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2013. 05. 22. 수요일

논설우원 파토

 

 

 

 


001.png

 

 

이제 내일(5월 23일)이면 노무현 전 대통령 기일이다. 서거 당일 본지에 첫 추모글을 쓴 게 엊그제 같고, 이어 3년만 버티면 된다던 게 이제 4년째다. 그동안 많은 생각과 다짐, 그리고 시도들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결과는 대통령 박근혜, 그리고 더 천박해진 욕망 중심 사회와 보수회귀를 넘어선 역사 부정, 극우 파시즘적 이념의 유행과 대중화라는 사실, 다들 아는 바와 같다. 고로 지금 우리는 '사람사는 세상'을 만드는 데 처절하게 실패한 상태다.

 

 

요즘 우리나라 일부 자칭 '지식인'들과 '애국자'들이 드러내는 파시즘적인 모습들은 며칠 전 5.18과 관련해서 극에 달해 있다. 본지에 오는 분들이라면 이들의 주장이나 표현이 어떤 것인지 대략 알고 있으니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여기에 관한 우원의 전반적인 관점은 아래 링크를 참고하자.

 

 

<칼럼> 나치를 키우는 사회가 될 거냐

 

http://www.ddanzi.com/index.php?mid=ddanziNews&page=6&document_srl=975315

 

 

 

저 글에도 썼듯이 현재 대한민국의 일각에서 나타나는 파시즘적 언행들은 이데올로기나 정치 성향의 문제가 아니다. 약자를 상대로 아무렇게나 증오를 표출하는 행위는 인권 유린이고 정부가 좋아하는 OECD 기준으로 봐도 범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안되는 건 안되는 거라는 우주적 기준에 따라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 만약 정치적 이득이 된다는 계산하에 방치해 둔다면 박근혜 정부는 파시즘을 키워낸 역사의 범죄를 저지를 뿐 아니라 스스로도 결국 그 이빨에 물리고 말 거라는 점, 다시 경고 드리는 바이다.

 

 

허나 오늘은 그 이야기를 다시 할려는 건 아니다. 그건 그거고, 이번엔 좀 더 깊숙하고 내밀한 문제에 접근해 보자. 기존의 지만원, 변희재 등은 논외로 하고 일베는 물론 종편들까지 대놓고 5.18에 인민군이 개입됐다고 언급하는 이 상황과 시대를 파악하기 위해서 '수구의 반란' 보다 좀 더 정교한 접근이 필요하다.

 

 

게다가 지금의 사태는 기존의 수구 파시즘 세력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베이스가 없는 10대와 20대의 청/소년 층과, 정치적 색깔이 없거나 차라리 중도진보 성향이었던 일부 기성세대의 합세에 의해 리드되고 있다. 그들은 대체 왜 갑작스레 파시즘에 열광하는 걸까. 왜 관심을 보이는 수준을 넘어 '열광적'으로 발언하려 드는 걸까, 그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원이 최근 가장 관심을 갖고 보는 이는, 요즘 많은 말들을 토해내고 있는 방송인 출신의 사업가 정미홍이다.

 

 

 002.png

 

 

 

우원은 정미홍에 대해 상당히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그 이유란 게 별건 아니다. 우원이 고등학생일 때 그는 KBS 아나운서였다. 당시 음악프로를 진행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약력을 보니 그 이후라 이 기억은 우원의 착각일 수 있다. 아무튼 확실한 건 당시 그가 어느 중요한 록 페스티발의 사회자로 등장했었다는 사실이다. 전문가 수준은 아니지만 다소의 록 지식을 드러내기도 했던 듯 하다.

 

 

이게 우원에게 좋은 이미지로 남은 것은, 그 당시 록/메탈 계열은 주류와 동떨어져 고군분투하는 상황이었고 여기에 대한 록 매니아/연주자로서의 피해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미홍은 어엿한 공영방송의 아나운서로서 그 바닥의 사회자로 '나선' 흔치 않은 모습을 보인 거다. 지금 생각해 보면야 알음알음 섭외 들어오고 출연료 주니까 나갔겠지만 사춘기 소년이었던 우원에게는 미녀 아나운서의 멋지고 쿨한 모습으로 각인된 것이다. 사람의 이미지라는 게 이런 식으로 형성된다...

