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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7. 11. 수요일

물뚝심송


 


우리 사회에는 최저임금이라는 제도가 있다.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의 관점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제도이기도 하다. 노동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는 고용자와 피고용자 사이의 자유로운 계약을 어찌 감히 정부가 나서서 제한을 하는가 말이다.


 


하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자본은 언제나 노동자보다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고, 정부의 제한 없이는 대다수의 노동자가 정상적인 댓가를 받지 못하고 노동을 착취 당하는 현상이 벌어지며, 그 현상이 누적되어 다수의 불만이 쌓이게 되면 사회가 불안정해진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깨달은 많은 국가에서는 정부가 나서서 최소한의 임금을 법으로 규제하는 것이 일반화 되고 있다는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시장경제가 절대 만능은 아니다.


 


하지만 이 최저임금제도가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당장 떠오르는 문제는 도대체 최저임금은 얼마가 적당한가 하는 것이다.


 


최근 정부에서 내년도 최저임금을 4,860원(시급)으로 결정하고, 이 결정과정에 정작 노동계는 빠져 버리는 문제가 지적되고 있는 중인데, 과연 그 액수는 최소한의 임금 수준으로 적절한가 하는 지적이 양측 모두에서 나오고 있는 중이다.


 


대략 2012년 기준으로 몇 나라의 최저임금 수준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 대한민국 : 4,580원

- 미국 : 7,975원

- 중국 : 2,520원

- 멕시코 : 5,200원

- 영국 : 10,500원

- 일본 : 10,950원



 


이럴수가... G20 의장국의 국격이 있지, 최저임금이 멕시코보다도 낮다니... (확인결과 멕시코의 최저임금은 일급 기준이었습니다. 독자분들께 혼란을 드려 죄송합니다.)


 



 


그런데 이 최저임금이 아무리 잘 보장되어 있다고 해도, 일단은 일자리가 있어야 임금의 수준을 논할 수 있잖은가 말이다. 일자리는 갈수록 줄어들고 실업률은 계속 오르고 있다.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어서 일을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최저임금은 아무런 도움을 못 준다.


 


실업급여가 있긴 하지만, 그거야 뭐 이미 일자리를 가지고 일을 하면서 고용보험이라도 들어놓은 사람들에게나 해당이 있지, 사회에 나오자마자 일자리를 못 구한 사람들은 어쩌란 말인가? 사고가 나거나 병에 걸려 일을 못하게 된 사람은 또 어쩌란 말인가?


 


여기에 "기본소득"이라는 제도가 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국민 개개인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매월 일정한 금액을 그냥 정부에서 주자는 제도이다.


 


이런 황당한 수작이 있나. 얼마나 황당한 수작인지 알아보도록 하자.


 




 


사실 기본소득의 발상은 나온지가 무척 오래된 얘기이다.


 


1748년에 이미 몽테스키외는 이미 "국가는 국민 모두에게 안전한 생활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라고 얘길했다. 병들었거나, 약하거나, 바보이거나, 게으르거나 관계없이 말이다. 존 스튜어트 밀 역시도 1849년에 "사회에서의 분배는 우선적으로 모든 구성원의 생존을 위해 분배되어야 한다." 고 주장을 했었다. 무척 유명한 사람들이 주장한 거라는 얘기다. 저 사람들 빨갱이는 아니었다. 다만 좀 이상적인 얘기를 한 거뿐이겠지.


 


실제로 "기본소득(Basic Income)" 이라는 용어는 조지 콜 이라는 사람이 쓴 "사회주의 사상사(1953)"에서 최초로 등장한 용어이다.


 


[caption id="attachment_94733" align="aligncenter" width="178" caption="George Douglas Howard Cole"][/caption]


 


그리고 이 또한 매우 중요한 개념인데, 밀턴 프리드먼이 1962년에 "음의 소득세" 개념을 처음으로 얘기하기 시작한다. 이 음의 소득세 개념이 기본소득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매우 재미있는 측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즉,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소득에 누진비례하는 세금을 국가에 납부할 의무가 있는데, 그 출발선이 0원이 아니라 음수라는 뜻이다. 소득이 전혀 없는 사람은 세금을 내는 대신 국가로부터 기본 소득을 받는다. 그리고 소득이 생겨서 세금을 내게 되면, 기본 소득의 기준선에서 그 세금만큼을 제외한 액수를 받게 된다.


