첨단은 아니다’. 아폴로 11호에 쓰인 컴퓨터의 수준은 우리가 이제 쓰지도 않는 탁상용 계산기 수준이고, 그걸로도 궤도 계산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한편으로, 별것도 아닌 듯 보이는 터치 스크린 기술이 일상에서 제대로 쓰이기 시작한 건 아이폰이 등장할 때 쯤이니 고작 십몇 년 밖에 되지 않았다. 즉 첨단으로 따지자면 인간을 달에 보낸 새턴V 로켓보다 터치 스크린이 훨씬 발전된 기술인 거다. 이러니 당연히 예전에는 쓰고 싶어도 쓸 수가 없었다. 

 

두 번째는 정부기관과 사기업의 차이다. 나사 같은 정부기관의 입장에서는 디자인이니 이미지니 편의성이니 하는 것 보다는 기능적으로 잘 되는지가 훨씬 중요하다. 그 밖의 것은 그다지 챙길 필요가 없다. 하지만 사기업 스페이스X는 주식이 올라야 하고 투자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이미지나 디자인 같은 것에서부터 대중적 관심을 끌어야 한다. 이런 객관적인 필요성은 일론 머스크의 성향과도 아주 잘 맞아 떨어진다. 그러니 추구 안 할 이유가 없는 거다.

 

정리하자면, 그간 스페이스X의 접근이 전반적으로 그랬지만, 특히 이번 크루 드래곤의 성공은 유인 우주선 역사의 한 획을 그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인류에게 한동안 식어 있던 우주여행에 대한 새 전망, 희망, 두근거림 같은 걸 심어줬다는 점에서 엄청 큰 의미가 있다.

 

특히 우주탐사 같이 돈 많이 들고 위험하고 모험적인 일에는 이런 열정의 뒷받침이 반드시 필요하다. 예전 아폴로가 최초의 달착륙이라는 목표를 내세워 그걸 해냈다면 지금 머스크는 50년 만에 달에 돌아가는 것에 더해서 화성, 그리고 SF에서나 보던 새로운 기술과 쿨한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경로로 우리 가슴에 불을 지피고 있는 셈이다.

 

이제 우리는 자신의 이익과 무관하게 스페이스X의 성공을 같이 기원하고, 응원하고, 나아가 주식도 사고, 뭐 그렇게 된다. 이런 모든 힘들이 합쳐져야 감히 덤빌 수 있는 게 지구 궤도를 넘어선 유인 우주탐사의 모험이라는 점에서 스페이스X는 제대로 된 길로 가고 있다. 그렇게 우리로 하여금 다음 행보를 기다리게 하고 또 결국은 안되는 거라고 반세기 동안이나 포기했던 꿈을 다시 꾸게 만들고 있다. 

 

우주여행이 우리들의 현실이 되는 그날 말이다.

 

 

<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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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 드래곤이 우주인 두 명을 태우고 발사에 성공하기 바로 하루 전날, 스페이스X는 거대한 실험용 선체를 지상에서 말 그대로 '태웠다'. 사람 100명을 태우고 달과 화성에 가겠다며 준비중인 ‘스타십’의 엔진 시험용 기체가 텍사스의 시험장에서 대폭발을 일으킨 거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고 어차피 발사용이 아니라서 의미는 다르지만, 하루 전에 일어난 사고라는 점에서 아무래도 우려가 가지 않을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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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저 크고 아름답고 반짝이는 선체가 이렇게 어마어마한 대폭발로 몽땅 날라가 버렸는데도, 다음날 스페이스X는 크루 드래곤을 발사하고 또 성공시킨다. 이런 거대한 실패와 거기 아랑곳하지 않는 뚝심마저 뭔가 만화스럽고 쿨하게 느껴지니, 이런 이미지를 만들어낸 머스크라는 사람, 뭔가 기대하고 걸어 보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다. 100명을 태운다고? 황당해 보이지만 이 사람은 해낼 것도 같단 말이다.

 

날아라 스타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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