 

 

여하튼 이후에도 특히 싫어할 일을 한 적은 없다. 95년, 조순이 민주당 후보로 초대 민선 서울시장에 출마했을 때 부대변인이었고 조순 당선 후 서울시에서 일도 했다. 부대변인으로서 정미홍은 경쟁상대였던 박찬종 후보의 유신 지지를 강도 높게 비판한 바도 있었다. 나아가 2000년에는 민주당 정대철 후보의 선거운동원으로 활동하며 한나라당 박성범 후보와 명예훼손 송사에 휘말리기도 했다. 이명박 정권 치하인 얼마 전 2008년까지도 전남 광양에 출마한 유윤근 후보를 지지하며 '건강한 견제 세력으로의 통합민주당'을 언급했고, 데일리안에 의해 한나라당 저격수로 까지 불렸던 인물이다.

 

 

그런 그가 바로 얼마 전부터 갑작스레, 그냥 보수도 아닌 극우 파시스트적인 언행을 보이고 있는 거다. 본인 인터뷰에 따르면 이런 변화의 시초는 나꼼수였다고 한다. 나꼼수의 막말과 아님말고 식의 접근에 소름이 끼치면서 각종 의심이 들었고, 나아가 전교조의 자료를 보면서 종북의 존재를 확인했다는 거다. 이후 좀만 의심이 가면 이넘저넘 종북으로 몰아세우며 극우 인사들을 두둔하는 글을 트위터 등에 쓰기 시작했고, 얼마 전 윤창중 옹호를 통해 이는 정점에 다달았다.

 

 

 003.png

 

이유는 윤창중 본인이 한 짓 때문임다 누님.

 

 

 

그럼 생각해 보자. 정미홍으로 대변되는, 야당 성향이거나 중도였다가 열광적, 맹목적 극우로 돌변하는 이런 사람들의 멘탈은 대체 뭐냐는 거다.

 

 

제일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게 섭섭함이다. 소위 민주 진보진영에서 목소리 내며 활동해 왔는데 명예나 지위 등 돌아오는 보상이 만족스럽지 못해서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극우로 돌아섰다기 보다는, 이렇게 쌓인 감정들이 서서히 작용하면서 자기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 대한 증오로 변해가고, 그 증오가 사람이 아닌 그들의 생각과 활동, 사상을 향하게 되는 거다. 특히 김동길, 김지하 등 90년대 이후 대접을 받지 못한 유신시대 노인들이 주로 그 카테고리에 속하는 듯 하다. 법적으로 듣보잡이 아닌 게 확인된 변희재도 - 존중하는 의미에서 이후 변안듣보로 호칭함 - 그런 경우라고 이야기하는 옛 선배 동료들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정미홍의 경우는 별로 그렇지 않아 보인다. 소리만 시끄럽지 제대로 된 자리를 가져본 적 없는 변안듣보와는 달리 민주당 계통의 이런저런 지위를 오랫동안 거쳐온 주류의 인물이고 성공적인 사업가이기도 한 그가 갑자기 억하심정에 삐뚤어질 이유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간의 인터뷰나 발언들을 보면 그녀의 '변절'은 되려 순진한 형태다. 다만 그 바탕에는 지성의 결여와 음모론의 함정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게 전략적인 변절이나 노인네들의 왕 삐침보다 훨씬 무섭다. 남녀노소 어떤 멀쩡한 사람이라도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004.png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우원은 일종의 음모론 전문가다. 주종목은 비밀결사나 고대문명, 외계인 관련된 분야지만 그 외에도 어려서부터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많은 형태의 음모론을 접하고 관심을 기울여왔다. 그러다 보면 다양한 스테이지를 겪으면서 이런 류의 것에 대한 일종의 통찰을 얻게 된다.