 


그렇게 소득이 늘어 세금의 양과 기본 소득의 양이 같아지면, 그 사람은 세금을 한푼도 안내게 된다. 그리고 그 이상의 소득을 올리는 사람들은 자신이 내야 할 세금에서 기본 소득만큼을 제외하고 나머지를 세금으로 낸다는 의미가 된다.


 


이거 복잡하게 설명했지만, 단순하다. 그냥 모든 국민들에게 (예를 들어) 한달에 오십만 원씩 준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런 황당한 소리를 듣게 되면 질문들이 물밀듯이 밀려와야 정상이다.


 


그 돈을 왜 주는데? 철학적인 근거가 있나?


무슨 돈으로 재원을 마련해서 그 막대한 돈을 주는데?


그거 주면 사람들이 누가 일하겠어, 그냥 그 돈 받아 먹고 살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찬물이나 한사발 먹고 낮잠이나 자라.


등등등


 


이제부터 하나씩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을 해 보자.


 




 


기본소득은 도대체 무슨 근거로 나온 주장인가?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얘기 중에서 가장 먼저 나오고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은 역시 "절대 빈곤을 퇴치"하자는 것이다. 절대 빈곤은 언제나 경제적인 수준에서 사회 최하층 계급의 사람들의 생존을 위협한다.


 



 


어떤 사회가 아무리 문화적으로 훌륭하게 발전을 했다 하더라도, 구성원중 일부가 기본적인 생명을 이어가는 것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면 그것은 제대로 된 사회는 아니다.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말도 있고, 보릿고개 얘기가 없어진지도 얼마 안되지만, 실제로 경제의 발전으로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기본적인 의식주를 제공하고 남을 수준에 도달한지 오래라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그 돈들이 일부에게 편중되게 모여 있어서 그렇잖은가.


 


정부에서 모든 개개인에게 기본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의 돈을 준다면, 그 사람이 진짜 아무 것도 안 하고 빈둥빈둥 놀고 있어도 먹고 자고 입고 하는 생존은 가능해진다. 최소한의 인간의 존엄은 유지된다는 뜻이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에 기본소득제도 만큼 간단명료하고 확실한 방법은 없다.


 


물론 그렇게 돈을 줘도 한순간에 홀라당 써 버리고 한 달 내내 노숙하면서 구걸로 연명하는 사람도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 개인의 선택이지 강요된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기본적인 생존이 보장되면 "자유와 평등" 지수는 상승하기 마련이다. 만약 우리가 사회를 이루고 국가를 구성해서 살아가면서 우리가 사는 국가의 목적이 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를 고양시키는 것에 있다면 기본소득제도만큼 훌륭한 제도는 없다.


 


또 있다. 우리 사회에는 분명히 사회의 유지를 위해 필요한 노동을 하고 있으면서도 유형의 대가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전업주부들이다. 육아와 가사, 가족의 건강을 돌보면서도, 정작 본인은 아무런 댓가를 받지 못하고, 배우자의 소득을 나눠 쓰고 있다. 심지어 많은 경우, 배우자중 한 명이 경제권을 장악하고, 다른 이는 그에 예속되어 살아가고 있는 경우도 많다. (예전에는 주로 남편들이 이랬는데, 요즘에는 부인들이 더 많이 경제권을 장악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런 경우라 해도, 그들의 노동은 우리 사회의 유지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들에게 국가가 나서서 임금을 지불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닐까? 좀 말이 안 되는 것 같이 들린다고? 아닐 것이다. 만약 당신이 노동의 가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해 본다면, 육아와 가사일 같은 중노동에 아무런 대가가 없다는 것에 의문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것 말고도 다양한 주장들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결국 그 많은 주장들의 밑바닥에는, 인간의 문명이 이만큼 발전했으면 이제 모든 사람이 각자의 선택에 따라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비록 호화로운 삶은 아니지만 최소한 생존의 걱정 없이 살아갈 권리는 지켜줄 때가 되지 않았는가 하는 인간의 문명에 대한 신뢰를 바탕에 깔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거기에다가 기본소득제도가 만약 시행된다면 부수적인 경제효과도 많이 생기기 시작할 것이다.


 


극빈곤층은 언제나 소비여력이 없다. 소비하고 싶어도 소비할 돈이 있어야 소비를 하지. 이들 모두에게 매월 일정금액의 돈이 주어지는 것이다. 이들은 바로 나아가 식량을 구매하고, 잠자리를 임대할 것이다. 생필품을 사기 시작하고 말이다. 이들에게 주어진 돈은 거의 즉시 소비가 된다. 기본소득을 매월 수백만 원 주는 것도 아니고, 겨우 먹고 살만큼 주게 되면, 그들은 추가적인 소득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주어진 돈을 그 달에 모두 소비하게 된다.


 


전 사회적인 관점에서는 엄청난 소비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 소비를 수많은 기업과 자영업자들이 매출로 감당하게 된다. 이들의 매출이 상승하게 되면서 경기는 급속도로 상승하게 된다.


 


일본에서 한때, 소비를 진작시키기 위해 쿠폰을 사회적으로 뿌린 적이 있었다. 그 때 실패한 요인중의 하나가, 이 사람들이 쿠폰을 받아서 뭘 사는 게 아니라, 그걸 야쿠자 패거리한테 가져가서 깡(현금으로 교환)을 해서 몽땅 저축을 해 버린 것이다. 일본다운 얘기지만, 기본소득제도가 처음 도입되면서 발생할 만한 일이기도 하다.


 


그런 상황들을 모두 고려해 보더라도, 기본소득제도가 시행되면 뭔가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점은 확실하고, 그 변화를 예측해 보는 것 역시 매우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어찌되었거나, 기본소득은 사실상, 모든 사회보장제도, 모든 사회 안전망 중의 으뜸인 제도이다. 그만큼 실행하기도 어렵고 난관도 많지만, 그 결과는 엄청난 것일 수도 있다.


 


결국 기본소득은 그냥 황당한 개소리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연구하고 있는 미래의 사회보장제도라는 얘기가 된다.


 


 


무슨 돈으로 그걸 주는데?


 


별 수 없다. 세금 걷어서 주는 거다. 정부가 뭔가를 하는 돈이 어디서 나오겠나. 백프로 세금에서 나오는 거지.


 



 


단순하게 따져보자. 우리나라 국민을 오천만 명으로 잡고, 일인당 월 오십만 원씩 준다고 치자. 연간 육백만 원이다. 오천만명이면, 300,000,000,000,000원... 삼백조다. 우리나라 일 년 예산이 대략 삼백조 정도 된다. 즉, 월 오십만 원씩 무조건 각 개인에게 주는 기본소득제도가 시행되려면, 우리는 이제부터 모든 세금을 따블로 내면 된다.


 


생각보다 뭐 별로 황당하진 않지만, 그래도 세금을 몽땅 따블로 내는 건 심하게 부담스럽다.


 


그런데 여기에 숨어있는 부분들이 많다. 우리는 이미 다양한 사회보장제도를 시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초생활수급대상자를 선정해서 지원하기도 하고, 노령연금을 지급하기도 한다. 국민연금 같은 제도도 존재해서 매달 별도로 연금을 걷기도 하고 사대보험도 있다.


 


결국 우리는 국가 일년 예산 중에 이미 백조 원 이상을 복지예산으로 쓰고 있다는 점이다. 이 복지정책중 상당부분은 기본소득제도가 도입되면 없어져도 되는 예산들이다. 예를 들어 기초생활수급대상자들에게 주는 돈은 이 기본소득으로 대치할 수 있다는 뜻이다.


 


거기에 더 좋은 점이 있다.


 


기본소득은 단순하다. 즉, 갓 태어난 애기에서 오늘내일 하시는 노인분까지 몽땅 오십만 원씩 주는 거다. 자격을 심사하고 관리하고 선정하고 뭐 이럴 필요가 없다. 그냥 동사무소에서 가구별로 취합해서 입금처리 해버리면 땡이다. 즉, 행정비용이 대폭 감소한다.