 

 

일단 전제할 것은 주제를 막론하고 음모론은 대개 그럴 듯 하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음모론이라는 것 자체가 성립하는 거지 전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면 론(論)의 수준까지 가지도 못한다. 근데 이어서 꼭 지적되어야 하는 점은 그 그럴듯한 음모론의 대부분은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원이 본지에 '외계문명과 인류의 비밀'을 연재하면서 굳이 구라라는 걸 여러 번에 걸쳐 강조한 이유도 상상과 오락을 넘어 음모론의 함정에 열분들을 빠트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 왜 음모론은 그럴듯하고, 그러면서도 허위인 경우가 많을까? 그건 바로 연역추리가 가진 한계 때문이다. 셜록 홈즈를 예로 들자. 그는 일단 범죄 현장을 힐끗 보는 것만으로도 범인의 윤곽을 상당부분 알아 맞춘다. 발자국의 깊이나 각도, 바닥에 떨어진 담뱃재 같은 사소한 것들을 통해 범인이 시신을 메고 있었거나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거나 장애인이거나 외교관 출신이거나 선원이라는 등등의 상황이 줄줄 꿰어져 나온다. 그래서 결국은 '30대 백인 남자로 중국에서 산 적이 있고 시력이 나쁘며 사치하는 버릇이 있고 잔인한 성품이지만 호감가게 생긴' 범인이 등장한다. 이제 남은 것은 정황과 동기 등을 통해 이 사건 언저리에 존재하는 이런 자를 찾아 범행을 증명하는 일이다.

 

 

물론 극중에서 홈즈는 항상 옳다. 하지만 이런 방식이 현실에서도 적용될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코난 도일이 홈즈를 위해 만들어놓은 맞춤 우주와는 달리, 우리가 실제 살아가는 세상에는 그보다 훨씬 많은 변수들이 있기 때문이다. 발자국 한쪽이 더 깊이 패이는 것은 홈즈의 세상에서는 반대쪽 발이 의족이라는 한 가지 이유 - 혹은 그 비슷한 먼가 - 밖에 없지만, 현실에서는 적어도 37가지의 다른 이유가 있다.

 

 

 005.png


홈즈식 추리는 상황의 파악과 분석에 도움이 되지만

 

지나치게 의존하면 스스로가 판 함정에 빠지기 쉽다.

 

 

 

따라서 저런 식으로 추리를 해 나가다 보면 전혀 엉뚱한 답이 나올 가능성이 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추리를 진행한 사람은 자신이 맞다고 철석같이 믿는다. 살인사건처럼 어딘가 실제 범인이 존재하는 경우는 오류가 판명될 수도 있지만, 추리에 의한 결론 외에는 증명이 곤란한 사안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그리고 이런 식의 추리는 남이 보기에도 그럴듯 해서 많은 추종자를 양산하는데 때로 그들은 추리의 당사자보다 더 강한 믿음과 신념을 갖기도 한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나꼼수도 이런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저런 식의 접근은 기본적으로 오류를 만들어내는 틀 속에 있기 때문에 그 속에서 아무리 그럴 듯한 논리를 전개해 나간다 한들 틀린 결론이 나올 가능성은 늘 있는 거다(나꼼수의 특정 주장이 엉터리라는 소리가 아니라 원론적인 이야기. 암튼 우원은 사람들이 혹하는 음모론을 직접 만들기 때문에 이런 논리 전개의 효과 & 허점에 대해 잘 안다는 말씀이다. 아니면 '외계문명과 인류의 비밀'에 쓴 이야기를 스스로 믿으며 일종의 유사종교를 창시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음모론은 사람을 흥분시키는 선정성을 본질적으로 갖고 있다. 이 선정성은 영화에서 잘 쓰이는 반전 결말과 비슷해서 기존의 생각이나 믿음을 송두리째 뒤집어 버리는 힘을 가진다. 그런 것을 접했을 때 사람은 흥분하고, 자기가 살고 있는 세상이 더 이상 시시한 일상의 연속이 아닌 비밀과 음모로 가득 찬 흥미진진한 것으로 여겨지게 된다. 설사 그게 부정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해도 말이다. 식스 센스에서 브루스 윌리스가 반전 없이 멀쩡한 아저씨로 잘 사는 모습이었다면 그 영화가 얼마나 시시했을지 말이다.