 


거기다가 이 기본소득으로 제공되는 돈이 백 프로 소비에 쓰여질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지급된 돈의 10% 이상이 바로 세금으로 환수된다. 식당 가서 짜장면 사먹으면, 10% 부가세에 그 가게 소득세로 환수가 되잖는가.


 


이래저래 벌써 삼백조에서 상당부분이 깎여 나간다.


 


또 기본소득이 제공되기 시작하면 소득세에서 이래저래 많이 붙어 있는 각종 공제 제도 같은 것들 어지간히 다 없애도 된다. 가족공제나 각종 공제 역시 사회보장의 성격으로 저소득층을 배려하기 위해 붙어 있는 것이 많다. 즉, 세수가 큰 폭으로 증가한다는 것이다.


 


결국 애초에 생각한 거보다는 훨씬 적은 예산으로 이 무지막지한 제도를 시행할 수도 있다는 뜻이 된다. 만약 월 오십이 정 부담스럽다면, 월 이십 정도로 시작할 수도 있다. 그러면 120조면 가능하고, 기존에 우리가 이미 쓰고 있던 복지예산 100조에 근접한 액수가 된다.


 


월 이십만 해도, 4인가정이라면 월 팔십이다. 어지간한 식비는 감당이 될 만한 거금이라는 것이다.


 


이거, 사실 시행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못할 것도 없는 그런 제도이다. 결국 사람들의 인식이 문제가 될 뿐이다.


 


참고로 브라질은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이 제도를 준비해서 이제 시행을 막 시작한 상황이다. 룰라, 참 대단한 사람이다.


 


[caption id="attachment_94738" align="aligncenter" width="300" caption="룰라(Luiz Inácio Lula da Silva) 브라질 대통령"][/caption]


 


 


기본소득의 부작용


 


맞다.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 조건 없이 밥 사먹을 돈을 주는데 누가 일을 하려고 들겠는가. 어쩌면 이 문제가 기본소득, 아니 각종 사회보장제도를 도입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인간에 대한 신뢰" 문제일 것이다. 언제나 열심히 하는 사람이 놀고 먹는 놈들 때문에 손해를 봐온 사회라면 더욱 더 이런 신뢰가 문제가 된다.


 


이 경우는 사회심리학의 문제가 대두될 수도 있다.


 


정답은 없다. 다만, 이미 기 기본소득을 시행한 사회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가를 봄으로써 약간의 유추가 가능할 뿐이다.


 


그 대상은 알래스카이다.


 



 


알래스카는 미국의 한 주이면서도 전혀 미국스럽지 않게, 이 기본소득 제도를 시행해 왔다. 물론 맨땅에 박치기 하듯이 막한 건 아니고, 알래스카 특유의 환경이 이 기본소득제도를 시행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막대한 유전 말이다.


 


유전에서 나온 이익금중 일부를 적립해서 주헌법에 의해 알래스카영구기금을 설립하고 이 기금의 이익금을 기본소득의 형태로 주민들에게 배분한 것이다. 2008년에는 임시 배당금까지 합쳐져서 연간 3,000불이 넘는 돈이 알래스카에 1년 이상 거주한 모든 사람에게 주어졌다.


 


물론 큰 돈은 아니지만, 그 여파는 매우 컸다. 그런 제도가 십 년 정도 시행된 동안 알래스카의 지니계수는 큰 폭으로 변화했으며, 미국 전체 중에서 가장 소득의 균형이 잡힌 주가 되어 버린 것이다.


 


사실 연간 삼천 불 해봐야, 한 달에 삼십만 원 정도 되는 돈이다. 시행 초기에는 이렇게 많이 주지도 않았다. 그저 월 몇만 원 수준. 그 정도의 돈이 개인 가정에 어떤 변화를 주겠나 싶지만, 그 결과는 꽤 큰 변화를 초래한 것이다.