 

 

그런 맥락에서, 우원은 현재 극우진영에서 돌면서 대중에 퍼지고 있는 관점에 '종북환상 음모론'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이는 사실 유래가 깊은 것으로 1970,80년대 종북이란 말 대신 간첩, 좌경용공 등의 이름으로 대유행하다가 거의 사라졌던 것이 작년 경에 다시 본격 확산됐는데, 그 단초가 경기동부연합과 통합진보당 사태를 통해 제공된 것은 다들 아는 바다. 사실 우원은 당시 관련 내용이 퍼지는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 바 있었다. 사태의 본질이 아니라 종북이라는 단어 하나가 수구세력들에게 조만간 어떻게 이용될지 뻔한 거였는데, 의외로 걱정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던 걸 보면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민주진보 진영의 자만심이 지나쳤던 것 아닌지 뒤돌아보게 된다.

 

 

암튼 이 종북환상 음모론은 정부나 위정자를 반대하는 사람들, 성장에 대해 분배의 중요성을 내세우는 사람들 등을 통틀어 북한을 추종하거나 지시를 받는 존재라고 매도하며 그런 시각으로 단죄하려 드는 주장이다. 북한과 아무런 연결고리도 없는 사람이나 활동에까지 종북이란 개념을 무차별 적용하기 때문에 음모론 중에서도 논리적 근거가 약한, 저열한 범주에 속한다.

 

 

변안듣보 같은 이는 이걸 교묘히 이용하는 것도 같지만 정미홍은 실제로 여기에 빠져 있는 듯 하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원래 야당성향이던 그는 나꼼수의 표현 방식과 선정성에 충격을 받고 그때부터 진보진영을 다시 보게 됐다고 인터뷰를 통해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어떤 전교조 자료를 봤는지는 모르지만 전교조가 북을 찬양하고 그들의 주장에 동조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금 충격을 받았단다.

 

 

거기까지는 머 그럴 수도 있나 싶은데 문제는 그 담부터 이 분의 눈에는 '자유민주주의'나 '반공'같은 아주 선명한 간판을 달고 있지 않은 것은 전부 종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고, 이게 전형적인 음모론 중독 증상이다. 이어 마녀사냥이 스스로의 머리 속에서 진행되는데, 자신이 받은 충격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무의식적인 행위기도 하다. 충분한 지적 고민과 성찰이 없는 상태에서 야당과 진보를 지지하다가 진위를 떠나 예상치 못했던 것들을 접하게 된 바, 그 충격을 개인적 허탈감이 아닌 일종의 '각성'으로 승화시켜야 전면적인 멘붕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이제 이를 뒷받침해주는 각종 극우적 정보들(예컨대 5.18 관련)을 접하기 시작했고, 새로운 각성의 방향에 논리적 근거와 정당성을 제공해 주는 이런 것들을 아무 거부감없이 사실로 믿어 버리며 마치 대단한 진실을 깨달은 사람인양 행동한다.

 

 

 006.png

 

한때 야권 후보들의 대변인까지 했으면서 '이제와'

 

이런 생각이 든다는 건 당시는 당시대로 지금은 지금대로 


얼마나 '자기 생각'이 없는 사람인지를 증명하는 겁니다 누님.

 

 

허나 그가 아래 사이트에 가서 제대로 읽어본다면 위에서 말하는 ‘증거’라는 것이 얼마나 허술한 것인지 알 수 있을 거다.

 

 

5.18에 대한 폄훼의 진실

 

http://blog.naver.com/chiyahn/20171304853

 

 

정미홍의 이런 음모론/팔랑귀적 면모는 윤창중 사건에 대한 입장에서 더 확연히 나타났는데, 보수진보 가릴 것 없는 언론의 취재와 기사들을 죄다 엉터리로 치부하며 '그 분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는 것을 자기 주장의 근거로 내세우는 모순을 드러내기에 이른 거다. 특정인에 대한 개인의 사적 감정이나 판단이 다양한 루트의 취재를 통해 만들어지던 사건의 상에 비해 더 정확할 수 있다는 이런 태도는 언론이 아닌 정미홍 본인이야말로 스스로 이 사건의 경과와 결론을 미리 정해놓는 근본적인 오류를 범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나아가 기자회견 후에도 윤창중의 말을 철저히 신뢰하며 ‘성폭행 해 죽이기라도 했냐’, ‘집단적인 광기다’라고까지 말하면서 중요한 자기 정체성 하나를 스스로 파괴할 만큼 - 정미홍은 과거 저작을 통해 방송국 안에 만연된 여 아나운서들의 성상납 관행을 폭로한 바 있다. 이 역시 남성들의 권력에 의한 음양의 강요가 작용하는 사회구조 때문이고, 아나운서들이 성폭행당해 죽은 거 아니다 - 지금 이 분은 음모론과 그 언저리의 왜곡된 관점에 심각하게 빠져들어 있다. 하지만 기실 광기를 부리며 대다수 국민을 정당한 의심과 문제제기를 마녀사냥하려 든 것은 정미홍 본인이었다는 점이다.

 

 

 007.png

 

사람이 속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사실이 아닌 것을 믿을 때이고

 

다른 하나는 사실인 것을 믿으려 하지 않을 때다

 

- 키에르케고르

 

 

 

그러다가 하루 만에 윤창중에게 크게 실망했다 운운하며 코메디처럼 말을 바꾸는데, 여기에는 계속되는 언론의 보도도 보도지만 청와대의 태도가 큰 영향을 미쳤을 걸로 보인다. 윤창중보다 훨씬 큰 권위의 향방을 보며 이를 좇아가는 모습은 사태의 진실을 받아들여 미망에서 깨어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음모론에 빠진 상태에서 정신적 주체성을 권위에 의탁하는 팔랑귀 행위다.

 

 

허나 누님, 나이도 있고 하니 이제 충격을 좀 접어두고 찬찬히 생각해 보자. 작년 경기동부와 통합진보당 당권파의 종북 논란에서 충격을 받은 사람들 꽤 될 거고 정미홍도 그 중 하나지 싶다. 종북의 기준이 뭔지는 상당히 모호하지만 까놓고 말해서 우원도 우리나라에 북한 정권을 신봉하고 그 체제를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본다. 우원 주변에는 ‘분명히’ 없지만 사람의 성향은 다양한 거니까 어딘가에는 있을 수 있다는 원론적인 의미다. 우원은 잘 모르지만 당시 비난받은 사람의 일부가 그럴지도 모른다. 비록 최근 법원에 의해 근거 부족이라고 판결나고 변안듣보가 벌금 벼락을 맞긴 했지만.

 

 

설사 그렇다한들, 그럼 그래서 이제 5.18부터 지금까지 민주화 세력이 전부 종북이거나 그들의 조종을 받은 세력이란 말이냐. 종북주의자가 어딘가에 좀 있다 한들 그 수가 얼마나 되며, 누님 본인 포함해서 우리 모두는 거기에 수십 년 간 속고 끌려 다닐 만큼 바보냐. 더 중요한 점은 극소수 그들의 존재 가능성 때문에 내가 믿어왔던 민주주의와 진보의 가치가 타격을 받고 변질되어야 하냐는 거다.

 

 

누님도 민주당에서 일하고 한나라당 저격수까지 하면서는 나름 믿고 추구했던 가치가 있었을 거다. 그 가치는 종북의 존재 여부와는 아무 상관 없이 자기 내면에 있는 거다. 그런데 지금 와서 그걸 하루아침에 부정한다면 실은 그 동안 아무 생각도 없이 꼭두각시처럼 살았다는 소리다. 이런 건 각성이 아니라 스스로의 지성과 신념, 주체성 없음 - 주체사상 말하는 거 아니다 - 을 드러내는 초라한 커밍아웃일 뿐이다.