 


아프리카 나미비아에서 실험적으로 시행된 기본소득제도의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전반적인 빈곤층의 소득 수준 향상, 범죄율의 감소, 행복지수 상승 등이 그 결과가 된다.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진짜 회생의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 봉착한 극빈층에게 그 돈이 주어질 때, 그 돈을 자포자기 하는 심정으로 다 써버리고 일도 안 하는 사람들보다는 그 돈에서 희망을 찾고, 그 돈을 발판으로 뭔가를 다시 해보려는 사람들의 비율이 월등히 높다는 것이 입증되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물론 중산층이나 고소득층에게는 별다른 변화도 없다. 아마 그들에게는 자신이 내는 세금의 증가분과 기본소득으로 인한 수입금이 별 차이도 없을 것이다. 물론 아주 고소득층들은 세금이 큰 폭으로 올라갈테니 손해를 보겠지만, 그들은 그런 손해 정도 본다고 해서 인생이 뒤바뀔 사람들은 아니잖은가.


 


기초생활 수급 제도 같은 것도 처음 도입될 때 똑같은 부작용을 우려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무척 높았다. 영세민들에게 돈을 주면 그들의 근로 의지를 꺽고, 재활의 기회를 오히려 줄일 수도 있다는 걱정 말이다. 그러나 기초생활 수급 제도가 시행된 이후 그들의 상황이 더 나빠졌다는 보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caption id="attachment_94742" align="aligncenter" width="300" caption="Kuparuk Oil Field River on the North Slope of Alaska"][/caption]


 


알래스카의 경우를 볼 때, 미국 전체의 통계에서 소득 하위 20% 계층의 소득이 십 년간 겨우 12% 증가한 것에 비해, 알래스카 지역의 하위 20% 계층의 소득은 같은 기간 28%가 넘게 증가했다. 이 소득 증가의 원인이 바로 기본소득제도의 시행에 있다는 것이다.


 


특히나, 사업에 망하고 빚에 쪼들려 온가족 동반자살을 하는 비극들을 눈 앞에 두고, 저들에게 단돈 몇십만 원이라도 꾸준히 주어졌다면 이런 비극을 막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는 것은 인간이라면 해야 하는 당연한 도리일 수도 있다.


 


물론 부작용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부작용을 덮을 수 있는 더 큰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면 한 번쯤은 시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사회 구성원들이 느끼는 희망의 총량을 조금이라도 올릴 수 있다면, 세금 정도는 따블로 낼 수 있다는 사람들의 비율이 얼마나 될 지 궁금할 따름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도 말아라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길게 늘어 놓아서 정말 미안하다.


 


하지만 그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이미 제도로 시행하고 있는 나라가 있고, 미국의 한 주가 있다. 알래스카는 유전이 있으니까 하는거 아니냐고? 유전이 백 배는 더 많은 아랍국가들은 왜 못했을까? 유전의 존재가 문제가 아닌 것이다. 결국 그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인식 수준이 이런 진보적인 제도를 도입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결정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유럽에서도 다양한 정당들이 이 기본소득제도를 정책으로 채택하고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사회당에서 이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1%의 지지도 못 받아서 망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 제도를 연구하고, 우리나라에 맞게 수정해 보고, 사람들에게 알려 시행해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많이 있어왔다. 학교에 정당에 단체에 두루 퍼져있고, 우석훈 씨나 청년유니온 같은 곳에서 이 제도를 지지하고 나선 적도 있다.


 


전혀 말도 안 되는 수작은 아니라는 소리다.


 


그래서 과감하게 준비를 해 봤다.


 


민주노총에서 정책연구원장을 역임하면서, 오랜 기간동안 이 기본소득에 대해 연구하고 전파하기 위해 노력해오던 이수봉 씨를 만나, 이 기본소득 제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우리 사회에서 이 기본소득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어떤 노력들이 있어 왔는가를 들어보기로 했다.


 



 


인터뷰 일정은 잡혔고, 인터뷰를 마친 후 최선을 다해 기사를 작성해서 독자여러분들께 선 보일 예정이다.


 


물론, 모든 일이 그렇지만 계획은 계획일 뿐이고, 예정은 예정일 뿐이다. 하지만, 이 문제만큼은 진짜 꼭 해보고 싶었던 얘기이고, 그렇기에 약속에 대한 부담감을 무릅쓰고 예고편까지 올려본다.


 


기대하시라.


 


물뚝심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