 

 

따라서 누님이나 최근 이런저런 계기로 비슷한 의심에 빠져버린 비슷한 이들은 지난 세월 동안 자기가 해 온 말이나 행동이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곱씹어 볼 일이다. 나꼼수나 전교조가 개인적으로 싫거나 이상한 것, 종북이 좀 있고 없고와 내 자신이 어떤 철학과 신념을 갖고 살아왔는지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그걸 구별 못한다면 세상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할 정도의 기본도 되어 있지 않은 거다.

 

 



 


 

일베도 종북환상 음모론에 심각하게 빠져 있지만 그 동력은 비아냥과 증오다. 끊임없이 팩트를 외치지만 실제로는 팩트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알지 못하고 관심도 없다. 다만 증오를 때려 부을 대상이 필요한데 야당, 혹은 진보진영이 약자 또는 호구이기 때문에 여성, 이주민, 동성애자 등과 함께 그 과녁이 될 뿐이다.

 

 

따라서 지난 대선에서 야당이 정권을 잡았다 해도 그런 부분은 크게 바뀌지 않았을 거다. 그들에게 있어서 강함의 기준은 정권의 소재보다는 마초적이고 파시스트적인 힘을 휘두르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식하고 강한 전두환은 전땅끄로 숭배되고 순진하고 섬세한 노무현은 운지로 비하된다.

 

 

 008.png

 

일베와 관련해서는 진짜 문제와 가짜 문제를 분별하는 원칙을 세우고 

이에 맞게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 이런 합성사진은 시각적 자극을 주고 불쾌하지만 우리 쪽에서도 늘상 해 오던 것이고, 

5.18 왜곡이나 여성과 장애인 비하처럼 본질적으로 심각하고 반인권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일베의 여성에 대한 태도를 보면 개인으로서 그들이 가진 주된 정서가 열등감임을 알 수 있다. 여성들에게 깊은 피해의식을 갖고 있고, 여자를 두려워해서 사귀어 본 경험이 없거나 요령이 부족한 타입들이 많을 거다. 그런데 막상 사회 전체에서 보면 여성은 약자고 마이너리티라는 엄연한 현실이 존재하며 그들은 이를 악의적으로 이용한다. 즉 여성 일반에 대한 무차별한 공격과 모욕을 통해 개인적 열등감이 집단적 남성우월주의로 치환되며 이 속에서 사적인 현실에 대한 막대한 위로, 나아가 가학적 쾌감을 얻는 거다.

 

 

009.png


그래도 이러기만 하기엔 자존심 상하니 일단 깔아 뭉개야지 말이다.

 

 

이런 것은 나치 독일의 유태인 탄압을 필두로 한 인종주의의 심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흔히 인종주의는 그 나라의 주류 인종 중에서 깊은 열등감을 가진 부류가 그들보다 개개인으로 우월해 보이는 비주류 인종을 향해 터져 나오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그들은 각자의 힘으로는 풀 수 없는 개인적인 열등감을 비뚤어진 방법으로나마 해소할 수 있다. 유럽의 극우 스킨헤드, 네오나치들이 흔히 교육이나 지적 수준이 낮은 것은 이를 뒷받침한다. 일베가 자신들 중 지위나 학력이 높은 사람이 드러나면 열광하는 이유도 이와 관련된다. 그들의 지위와 학력이 동일 집단에 속한 자신들 속에도 녹아들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들은 기본적으로 신념이나 용기가 없기 때문에 법제도를 정비해서 반인권적 태도의 징벌 기준을 명확히 하면 오래가지 못하고 사그러 들 가능성이 크다. 허나 그와는 별개로 꼭 생각해야 할 부분이 있다. 그건 이넘들도 결국은 병적인 이 사회와 무책임한 기성세대의 산물이라는 사실이다. 이들(뿐 아니라 지난 10여년간의 우리나라 청소년 대부분)은 진학만을 강요하는 학교와 가정, 사회 풍토 속에서 성격과 인격 형성기에 충분한 지성적, 감성적 바탕을 일궈낼 아무런 기회나 여유도 갖지 못해 왔다. 그렇게 공부하는 기계로 키워졌지만 정작 그래서 공부를 잘 하거나 취업이 잘되는 넘들은 소수일 뿐이다. 나머지는 작동하지 않는 공부 기계의 삶을 살았거나 지금도 살고 있다.

 

 

여기에 부모 세대인 386적 권위에 대한 지겨움과 반항심, 전직 대통령의 자살이라는 어린 나이에는 이해하기 힘든 사태, 와중에 쿠데타 주역이자 살인자라면서 추징금도 내지 않고 전재산 29만원으로 귀족처럼 살고 있는 전두환의 현실 등등이 마구잡이로 뒤섞이고 거기에 인종적, 성적 우월주의로 가려진 열등의식에 잔인하고 비틀어진 위트의 쾌감까지 더해진다.

 

 

그렇게 여러 대립되거나 상호 보조적인 가치들이 마치 아무렇게나 흩뿌려 놓은 1,000피스 퍼즐처럼 혼재된 상태의 암울한 그림자가 바로 그들이다. 그런데 이런 곳이 그리 적지만은 않은 일부 청/소년들의 해방구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사회가 그들에게 강요하는 가치나 삶이 얼마나 조잡하고 암울한 것인지 단적으로 증명된다. 따라서 당장 틀어막아 놓아도 사회 구성원 전체가 정신 차리고 바꿔가지 않으면 언젠가는 훨씬 더 무섭고 실제적인 형태로 돌아오게 된다. 정부여당도 이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할 거다.

 

 

 010.png

 

이를 테면 온라인에서 이 짓 하고 있는 거다.

 

다만 특성상 그 해악이 소수 운전자가 아니라 전체 사회를 향하는 점이 문제다. 



지금같이 간다면 머지않아 오프라인에서도 그들을 보게 될 거다.

 

 

 

... 얼마 전,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기업 계열사의 대표와 술을 한잔 했다. 이 기업은 일반적으로 보수 성향으로 알려져 있는데 계열사 사장 개인의 성향은 의외로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렇게 죽이 맞아서 오랜만에 술을 꽤 마셨는데, 우리나라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으로 보이냐는 우원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빨리 올라간 만큼 빨리 떨어질 거라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진보성향이라 하더라도 그런 회사의 대표 입에서 나온 말로는 상당히 놀라웠고 그런 만큼 섬칫했다. 사실 한강의 기적이라는 산업화와 조급한 선진국 따라잡기에 바빠 그 위험성에 눈을 감으며 살아온 결과가 지금의 이 사회다. 굳이 분배나 복지 문제만 말하는 게 아니다. 사회적 가치나 생활양식의 변화 속도가 인류 역사상 유래 없이 빨랐던 와중에 그 중심을 잡아 줄 철학이 없었다. 민주주의와 인권, 행복 등 적극적인 개념이 뿌리박아야 할 그곳에 반공이라는 특정 체제에 대한 안티테제와 무한욕망이 사실상의 '국시'로 존재했고 민주주의는 상황이 최악에 달했을 때 터져 나온 구호, 이벤트로만 존재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일궈낸 민주사회는 실은 사상누각이었고, 지금 우리는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이제 근본적으로 뒤돌아 봐야 한다. 우리는 왜 실패했는지, 이 나라는 왜 실패의 길로 가고 있는지. 전략이나 테크닉이 아니라 바탕 말이다. 그 속에는 불편하거나 외면하고 싶은 뭔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낸 음모론은 과연 없는지, 소리만 요란하게 냈을 뿐 오류와 자만 속에 스스로를 가둬 버린 건 아닌지, 전선을 구축하고 이겨야만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더 중요한 가치들을 지나쳐 버린 것은 아니었는지.

 

 

당장 답답하더라도 그런 것들을 지금부터 찾아가지 않으면, 이 사회는 정말 그 사장님 말처럼 될지도 모른다. 지난 수십년 동안의 피와 땀을 물거품으로 만들면서.

 

 







 파토

트위터 : @patoworld